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124);
-
-
-
[무서운글터] [2ch] 못의 주인
옛 이야기다.여름, 먼 친척네 시골에 갔었다.기후현이었지만, 다른 현과 붙어있는 산간 마을이었다. 그 마을 안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상류에서는 계류낚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강이다. 도중에는 양쪽에 큰 돌이 있고, 그 아래는 수심 2미터 정도의 못이 생겨 있었다.주변 아이들은 거기서 곧잘 놀곤 했다. 그 날은 아침부터 그 못에서 놀다가, 낮에 또 물놀이를 하러갔다.다들 바위 위에서 못을 향해 힘껏 뛰어들며 놀았다. 동생은 아침에 한 번 거기 뛰어내렸었지만, 생각보다 깊어 발이 닿지를 않자 무서웠던지 낮에는 가까이 가려 하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튜브를 낀 동생과 얕은 여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아이들이 뛰어내릴 때마다 들려오는 화려한 물소리와 환호성이 부러워, 문득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물속에 낯선 아이가 있었다.다른 아이들에게서 조금 떨어진채,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도시에서 왔다지만, 매일 같이 노는데 일주일이면 얼굴 정도는 기억하기 마련이다.그런데 이소노 와카메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그 아이는 전혀 본 기억이 없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우리 쪽을 향해 헤엄쳐오기 시작했다.헤엄친다기보다는 비치볼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의, 어쩐지 기묘한 헤엄이었다. 내 시선을 좇은 동생도 그 아이를 깨달았는지, 겁에 질려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동생 손을 잡고 뭍으로 올라왔다.낯가림이 심한 동생은 내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아이는 물에서 얼굴만 내민 개구리 같은 괴상한 꼴로, 방금 전까지 우리가 있던 여울에 엎드려 있었다. 수영복은 입지 않았다.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녀석, 혹시 '못의 주인'일까?캇파와는 다르게 못의 주인은 머리를 수면에 빼꼼 내밀고 사냥감을 찾는다고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들었었다. 둥근 생선 눈알을 떠올리게 하는, 깜빡이지 않는 눈을 한 채 그 녀석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놀자.][이제 돌아갈거야.]나는 단호히 그렇게 말하고, 저기서 놀고 있던 친구들한테도 큰소리로 돌아가겠다고 외쳤다. 동생 손을 잡고, 튜브를 한 팔에 낀채 집까지 돌아오자니 밭일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무슨 일 있었니?] 라고 물었다.처음 보는 아이가 있어 동생이 낯을 가리는 거라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가재를 잡으러 갔다.큰 놈을 잡은 동생이 의기양양해진 후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었다.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옆집 요시오네 아저씨가 찾아왔다. [요시오가 아직 집에 안 와서요.]오늘은 하루종일 다같이 물놀이를 했으니, 혹시 누가 알지 않을까 싶어 가까운 우리집에 찾아온 모양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세 시쯤에 한 번 돌아왔다가 둘이서만 가재 잡으러 나갔었어요.][그런가요..]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요시오네 아저씨에게, 우리집 어른들은 [다같이 찾아보는게 좋겠네.] 라고 말했다. 곧바로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고 옆집에 알리러 가는 사람도 있어 집안은 금새 분주해졌다.그 와중에 동생이 한마디 툭 던졌다. [캇파가 있었어.]그 말에 다들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보니 돌아왔을 때 모르는 아이가 있었다고 했었지, 너희..?]어른들은 진지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캇파라니?]동생이 가장 좋아하던 삼촌이 진지한 얼굴로 동생에게 물었다.내가 대신 설명했다. [이상하게 헤엄치는 아이가 있었어요. 단발머리에 눈알이 둥근..]벌집을 들쑤신 것 같이 소동이 일어났다. '못의 주인' 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지방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물요괴 전설이 있던 모양이다. 동네 아이들은 다 신사에 모여 불제를 받고, 주위에 금줄을 친 신락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소방단과 청년단, 경찰까지 와서 밤늦도록 요시오를 찾았지만 전혀 실마리가 보이질 않았고, 결국 수색은 중지되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수색이 재개되었다.그리고 오전 10시경, 하류에서 아이 시체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요시오의 시체는 아니었다.10년 전 행방불명 되었던 하루코라는 여자아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시체는 시랍화되어 마치 미라 같았다고 한다. '못의 주인'은 종종 나타나 마음에 드는 아이를 잡아간다.그리고 새로 마음에 드는 아이가 나타나면 전에 잡아갔던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요시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하지만 요시오 다음으로 잡혀간 시게루라는 아이는 지금도 행방불명이다.언제 발견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출처: VK's Epitaph
금산스님작성일 2017-06-15추천 9
-
[정치·경제·사회] 간편 종합뉴스?
4월 11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4차 '옥중조사'가 12시간 넘게 강도 높게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엮은 것’이라는 등 의혹을 줄곧 부인해온 박 전 대통령이 진술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뭘 바래... 그냥 그렇게 완전히 엮어서 쭉 살게 냅둬요~
2. 해임된 박근혜 변호인들은 검찰이 해임서가 접수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나서야 자신들이 '해임'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날 수도 없었다’며 나름 사정이 있을 거라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진 못했습니다.
국민들 목소리 한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당신들 얘기는 안중에 있겠어?
3.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의 군사적 행위는 결단코 한국 동의 없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모든 걸 걸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경우든 한반도 운명이 남의 손에 결정되는 일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한 명의 모든 걸 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담엔 뭘 거실래요?
4.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딸의 재산 고지 거부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안 후보는 ‘딸 재산을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이 어떤 것이 의혹이고 어떤 것이 네거티브인지 잘 알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내가 딸의 재산이 얼마인지 궁금해 할 거 같아 아닐 거 같아? 나두 국민인데...
5. 자유당 홍준표 후보가 공직선거법상 공직 사임과 선거 확정시한이 일치하는 허점을 악용해 사퇴시한을 3분 남기고 사퇴하는 벼랑 끝 전술로 도지사 보궐선거를 무산시켰습니다. 선관위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홍준표 꼼수야 그렇다 치고, 선관위는 ‘사후약방문’도 유분수지... 이거야 원~
6.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저는 지금 절대 짧게 보고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던 표 51.6%를 우리가 되찾는 날까지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51.6%가 정당하게 받은 표기는 해? 제발 짧게 생각하고 말 좀 하지 마라 응?
7.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사회경제적 시민권 강화와 선거제도 개혁을 뼈대로 한 개헌안을 발표했습니다. 개헌 방향으로 사회경제적 권리 강화, 정치제도 개혁, 국민 참정권 확대, 지방분권, 정부형태 개선 등의 5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를 위한 개헌 주장에 적극 지지... 그래서 마이 아쉽다는...
8. '통합정부론'을 앞세운 김종인 후보가 공식 후보 등록을 앞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는 등 '이상 징후'를 드러냈습니다. 현재로썬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통합정부론'을 확약받거나, 조건 없이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툭 하면 탈당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양반이 뭔 통합을 얘기하는 건지... 거참~
9.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개막한 윤동천 작가의 초대전 '일상_의 오디너리'에 전시된 작품이 주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정미 헌재 재판관의 헤어롤과 ‘염병하네’를 외쳤던 청소 아주머니의 외침이 예술 작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2017년 최고의 작품이라고 봐야겠지? 근데 아직도 염병하는 사람이 있네~
10. 세월호 침몰 해역에 대한 수중수색이 이틀째 진행됐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종료됐습니다. 그동안 세월호가 목포신항 철제부두로 이송되기 전인 지난 8일까지 유류품 101점,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 20점이 발견됐습니다.
온 국민이 가족들이 기다립니다. 그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렴...
11.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최첨단 군사전력이 속속 한반도로 집결하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핵 항모, 핵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등이 총집결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도발 시 초기에 초토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전작권도 없는 우리는 괜찮고? 대선 앞두고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지... 쩝~
12.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하다 고립무원에 빠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미국이 자처했던 `세계 경찰` 코스프레에 나서며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탓에 한반도에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불똥이 튀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 대통령 잘못 뽑아 피곤해 죽겠는데, 미국 대통령 때문에 이건 또 뭐야~
13. 일본 내에서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해 일본인 구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자민당 내 차기 총리 주자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서울이 불바다 될지 모른다. 몇만 명의 일본 동포를 어떻게 구하냐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시바야 그건 전쟁 좋아하는 너의 희망이고... 우린 전쟁 안 할 거 거든~
14. 한류 콘텐츠 소비가 사상 첫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문체부가 실시한 ‘2016-2017 글로벌한류실태조사’ 결과 아시아?미주?유럽?중동 주요국에서 향후 ‘한류 콘텐츠 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이 사상 처음 감소로 돌아섰습니다.
블랙리스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던 게지... 그런 거지?
15. 편의점에서 즉석복권 119장을 훔쳐 달아난 50대 남성이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생활비가 궁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을 훔쳐 모두 긁어봤으나, 액면가를 웃도는 금액이 당첨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이걸 재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안 됐다고 해줘야 하나? 갑갑하다~
16. '포켓몬고' 국내 이용자가 국내 출시 3개월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앱 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주간 이용자 수는 698만 명에서 345만 명까지 감소했고 다운로드는 1위에서 16위로, 매출 역시 2위에서 37위로 하락했습니다.
