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 넷 중 한명이 담배 한 개피를 물자, 재빨리 서열이 가장 높은 건달이 그의 뒷통수를 후렸고;
“야이 미친새끼야. 저새끼가 담배 핀다고 너도 따라하고 자빠졌냐?? 당장 끌어내지 못해?!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우리 넷이서 저딴 한 놈 가지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는 건달들. 이번엔 더욱 비장하게 각오한 눈빛이다.
난 반도 채 피지 못한 담배를 건달들 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튕겨냈고,
다시 다리를 풀고는 날라차기 자세를 취한다.
“저 새끼 또 나는 거냐?”
“아주 영화 플라이를 찍어라. 이번엔 플라이 2탄이냐?”
“야 니들 왜 그래. 그래도 저새끼 나는 건 수준 급이였어; 발이 병신이였지만..”
“날아봐 새끼야. 날아봐!!”
나의 입가에 서려지는 웃음. 그래 안 그래도 날 꺼다.
한번 실패하지, 두 번 실패하진 않는다.
다시 잽싸게 건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느낌..바로 예전의 그 느낌이다. 축구 선수가 슛을 쐈을때 들어갔다,들어가지 않았다..라는 걸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느끼는 것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도 그런 것이 아닐까?
허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해 발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크게 휘두르고는..바닥으로 착지.
그러자 날 향해 비웃고 있던 두 녀석이 양 옆 테이블에 부딪히며 쓰러지고..
당황하는 나머지 녀석들. 처음 계획했던 시뮬레이션대로 재빨리 다음 액션을 펼쳐야 한다.
다시 몸을 일으켜 한 녀석의 목을 향해 발을 내 질렀고, 목에 발길질을 당한 녀석은 “컥..”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잡고 물거품이 사라지듯 바닥을 뒹굴며 쓰러진다.
이제 남은 한 녀석. 서열이 가장 높다는 녀석인가?
난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플라이 3탄..기대되냐?”
“이런 씨박 새끼...”
“도대체 니들은 검은 정장 입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게 뭐니?”
“나불거리지마 개쉐야!!”
날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덩치. 깜짝 놀라며 허리를 숙이는 나.
나의 얼굴을 스쳐지나간 주먹을 잡고는 뒤쪽으로 던져버린다.
이미 주먹을 내지르며 앞으로 기울어진 무게 때문인지, 뒷 편 테이블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녀석이였다.
그리고는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는데..갑자기 나에게로 쏟아지는 박수소리들..
“와아!! 짝짝짝!!! 짝짝!!”
엥? 뭐지?? -_-;;
나이트 안에서 그 격투씬을 지켜보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날 향해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난 나이트 안의 손님들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기에 바빴고 ... ^^;;
그때 손님들이 무엇을 봤는지 일제히 “헉...” 하는 소리를 내뱉는다.
손님들이 향한 시선쪽을 열심히 따라가보는 나.
음....;; 헉 나올만 하구나..-_-;
역시 검은 정장의 사내들. 하나..둘..셋..넷..다섯..여섯....아 숫자 세기도 귀찮다..저걸 언제 다 세?;
그때 그 건달들 무리속을 뚫고 나오는 남자 하나. 저 사람은....아까 봤던 혜성 삼촌?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오는 그. 다행히도 눈동자에서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 앞에 마주 서는 혜성 삼촌. 혜성 만큼이나 키가 작은 편이다.
“자네 이름이 뭔가?”
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툭 내뱉는다.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이미 두려움 따위는 저만큼 달아난지 오래였다.
“하하하...이 청년..참 당돌한 사내구만.”
난 웃고 있는 혜성 삼촌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사업을 하는지 관심도 없는데요.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이면 밀릴 생각 없거든요? 지금이야 어떻게든 결국 내가 당하겠지만.. 이 자리에서 나 죽이지 못 할 거면 괜히 건들지 말지요..?“
“..................”
“당신이 애들 좀 데리고 있는 거 알겠는데, 내 친구 중에서도 당신만큼이나 잘 나가는 친구 하나 있거든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학교 후배들 다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물론 거짓말이였다-_-; 그렇게 붙어다니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겨버렸는데..후배는 무슨 얼어죽을;
하지만 꿀리지 않기 위해선 그렇게라도 말해야 했다.
“그래서 니가 원하는게 무엇이냐?”
“난 진미를 데리러 왔지. 당신네들과 소란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수다.”
“진미라..”
혜성 삼촌은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나도 장사 접을 생각 없으니까 여기서 그만해야겠군.”
이거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하지만 자네는 먼저 나가있게. 진미랑 잠시 얘기 좀 하고 보내줄테니까.”
