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 1천만원치 사면서 알게 된 점...
취미로 등산하는 1인입니다.
코로나도 있었고 골프는 지겹고 자연스럽게 등산에 눈이 가더군요.
뭔가 멀리 있는 산봉우리를 볼 때면 본능적으로(?) 올라가고픈 느낌...
지난 1년 간 등산복과 등산가방 등으로 1천만원 정도 썼습니다.
산악회 안하고 자차로 등산가기 때문에 등산 후 음주가무도 안합니다.
등산 관련 옷, 장비들을 사면서 알거나 느낀 점들을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1, 고어텍스는 큰 효과가 없다.
고어텍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빗물은 막아주고 투습, 즉 땀과 같은 습기는 뺴준다는 기능성 원단이요. 방수과 발수가 있는데, 발수는 빗물이 또로로 떨어지는 겁니다. 방수보다 더 성능이 좋은 거죠.
고어텍스는 방수, 발수는 되는데 투습은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나가야할 땀이 100이라면 10 정도만 빼준다는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세요. 땀은 나오는 순간 잠깐 습기가 되지만 곧바로 물방울이 돼 이마 등 피부에 맺힙니다. 고어텍스 원단이 빗물을 중간에서 막아주니 물방울이 된 땀이 나갈 구멍도 없는 거죠. 고어텍스는 투습이 아닌 방수, 발수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2. 방수, 발수도 오래 가지 않는다.
고어텍스 옷을 빨거나 비오는데 몇 번 입고나면 발수 성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등산복 전문 세탁 매장도 있고 방수 스프레이로 있습니다. 그거 쓰고 나면 그나마 있는 투습 성능이 더 떨어지겠죠. 결론적으로 고어텍스 의류는 비싸기만 할뿐 가성비는 떨어집니다. 사실 웬만한 빳빳한 원단의 자켓(전문용어로 하드쉘이라고 합니다)은 폭우가 아닌 이상 웬만큼 방수가 다 됩니다. 고어텍스가 들어간 등산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방수가 잘된다는데 산다니면서 첨벙청범 물 밟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등산화 모든 부위에 고어텍스를 골고루 쓴 게 아닙니다.
3. 비오는 날, 산가지 않는다.
최선은 비 예보가 있으면 산 가지 않는 겁니다. 길은 미끄럽고 사람도 없고 정상 가봐야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춥고 등산가방 젖어 안에 음식물도 젖는데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낫습니다. 다만 날씨예측이 불가능하고 다양하게 변하는 1500미터 이상 높은 산을 가신다면 방수자켓을 비상용으로 꼭 챙겨가셔야 합니다.
4. 등산은 땀내는 운동이 아니다.
땀이 그렇게 나는데 등산이 땀내는 운동이 아니라뇨. 맞습니다. 등산은 땀이 나는데 그 땀과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장 손쉽고 과학적이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냥 옷을 벗는 겁니다.
지난 겨울, 태백산을 간 적 있습니다. 출발점인 주차장 온도가 영하 15도입니다. 정상은 서있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가 아마 영하 30도에 달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반팔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더군요. 상상이 가시나요? 저 역시 올해 3월에 지리산과 한라산을 다녀오면서 반팔로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숨이 차고 몸은 더운데 땀은 하나도 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5. 그럼 왜 자켓이 필요한가?
산 중간이나 정상에서 잠깐 쉴 때 바람을 막아주고 보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어라. 이게 등산복 입는 방법(레이어링)입니다. 정상 부근에 거의 다 왔다 싶으면 그 아래에서 옷을 두세겹 겹쳐있어야 춥지 않게 정상에서 경치도 보고 간단한 라면이라도 드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악산 정상 부근엔 이런 안내문도 있습니다. “이제 곧 정상이고 추우니 옷을 겹쳐 입어라” 특히 겨울 등산에서 비바람과 눈을 막아주는 고기능성 자켓은, 폼이 아니라 생존장비이기도 합니다.