열심히 잡아 가두면 뭐하냐고... 하긴, 요즘 돌아가는 시국이 훨 재미있기는 해~
17. 비만한 흡연자는 정상 체중의 비흡연자보다 몸에 염증이 생길 위험도가 2.4배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염증은 장기간에 걸쳐 장기와 혈관에 쌓이면 암이나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담배도 끊고 술도 줄이고 운동도 좀 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18. 미세먼지는 어른보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더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이 미세먼지가 보통수준만 돼도 야외수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어른도 답답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네... 근데 마스크가 답이 될까 싶어요~
@우병우 오늘 영장실질심사 열려. 구속하라~
@추미애, '김철민 세월호 사진 촬영' 사과. 에휴~
@유승민, 홍준표든 안철수든 단일화 없다. 진짜?
@검·경 갈등 핵심 쟁점은 수사·영장독점. 허 참...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하지 않는 것이다.
- 나폴레옹 -
5월 장미 대선의 국면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급함에 마음 조이지 말고, 다 이긴 것처럼 나태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모두가 승리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고맙습니다.
-
-
-
-
-
-
-
[엽기유머] 게임에 관한 숨은 뒷이야기들
악마 보스 '디아블로'가 디아블로 1편 최종 레벨에서 나타날 때 그는 기괴한 언어로 무언가를 말한다.그 언어를 거꾸로 돌리면 그 말은 영어였다. 그 말은 "채소를 먹고 식후에 양치질하라."http://www.youtube.com/watch?v=CpWKan8L76Q일런트 힐 1의 학교 레벨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영화 '유치원에 간 사나이'에서 나온 학교를 기반으로 해 만들었다. 모든 비디오 게임들 중 가장 거대한 맵은 '엘더스크롤 2 : 대거폴'이다.62,394 평방 마일이다. 이것은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의 4천배 큰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2의 디자인은 옛날 아타리 컴퓨터인 '팔콘 030 마이크로박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아타리가 파산할 때 소니가 그 디자인 특허권을 샀다. 두 편의 마리오 패러디 포 르노 영화들이 있었다. '슈퍼 호니오 브라더스"와 "슈퍼 호니오 브라더스 2"였다.놀랍게도 닌텐도가 이 영화들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 영화들이 절대로 발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판권을 구입했다. '데빌 메이 크라이'는 원래 바이오하자드 4로 개발이 되었다. 제작자 미카미 신지는 개발 도중 게임이 서바이벌 호러 노선에 너무 엇나가는 것 같아서 개발진에게 그냥 독자적인 게임을 만들라고 했다.결국 스토리는 뒤바뀌고, 주인공의 이름은 단테로 바뀌었다. 어쌔신 크리드는 원래 코옵판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으로 개발되었다. 제목은 '페르시아의 왕자 : 어쌔신즈'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renzkLMOwok '젤다의 전설 : 스카이워드 소드'의 메인 테마는 젤다의 자장가를 거꾸로 돌린 거다. http://www.youtube.com/watch?v=dDDAXsgoc5shttp://www.youtube.com/watch?v=IJrYU9n9gl8 슈퍼맨 64는 원래 야심적인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오픈월드 게임이었다, 하지만 DC 코믹스와 워너브라더스가 개발자들에게 요구를 하고 개발을 방해했다. 그 요구 중 하나는 슈퍼맨이 진짜 사람들을 때릴 수 없다는 사항이었다.게임 '윙 커맨더'는 매번 종료할 때마다 튕김 현상이 일어나면서 에러가 떴다. 발매 당시엔 그 에러를 추적할 수가 없어서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 단순히 에러 텍스트 메세지 내용을 바꾸었다. "윙 커맨더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골든 아이를 정립한(그리고 이후 모든 FPS의 멀티플레이어 방식에 영향을 끼친) 멀티플레이어 모드는 사실 완전히 뒤늦게 만든 것이다. 높으신 분들의 허락없이 개발이 끝나는데 고작 몇 주 안에 만들었다. (당시 개발진은 멀티플레이어를 만드는 법도 몰랐다고 한다)닌텐도 위의 모션 컨트롤 기술은 닌텐도에게 전수되기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에게 갔었다. 기술에 대한 발표를 할 때 두 회사는 개발자들에게 무례하게 굴면서 자신들의 게임에 그런 기술을 거부했다. (마소와 소니는 후에 모션 컨트롤 기기인 키넥트와 무브를 만든다)둠 2는 커트 코베인이 샷건 자살을 한 같은 년도에 출시되었다. 둠 2의 맵 '너바나'는 시작 구간에 샷건이 놓여있다.젤다의 전설 : 꿈꾸는 섬 독일판에서 버즈 블럽이 쿠크맨으로 변하고 나서 나오는 말이 있다. "콘돔 없이는 안 돼!""너의 액을 줘, 나도 내껄 너한테 줄게." 인퍼머스는 원래 동물의 숲 스타일 게임으로 개발되었다. 주인공이 풍선을 훔친 보랑 고릴라들과 싸우는 게임이었다. 하프라이프에 바닥과 벽, 천장까지 전부 게이븐의 얼굴로 떡칠되어 있는 비밀의 방이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n36AUpyonpM전 '레어' 직원 크리스 시보어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레어를 인수하고 나서 실수로 자신들이 동키콩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줄 알았다고 한다.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북미에 발매한 날은 아무도 모른다.배틀필드 1942은 원래 게임큐브 독점작이었다. 하지만 제안 단계 이상을 넘어가지 못 했다, 왜냐하면 닌텐도는 당시 온라인 기능 전략이 없었기 때문인다.닌텐도 64의 게임 '반조 투이'의 맵 중 하나를 위에서 보면 뭔가 이상하다.미국 세가의 전 사장 피터 무어에 따르면 그가 영국에서 시카고로 이동했을 때, 보안 검색대의 요원이 말하길 "난 당신 여권 볼 필요 없어. 넌 쉔무를 엑스박스로 넘긴 씹새끼니까."보더랜드 2에서 타이니 티나의 사시 눈깔은 사실 버그였다. 그녀의 눈을 고치는 대신 개발진은 이 버그가 캐릭터에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게임에 놔뒀다.http://www.youtube.com/watch?v=iV5uXaXzm4c플스 1은 원래 닌텐도 콘솔로 계획되었었다, 소니는 전자 부품들만 만들고. 닌텐도가 프로젝트를 취소하자, 소니는 그냥 콘솔을 만들기로 했다.동키콩에선 원래 플레이어가 점프할 수 없게 만드려 했다.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팀에게 물어봤을 때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바뀌었다."만약 너 앞에서 나무통이 굴러오면 뭐할껀데?" 젤다의 전설의 메인 테마는 원래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였다, 하지만 그 음악은 여전히 저작권이 있었다. 그래서 코지 콘도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작곡을 단 하루만에 해냈다.http://www.youtube.com/watch?v=yjmeb7HCeyU악명높은 NES판 백 투 더 퓨처 게임이 발매된 후, 밥 게일(백 투 더 퓨처의 공동 제작자)는 팬들에게 그 게임을 사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게임이 너무 구렸기 때문이다완다와 거상은 원래 AI 캐릭터들이 협동해서 거상을 쓰러트리는 게 하도록 디자인하려 했지만 플스 2 성능의 한계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의 개발 중, 단 한 사람만이 2년간 배트맨의 망토만 작업하는 거에 매달렸다.슈퍼 마리오 갤럭시 2의 디스크 ID는 '슈퍼 마리오 갤럭시 모어'이다. 이것은 닌텐도가 원래 게임을 속편이 아닌 확장팩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암시다.만약 디아블로 타이틀 화면의 한 구간을 재색칠한다면, 블리자드 개발진의 숨겨진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워크 2 사라", "나탈리 포트만 짱짱녀." 데이어스 엑스는 2000년 6월 26일에 발매되었다, 그리고 게임의 배경은 2052년이다. 게임에서 뉴욕의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구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세계 무역 센터가 없다.세계 무역 센터는 게임의 데이터 파일에 존재하지만 당시의 텍스쳐 메모리 한계 때문에 최종 게임에서는 포함되지 않았다.개발진은 세계 무역 센터의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설정을 추가했다.그것은 1년 후, 현실이 되었다. 출처 - 루리웹
뱅브로스작성일 2015-01-08추천 8
-
[엽기유머] 잔혹했던 일본의 폭주족 끝물 세대들 그리고 관동연합
<폭주족의 최전성.기 였던 70년대 폭주족 집회>
<80년대 폭주족 집회>
<안습의 90년대 폭주족 집회>
'블랙 엠퍼러'와 '메두사' 연합집회, 두개 폭주족 합친것이 저 인원
(참고로 저번글에서 소개한 70년대 총장들 시대의 블랙엠퍼러는 1000명 이상이었음)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90년대의 폭주족은 규모면에서 형편 없어졌다. 도로법개정과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 의해 대규모 집회가 현실적으로 힘들어져 80년대 부터 서서히 규모가 줄고 있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폭주족은 촌스러운 구시대적 유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불량배들이 모두 폭주족으로 유입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일명 '찌마'라 불리는 폭력서클들이 더 흥하게 된다.
