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낙인

금산스님 작성일 19.05.21 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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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로 상경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마을에서는 대지주인 집안이 권력을 잡고 있어,

일부에서는 "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숭배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친구는 그 집안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흥미가 생겨, [왜 그런데?]라고 묻자,

친구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친구네 집은 마을에서 평균보다 조금 괜찮은 정도 위치였다고 합니다.

마을 노인들은 누구나 지주 집안을 숭상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저 녀석들은 다들 상당히 실력이 있어.

 시험에서 다들 만점 가까이 맞으니까 성적도 좋고,

 운동신경도 뛰어나서 마라톤을 뛰어도 거의 1등이지.]

 


[하지만 뭔가 이상해. 적어도 30년간 저런 완벽한 사람들만 이어져 왔다는 건데,

 지주 집안은 어떻게 모자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지?"] 하고 의문을 품고 있었답니다.

 


나는 [사실 어디서 뛰어난 아이들만 모아온 거 아닐까?] 하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지주 집안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작게나마 잔치를 벌여.

 확실히 스무 살쯤 돼서 도시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연말연시에는 다들 귀성을 하거든.

 오히려 집에 남아있는 녀석들이 더 이상했어. 거의 얼굴도 비추지 않고,

 연말연시에도 그늘 사이에서 슬쩍 보이는 정도였으니까..]

 


[집안에서 마을 관련된 중요한 일들을 맡아보는 사람들일 텐데,

 아무리 봐도 마을을 떠난 사람들보다 무능해 보인단 말이지. 뭐.. 나는 봐버리고 말았지만.]

 


친구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마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린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친구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주 집안에서 죽은 사람이 나와서 장례식을 치르던 날이었어.

 나는 아직 미성년자였지만 술을 얻어마셨다가 곯아떨어졌지.

 그래서 그 집에 하룻밤 묵게 됐는데, 밤중에 문득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갔어.]

 


지주네 집은 넓고 어두웠습니다.

친구는 처음 오는 집인데다 술기운도 남아있었던 탓에,

길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화장실이 어딘지 도저히 몰라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뒤쪽에서 [터벅.. 터벅.. 터벅..] 하고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발소리라기에는 걷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할까, 튀어 오르고 있는 것 같은 소리랄까..

그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답니다.

 


터벅.. 스륵.. 터벅.. 스륵.. 터벅..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무언가를 끄는 듯한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워진 친구는 가까이 있던 벽장에 들어가 문틈으로 바깥을 살폈습니다.

소리의 정체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심하고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보려던 순간,

친구는 공포에 사로잡혀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채,

얼굴에는 가면 같은 걸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하나가 없었는데,

손에 다리가 들려있더라는 겁니다.

 


너무 충격적이라,

친구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덕인지,

검은 옷을 입은 것은 친구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외발로 터벅터벅,

아무런 말 없이 복도 안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친구는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이불 속에서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날이 밝은 뒤,

어젯밤 일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할지, 친구는 고민했습니다.

 


결국 호기심이 동해,

지주네 집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이냐! 조금 기다려다오.]라고 말한 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서는 5분 정도 있다 돌아왔습니다.

 


[미안하구나. 봐버렸구나.. 가능하면 잊어줬으면 좋겠지만,

 직접 그걸 봐 버렸으니 그것도 무리겠지. 오늘은 그만 돌아가거라.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트라우마는 적을 수록 좋을 테니.]

 


이틀 뒤, 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검은 옷을 입은 것은,

대대로 지주 집안에 씌어있는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녀석이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에 맞는 사람에게 씌우게 되면 무언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 조건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귀신은 집안의 "낙오자"에게 씌는 거겠죠.

그리고 "낙오자" 후보에게, "낙오자의 낙인"을 찍는 겁니다.

 


낙오의 조건은 스펙이 모자란 자..

그들에게 검은 옷을 입은 놈이 낙인을 찍어버리는 겁니다.

그 탓에 지주 집안사람들은 모두 우수했던 겁니다.

 


다들 필사적으로 노력했겠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을 떠나고,

낙오당한 이들은 집에 남게 됩니다.

 


집에서 도망친 사람들과,

낙인을 찍혀 집에서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

낙오자들은 집안에 숨겨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으니,

자연히 사람들은 지주 집안에 우수한 사람들만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마을 노인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하더라.] 하고, 친구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그걸 다른 사람한테 말해도 괜찮은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말하더라도 그걸 보지 않은 사람은 못 믿겠지.

 게다가 지주 집안은 여기저기 연줄이 닿아있다고.

 지방 선거도 지주 집안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무조건 당선되고 말이야.]

 


[얼마 전에 "낙오자" 후보로 보이던 놈 중 하나가 죽었어.

 젊었으니까 아마 정신이 나갔던 거 아닐까. 말해준 사람도 얼굴이 상처투성이였으니까.

 나라도 엘리트에서 낙오당해 외톨이 신세가 되면 정신줄을 놓을 거 같아.]

 


[게다가 그 집 동쪽에는 아무도 못 가는데, 가끔씩 작게 비명이 들려오는데

 그걸로 모두 연결이 되더라고. 우리 반에 지주 집안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마라톤을 죽어라 뛰고 나서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어.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거 같다.]

 


친구는 그 후에도

그 집안의 무용담 비슷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스스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말투는 마치 그 집안을 숭상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적으로 우러러보게 되는 카리스마가 있는 건지,

아니면 영적으로 세뇌당한 것일지..

내게는 어쩐지 후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친구는 지금까지도 지주 집안과 교류가 있어,

"매번 많은 도움만 받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친구가 말할 때,

낙오당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걸 본 순간부터, 그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라고 말하며 웃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그 순간 친구 역시 귀신에 씌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새삼 소름 끼치더랍니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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