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장,노선,정보 > 병역제도 비교 > 징병제 폐지론 경제학자의 글 - 징병제의 폐지를 위하여 (출전: forum on korean ecnomic policy) 최근 병역의무 비리가 신문을 장식하고 병역의무 비리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법적인 의무를 일부의 사람들이 불법한 방법으로 회피한 데 대해서는 상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병역의무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는 논리로, 병역의무를 폐지할 수 없는 의무로서 성역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필자는 국민들의 평등한 부담을 위해서, 그리고 병역의무가 생명을 담보로 한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라는 논리에서, 이제부터 병역의무(징병제)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로 한다.
병역의무(징병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혹시 이적 행위로 국가 보안법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긴 안목으로 국가를 위한다는 견지에서 보자면, 병역의무를 그대로 두자는 사람들이야말로 국력을 좀먹게 하여 장기적으로 나라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병역의무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징병제는 국민들 사이에 매우 불평등한 부담이 되고 있다.
둘째, 징병제는 국가와 국민들에게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셋째, 징병제는 군대를 비인도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넷째, 징병제가 군대의 애국심을 담보하는 장치가 되지는 못한다.
다섯째, 징병제의 폐지로 무엇을 얻게 되나?
첫째, 징병제는 국민들 사이에 매우 불평등한 부담이 되고 있다.
징병제는 지원병제보다 평등한가?
많은 사람들이 징병제, 바꾸어 말해서 누구든 건강한 성인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소위 국민 개병제가 평등한 것으로 그리고 군 입대를 희망하는 사람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충원하는 지원병제(비난하는 사람들은 지원병제보다 용병제라고 표현)는 가난한 사람들만 군대에 가게 되므로 불평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매우 뿌리 깊은 것이어서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는 않으나 몇 가지 예를 들어 그러한 인식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를 설명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군대 근무가 힘든 일이고 누구든 원치 않는 일이라면, 지원병제로 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군대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국가는 충분한 급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급료의 수준은 가난한 청년이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 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군인보다 다른 직업이 더 좋게 생각된다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인을 지원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한 징병제아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군대에 가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고생하던 것을 지원병제 아래서는 충분한 대가를 받으면서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급료는 세금으로 부담하게 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세금을 통해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가난할수록 세금도 더 내게 된다고 억지를 부린다면 할 말이 없지만 상식적으로, 적어도 절대액으로는 부자가 더 많이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징병제아래서는 가난하든 부자이든 같은 기간 동안 육체적 부담을 하게 된다. 만일 그 부담의 크기를 그들의 전체 소득에 대한 비율로 본다면, 그 비율은 어느 사람이 젊은 시절 군대에 감으로써 희생하게 되는 소득이 그의 생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아마도 최대의 희생자는 젊은 시절에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맨들이 될 것이고, 다음은 비교적 활동 가능 기간이 짧은 육체 노동자나 단순 기능인, 그리고 다음이 기술자나 지식 노동자, 아마도 자본 소득자들은 가장 적은 피해를 받을 것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활동기간이 20세부터 10년 정도가 전성기인 연예인이나 프로포츠맨이라면 약 2년간의 복무기간 중 소득의 1/5을 포기해야 한다. 20세부터 20년 정도 육체 노동이나 단순노동이 가능하다면 육체 노동자나 단순 기능인은 1/10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기술자나 지식 노동자의 경우는 활동가능기간이 길므로 그만큼 포기하는 비율이 낮아질 것이고, 자본 소득자의 경우는 아주 미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부유한 정도가 자본 소득자, 지식노동자(기술자), 육체노동자(단순 기능인)의 순이라면, 연예인들과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징병제의 부담은 가난할수록 부담의 비중이 높아지는 매우 불평등한 부담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의 병역의무 회피자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징병제의 부담 자체가 불평등한 것뿐만 아니라, 부유한 계층은 병무 비리를 통한 병역 의무의 회피에서도 가난한 계층 보다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어, 징병제에 있어서의 부담의 불평등을 심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지원병제로 하면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가게 되므로 불평등하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지원병제가 징병제보다 훨씬 평등한 부담이라는 필자의 견해이다.