이 시기의 폭주족들은 70년대에 결성되었다가 유명무실해 진 폭주족들의 연합체인 관동연합을 부활시키고 적대 폭주족 및 찌마들을 제압해 나간다. (폭주족 연합체인 관동연합은 70년대 결성 당시에는 총인원1만여명, 80년대 중반 이후에 유명무실화 되어 대가 끊겼다가 90년대에 재결성 한것이기 때문에 70년대 선배들로부터 계보가 이어져 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구분을 위해 '신생 관동연합', '후기 관동연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찌마 (폭력서클을 일컫는다. teamer의 발음이 변형된 것)
이들은 폭주족과 달리 일반적으로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복장이나 스타일이 자유롭다.
90년대 시부야의 유력 찌마였던 'PBB'의 최근
관동연합이 항쟁에 끼어들기 전 찌마들간의 행쟁에서 강세를 보인 그룹
라이벌로 '럽션'이란 찌마가 있었고 두 찌마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한 야쿠자가 양측이 싸워서 지는쪽이 해산할 것을 명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양측이 통합하는데 합의를 본다. 통합된 이름은 'TOP-J'
'TOP-J'는 2대를 뽑지 않고 초대멤버 상태에서 해산. 이후 멤버들은 신생 찌마로 흘러들어가 주로 관동연합의 편에서 싸운다.
폭주족 간의 항쟁의 방식도 변화하는데,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맨손 싸움에 각목이나 목검 정도가 더해졌던데에 반해 80년대부터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가 등장, 90년대부터는 군용 나이프, 곡괭이, 일본도 등 살인에 직결되는 무기들까지 추가된다. 또한 과거엔 패싸움이 주를 이뤘지만 90년대 부터는 소규모의 게릴라식 기습에의한 싸움이나 납치한 후 잔혹한 고문과 굴욕을 주는 것으로 제압하게 된다. 또한 당시에는 소년법 때문에 미성년자의 경우 살인을 저질러도 소년원에서 1년 남짓 살다 나오면 됐기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때문에 성인이 된 선배들의 의뢰를 받아 살인을 하는 미성년자 히트맨들이 대량으로 양산된 시기이기도 하다.
저번글에서 설명했듯이 적대적인 그룹에 소속 된 사람을 생활 환경 (친가 · 연인 · 지인까지도 조사) · 행동 패턴 등을 용의주도하게 조사해 혼자 또는 소수가 모여있을 때 기습 납치(밤길에서 갑자기 목에 칼 들이대고 위협하거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뒤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해 기습) 하거나 집으로 쳐들어간다. 폭행으로 고문해서 반 죽음 상태로 만든 뒤 강제로 동료 간에 69, 애널**, 오럴**, 자위, 오줌먹이기, 똥을 싸게 한뒤 먹이기 등을 시킨다. 이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1주일 안에 50~100만엔 가량을 바치지 않으면 유출시킬것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또한 상대가 굴복을 인정해도 고문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팔을 재기불능이 될 정도로 금속배트로 짓이기거나 칼로 수십차례 찔러 괴사시키기도 하고(피해자 자살) 무릎을 부숴 버리거나(피해자는 장애인됨) 안면전체를 버너로 구워버리기도(피해자 자살) 했다. 생식기를 불태우기, 상처에 똥을 바르기 등의 행위도 있었다.
그들은 납치 뿐만 아니라 상대의 집에 쳐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대의 집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하거나 택배나 신문배달로 위장하여 들이닥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이나 애인 앞에서 능욕하여 수치심을 더 증폭시켰다. 그 가족에게는 금품을 빼앗기도 했다.
당시 이런 잔혹행위를 주도적으로 했던 인물들은....
미타테 신이치
블랙엠퍼러 22대 총장 및 전관동연합 총장
현재 관동연합의 주요 인물이므로 아래에 다시 언급된다.
돈을 세고 있는 미타테 신이치
아마도 능욕사진으로 뜯어낸 돈 일듯...
당시 별명은 '잔학왕자', 납치한 항쟁상대에게 칼로 찌르기, 금속배트로 안면에 풀스윙하기, 펜치로 손발톱과 이빨 뽑아버리기, 고문대상으로 인간축구하기, 인간 과녁으로 쓰기, 귀 자르기, 고막 찢기, 콧구멍에 연필 박아 넣기, 에어건으로 눈을 실명시키기, 항문에 폭죽 박아 터뜨리기, 피어싱 뜯어 버리기, 몸에 못박기, 버너로 화상입히기등을 자행했다고 한다.
머리가 좋아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전혀하지 않았음에도 수재였고 동료들을 범죄행위에 동참하도록 선동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항쟁상대의 인간들에게는 잔혹했지만 같은편에게는 좋은 선배 및 동료였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 저 녀석이 우리의 적이 아닌것이 다행이라 여겼다고 한다.
마츠시마 크로스
저번 글에도 언급되었던 '마츠시마 크로스'
블랙 엠퍼러 22대 부총장 (저번 글에서 총장이라고 했는데 부총장이었답니다.)
사진 상단 좌측: 피해를 당한 '이오기 레이싱'의 총장과 부총장
사진 상단 우측: 가해자 마츠시마 크로스의 현재모습
사진 하단: 이오기 레이싱 총장과 부총장의 69 능욕
'69능욕의 창시자',(이전 글에서 똥먹이기 창시자라고 했는데 69창시자가 맞는듯합니다) 폭주족 잡지 '틴즈로드'에서 이오기 레이싱이 자신들을 '스기 나미구 최강의 남자'라고 자칭했는데 이걸 본 관동연합소속 폭주족들이 분노하여 마츠시마 크로스의 주도로 이들을 납치, 고문한 것. 그리고 거액의 돈을 주지 않으면 능욕사진을 유출시킬 것을 협박한다.
이에 피해자들은 야쿠자에게 의뢰해 사진을 회수하려 했지만 마츠시마는 야쿠자에 사진을 내주지 않고 야쿠자에 의뢰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오기 레이싱이 활동하던 동네에 사진을 다량으로 뿌려버리고 피해자 부모님의 자동차를 부숴버린다. 그리고 몇년 후 그 사진들이 잡지에게재되기 까지 한다. 유출 되지만 않았을 뿐 이러한 피해를 당한 인간들은 이외에도 많다고 한다. 애인과 함께 납치해 애인 앞에서 치욕을 주기도 하고 육교에서 던져 떨어뜨리는 행위도 했다고 한다.
마츠시마는 폭주족 은퇴 후 AV제작 감독으로 대성공을 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현재는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밴드활동 등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주 자랑스러운 듯 자서전을 펴내고 과거 일화를 잡지에 기고하기도 한다.
그때의 일화를 만화화 해서 미화시켜 놓기도 했다.
이런 놈이 자선전이 출간하고 이런 막장 소재를 잡지에서 다루는 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인터넷 상에서 비난이 일자
"게시판에 글 올리지말고 불만 있어면 직접 회사로 찾아와라. 한사람 한사람 정성스럽게 도살해 줄게" 라고 반응했다.
그가 하고 있는 밴드 (왼쪽에서 두번째가 마츠시마, 눈매교정 수술했네 뱀눈깔이었던 색휘가...)
시바타 다이스케
'미야마 구렌타이' 8대 총장
그의 사진은 찾지 못했다.
그의 사진 대신에 그가 총장으로 있던 '미야마 구렌타이'의 사진
역시 고문에 능했던 인간, 미타테 신이치와 쌍벽으로 악명을 떨쳤던 그는 현역시절 킥복서였고 그가 총장으로 있던 미야마 구렌타이 전원이 격투기를 수련한 경력이 이었기 때문에 싸움에 능한 집단이었다고 한다. 원래 독자노선을 걸었으나 후에 관동연합에 합류해 같이 싸우게 된다.
그가 속한 미야마 구렌타이는 '똥먹이기 능욕'을 고안해낸 놈들이기도 하다. 납치 대상이 고문에 못이겨 똥을 흘린것을 치우기 싫어 강제로 먹게한것이 유래... 강제로 먹이기 전에 "먹게 해주세요.", "똥 잘먹습니다."라고 말하게 하는게 잔학의 포인트.
마츠시마 크로스의 69능욕과 똥먹이기 능욕을 합쳐 납치 대상에게 설사약을 먹인 뒤 동료간에 69자세로 받아먹도록하는 능욕을 새로 고안해 낸다. 당시 '귀면당'이라는 폭주족의 17대 총장은 그들 못지 않게 악명을 떨치던 인간이었는데 납치되어 귀를 잘리고 69자세 똥먹기 등 고문을 당하고서 그가 총장으로 있던 '귀면당'과 함께자취를 감춘다. 이런식으로 당한 피해자가 샐 수 없이 많았고 그로인해 사라진 폭주족과 찌마 또한 샐수 없었다. 그 당시 용문신을 한 남자가 얼굴이 똥에 범벅이 된 채 '시게루는 변태입니다. 제 똥을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똥을 먹는 동영상이 무작위 메일로 전국에 퍼진적이 있다고 한다.(전에 쓴 글에서는 비디오 테이프라고 했는데 동영상 메일 이랍니다.)
관동연합이 항쟁에서 승자가 된데에는 시바타 다이스케와 미타테 신이치의 힘이 가장 컸다고 한다.
