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산업화의 아버지 구국의 영웅?그는 누구인가

가자서 작성일 09.11.03 22: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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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산업화의 아버지 구국의 영웅?그는 누구인가 [㈜정민☆세상㈜ 님 편집]

 

 

 

이 뼛속까지 친일파 박정희 넌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아이들 교사에서 독립군 학살한 만주군으로 변신 6.25 전쟁나자 남로당 빨갱이로 다시 변신 자기 동지들 팔아먹고 사형에서 면함. 너의 동지들이 지옥에서 잘도 반겨주겠다^^

올드보이가 너에게 묻는다."넌 누구냐? 너의 정체가 뭐냐?" 교사? 만주 토벌대? 빌어먹을 빨갱이?

오늘 네 똥구멍 빨던 부하 지옥으로 갔다. 지옥에서 만나니까 더 눈물 나고 뜨겁지?^^

만주의 친일파 

국가를 부도 위기로 몰고 간 박정희가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시대 경제지표들

정말 대단하다! 박정희는 정말 통이 컸다 말아먹을 것 확실히 막아먹을려고 덤벼들었다 그래서 안 좋은 것들은 죄다 최고기록을했다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기위해 어떻게 이지경이 되도록 만들어놨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마도 아래의 신기록은 앞으로 누가 대통령을 해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역대최고
박정희시절의 소비자 물가는 평균 년 16.5%의 상승률을 보였고 63년 20%, 1964년 29%를 기록하는 등 60년대 동안 해마다 10% 이상 폭등.1974년 24.3%, 1975년 25.7%, 마지막해인 77년 12.1% 78년 21%(78년에 고추 한근에 1만원이었고, 배추 한포기에 3천원---정말 대단하다) 1979년에는 18.3%(79년에는 유류가격이 59%, 전기요금이 20-30% 인상) 살인적인 물가상승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도 1973년만 빼고 매년 10% 이상의 물가 상승을 기록

[은행대출금리]
60년대 은행대출 금리가 년17.5%-26%였다. 1965년도에는 금리가 년 30%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도 찬양의 대상인가?-노무현.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가 상승률]--연평균땅값상승률 33.1%, 역대최고
63년 기준으로 하여 7년 후 강남의 부동산은 학동이 20배, 압구정동이 25배, 신사동이 50배로 올랐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같은 기간 서울의 중구 신당동은 10배, 용산구 후암동은 7.5배 상승했다. 땅값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326조원이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이 200조 전후이다 그당시 국민소득 최대 1천불로쳐서 326조돈을 현재 국민소득 1만7천불로 계산하면 계산이 안나온다)

[노동시간, 산업재해, 소득상황]
1.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1.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1. 피고용인 가운데 1976년 74.9%, 1978년 76.7%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였다. 즉 소득세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1. 근로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쫒겨 나든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 ]

속칭 ‘한강의 기적’ 뒤편에서 부의 불균등 분배는 박정희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는 1965년 0.344, 1970년 0.332, 1976년 0.391, 1980년 0.389, 1993년 0.310으로 나타났다. 대개 1960∼70년대를 ‘절대 빈곤의 평등’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박정희 정권 시기에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외채무]

세계 4위 외채국, 1978년에는 148억달러에 이르러 1973-1978년간 총 112억달러가 늘어났으며 동 기간중 연평균 26.7%의 급격한 증가율을 보였다. 1970년 당시의 외채 22억 5천만불(GNP의 28.6%)에 지나지 않던 외채잔액이 72년 36억달러, 1975년에는 84억 6천만불(GNP의 41.8%)이었으며 당시의 원리금상환액은 각각 2억6천만불, 8억3천만불이었다 76년에 105억달러 77년에 126억달라 78년에 149억달라 79년에 205억달라. 외채가 3년만에 100%상승. 결국 죽기전에 180억달러 역대최고. 그당시에 갚을 능력도 없어 나라빚내서 나라빚갚았다(참고로 지금 대외채무 2000억달러라고 찌질이신문들은 난리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이후 순채권국으로 돌아선 사실과 현재 대외채권이 3000억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으며 그나마 외채2000억달러는 환리스크 방지로 인한 것이어서 심각한 수준도 아니고 박정희시절처럼 빚갚기위해 들여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더더욱 말하지 않는다)