둘째, 징병제는 국가와 국민들에게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징병제는 방위비의 부담을 줄여 주는가?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 지원병제로 하는 경우 사병들에게까지 급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정부에 그만한 재원이 없다거나 조금 유식한 표현을 즐기는 사람은 우리 경제의 능력으로 볼 때 그만한 방위비의 부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가? 우리 정부는 이미 장기 하사관이상에 대하여는 급료를 지불하고 있으므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사병에 대한 급료이다. 사병의 수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60만 장병이라고 하니 그 중 50만쯤을 사병으로 보고 연간 1000만원쯤을 급료로 지불한다고 할 때 5조원의 재원이 들어가는데 우리 정부에 그만한 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말로 재원이 부족하다면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성인 남성에 대해, 병역 미필에 대한 마녀 사냥을 그만두는 대가로 재산세나 소득세에 방위세 부가세를 징수해도 해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둘째로 조금 유식하게 국민경제에 사병의 급료까지 지불할 방위비 부담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사기꾼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돈이 오가지 않을 뿐 국민 경제는 이미 사병의 급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병 복무를 하는 청년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경우 벌 수 있었던 급료를 포기하는 방법으로 방위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의 실물적 흐름은 반드시 화폐가 오고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국민경제 전체로 본다면 건강한 청년을 군대에 보내 그들의 생산력의 활용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이미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국방부나 멍청한 징병제 주장자들만이 그들의 귀중한 인력을 공짜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그러한 부담은 지원병제에서 보다 징병제에서 더욱 높아진다. 왜인가? 첫째로, 징병제는 인력의 적절한 활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공학 박사가 징병제에 따라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그가 사병으로 군대에서 할 수 있는 보통 사병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이 소총을 쏘고, 청소하고, 간단한 사무를 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비용은 매우 크다. 그가 산업 현장에 있었다면 생산성의 향상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었는데 국민경제는 그러한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만일 지원병제에서라면 국방부가 구태여 그러한 고급인력을 끌어다가 청소시키고 소총 연습을 시킬 리가 없다. 혹 그를 뽑아 쓰는 경우가 있다면, 그가 첨단 전자 제어 무기의 조종에 필요하여 민간 부문 보다도 많은 급료를 지불할 수 있는 경우일 것이다. 지원병제라면 군대에서도 소총수에는 소총수에 맞는 인력을 타이피스트에는 타이피스트에 맞는 인력을 주방에는 주방에 맞는 인력을 쓰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장기에 걸쳐 복무하게 될 것이다. 교육 비용도 절약되고, 일의 효율도 올라가고 소위 짬밥(군대의 식사)도 좀더 맛있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국민경제가 실제로 부담하는 방위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지원병제의 경우가 적은 비용으로 더 강력한 방위력을 유지하는 방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징병제의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비용은 국방부의 관리나 군대의 장교의 비용인식의 결여에서 발생한다. 보통 군대에서는 사병의 비용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장 집에 밥하는 사병, 청소하는 사병까지 두고, 사단장 1명에 줄잡아 10명 가까운 개인적 보조인력이 따르게 된다. 일반 회사에서 주인인 사장도 그러한 일은 하지 못한다. 월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는 왜 가능한가? 월급이 없으니 비용인식이 없고 그것이 국가의 자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부정이라는 인식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은 매우 작은 부분이고, 크게는 방위력을 증강하는데 있어서 인력을 증원하는 것과 기계화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인가 하는 결정도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징병제아래서는 인력에 대한 비용인식이 없으므로, 징집할 수 있는 가용자원 범위 내에서는 절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복하는 셈이 되지만 같은 수준의 방위력을 유지하는데 드는 국민경제의 실질비용은 징병제의 경우가 지원병제의 경우보다 훨씬 크게 된다.
셋째, 징병제는 군대를 비인도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징병제는 군대 조직의 비효율성의 원인
이미 왜 징병제가 낭비적인가를 "징병제는 방위비 부담을 줄여 주는가? "라는 칼럼을 통해 밝힌 바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징병제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적어 보기로 하겠다. 필자는 방위병으로 13개월을 군대에서 근무하고 육군 일병으로 제대했습니다. 당시는 방위병도 군대에 근무하던 시절이므로 제가 군대를 모른다고는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10여년 전,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가 육군 이등병으로 수도 근교의 모 예비사단에 입대하였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관계도 있고, 업무의 특수성도 있어, 방위병으로는 이례적으로 군대에서 침식을 하는 일이 많았다.