현재 그는 야쿠자에게 출자 받아 연예인 기획사 및 AV제작사를 차려 많을 돈을 벌고 힐스족이 되어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이 점령한 거리에서 관동연합 멤버들
이런식으로 관동연합이 항쟁에서 적대그룹들을 정리한 뒤 신주쿠, 록본기, 시부야등에서 세력을 뿌리내린다. 또한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편승해 폭주족에서 탈피, 오토바이와 특공복을 버리고 시류에 편승한다. 따라서 2003년에 관동연합은 해체를 선언한다.
이후 관동연합 전 멤버들은 록본기, 신주쿠를 중심으로한 번화가에서 클럽, 술집, 음식점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한 사업을 시작해 부를 축적해 나간다. 더 나아가 연예계산업, IT산업, 패션산업, 부동산 산업, 금융산업 등으로 까지 진출한다. 그래서 현재 그들은 클럽, 술집, 음식점, 풍속업소 와 연예기획사, AV제작사, IT회사, 금융회사, 부동산회사, 인재파견회사 등을 운영하며 합법적 영역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고 마약판매, 금융사기, 부동산사기, 보이스피싱 등으로 불법적인 영역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불법적 영역에도 손을 대고 있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지만 경찰은 이들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 관동연합은 2003년에 이미 해체했다. 따라서 이들은 야쿠자 처럼 간판을 걸고서 운영하지 않는다. (비싼 임대료를 내며 사무소를 차릴 필요도 없다.) 조직이 아니라 평상시에는 각자 자신이 운영하는 분야에 종사하다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을 벌일 때면 뭉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맥네트워크화 되었다. 조직으로서의 실체는 없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고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명도 없지만 관동연합의 전멤버들이 주축이된 집단이기 때문에 편의상 여전히 '관동연합'이라 부른다. (이 글에서도 편의상 관동연합이라 칭하겠다.)
이렇게 진화한 이들을 '반그레' 집단이라 부른다. '반그레'란 준폭력단이라는 의미인데 이들이 세력을 키워갈 초기에 이들이 버는 돈에 관심이 간 야쿠자들이 자기들 산하로 넣으려 했지만 완강히 저항하면서 현재는 야쿠자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세력이 되었다. 관동연합 멤버 중에는 야쿠자 조직원도 있다. 앞에 말했듯이 현 관동연합은 조직이 아닌 인맥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야쿠자와 협력관계 일때도 있다.
'반그레' 집단을 주제로한 만화 사무라이 솔저
(당연히 현실과는 달리 미화되어있다.)
2011년도 록본기의 한 술집에서 야쿠자 야마구치조 간부 5명이 관동연합 20명과 야쿠자 스미요시 구미 조직원들에게 폭행 당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야쿠자 폭행 혐의로 체포된 관동연합 멤버 바바 요시아키
(관동연합에 속한 중국계 폭력단 노라권 소속)
카메라맨 지렸겠네...
'관동연합'으로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사람...
이시모토 타이치
전 블랙엠퍼러 총장 및 전 관동연합 총장
이 놈이 유명한 이유는 범죄자 주제에 연예인병 걸려서 언론에 노출되는 걸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때 수차례 체포되어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구치소와 소년원에서 보냈고 아버지를 비롯해 친가 친척들이 모두 야쿠자인 무법자 일족이라고 한다. (범죄의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 본인 역시 야쿠자에 속해있던적이 있었으나 파문당했다.
중학생 시절
블랙 엠퍼러 시절
항쟁이 한창이던 시절 항쟁 기간 내내 싸움의 최전선에서 앞장서 싸운 것으로 알려졌고 그 와중에 '도요볼 살인사건'에 연관되어 미성년자 때 살인까지 한 놈이다. 도요볼 살인사건이란 관동연합 멤버 10여명이 평범한 학생을 적대 폭주족 일원으로 오인하여 금속배트로 폭행 후 차량으로 끌고가 납치, 오인한 것을 인지하고 병원 앞에 버려두고 갔지만 뇌좌상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체포되어 소년원에서 복역.
항쟁이 종식된 뒤에는 종합격투기 짐 '소울메이트'의 관장, 연예인 기획사, 광고 대행사, IT회사 등의 임원 및 대주주였고 패션 사업에도 진출한다. 그러던 중 그와 관련된 사건이 터진다. '이치카와 에비조 폭행 사건'인데 유명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가 술자리에서 이시모토 타이치의 일행에게 폭행당한 사건이다.
유명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
아무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이치카와 에비조의 주장과는 달리 목격자들의 증언에서는 이치카와가 술에 만취해 모르는 사람들의 자리에 합석 했는데 그게 하필 관동연합 이시모토 일행이었다는것. 술에 만취한 이치카와는 재떨이에 술을 따라서 이시모토에게 마시도록 계속 강요하면서 시비를 걸었고 "나는 인간문화재다. 너는 연봉이 얼마냐" 라며 심기를 건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치카와가 먼저 이시모토를 머리로 받았다라는 증언도 있었다.
이시모토는 폭행에 동참하지 않았고 그의 후배인 '이토 리온'이 이치카와를 피떡으로 만든다. 폭행 당한 이치카와는 여러 부위에 성형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안면부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그리고 이토 리온은 폭행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이치카와가 성형수술 받은 부위
체포된 '이토 리온'
미야마 구렌타이 10대 총장 출신
'이토 리온'은 누구인가?
이시모토 타이치의 블랙엠퍼러 시절부터의 후배이자 심복이다. 이후에 미야마 쿠렌타이에서 10대 총장이 된다.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항쟁 기간 동안 싸움에서 수 많은 적대그룹 인원에게 장애 후유증을 남겼다. 원펀치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한방으로 머리뼈를 골절시킨 적도 있었다.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도 오히려 압도했다고 한다. 싸움 상대를 반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한번 표적으로 삼은 상대는 흉기를 써서라도 끝까지 제압한다고 한다.
도요볼 살인사건때 이시모토와 함께 연류되어 소년원에 수감되었었다.
파나마계 혼혈이라고 한다.
베르디 가와사키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했었는데
계속 운동했다면 프로 데뷔는 확실했을 실력이었다고 한다
이시모토 타이치와 이토 리온 등이 흑인 남성과 시비 붙는 영상 (일대일로 붙어 보시지...)
반그레 놈들은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도 집단으로 폭행한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지만 폭행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이시모토는 자신이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주간지에서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인터뷰해 이름을 알린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이시모토는 유명해 지기위해 계속해서 노력한다.
그날의 사건에 대해 계속 언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잡지에 기고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격투기 체육관 홍보
(야마모토 KID 노리후미, 와타나베 히사에, 타케노리 사토, 박광철 등의 유명 선수들이 소속되어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나는 이런사람이다를 PR
자서전 발간
(이 나라는 쓰래기들이 자서전 쓰는게 유행인가...)
자서전에서 과거 항쟁중일 때 습격당할까봐 제대로 잠을 잔적이 없었는데 경찰에 체포되고서야 안심하고 잘 잤다고 회상했다.
도요볼 살인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한 아이돌 우에하라 미유와 연인 관계 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우에하라 미유는 이시모토가 임원으로 있는 기획사 소속이었다.).
이시모토 타이치의 애인이었던 故우에하라 미유
이후에는 후지이 리나와 사귀었다고 한다.
이러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가던 이시모토는 급기야 연예인으로 데뷔까지 선언한다. 자신이 쓴 자서전이 영화화 되고 본인이 주연으로 발탁된것.
쓰래기 같은 자서전이 영화화 된것도 웃기는 일인데 연기경력도 전혀 없는 놈이 주연으로 발탁까지?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연예계에 관동연합의 인맥이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연기자로서의 데뷔를 발표
배우로 데뷔하는 것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도요볼 살인사건에 대해 깊이 참회하고 있으며 평생 지울수 없는 죄라고 생각한다. 참회한다고 해서 받아들여 지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알아 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자신과 같은 길은 걷지 않도록 불량학생들의 갱생에 힘쓰겠다. 강연이나 세미나를 통해 그들을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시모토 타이치는 연예인 데뷔를 눈앞에 두게 된다.
그리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새끼는 멸망했다.
연예인 데뷔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무려 4차례나 연속으로 체포된다. 체포의 원인은 입금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부동산 사기, 폭행 등의 혐의였고 결정적으로 살인사건에 연류되었다.
'록본기 클럽 습격 살인사건'에 연류 되었는데 록본기 한 클럽에서 복면을 하고 금속배트를 소지한 9명의 괴한들이 클럽 VIP룸에 들이 닥쳐 한 남성을 때려 숨지게한 사건이다.
클럽 주변 cctv에 찍힌 범행당시 모습
금속배트를 든 괴한들이 클럽으로 진입하고 있다.