[설비투자비율, 소득분배율, 실업률]


기업의 설비투자비율 11.7% 역대4위
노동소득분배율 43.7% 역대최하위
79년 실업률 17.9% 역대최고

[경제성장률]
⊙ 단순 숫치상으로 전두환이 1위, 박정희 2위, 노태우 3위, 김대중 4위
역대 집권자들의 연평균실질성장률(이하 연평균성장률)은 전두환 9.3%,
박정희 8.5%, 노태우 7.0%, 김대중 6.8% 순으로 단순 수치상으로는 박정희가 2위이다.

⊙ 상대평가에서는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
박정희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3.3% 더 높았으나 대만보다 1.5% 낮았고,
전두환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5.7% 더 높았고 대만보다 0.8% 더 높고,
김대중의 경제성장률은 주요국가 보다 4.8% 더 높았고 대만보다 3.7% 더 높았다
.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이에 비해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김대중은 또한 경제성장에서 세계 최고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단 5년만에 대한민국을 IT강국, 전자제품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으로 올려 놓았고, 수출 최대 그리고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4위로 올렸고, 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한류의 꽃을 피웠지만 신용카드남발을 방치하여 신용대란을 초래함으로써 개인채무증가의 원인을 제공했다


*제주대 강기춘교수의 정권별 경제성적표 (김영삼정권 2년까지)
1위: 전두환.노태우정권 각각 12점, 김영삼정권:10점, 박정희: 6점의 점수를 주었다.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박정희시대의 경제

[박정희가 한국경제의 기반을 닦았다??] 차라리 선조가 임진왜란극복의 국방력기반을 닦았다고 하는 것이..
박정희가 경제의 기반을 닦았다는 말은 박정희 이후에 이루어진 엄청난 경제적인 성장은 다 박정희가 밑바탕을 잘 닦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것 또한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박정희경제는 처음 5년간은 부정부패이외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고, 6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베트남으로부터 돈이 들어오면서 좋아졌다.


말기에는 또 완전히 망할 정도로 몰락해 가고 있었다**수치로 표현하면 박정희말기에 박정희경제는 거의 몰락상태에 있었다(그래서 후일 전두환이 일본에 40억달러구걸하기에 이름). 그 이후의 정권들이 잘했기 때문에 박정희 경제의 후유증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했다고 해야 말이 맞다.


(다음은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에서)
박정희의 마지막 해인 1979년 GNP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는 사상최악인 41억5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기름재고는 7일분 밖에 남지 않았고, 소비자 물가상승도 18.3%나 뛰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


둘째 박정희정권이 들어서고 초기에 박정희가 초능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뭔가를 이루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전혀 아니다. (경제가 그런 것이 아니기도 하다) 특히 박정희 정권 5년간은 4대의혹사건 등 부정부패를 제외하고는 경제가 특별히 달라진 없었다. 1960년~1964년의 연평균 GNP성장률은 5.5%로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은 7.5-10%, 베트남도 7%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의 경제가 불행중 약간이나마 좋아진 것은 60년대 후반기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이 들어오고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로 10억달라 이상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다른 대통령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없어도, 그리고 월남특수가 없어도 박정희이상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이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5만 명이 이 5년간 받은 수당은 1억3,000만 달라였다. 당시(60년대) 외화보유고는 3억 달라에도 미달 했으므로 한국외환 보유고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숫자였고, 또한 한국 총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거였다.(그런데 전투수당마저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음)