3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입대에서 제대하기까지 1년간 최 말단이었던 제가 한일은 변소나 부대 주변의 청소, 사병이나 하사관들의 잔심부름, 우리 부대장의 야간 대학원 레포트나 하사관, 장교들의 방송통신대학 레포트 쓰는 것 도와주기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간혹 부대장으로부터 문장력이 좋지 않은 하사관의 보고서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하였지만... 만일 문화 대혁명 당시의 모택동의 사상, 지식인들도 강제적으로 육체적 노동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조하시는 분이라면 이러한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드리셔도 됩니다. 다만, 그런 분들은 북한이나 과거의 중국을 비난하셔서는 안되고, 우리 경제가 30년쯤 뒤로 돌아가도 불평을 하여서는 안된다.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나의 친구하나는 의사인데 군의관으로 가지 않고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야간 보초를 서다가 상급자한테 태도 불량으로 얻어맞고 의무실에 입원한 뒤 군의관의 배려로 의무병이 되고서야 의사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게 된 예도 있습니다. 군대가 인력의 배치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비용감각이 없으므로 인력 자원의 활용도 효율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필자가 관찰한 부대의 일들은 늘 매우 한심한 것들로 꽉 차 있었는데 예를 들면 복사기가 없어서, 5 60장의 동일한 서류가 필요하면 먹지를 대고 댓 명이 여나믄 장씩 써 댄다든가, 포크레인(정확한 용어로는 엑스카베이터)으로 두어명이 서너시간이면 될일은 십여명이 한나절에 해 낸다든가 그 예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습니다. 인력과 시간들이 남았으므로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부대 전체가 동원되기도 했고, 그래도 처치할 수 없는 시간에는 무언가를 이유로 기압을 받기도 하였다.
부대에 필요한 인력과 배치된 인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가위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 이발병이 되기도 하였는데, 회계사 출신의 사병이 능력을 인정받아 창고의 재고 관리를 맡게 된 것은 그나마 인재의 적재 적소 활용에 속한다.
아마도, 지원병제로 하여 이들 사병에게 모두 월급을 지불해야 한다면 회계사출신을 창고지기로 뽑거나, 장교나 하사관들의 야간대학 레포트 쓰기를 대신해 주기 위해 석,박사 출신 사병을 채용하지도, 보초병이나 의무병으로 쓰기 위해 고급 의사를 불러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가위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을 이발병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복사기 한 대 값을 절약하기 위해 그 보다 몇 배 비싼 인력을 복사기 대신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임도 당연하다.
앞의 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사병들에게 충분한 월급을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면, 사단장 사모님과 가족들의 우아한 생활을 위해서, 사병들을 사단장 공관의 주방, 청소, 가사에, 심하게는 가정교사까지로 공급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전임자에 대한 배려라는 이유로 퇴역한 장군의 집에 배치되어 사병생활을 마친 예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도 자질구레한 예에 속한다. 징병제는 군 인력의 과대 보유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징집 가능 사병이 늘어나면 이를 통솔할 장교조직도 필요하고, 군대의 규모는 커 질 수밖에 없다. 사병을 줄이더라도 식비나 피복비 정도가 절감될 뿐, 예산은 그다지 절감되지 않기 때문에, 인력을 삭감하는 대신 그 예산을 써서 다른 방법으로 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은 어렵게 되고, 더구나 조직이 줄게 되면 상위 장교의 자리가 줄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방부나 군에 군 인력을 삭감할 인센티브는 작을 수밖에 없다. 징병제로 인해 군은 그다지 방위력의 강화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데도 과다한 인력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인력 절감의 인센티브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다.