금속배트를 든 채 클럽으로 진입하는 이시모토 타이치
"불량학생들의 갱생에 힘쓰겠다. 강연이나 세미나를 통해 그들을 돕고 싶다"
ㅈㄹ한다. 살인하는 법 강연하려고 했냐
이시모토가 클럽 VIP룸에 적대하는 반그레 집단인 '기무라 형제 일파'의 기무라 형제중 동생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동료들에게 연락해 집합시킨 뒤 습격해 금속배트를 이용, 집단폭행해 살해한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기무라 형제가 아니었다. 닮은 사람을 오인해 살해한것.(이시모토 이색희는 사람 오인해 죽이는게 특기 인듯..도요볼 살인사건도 오인에 의한 살인)
이시모토는 cctv의 화질이 좋지않아 본인 입증이 어려운 점, 피해자가 죽긴했지만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하기 어려운점 등의 이유로 구금되지 않고 기소만 되고 풀려났다. 사기혐의 및 폭행으로 체포된 건 역시 마찬가지 조사만 받고 풀려난다.
체포되는 와중에도 카메라 의식을 잊지 않는다.
이쯤되면 중증 연예인병
계속된 체포 와중에 풀려나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에도 언플을 잊지 않는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실린 사진
4번의 체포 중 마지막인 부동산 사기로 체포되었을 땐 풀려나지 못하고 구금된다. 경찰이 여태껏 손 놓고 있었던 관동연합에 대해서 칼을 빼 든 것이다. 이시모토의 구금을 시작으로 관동연합 10여명을 '록본기 클럽 살인 사건' 및 여러건의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해 일망타진에 나선다. (이 중 5명은 한국에서 체포됐다.)
이시모토는 살인혐의는 면하고 상해치사 혐의만 받았고 기타 사기등의 여죄와 함께 1심에서 11년형을 언도 받았다. 현재 항소 준비중....
그리고 단 1명은 지금껏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타테 신이치
현상수배전단의 현재 모습
위에서도 언급되었던 '잔학왕자' 미타테 신이치. 현재 금융회사 사장이다. 부를 축적해 대저택을 지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현 관동연합은 조직이 아니라서 두목이라는게 없지만 사실상의 두목으로 지목되는 인물.
록본기 클럽 살인 사건에 현장에서 직접 참여는 안했지만 이시모토에게 기무라형제의 목격을 보고 받고 살해 명령을 내린 사건의 주모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머리가 매우 좋고 선동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격식을 차려야하는 자리에서는 매우 예의바르고 교양있는 접대용 대화에도 능하다고 한다. 동료들에게는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자신의 신변에도 철저히 신경써서 그가 사는 곳이나 전화번호를 극소수만 알고 있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도 거의 없다. 또한 여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신변에 그토록 신경을 쓰고 머리가 좋은것을 감안하면 여지껏 잡히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과거 히로스에 료코의 블로그에 관동연합멤버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사진에 유쾌하고 즐거운 자리 였다라는 글이 올라온 적이있었다. 특히 미타테 신이치의 사진에는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 이라고 언급되어 있었고 나중에 문제가 되자 삭제했다.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뒷소문이 많은 히로스에 료코
전남편 오카자와 다카히로
관동연합에 속해있다.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라고 평가한 미타테 신이치
현남편 캔들 준
양초 예술가 및 평화운동가...는 개뿔 그냥 폭력단
어지간히도 범죄형 남자가 이상형인가보다.
여튼 미타테 신이치는 현재 필리핀으로 도주해 잠적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으로 도주 직후 찾아온 동료들에게 "나는 일본에는 더이상 미련이 없다. 평생 도망쳐 다닐 자신있다. 이제 만나지 못할테니 부디 잘 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한다. 동료들이 현지의 여자를 붙여주고 왔지만 전혀 관심 없는 태도였다고....
현재 미타테 신이치는 관동연합 동료들로부터 도피자금을 지원 받아 생활하고 있고 현지언어 공부에 매진중이라고 알려졌다.
재계 인사들과의 선상파티에서 찍은 사진
미타테의 몇장 없는 최근 사진 중 하나다.
이렇게 관동연합에게 큰 타격을 준 계기가 된 '록본기 클럽 습격 살인사건'....
그 사건의 원인은 몇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니시 신주쿠 습격 살인 사건'
니시 신주쿠에서 새벽에 귀가하던 한 남성을 복면을 한 10여명의 무리가 집단폭행해 살해한 사건.
그때 살해 당한 피해자는 바로 이 사람..
재일 한국인 김강홍
일본명 가네무라 다케히로
찌마 '신주쿠 잭스' 출신, 후에 관동연합에 속한다
당시 한국에도 기사가 났었는데 피해자가 일반 회사원으로 나왔었다. 부모님이 경영하는 한국식품회사 일을 돕고 있기는 했지만 어둠의 세계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찌마 '신주쿠 잭스' 출신으로 엄청난 싸움실력으로 불량배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렸던 존재라고 한다. 후에 관동연합에 속하게 되고 관동연합 내 무력 1위라는 소문도 있었다.
히로스에 료코의 전남편 오카자와 다카히로와는 어린시절 부터 절친으로 함께 '신주쿠 잭스'를 결성한다.
히로스에 료코의 전 남편 오카자와 다카히로와는 초등학교때 부터 절친
오카자와의 블로그에 올라왔던 김강홍의 사진
같은 헬스장에 다녔다고 한다
과거 김강홍의 집에서 히로스에 료코와 오카자와 다카히로 부부가 함께 술을 마셨는데 히로스에 료코는 남겨두고 오카자와 혼자 귀가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류열풍에 대해 비난했던 배우 타카오카 소스케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카오카 소스케
타카오카는 김강홍의 '신주쿠 잭스' 시절 후배
그 시절부터 타카오카는 김강홍을 매우 동경하고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카오카의 블로그에 김강홍의 사진과 '존경하는 선배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문제가 되자 삭제한 적이있다.
관동연합 멤버들과 찍은 사진 당시 부인이었던 미야자키 아오이도 함께 했다.
모순되게도 한류열풍에 대해 비난했던 타카오카는 그 몇년 전엔
"한국에 대해 일본은 비열한 짓을 했다. 일본이 저지른 일에대해 국민들에게 정보를 주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가
우익들에 비난을 받고 캐스팅에도 불이익을 받은적이 있었다. 아마도 존경하는 선배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 받은 것으로 예상된다.
김강홍 역시 빌딩 여러채를 소유하는 등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인사들과의 선상파티에서의 김강홍(왼쪽), 그 오른쪽은 미타테 신이치
김강홍은 적대 관계에 있던 '기무라형제 일파' 일원을 폭행해 반쯤 죽여놓은적이 있었는데 (이런 반목의 원인에는마약밀매에 대한 이권으로 인한 갈등이었고 야쿠자도 관련되어 있는 이권다툼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 당한 것이다.
부모님의 상점에서 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는 김강홍을 복면을하고 금속배트를 든 괴한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폭행을 가하고 300여 미터를 도망갔으나 끝까지 쫓아와 죽기직전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에도 "그냥 죽어버려" 라고 외치며 계속 폭행을 가해 살해했다고 한다. 시신은 머리가 으깨지고 안구가 튀어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관동연합은 기무라 형제 일파에게 보복을 다짐하게되고 그로인해 몇년 후 록본기 클럽 습격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피해자는 오인되어 살해 당한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반인은 아니고 어떤식으로든 반목에 개입된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록본기 클럽 습격 살인사건'과 '니시 신주쿠 습격 살인 사건' 둘다 살해방법에 있어서 동일한데 이는 반그레집단들이 살인행위를 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법의 헛점이 이용하기 위함인데, 살해 도구로 칼을 쓰지 않고 금속배트를 쓰는 이유는 체포되었을 경우 죽일 의도는 없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고 여러명이 집단으로 복면을 쓰고서 폭행하는 이유는 누가 살인에 직결되는 결정타를 가한것인지 알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시모토 타이치도 살인혐의를 면하고 상해치사 혐의만 받았다.
이 같은 '집단 배트 습격'은 경찰에 신고 되지 않을 뿐 반그레집단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위에서 언급한 이토 리온도 배트 습격을 받았는데 오히려 방망이를 빼앗아 제압했다고 한다. 무라이 유스케라는 주요멤버도 습격을 받았으나 중상을 입으면서 제압했다고 한다. 이후 기무라 형제 중 형이 결국 관동연합의 습격에 당했으나 경찰에 신고된 바 없고 목격자도 없어서 상해의 정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집단 배트 습격을 제압해낸 이토 리온
역시 흑형의 유전자는...
무라이 유스케
이 사람도 중상을 입으면서 제압했다고 한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된다
그 외의 인물들....
카와 타케시(대머리) 찌마'산겐자야 구렌타이' 설립자
(오른쪽은 기무라형제 중 형이라는데 확실하진 않다)
10대 시절 '코지로', '산겐자야 구렌타이'등의 폭주족 및 찌마로 활동, 싸움실력은 보통이었지만 지능과 통솔력이 발군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재무부에서 재직했다고 한다. 다방면에서 인맥을 보유하고 있고 영어에 능통해 외국인과의 인맥도 넓다. 현재 연예계 사업 및 록본기의 술집 음식점 클럽 등을 여럿 보유하고 있어 '록본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록본기의 약 공급원이기도 하다. 사카이 노리코 마약사건에 관련있다고 한다. 유명 여자 연예인들과 관계되었고 연예인들을 성노예 삼는다는 소문도 있다(그 대상으로 히로스에 료코, 린카, 사카이 노리코 등이 거론 된다.)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관동연합 중심인물 카와 타케시를 폭행한
요코즈나 '아사소류'
'아사소류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가 경영하는 술집이 아사소류가 단골이었는데 술에 취해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자 그가 아사소류에게 이제 오지 말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아사소류가 그를 폭행한 사건이다.
