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린, 설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중반야간근무를 받고 경계 근무 중이었습니다. 경계근무는 두 명이 한조로 근무를 서는 데, 그 날은 눈이 좋기로 소문난 후임병과 서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녀석은 야간에도 200미터 가령 떨어진 곳에서 오는 사람도 구별해냅니다. 문제는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아닌 것도 본다는 것.
근무시간이 끝나갈 새벽 1시 무렵이었습니다. 반 실신상태로 졸음근무를 서는 제게 후임병이 말을 걸었습니다.
"나병장님! 저기 봐보십쇼~!"
눈을 비비며 녀석이 가리킨 곳을 야간투시경으로 봤지만,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무덤이 많은 광경의 경계근무지역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뭘 보라는 거야.' 하며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더니, 녀석은 진지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앞 무덤의 묘지 비석 위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안보이십니까?"
속으론 무서웠지만, 병장이니 내색하지 않고, '인마! 무덤이 사방에 널리고 깔렸는데, 귀신 하나 없겠냐?' 하며 얼버무렸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 곳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사람 같습니다!! 할아버지 같습니다!"
녀석의 말에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계속 내색하지 않으며 '그래, 그래. 무덤의 영감님이 눈이 많이 와서, 눈 쓸러 나오셨나보다.' 하며 얼버무렸습니다. 이윽고 다음 근무자와 교대하고 자러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린 눈이 한 뼘이나 쌓여, 동기들과 눈을 치우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연하게 어제 후임병이 말한 그 초소의 그 비석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동기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후임병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야, 이 비석 신기하지 않냐? 눈이 엄청 내렸는데, 여기 위에만 안 쌓였잖아. 누가 밤새, 이 위에 앉아 있었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