“이봐요. 수작 부리지말죠?”
“이 사람 참..날 무슨 양아치로 보는가? 이래뵈도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걱정 말게.”
“.........................”
내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저 무리들과 싸운다고 해봤자 승산 없는 게임이였기에, 혜성 삼촌이 제시한 의견이 거짓말이라고 한들, 난 지금 이 약속을 믿는 수 밖엔 없었다.
“쓸데 없는 짓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약속 꼭 지키쇼.”
혜성 삼촌에게 그렇게 경고를 해두고는 무심결에 뒤에 서 있는 진미를 돌아보았다.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진미.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힘겹게 떼고는
테이블 위에 놔둔 나의 가죽잠바를 들고는 나이트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날 따라오기 시작하는 건달 둘.. 난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채 조용히 경고 했다.
“허튼 생각하면 얼굴 박살내 버릴 겁니다..”
그러자 가짢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녀석들이였다.
나이트 안에서 빠져 나오니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쏴아아아...
“어이..“
나의 뒤를 따라온 건달 중 한명이 날 불렀다. 뒤에 있는 녀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먹 좀 쓰던데..안타깝구마이.”
“..................”
“뭐 별다른 뜻은 없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해본 말이제. 겁이 없는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잠시 헷갈렸을 뿐..”
난 쓴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저씨들. 저 밖에 비내리는 거 보이죠?”
그들은 밖에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쳐다보더니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비는 저렇게 쏟아지는데 우산은 없고..사랑하는 사람이 맞은 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들 같으면 어쩌겠어요?”
“어쩌긴 뭘 어째. 비 맞으면서 존나 뛰어가야제..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난 그를 보며 피식 웃는다.
“거봐요. 방법이 없잖아. 내 심장이 저 안에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어...? 비를 맞다가 쓰러지든, 사람의 주먹에 맞아 뒤지든..그딴 건 중요한게 아니야..“
몇 분이 지났을까...누군가가 등을 툭 치더니 깜짝 놀라서 돌아보면 진미가 서 있다.
“지,진미야..”
나의 얼굴을 보기도 싫다는 듯 짧게 한마디를 툭 던지는 진미였다.
“따라와.”
그리고는 비를 맞은 채 앞장서서 어디론가 향하는 진미였다.
난 그런 진미를 뒤 따라 가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아저씨.
난 무슨 생각에선지 그 아저씨를 붙잡아 세웠다.
“아저씨!!잠시만요.”
“와그라요?”
나의 얼굴에 든 멍자국과 핏 자국을 보며 놀라는 아저씨였다.
“이거..”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아저씨의 손바닥에 쥐어주고는 재빨리 우산을 빼앗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아저씨의 목소리...
“어이?? 야!!! 미친놈아!!!”
난 비를 맞고 걷고 있는 진미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줬다.
그러자 진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고, 난 그런 진미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비 맞으면 감기 든다.”
진미는 내가 내민 우산을 잡아 들더니 길거리를 향해 힘껏 내팽개친다.
“아저씨 도대체 뭐야?!!!”
빗방울들이 진미의 볼 위를 타고 흘러 내린다.
“뭐긴..나는 플라이의 귀재. 본드걸이지. ^^*”
그러자 진미는 발로 나의 정강이를 쎄게 걷어차며 소리친다.
“지금 내가 너랑 장난하는 걸로 보이니??”
난 정강이를 부여잡고 인상을 마구 찡그리고 있었다.
아까 건달들에게 맞은 것 보다 더 아픈 것 같다-_-;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그러는데? 말을 해야 풀지. 말을 해야 사과를 하지.”
“아저씨는.....”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인채 비를 맞고 서 있는 진미.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 잇는다.
“잘못한 거 없어.”
난 진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언성을 높인다.
“그럼 털모자, 아니 박진미!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때서야 천천히 고개를 드는 진미.
웃는 걸까? 우는 걸까? 볼에 타고 흐르는 이건 눈물일까? 빗방울일까?
날 바라보는 진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니?? 아저씬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나쁜년이라구. 내가 아저씨 가지고 논 거라구..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돼?? 아직도, 그래도..못 알아 듣겠니? 아저씨 정말 그렇게 병신이야? 그렇게 티를 내고 싶어? 멀쩡하게 생겨놓구선 왜 나 같은 걸레 때문에 이러고 있니??“
“....................”
“아저씨랑 더 놀아줄려고 그랬는데...쟤네들이 나 가수로 만들어 준대잖아.. 쟤네들이 나 돈 엄청 벌어주겠다잖아....내가 가진 빚 다 갚아준대잖아...... 그럼 된...거....아냐?....나 같은 쓰레기. 인기 스타로 만들어준대는데 좋지 않아??“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진미..