폭행을 당한 그는 경찰에 신고 했고 아사소류는 그 사건으로 이전까지 일으켜왔던 문제와 중첩되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은퇴한다. 아사소류도 원래 관동연합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관동연합 동료들이 카와 타케시에게 합의해 줄것을 부탁하고 결국 합의금 1500만엔에 합의했다.
그리고 얼마 뒤 카와 타케시는 손님을 폭행해 경찰에 체포된다. 이번엔 가해자....
위에 언급된 무라이 유스케
폭주족 '메두사'의 전 총장
지금껏 언급한 인물들은 폭주족 은퇴 뒤 전부 잘나갔지만 이 놈은 잘 안풀렸다.
폭주족 현역 시절엔 박력이 넘쳐났다고 한다. 질 것이 뻔해 보이는 1 대 10의 싸움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타입이었고 무력 또한 강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집단 배트습격을 받고도 중상을 입는 와중에 제압해 냈다고 한다.
폭주족 시절 이오기 레이싱 능욕에도 동참했었는데 이오기 레이싱 총장이 가지고 있던 메리켄을 빼앗아 턱을 박살내 버렸다. 그런데 69능욕을 할때는 '이건 너무 심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능욕되었지만 본인은 눈을 감아 버렸다고....
폭주족 은퇴후 동료들은 각기 분야에서 부를 축적해 나가지만 이놈만은 그러지 못했던것 같다. 박력은 넘쳐났지만 머리가 돌지않는게 문제였다. 단순무식한 무댓뽀 스타일이라 모든걸 싸움으로 해결하려 하는 등 싸움에 있어서 완급조절을 못해 동료들에게 폐를 끼쳤고 후배들에게는 상납을 강요해서 동료들로 부터 멀어졌다. 이후 상습적인 오토바이 날치기로 체포되어 복역중이다.
호시나 코스케(좌)
신주쿠 잭스, 블랙 엠퍼러 출신
현 HIPHOPのNITRO 프로덕션 사장
모델 요시카와 히나노(우)와 결혼했다.
코지로
전 '우에마치 코지로' 총장
전 킥복싱 WMC 세계 챔피언
이노우에 이사무
전 블랙 엠퍼러 총장
현 엠파이어 플레이 뮤직 사장
타니야마 히데유키
관동연합에 속한 찌마 출신
현재 사이비 종교인 및 정치 운동가
2009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다
요시무라 요스케
전 '요가 싸움회' 소속
현재 DJ 및 클럽 경영
관동연합과 관계있는 연예인 및 유명인
배우 '히로스에 료코'
위에서 언급
배우 '타카오카 소스케'
관동연합에 속한 찌마 '신주쿠 잭스' 출신
위에서 언급
모델 및 디자이너 '오카자와 타카히로'
신주쿠 잭스 출신
위에서 언급
스모 선수 '아사소류'
위에서 언급
배우 '오시오 마나부'
관동연합에 속해 있던 군소 찌마 출신
불륜관계에 있던 호스테스와 함께 마약을 복용한 후 성관계를 하다 호스테스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
호스테스에게 약을 강제로 먹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약은 관동연합 동료로 부터 공급 받은 것이 조사 결과 밝혀짐
배우 '사카이 노리코'
마약 복용으로 체포
록본기의 약 공급원 카와 타케시와 관련된 소문이 있다.
그로 부터 약을 공급 받은 것으로 예상
성관계비디오 사건에도 관여 됐다는 설
아이돌 '우에하라 미유'
위에 언급했듯이 한때 이시모토 타이치의 연인이었다
자살의 원인이 성접대 및 연예인들 사이에서의 왕따로 인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우에하라 미유의 매니저와 우에하라 미유
매니저는 딱 봐도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델 '후지이 리나'
이시모토 타이치의 다음 연인
이시모토는 후지이 리나의 집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배우 '미타 요시코'
앞서 언급한 도요볼 살인사건 때 이용된 차량이 미타 요시코의 명의로 되어있었다
그의 아들 다카하시 유야가 이시모토 타이치 등에게 빌려준 것이었는데
다카하시 유야는 그들의 꼬붕 및 돈줄이었다고 한다
마타 요시코는 아들에게 한달 용돈으로 50만엔씩 주었다고 한다.
배우 '다카하시 유야' (미타 요시코의 아들)
도요볼 살인사건 얼마후 다카하시 유야는 당시 애인이던 카몬요코와 함께 각성제를 복용하다가 체포된다.
당시 다카하시 유야의 애인이었던 배우 '카몬 요코'
다카하시와 함께 각성제 복용으로 체포 된다
다카하시의 어머니 미타 요시코의 눈물의 기자회견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아들이 이미 성인이라 나로서도 어쩔수 없다. 아들과 절연 까지 생각하고 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의 출소 뒤 한달에 70만엔씩 붙여 주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2차례 더 각성제 복용혐의로 체포되어 복역한다
각성제의 공급처는 안봐도 뻔하다
그 뒤 현재 다카하시는 평범한 일바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반면 그의 전 애인 카몬 요코는 출소 후 이미지 손상으로 연예계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 노출연기와 누드집 등을 내다가
결국 AV에 출연한다
개그맨 '타무라 아츠시'
관동연합 멤버의 애인을 건드렸다가 그 멤버에게 불려가 사과하는 동영상을 찍고
그 동영상을 빌미로 거액을 상납했다는 소문이 있다.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
히로스에 료코의 전남편 오카자와 타카히로와 교제했는데 오카자와는 관동연합에 많은 빚이 있다고 한다.
오카자와가 나가사와 마사미에게 빚을 대신 변제해 줄것을 요구 했고
관동연합은 나가사와 마사미에게 오카자와의 빚 변제를 조건으로 지저분한 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나가사와 마사미는 마지막 까지 고민 했지만 친구의 설득으로 오카자와와 결별했다는 소문이 있다.
아이돌 그룹 'AKB'
AKB의 소속사가 관동연합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또한 AKB멤버들이 관동연합 소유의 건물과 술집(침대와 샤워시설이 있는)에 자주출입하고
관동연합의 회식자리에 불려간다는 소문이 있다.
블랙 엠퍼러 7대 총장 및 관동연합 전 총장 출신인 배우 우카지 타카시는
본인 세대의 관동연합과 현세대의 관동연합은 연결고리가 없다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연관이 없다
이외에도 어떤식으로든 관동연합과 연관된 연예인들은 다수 있다고 한다.
관동연합이 금융사업 등 합법적인 영역으로도 큰 돈을 벌 수 있었던것은 성접대를 함으로서 재계인사들에게 줄을 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관동연합은 그들 소유의 건물에서 회식을 하는데 여자 연예인들이 불려가 마약에 취해져 능욕을 당한다는 소문도 있다.
-----------------------------------------------------------------------------------------------
자료 찾다 보니 정말 ㅎㄷㄷ 하네요... 우리나라가 치안 좋은 나라란건 정말 맞는듯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놈들이 홍대, 명동 같은 곳에서 상권장악하고 활보하고 다닌다면 무서워서 못 다닐듯...
그리고 일본은 연예계 생활하면 야쿠자든 관동연합이든 그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얽히지 않을 수가 없는것 같습니다. 무서움...
그리고 아래 영상은 과거에 자기가 관동연합에서 한주먹 했다고 주장하면서 썰푸는 건데...유튜브에 이사람 영상 엄청 많음...
댓글은 다 조롱하는 글 뿐이네요...개그 컨셉인가? 일본어 되시는 분들은 걍 재미로 보시길...
과거 일본 만화에 나오는 폭주족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3편의 글까지 쓰게 됐는데... 특히 이번건 좀 길어 졌네요... 작성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재밌게 보셨기를....
출처-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read?articleId=23665360&bbsId=G005&itemId=145
-
-
-
[정치·경제·사회] [5] 독도 그리고 일본 외무성 7
이 부분은 신용하교수의 인터뷰(2000년) 시점 이후 나온 자료도 있기 때문에 신용하 교수의 인터뷰는 생략합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복잡하고 설명할 것이 많습니다.
카이로, 포츠담 선언 등 전체 진행과정은 직접 찾아보시고
일본외무성자료를 반박할 수준으로만 설명합니다. 설명하는 자료의 년도를 잘 기억하십시오. ------------------------------------------------------------역사적 문헌자료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국제법, 문화, 지리 등 다양한 분야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 난립해 있는 자료들을 참고하고 자료를 첨부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스압이 심해서 반복적이고 세부적인 자료는 생략했습니다.
여러 자료를 편집하다 보니 글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양해해 주십시오.