즉, 이미 말했듯이 징병제로 인해, 국방부나 군에 인력에 대한 정확한 비용 감각이 결여됨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는 매우 귀중한 인력들을 군에서는 아주 하찮은 일들에 낭비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고, 같은 수준의 방위력을 유지하는데 국가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결정도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 개병제 내지 징병제는 장기 복무를 곤란하게 한다. 모두가 군대에 가게 되므로 장기 복무를 하는 경우 그 숫자를 모두 군대 조직이 수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국가적으로 엄청난 피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만, 강제로 군대에 가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 불평등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징병제하에서 군대의 사병 복무기간은 2 3년이 한도이게 된다.
군대 복무기간이 짧으니까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는 낭비이기도 하다. 즉, 군대에 전문가가 부족하게 되고, 군 입장에서는 2년 정도 복무할 사병들을 위해 과다한 교육 비용을 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군은 늘 아무츄어들의 조직으로 남게 된다. 물론 장교나 하사관 조직을 통해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대다수가 아마추어로 구성된 조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원병제로 하는 경우 복무기간도 지원자와의 합의하에 연장할 수 있고, 적성에 맡는 인재를 필요에 따라 선발할 수 있으며, 군은 장기 복무자에 대한 교육 지출을 확대하여, 군대 조직의 효율도 높아질 것이다.
넷째, 징병제가 군대의 애국심을 담보하는 장치가 되지는 못한다.
징병제는 애국심을 담보하는가?
징병제 내지 국민개병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용병제 내지 지원병제로 하는 경우 애국심이 없는 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용병제로 인해 망한 국가들을 예로 든다. 예컨대 로마가 멸망한 이유중의 하나로 외국인 용병을 중요한 이유로 드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한국이 용병제를 택하더라도 외국인이 한국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주장 하는 지원병제가 군인을 월급을 주고 고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용병제임에 틀림없지만, 용병 제가 갖는 갖가지의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 국민들 중 군대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들로 군대 를 구성한다는 지원병제의 개념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실, 단순히 월급을 주고 군인을 고용하는 것은 용병제이고 용병제를 택하면 군대에 애국심이 없어져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주장은 그 근거도 알 수 없거니와 이미 우리 나라도 군의 상층부인 장교집단은 군인으로서의 급료를 주 생계의 수단으로 하는 용병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 즉 용병제로 하면 애국심이 없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 주장을 하기에 앞서 용병제인 한국의 장교조직에 대해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 즉, 용병제는 위태롭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군의 지휘부를 용병제로 채워 놓을 수 있는가?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은 지원병제(급료를 생계수단으로 한다는 측면에서는 용병제)를 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안보적으로 우리보다 위태한 나라인가? 미국은 월남전 이후로 징병제를 폐지했고 지원병제로도 세계 최고의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징병제가 폐지되어 군의 애국심이 없어졌다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물론, 용병제에 전 국방력을 맡긴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군의 장교집단이 주도한 두 차례의 쿠데타가 그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징병제가 그러한 쿠데타를 막는데 그다지 유효하지 않았다는 것은, 쿠데타에서 보여준 징병제 사병들의 행동에서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광주의 학살에서 징병제 사병들이 정치 장교들의 야심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징병제 사병들이 장교들의 명령과 관계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증거들까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징병제가 군의 애국심을 보장한다는 징병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첫째로, 용병제에 의한 장교집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된 것이고, 우리의 최근 역사에서 일어났던 쿠데타 사건에서 징병제 사병들이 보여준 행동에 비추어 근거가 없는 것이 판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군의 애국심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첫째로 군을 현재 보다 개방된 집단으로 하여 군과 민간과의 인사 교류를 확대하여 군대의 특수집단화를 완화하고, 둘째로, 군에 대한 문민의 지배(civilian control)가 대통령이 각 군 참모총장을 임명한다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비교적 세세한 수준에까지 문민에 의한 군의 통제를 관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군대 조직의 민주화와 합리화가 필요하다. 즉, 군대내에서도, 상관의 개인적 지시와 국가의 법령에 의한 상관의 명령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슬픈 일은 우리가 광주 사태의 처리에서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에는 답하지 못하고 전두환씨나 몇몇 정치 장교에 책임을 미룬 채 상관의 개인적 지시와 국가의 법령에 의한 명령을 구분하지 못했던 장교나 사병, 그리고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학살을 저질렀던 군의 만행자들에게도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징병제의 폐지로 무엇을 얻게 되나?