(다음의 경제학자 최용식의 글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시동을 걸었다. 성장률이 57년에 7.6%, 58년 5.5%, 59년 3.9% 등을 기록하여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리수로 안정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되던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4ㆍ19혁명으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군사정권이 선전했던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올랐다. 또한 물가 역시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완벽하게 은폐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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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경제학자 최용식, 《경제역적들아 들어라》의 저자



선조때문에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선조가 있었음에도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이다 박정희에게 월남전이 있었듯 선조에게는 이순신을 비롯한 의병들이 있었다 박정희가 도로를 건설하고 포항제철을 짓고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켰다면 선조는 이순신을 임명하고 의병장을 인정하고 권율을 임명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조는 후일 의병장들도 탄압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박정희시대는 물가상승, 집값 상승 등 정권에 불리한 내용은 언론에 내 보낼 수가 없었다. 물가상승도 물가조정이라는 말로 표현해야 했다.박정희시절처럼 물가가 오르고 은행대출이자가 높으면 김대중. 노무현은몇 번이나 쫓겨났을 것이다 박정희 경제만해도 이지경인데 정치나 문화 교육은 안봐도 삼천리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드신 분들의 상당수가 그당시 신문과 언론들을 회상하며 요즘도 박정희에 대해 최고의 지도자니 영웅이니 하며 떠들고 있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것은 이렇게 20년 삽질하던중 여자끼고 술먹으며 놀다가 총맞아 죽은 대통령이 있는 나라, 범죄와의 전쟁선포한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뇌물챙겼다가 감옥간 나라에서 나중에 IMF까지 겪었지만 그 위기를 단시간에 극복한 것입니다 정말 이해 불가능한 나라죠 예전에 밀레엄버그에 대해 한국은 이미 대처불가능하다고 일부 외국언론들이 떠벌였지만 밀레니엄버그 당한 컴퓨터는 거의 없었던 이해 불가능한 나라...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가난과 부패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덜덜덜... 만약 미국 대통령이 여자끼고 술먹다 총맞아 죽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까요? 훌륭하신분이 돌아가셨다고 슬퍼하며 애도할까요?
출처 >   http://blog.daum.net/yahooook/10777381

지금 당장 있는 건 이건데.... 물가상승률을 비교했을 때 1차 석유파동을 제외하면 대만은 안정적인 소비자 물가를 기록하게 되고 복지예산이 전체 국민소득대비 8~10%수준을 유지함. 그럼에도 우리보다 경제성장율 높았음..



이 표는 아시아 4개국의 경제분석. 베트남에 핏덩이를 헐값에 넘겨. 일본하고 굴욕적인 외교해서 돈벌어... 그거해서 만든 게 고작 저거임. 대만이 베트남 전쟁에 의료병 212명이던가를 참전시켰는데 그러고도 발전 잘한 대만은 뭘까? 박정희는 결코 잘난 게 아니라는거지.



결국 중공업 중복투자로 인한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실시하고 75년에는 박정희가 지입으로 이야기 한 '농총이 잘사는 나라'를 뒤업은 농촌인구의 도시이동을 촉진하는 것을 명문화하지.(많으면 많을수록 싸게 부려먹거든)

아래는 박정희가 기록해주신 뻘짓의 결과임.





무려 중공업 정책 실시 7년이 지났음에도 나무와 같은 1차제품(1차 철강 포함)들의 양이 더 많지? 이게 결국 현실임.



자 이건 74년과 75년 생산비율을 기록한 표인데 2차산업을 봐봐.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추세지. 오히려 경공업의 비율이 더 증가된 모습을 알 수 있지.

결국 결론을 내리면 박정희는 노동자들 개털어서 경제개발 한거고 그걸 이룩한 건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께서 털리면서도 나라 하나 잘살게 만들어보자 하면서 만드신거고.. 그걸 박정희가 낼름해서 자기업적인마냥 지껄이는 것은 도둑놈심보고.

자료와 자료해석의 출처 서른어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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