신용하 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국사편찬 위원회 위원 독도학회 회장 역임)의 인터뷰
독도에 관한 100문
100답 (2000년)을 참고하였습니다
인터뷰 원문을 보고 싶으시면 http://blog.naver.com/ilong4u/140002070705
#시간되시면 읽어보십시오. 독도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인터뷰입니다
일) - 일본의 주장 내용
신) - 신요하 교수의 인터뷰 내용
주) - 편집자 주입니다
(객관적 사료 외에 사견, 정치적 논란이 있는 부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스킵하시면 됩니다.)----------------------------------------------------------------------------------------일단 일본의 주장부터 간단하게 정리하면. SF조약 제 2조(a)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표기한다. 이 부분의 해석을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로 독도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런 해석의 근거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이다. 러스크 서한, 밴 플리트 귀국 보고서를 볼 때 독도는 일본령이고 SF조약에서 주최국 미국이 결정하였으므로 연합국이 반대할 권한이 없이 서명했다고
주장합니다. # 러스크 서한은 1951년
미국 러스크 국무성 차관보가 한국에 보낸 서한으로 비공개 비밀서한 이었습니다. SF조약 당시 일본 뿐 아니라 다른 연합국 심지어 당시 미국 내에서도
몰랐던 문서입니다. 조약에 참가하지 않은 한국의 반발에 대한 러스크의 답변서입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공표된 공식문서로 주장하다 다른 증거들이 밝혀지자, 이 문서가 비밀이건 아니건 상관없으며 비엔나협약에 따른 공식문서이고 미국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증거는 잘 모르는 일본인들도 러스크서한만으로 독도가 일본땅이라 생각할 정도로 파급력이 있습니다. 한동안 한국의 반박도 독도가 조약에 빠진 건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 때문이다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박은 다시 우산도=독도, 삼국사기 등 역사적 사료의 지리한 논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논쟁의
반복입니다. 이 문서가 공식적인 미국의 입장이 아니라는 증거만 있으면 됩니다.최근 비밀해제된 미국무성 문건이 있습니다.
1952년 10월 미대사관이 미 국무성 앞으로 보낸 비밀문서독도는 한때 조선왕국의 일부였다, 그 사실을 우리는 몇번이나 확인한바 있다 일본이 평화 조약상
독도가 일본 영토로 남앗다고 하나, 그것은 그들의 추정일 뿐이다. 그러나 이문서의 내용을 미국무성이 부정했다(1952,11)고 주장한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밴 플리트 대사 귀국보고서 원문입니다"#1954년 8월에 밴 플리트(Van
Fleet)대사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밴 플리트 대사 귀국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4. 독도의 소유권독도(리앙쿠르, 다케시마라고도 불린다.)는 일본해에 위치해 있고 대략 한국과 혼슈
중간에 있다. (동경 131.8도, 북위 36.2도) 이
섬은 사실 불모의, 거주자가 없는 바위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일본과의
평화조약 초안이 작성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합중국은 그 섬이 일본의 주권 하에
남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섬은 일본이 평화조약 상 포기한 섬들 중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섬에 대한
합중국의 입장은 대한민국에 비밀리에 통보되었지만, 우리의 입장은 아직 공표된 바가 없다. 합중국은 이 섬을 일본의 영토로 생각하지만 (두 나라 간의) 논쟁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이 논쟁을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우리의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전달된 바 있다. 위 내용에서 알겠지만 일본의 영토로 생각하긴 하지만 입장이 공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당시 미국은 독도에 관해서 중립입니다.일본외무성자료는 “우리의 입장은 아직 공표된 바가 없다” 라는 부분을 삭제한 채 왜곡된 내용을 전세계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 문건은 국내방송사에서 발굴한 문서인데 원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흐려서 잘 안보이지만 내용은러스크의 발언으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러스크의 발언은 정확한 역사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주)러스크는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를 근거로 한 의견을 한국에 보낸 것입니다.당시 한국외교관의 다케시마가 독도라는 사실로 모르고 확인도 하지 않은
실수도 있었습니다. (누군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에혀 갑갑하다. ) 시마네현 고시의 불법성은 이미 밝혔습니다. 아무리 좋게 본다 해도 러스크 서한이 일본의 주장을 입증하는 문서가 아닙니다또한, sf조약에 반영 되었다고 볼 수도 없으며 이 문서로 독도를 일본땅이라는 해석 한다는
것은 왜곡입니다.. 참고) 비엔나조약 제48조 착오1. 국가나 국제기구가 조약을 체결할 당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 사실이나 상황착오가 있었고
이 착오가 구속을 받겠다는 동의의 본질적 기초가 되었다면 그 동의를 무효로 하기 위해 이 착오를 원용할 수 있다.2. 문제의 국가가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착오를 유발하였거나,
또는 그 국가가 있을 수 있는 착오를 감지할 수 있는 등의 사정하에 있는 경우에는 상기 1항이
적용되지 아니한다.3. 조약문의 자구에만 관련되는 착오는 조약의 적법성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 그 경우에는 제 79조가 적용된다. 제49조 사기어떤 국가가 교섭에 참가한 다른 국가의 사기적 행동에 의해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을 때 사기당한 국가는 구속을 받겠다는 동의를 무효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원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기망적
행위를 통한 미국무성의 오판 견해는 비엔나 협약에 의거 무효가 되며 아무런 법적 효과를 가질 수 없음. # 1946년 1월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가 지령(SCAPIN) 제677호
연합국최고사령부 관할지도연합국 사령부가 훈령 제1033호에서
독도를 한국 영토로 거듭 재확인연합국최고사령부지령에는 일본의 영토를 정의하여 일본이 4개 본도와 약 1,000개의 작은 인접 섬들을 포함한다고 정의한
다음, 제3항에서 일본 영토에서 제외되는 섬들의 그룹으로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들었다. 또한 SCAPIN 제677호의 제5항은 ‘이 지령에 포함된 일본의 정의는 그에 관하여 다른 특정한 지령이 없는 한, 또한 본 연합국최고사령부로부터 발하는 모든 지령·각서·법령에 적용된다.’고
하여 이 지령의 ‘일본의 정의’에 대해 변경을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그에 관한 다른 지령을 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는 한 일본의 정의는 미래에 영구히 적용됨을 명백히 밝혔다.
연합국최고사령부는 SCAPIN 제677호에
의하여 1946년 1월
29일 독도를 주한 미군정에 이관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자동으로 독도를 포함한 모든 영토를 반환받아 회복한 것이다.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이어서 1946년 6월
22일 SCAPIN 제1033호 제3항에 일본인의 어업 및 포경업의 허가 구역을 설정하여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은 금후 북위 37도 15분, 동경 131도 53분에 있는 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또한 동도(同島)에 어떠한 접근도 하지 못함을 지령하였다. # 일본은 이 문서를 일본의 영토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일견 맞습니다.하지만 이것은 포츠담 선언을 계승한 연합국의
생각이 담긴 문서입니다. 기본적으로 SF조약은 포츠담 선언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 1차~5차 초안
: 독도=한국영토. (‘46-’49)? 일본정부, 미국무성 정치고문 시볼드에 로비.? 6차 초안 : 독도=일본영토(‘49.12)? 연합국들의
반대? 7차 초안 : 독도=한국영토(연합국 합의,‘50)? 8차~9차 초안
: 독도=일본영토? 10~11차 초안 : 독도=유엔합의에 의거(한국영토)? 12차 초안 : 독도=일본영토.(‘51.4)?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이에 반대. ? 영국은 독자적 초안을 준비(1951.4).영국초안 : 독도는 한국영토로 명백히 기재되어 있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이 7차에 걸쳐 협의 : 독도의 이름이 없어졌다. (영미합동초안)? 독도의 이름이 없어졌지만 그 이유는 ‘일본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지 않기 위해서’ 라는 함의가 있었다.*극동위원회 11개국이 영미합동초안에 최종적으로 합의 미국이 평화조약의 전제조건이 되는 ‘포츠담선언’(연합국 합의로 일본 영토를 결정한다. 1945.7)를 계승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일본의 로비로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표시 하려 했지만 거부 당하고 한국령으로도 일본령으로도 표시 하지 못하고 조인 된 조약입니다. 주)개인적으로 억울하지만 사실만으로 볼 때 SF조약과 미국은
독도에 관해서 중립이라고 생각합니다.비록 독도가 한국령으로 명문화 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일본의 거듭된 로비에도 불구하고 일본령으로
명문화 하지도 않았습니다. SF조약은 독도영유권을 명시하지 않은 채 체결되었다라고 해야 합니다. 승전국과 패전국의 조약은 패전국의 전쟁 책임을 묻고 영토 범위의 획정과 관련된 규정을 담는
것이지 영토 범위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또한 이런 자의적 해석을
근거로 일본은 다오위다오를 점거 하고 있는 데.이 해석을 일본이 인정
받을려면 먼저 다오위다오부터 ICJ에 가서 판결 받아야 합니다.그 다음 독도의 다음 단계를 논의하는 게 순서입니다. [출처] 독도는 한국땅 세종대 교수 호사카유지|작성자 nohsg 샌프란시스코 조약 직전, 1951년 3월 영국정부가 작성한 지도
이 지도는 2차 세계대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일본영토 ?범위를 가장 분명하게 규정한 유일한]지도이다. 독도는 한국령으로 표시되고 일본령에서
제외되어 있다.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평화조약이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제3장의 안전조항으로서,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체결을 위한 복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즉, 국제정치의 입장에서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는 성격을 띠었다. 이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미국이 이 회의를 주도하면서 상식선을 넘는 관대한 정책을 일본에 베풀었다는 지적이 있다.이 조약은 전쟁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고. 중국의 대표권에 대해서는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회의에 초청받지 못했다. 소련은
참가했지만 조약에 서명하지는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가 간 영토 범위의 획정과 관련된 규정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향후 국제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한 조약의 하나로 그 구속력을 인정받고
있다.