징병제의 폐지로 무엇을 얻게 되나?
필자는 많은 건강한 청년들이 과연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군대에 가고 있는지를 의심한다. 특히 필자의 경우 독재 정권 시대에 군대에 입대했던 관계로, 무엇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야하는지 조차 회의에 빠졌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하게, 민주화된 지금에 있어서도, 현재의 한국의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대다수의 청년들이 그다지 즐거운 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군대에 가는 것이 그렇게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면 그것을 권리로 할 일이지 무엇하러 의무라고 하고 가지 않는 사람을 벌 주어야만 하는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신성한 의무라고 믿고 있는 병역의무가 실은 많은 건강한 젊은이들에 의해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문제의 해결점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국토 방위가 진정으로 훌륭한 국가에 대한 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와 같은 강제된 의무에서 자발적인 선택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난번의 대통령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이 병역을 기피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나 되는 냥 하였지만, 기실은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도덕적 수준 자체가 평균적으로 일반인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 어찌,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겪게 되는 군대 복무를 마친 것을 가지고 대단한 일인 냥 자랑할 수 있는가? 만일, 보통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 왔다고 크게 자랑한다면 곧 바로 "어디 군대 갔다 온 사람 자네 뿐이야" 하고 주위로부터 핀잔을 듣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징병제가 아닌 지원병제 하에서, 군인을 하나의 직업 또는 생계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국토 방위를 위한 봉사로서 복무한 사람이라면 자랑스럽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징병제의 폐지에 의해 얻게 되는 것으로는
첫째, 국토 방위에 대한 봉사가, 마지 못해하는 의무로서 할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는 자랑스런 권리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만으로는 국토 방위에 필요한 인력을 모두 충당하기는 어렵겠지만, 모자라는 부분은 직업군인제도로 충원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인 이익이다. 징병제가 폐지되면 군대는 사병 인력의 비용을 인식하게 되고, 군의 인력을 대폭 절감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생겨 나는 인력은 각종 경제활동에 종사함으로써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방위 분야에서 기계화와 정보화가 급진전을 이루게 되고, 이 때문에 생겨나는 수요는 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만일 군의 정보화 기계화로 기존의 사병인력을 1/2로 절감하고도 동일한 방위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 경제는 적어도 가장 생산적인 인력 20만명 이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것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의 국민총생산을 3?5% 이상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이들은 여러가지 꿈을 갖고 있고 각자가 자기의 적성에 따라 자신의 발전과 함께 국가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젊은이의 20대의 2년간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한 젊은이의 꿈을 깨고 획일적으로 강제 군복무를 시키는 것이 과연 신성한 일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애국심을 갖게 하는 것인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국가에 봉사할 방법을 선택할 자유를 준다면, 많은 경우에 군복무보다도 더 값지게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징병제 옹호자들은 군대를 가는 것 보다 다른 방법으로 나라를 빛낼 특출한 사람들에게는 군 복무를 면제해 주는 예를 들어가며 징병제아래서도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변소 청소나 차렷, 열중쉬엇 하는 것 외에는 국가에 봉사할 재주가 없기 때문에 군대에 갔다는 말인가? 그러한 특혜 제도는 군대를 가는 사람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그야말로 재주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만 군대를 간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병역의무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무능함 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 군대에 안 가도 될 만한 잘난 인간을 누가 판별할 것인가? 멍청하고 탐욕스런 관리들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자 하는가? 월남전이 한창이던 무렵 무하마드 알리는 군 복무 거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세계 참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물론 필자가 이창호나 박찬호를 군대에 보내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누구든 보다 자유롭게 그들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넓혀 주고 싶다.
즉, 징병제의 폐지에서 가장 큰 이익은 매우 인간적인 것으로 젊은이들의 꿈의 실현이나 인생의 계획들이 징병제로인해 어긋나는 일들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각자가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국가에 봉사함으로써 징병제로 봉사하는 것 보다 더 크게 기여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가 주장하는 징병제 폐지의 가장 큰 이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