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깎는 노인

맥클로린 작성일 06.12.23 1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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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반 년 전이다. 내가 군대갈 날이 하루밖에 남지않아 머리를 깎으려 할 때다. 블루클럽을 가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멀어서 일단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맞은 편 길가에 머리를 깍아주는 미용실이 보였다. 군대를 가려고 하니 머리를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커트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목욕탕 이발소 가 깎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 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 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샴푸 해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군대 가기전에는 1초가 아쉬운거 아니겠는가.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샴푸 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군대 갈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 , 외고집이시구먼, 사회에서 숨쉴 시간이 얼마 안남았단 말이오.』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깎우. 난 샴푸 못해주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가봤자 딱히 할 일도 없고,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사람 머리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바리깡으로 깎던 것을 숱치는 가위갖다 놓고 태연스럽게 전화받으며 tv를 보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내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가운을 풀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머리다.

한겨울에 찬물로 샴푸받은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때, 여유로운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미용사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자연스러운 빠마머리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머리를 까내놨더니, 부모님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평소 거지같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머리가 너무 길면 거지같은데다가 화장실 배수구가 막히고 뚫기 힘들며 머리가 너무 짧으면 범죄자같고 비누가 빨리 닳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윱?커트는 혹 한쪽 구레가 많이 잘려도 빗을 대고 분무개로 물을 뿌리고 곧 잘드는 가위로 자르면 다시 같아져 좀체로 추해지지 않는다 . 그러나 요새 커트는 구레 한쪽이 한번 짧아지기 시작하면 귀두컷이 된다. 예전에는 머리를 세울 때, 질 좋은 젤을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스프레이를 뿌려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외출을 한다. 이것을 신경 좀 쓴 머리라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왁스를 써서 바로 세운다. 금방 선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머리 세울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염색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염색을 하면 세x에x트는 얼마, 로x알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比達事順(비xx순)한 것은 세배 이 상 비싸다. x달사x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전문가의 손길을 느끼게 해줄리도,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 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머리를 만지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머리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간지머리를 만들어 냈다.

내 머리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 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머리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건빵에 맛스타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백일 휴가 때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 찾았다. 그러나 그 미용실이 있었던 자리에 미용실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미용실이 있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 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헬스장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쭉빵녀가 달리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은 여자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머리를 깎다가 대놓고 헬스장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 (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집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학교에서 머리잘렸다고 투덜댄다. 고등학교 때 머리 길렀다가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맞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이제는 개색히 소색히 소리도 들을 일이 없다. 「萬戶衣聲(만호도의성) 」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문득 반년 전 머리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 내일 군대가요. ㅋ
오늘 머리 자르고 집에 오면서 왠지 떠올랐던 방망이 깎는 노인-_-;;
쩝...쓰고 나니 별로 잼없넹..

다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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