즉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획정된 국경이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되어 왔을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그 구속력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일본은 이 조약
내용에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근거 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국에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 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조약 당시 일본 영토에서 독도가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의 발견으로 이 조약 어디에도 독도를 한국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 없다는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도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 당시 미국 측 전권대사였던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의 대일평화조약 문서철에서 완벽한 상태(가로 82㎝, 세로 69㎝)로 발견되었다.주)일본 외무성의 자료와 상관없지만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러스크 서한은 1978년 4월 미 국무부가 외교문서 비밀을 해제 할 때 비로소 동아일보
아사히신문에 단신으로 일부 공개 되었고 존재와 전체 내용은 1994년 츠카모토 타카시에 의해 일본에
소개됩니다. 이 러스크서한이 이 후 신한일어업협정 과정 중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는 너무 방어적인 외교를
구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일본우익 주장은 당시 한국은 일본의 지방정부로 간주 되었다. 또 일부는 2차대전에 참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 되었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연합국과 영토로부터 독립한 국가를 포함하여 참여 하였습니다. 그럼 왜 한국이 참여하지 못했을까요? 여기 기사를 올립니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국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배상책임 등을 다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 한국이 조약
조인국으로 참여하는 것을 일본이 극력 저지했다는 내용의 극비 외교문서가 발견됐다고
일본 아사히TV가 11일 보도했다.아사히TV는 이날 밤 보도프로그램인 ‘뉴스 스테이션’에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협상에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총리 겸 외상이
존 덜레스 미국 국무부 특별고문과 비밀회담을 갖고 한국을 조인국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비밀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당시 한국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상하이(上海)임시정부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던 사실 등을 근거로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조인국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었다. 또 덜레스 고문도 한국측 주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요시다 총리는 ‘한국 참여 불가론’을 담은 문서를 제시하며 미국을 설득했다고 아사히TV는 전했다. 이 문서에서 요시다 총리는 “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한국이 조인국이 되면 재일 한국인들은 연합국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와 보상금을 주장할 것”이라고
강변했다.그는 또 “100만명에 이르는 재일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라며 “이들이 과잉 보상청구를 할 경우 혼란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 공산진영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패전후 복구를 꾀하고 있는 일본에 과도한 배상 부담을 주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 일본측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비준국이 아닌 옵서버로 참가했다.조약 비준 당시 참여했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는 이 문서에 대해 “모르는
일이다. 들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덜레스-요시다 비밀회담에 참석했던 유일한 생존자인 미 국무부 출신 로버트 피어리는 “문서 내용은 정확한 사실”이라며
“덜레스 고문은 한국의 조인국 참여를 일본측에 요구했으나 결국 요시다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고 증언했다.# 왜넘들의 몰상식과 몰염치
-
[엽기유머] 일본인 위안부 경험 만화
코믹 에세이 종군위안부 (?軍慰安婦) (카랑코롱 표박기 中)
전시중, 전쟁터의 병사들 사이에서는 종군위안부를「삐(ピ?)」라고 불렸고, 오키나와 출신 위안부는「나와삐(ナワピ?)」,
조선인 위안부는「조선삐(朝鮮ピ?) 」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현대의 인권감각으로 보면, 이것들은 명백한 차별표현이지만,
필자가 체험한 역사적 사실로서 일부러 바꾸지 않고 기술했다.
※삐(ピ?) 는 중국어로 매춘부의 멸칭. 여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한자, 보지 비(?,b?)의 중국어 발음.
미즈키 시게루 (水木しげる) : 1922년생 일본 만화가. 올해 92세.
1944년, 22살 때 라바울 뉴기니아 전선에서 폭격으로 왼팔을 잃는다. 평생 팔 하나로 만화를 그려왔다.
http://ja.wikipedia.org/wiki/
20세가 된 미즈키는 징병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몸은 건강했지만, 근안으로 인해서 을종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이 격화되면서 점점 징병범위가 넓어져 가는 가운데, 자신이 징병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아져만 갔다.
「출정하면 틀림없이 죽는다」라고 생각한 미즈키는 철학서를 탐독하고, 불교서적과 성서 등 종교문헌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책은 요한 페터 에커만의『괴테와의 대화』로, 이 책은 전쟁터에도 가져간다.
21살, 야간중학교 3학년이었던 미즈키에게 소집영장이 도착했고, 그는 본적지인 돗토리(鳥取)의 연대에 배속되었다.
재학중이던 야간중학교는 자동적으로 퇴교처분이 되었다.
군대생활에서도 그의 마이페이스는 여전했고, 그 대담한 태도로 인해서 욕탕에서 고참병이 그를 장교로 착각하고 등을 밀어준
적도 있었다. 초년병 교육을 마치고, 그는 나팔병이 되고자 했으나, 잘 불지 못해서 스스로 배치전속신청서를 낸다.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3번째 시도에상사(曹長, 조장)으로부터「북쪽이 좋은가, 남쪽이 좋은가」라고 질문을 받는다.
당연히 국내배치라고 생각한 그는, 추운 것은 싫으니「남쪽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남쪽이면 큐슈 같은 국내의 남쪽 연대에 배속되리라 생각했지만, 군에서 남방 라바울로 가라는 소리를 듣고 아연질색한다.
낙천가인 미즈키라도, 남방전선의 참상은 잘 알고 있었다. 이동명령 직후 2박 3일의 외박이 주어지자,
부모님이 있는 고향에 들르지만, 그와 부모님 모두 아무말 하지 않고, 앉아있기만 했다고 한다.
미즈키를 파라오 기지에서 라바울로 운송한 배는, 러일전쟁에서 활약한 노후선 시나노마루(信濃丸).
적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피하며, 미즈키가 소속된 부대는 어떻게든 라바울에 도착했지만, 라바울로 파견된 후속부대들은
모두 도중에 침몰되었기 때문에 결국 미즈키가 소속된 부대가 라바울에 도착한 최후의 부대가 되었다. 라바울에 도착했을 때,
상륙한 기적으로 인해 넋을 놓은 그는 「여기는 어디죠?」라고 상관에게 물었고, 그는 상관으로부터 강렬한 싸대기를 맞는다.
당시 군내에서 철권제재는 일상다반사였고, 시게루는 하도 많이 맞아서「싸대기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브리튼 섬에서의 전쟁체험은 이후 미즈키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 장비, 작전 모두 일본군 보다 뛰어난 연합군을 앞에 두고,
미즈키가 소속된 임시보병 제229연대 지대장인 成?懿民 소령은 옥쇄(玉?)명령을 내리지만, 미즈키가 소속된 제2중대장
코다마 세이조(?玉?三) 중위의 임기응변으로 제2중대는 유격전(게릴라전)을 펼쳐,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지령본부에서 내린 총원옥쇄명령에 반한 생존자가 있다고 해서, 고타마 중위는 그 책임을 지고 자결하게 된다.
또 섬의 주민들로부터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미즈키는 바이엔에 배속되고,
결사대로서 야간보초를 서다가,
적군의 비행기 기관총 세례를 받기도 한다. 도망친 곳에서 원주민 게릴라에게 발견되어, 황급히 바다로 뛰어들어서 도망친다.
미즈키는 단검과 훈도시 하나 차림으로 정글에서 수일간 헤매 도망다니면서, 패잔병 사냥을 피해 기적적으로 생환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부대에 돌아가자, 동료들은 기뻐 반겨주었지만, 상관은 나라에서 지급한 무기를 버린 일을 비난하면서
「어째서 죽지 않았나」라고 힐문한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미즈키 시게루는 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귀환한 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말라리아가 발병. 그렇게 요양하는 중에 적기의 폭격으로 왼팔에 중상을 입게 된다.
군의관에 의해 마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왼팔절단수술을 받는 등, 그는 다시금 반사반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수술 뒤 그는 부상병부대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 섬의 원주민과의 교류가 시작. 그 곳 주민들은 상당히 친절해서 미즈키에게
과일 등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1945년, 전쟁터에서 패전의 소식을 듣게 된 시게루. 주위 상관들은 쓰러 무너져 울며 패배를 분해했지만,
미즈키는「살아남은 기쁨」을 가슴에 품었다고 한다. 연합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본국송환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현지제대후 그곳에서 살 생각도 했지만, 가족은 만나는 편이 좋다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귀국을 결심한다.
1946년, 24세의 미즈키 시게루는 구축함 유키카제로 일본에 귀국한다.
한쪽 팔을 잃은 것에 대해서 미즈키는「나는 한쪽 팔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3배의 일을 해왔다. 만약 양쪽팔이 모두 있었다면
다른 사람의 6배로 일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한쪽 팔을 잃은 것을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한쪽 팔을 잃더라도 살아있는 것에 가치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본인의 순수한 경험담인 만큼 위안부 영업시간 이야기등
혐한들이 매춘부라고 트집잡고 있는이야기도 있음
출처?http://waterlotus.egloos.com/3454770
희귀동물작성일 2014-02-18추천 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