20만 원과 맞바꾼 4명의 애꿎은 목숨
1990년 11월 11일 오후 1시 반경.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싸리봉 비슬계곡에서는 경찰과 취재진, 유가족과 주민 등 무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체발굴이 이뤄지고 있었다.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을 잇는 6번 국도에서 10여km 떨어진 이곳은 평소 한낮에도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범인의 지목에 따라 경찰이 조심스레 땅을 파내려가기를 수 분째, 흙더미와 돌덩이 아래에서 사체들이 줄줄이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손발이 나일론 끈으로 결박되고 재갈이 물려진 상태로 두 곳에 나뉘어 묻혀있었는데 머리와 안면에 심한 타박상이 있고 목뼈가 부러져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특히 뒤로 손이 묶인 채 쪼그려 앉은 자세로 발견된 여아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수중의 돈이 떨어지자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행을 공모하던 이들 삼인조는 1990년 10월 28일 강릉 경포대로 소위 ‘원정범죄 여행’을 떠나기로 뜻을 모은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었지만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행 중 한탕 크게 해서 여행경비도 마련하고 목돈도 챙겨보자는 것이 이들의 의도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경 5만 6000원을 주고 프린스 승용차를 빌려 경포대로 향했다. ‘범죄여행’에는 그해 여름부터 사귄 이영준의 애인 심혜정도 동행했다.
“경포대의 한 여관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이들은 29일 오후가 되자 범행대상을 찾아 나섰다. 오후 7시 반경, 일당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포대로 신혼여행을 온 김영욱 씨(가명·27) 부부였다. 이들은 우럭바위 앞에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김 씨 부부를 흉기로 위협한 뒤 미리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부부의 손발을 결박했다. 그리고 신랑은 자신들의 렌터카 트렁크에, 신부는 신혼부부가 타고 온 승용차 뒷좌석에 나눠 태운 뒤 현장에서 9km 떨어진 야산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을 왔다가 변을 당한 김 씨 부부가 느꼈을 공포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들은 현금과 수표 등 260만 원과 패물, 승용차 등 800여 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뺏은 뒤 부부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달아났다.”
경찰은 이영준이 버리고 간 승용차에서 그의 애인 심혜정 명의의 예금통장과 가스총을 발견했다. 단순 교통사고범으로 보기에는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은 통장 명의자인 심혜정의 주소지를 알아내고 연고지관할인 대전 동부경찰서와 공조수사에 들어갔다.
렌터카를 몰고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 6번 국도변을 주행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이들의 눈에 쏘나타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친척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강원도 평창으로 가던 유재범 씨(가명·54) 일가족이 탄 차량이었다. 당시 차량 안에는 운전자 유 씨를 비롯해 유 씨의 老母(84)와 老母의 여동생(74), 그리고 외손녀 최정민 양(가명·5)이 타고 있었다.
차량에 노인과 어린아이가 타고 있어 범행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한 윤 씨 일당은 주변에 지나가는 차량이 없음을 확인한 뒤 자신들의 차로 유 씨의 차량을 가로막아 세웠다. 장정 3명이 노인 두 명과 50대 남성 한 명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울부짖는 다섯 살 여아는 이영준의 애인 심혜정이 담당했다. 일가족을 흉기로 위협한 일당은 미리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일가족의 손발을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 제압했다. 자신들의 차량 트렁크에 유 씨의 老母 등 노인 두 명을 집어넣는 등 두 대의 차량에 일가족을 나눠 태운 범인들은 전날 민박을 했던 집에 찾아가 “아버지 산소에 간다”며 삽 두 자루를 빌렸다. 그리고 납치현장으로부터 27km 떨어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의 계곡으로 차를 몰았다.
약 50분 후 인적 하나 없는 국도변에 차를 세운 일당은 각자 한 명씩 들쳐 메고 야산으로 올라갔다. 어린 최 양은 심혜정이 안았다. 어른 3명을 20m 아래로 밀어뜨려 기절시킨 일당은 구덩이를 판 뒤 실신한 이들을 산 채로 암매장했다. 또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최 양마저 생매장했다. 일가족 4명을 생매장한 이들은 그날 저녁 안양으로 올라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시고 오성환의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일당은 오성환의 애인이 사는 대전으로 가기로 하고 미리 연락을 취해놓은 뒤 10일 오후 1시경 대전에 도착했다.
나머지 일당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전을 빠져나와 서울 도림동의 친구집에 숨어있던 윤성필은 11일 밤 주민의 신고로 검거됐다. 수사팀은 또 이영준이 도피 당시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는 윤성필의 진술에 따라 인근을 수색했고 12일 오전 9시 15분경 가오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숨져있는 이영준을 발견했다.
당시 수사팀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이들이 일가족 4명을 산 채로 암매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체검안 결과 피해자들의 기도에 흙먼지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가족을 생매장한 엽기적이고 잔인한 범행수법보다 수사팀을 더욱 큰 충격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당시 윤성필이 네 살 난 딸을 둔 가장이었으며 오성환 역시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었다.
윤성필과 오성환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각각 92년, 94년 그냥 씨발 죽여버렸다.
당시 범죄에 가담한 심혜정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심혜정은 가석방 후 서울 예전 문창과에 입학...올해 2월 암으로 33세 나이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