6. 겨울엔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
3겹이 기본입니다. 먼저 등산 중엔 땀을 잘 배출해주는 속옷(베이스) 또 그 땀을 밖으로 배출해주는 플리스(미들)를 입고 산에 오릅니다. 땀이 진짜 많은 분이라면 플리스만 입고 올라가도 됩니다. 이건 본인이 테스트해보면 압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영하의 날씨라도 열과 땀이 나지 않게, 서늘하게 가야 한다는 겁니다. 중간에 쉴 때는 그 위에 바람을 막아주는 자켓만 겹치면 됩니다.
추위를 많이 타신다면 자켓 안에 솜으로 된 조끼나 패딩을 하나 더 입어도 됩니다. 오리털이 아닌 솜 패딩을 추천한 이유는, 오리털은 땀에 젖으면 보온 성능이 떨어지고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 등산 브랜드 보온패딩 중에 솜으로 된 패딩이 오히려 더 유명합니다.
절대 하시면 안되는게 두꺼운 패딩을 입고 계속해서 산에 오르는 행위입니다. 해보시면 알겠지만 덥습니다. 그런데 더운 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배출되지 못한 땀이 결로가 되기도 하고 체온을 급격하게 뺏어 사망한 분도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여름은?
여름에 옷을 홀딱 벗고 등산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럴 수 없죠. 여름엔 땀을 배출하지 않고 흡수해 머금는 면 소재 옷만 피하면 됩니다. 그리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의외로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햇볕에 피부가 닿으면 타기도 하고 더 덥기 때문입니다. 서늘한 냉감 소재의 옷만 잘 입어도 됩니다. 사실 저같은 경우 여름엔 벌레와 더위 때문에 의외로 등산을 잘 안합니다.
6. 등산화는?
산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낙상사고입니다. 등산화는 아무리 작은 산을 가도 꼭 신고 가세요. 발목까지 오는 크고 무거운 등산화가 싫다면 트레킹화로 충분합니다. 동네 뒷산이라도 런닝화 같은 운동화 신고 가다가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 발목을 잘 다쳐서 발목까지 보호해주는 가벼운 등산화(트레일러닝화)를 주로 신습니다.
7. 그래서 브랜드는?
자켓 하나가 10만원 하는 브랜드부터 100만원 넘는 브랜드까지 다양합니다. 비싸면 나름 기능이 좋지만 가격 만큼 그 기능을 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고가 등산의류는 기능성보단 브랜드빨입니다. 이건 개인취향이니 선택의 문제입니다. (좀 웃긴 건 해외 유명 등산 브랜드의 비싼 고어텍스 자켓을, 왜 지하철타고 학교갈 때 입고 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선택의 문제니까...)
또 고가 의류일수록 한 라인업에 여러 모델을 두고 그에 따라 가격도 10만원 이상 크게 차이가 나는데 성능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해외 브랜드의 경우 정말 고산지대 등산을 감안해 만든 옷이 많은데 우리나라 등산 환경에 비하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브랜드 안 따진다면 그냥 쭉쭉 늘어나는 스판 원단이 최고입니다. 국산 등산 브랜드 중 “XX이면 충분하다”고 광고하는 브랜드 있는데 매장가서 옷 만져보니 정말 쭉쭉 늘어나더군요. 가격은 외국산의 1/20 정도입니다. 다만 디자인과 색감은 개취입니다.
8. 마지막으로...
제가 대학생 때 산 다닌 사진을 이제야 보니까 그냥 운동화에 면바지, 면티 입고 다녔더군요. 그땐 다람쥐처럼 날아다녔는데 몸도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고 허벅지 근육도 탄탄했을 겁니다. 결국 등산은 장비가 아닌, 가벼운 몸과 허벅지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땀과 열이 많이 나는 운동이니 사실 많은 옷을 살 필요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