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니는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 전에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된 작품이었다.
만화가 히트를 친 덕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80년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작품 내용으로 많은 공감을 사기도 했지만
중독성 높은 주제곡과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의 패러디 덕분에
지금까지도 유명한 국민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부천시의 둘리에 이어
두 번째로 명예 주민등록증을 부여받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스타 시스템이란 작가가 자신을 대표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여러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캐릭터가 작품에 따라 선역 혹은 악역이 되고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즉 이름과 외모는 같아도 작품마다 배경 설정이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80년대 당시 한국 만화계에선 이 스타 시스템이 붐이었고
작가마다 하나의 캐릭터를 작품마다 돌려쓰는 방식이 유행이었다.
하니 또한 이런 스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으며
원작가 이진주는 1980년 순정만화 '하니와 황태자의 사랑'에서 최초로 하니를 데뷔시켰다.
다음 작품인 '하니를 백작 품에'로 순정만화계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진 작가는
독자층을 확장한 '달려라 하니'로 대히트를 치게 됐다.
여기에 kbs가 황금 시간대인 금요일 저녁에 '달려라 하니'를 편성하며
최초로 정규 편성되어 방송된 국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달려라 하니' 의 차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천방지축 하니' 또한
이러한 스타 시스템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며
이 둘은 비슷한 외모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전작과 달리 '천방지축 하니'에서의 하니는 육상선수가 아닌 체조 선수로 나오며
전작에서의 담임 선생이었던 홍두깨는 아버지로 등장한다.
이진주 작가는 당시 국내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대부분이 금발이었기 때문에
하니 만큼은 한국 여성의 상징인 흑발을 고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름도 서풍이라는 뜻을 지닌 순 우리말 '하늬'에서 따온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육상소녀라는 컨셉에 맞춰
당시 잘나가던 자동차 포니'의 이름을 따 '포니'라는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사전심의에서 동명의 자동차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이름을 '하니'로 변경하게 됐다.
또한,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나이도 고교 1학년으로 설정했었지만
주 시청 연령층을 조금 더 낮추기로 결정하면서
주인공의 나이도 13세의 중학생으로 바꾸고
기존의 하니 디자인을 사용해 좀 더 어려보이는 모습을 강조하게 됐다.
그럼 원래 주인공으로 예정되었던 캐릭터는? 바로 하니의 라이벌 나애리(!)로 활용하게 된다.
나애리가 동갑인 하니에 비해 노안의 외모인 것,
그리고 악역이지만 꽃미모를 가지게 된 이유는 다 이 때문이었던 것.
그래서였을까? 하니가 작품 속에서 자주 외치던 "나애리 이 나쁜 기집애!" 는 달려라 하니 최고의 유행어이자 명대사가 되었고
방영 이후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면서
나애리도 홍두깨 선생과 더불어 하니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