“아저씨 도대체 나한테서 바라는 게 뭔데? 키스도 싫다,몸도 싫다. 그럼 도대체 뭘 바라는 건데? 그 빌어먹을 사랑을 바라는 거야?? 그 엿같은 사랑을 바라는 거야? 그런 거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난 그딴거 믿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진미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입가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가 지어진다.
“꺼지고 싶은데..꺼지지가 않는다면..?”
“......................”
“니가 뭐라고 지껄여도 난 가지 않을 거라고..”
난 진미에게 보라는 듯 나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너 나한테 아무것도 주지마. 받을 생각도 없어. 내가 주겠두잖아. 그따위 빚 얼만데? 내가 다 갚아줄게. 내가 다 갚아주면 되잖아?? 빚이 도대체 얼만데?얼마냐구 씨발...“
나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진미. 힘겹게 입을 연다.
“7천..”
난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원?”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진미.
“장난하니?? 장난해? 당연히 7천 만원이지..”
“음 그래.. 빚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고...-_-a”
“더이상 지껄이지마. 제발 꺼져!”
그리고는 나의 가슴을 힘차게 미는 진미. 난 그 힘에 중심을 잃고 또 한번 바닥을 뒹구는데..
나이트에서도 뒹굴고, 비 내리는 땅바닥에서 뒹굴고..나 오늘 하루종일 뒹굴기만 하는 구나.-_-;
허무함과 절망감이 점차 쌓이기 시작한다.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은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날 내려다 보는 진미.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진미는 이제 안되겠다고 느꼈던지 사정하듯 부탁한다.
“아저씨. 제발 부탁할게. 나 그냥 보내줘. 제발... 아저씨가 나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아껴준 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아직도 그 마음이 남아있다면, 내가 아저씨에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 그냥 가게 냅둬..제발....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탁할게.“
“.........................”
“나 지금 정말 나쁜 년 이라는 거 알거든? 하지만 아저씨..나 아직 어린애잖아? 정말 철 없고 인생 막 살아도 어린애잖아. 그러니까 아저씨는 이런 쓰레기도 다 사는 구나 생각하고 나 그냥 보내줘. 응?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야. 아저씨가 무릎 꿇으라면 무릎이라도 꿇을께.“
“.......................”
“제발...제발.....내 인생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게....놓아..줘...”
내 앞에 서 있던 진미. 정말 무릎을 꿇고는 나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는 울면서 자신을 놓아달라고 나에게 사정을 하고 있다.....
처음에 그렇게 당당하던 그 여고생이.....
내 앞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를 치던 그 여자애가....
다시는 손을 놓지 말라고 부탁을 하던 그 여자애가......
내가 몇 번이나 차갑게 대해도..찾아오고 또 찾아오던 그 여자애가...
그런 털모자 진미가.... 지금 내 앞에서 자신을 보내달라고,잊어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고 있다.
웃음이 나기 시작한다. 볼 위로 비인지, 눈물인지 뭔가가 흘러 내리는데 입가엔 자꾸 웃음이 난다.
피가 묻은 소매로 눈을 스윽 닦아냈다.
어머니 앞에서도, 아버지 앞에서도, 그 누구 앞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은 눈물인데...
정말 지켜주고 싶은 이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치고 싶은데 비 때문인지, 내 앞에서 똑같이 울고 있는 이 아이 때문인지,
그칠 생각을 하질 않는다. 눈물이 자꾸만 난다..
이 아이가 나한테 하는 말. 진심이 아닌 걸 아는데..
거짓말인 걸 다 아는데. 난 지금 무슨 말도 해줄 수가 없다..
아무 대답도 해줄 수가 없다.
이렇게 바보같이 속아 줄 수 밖에 없다.......
날 바라보고 있는 진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덥썩 잡았다.
깜짝 놀라며 눈이 커지는 진미. 거부도 하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진미가 눈을 깜빡 깜빡 거리자 그녀의 눈가에 맺혀있던 것이 비가 아닌 눈물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게 된다.
그런 진미를 보며 정말이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웃는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진미였다.
생각해보니 이 아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쳐다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나 때문에 감기 들겠다..”
난 진미의 눈에다가 입술을 가져가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입술을 떼려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온다.
“잘가라. 털모자.”
“..................”
그리고는 진미를 풀어주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더 이상 나는 힘이 없다.
무릎을 꿇고 있던 진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난 천천히 눈을 감고 말았다.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
아니, 혹시라도 눈을 뜨면 그녀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