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8시20분쯤 대구시 서구 비산동 한 모(81)씨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창문을 닫은 채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 숨졌다. 이에 앞서 4일에도 광주 북구 양산동 고 모(45)씨가 집에서 선풍기를 켜고 자다 사망했다.”(2004년 8월11일, 〈매일경제〉
여름이면 이런 보도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올해는 그리 덥지 않아서 그런지 좀 뜸하지만, 2004년처럼 날이 덥다 싶으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숨졌다는 기사가 잦아진다. 의사들은 ‘선풍기-죽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저체온증설. 선풍기를 틀면 체온이 낮아지고, 심한 저체온증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덥고 습한 여름에 틀어대는 선풍기가 사람의 체온을 낮추면 얼마나 낮출지 의문스럽다. 둘째, 질식설. 선풍기 바람이 질식을 유발한다는 거다. 강한 바람이 질식을 유발한다면 오픈카 운전자는 어떻게 안 죽을 수 있을까?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선풍기가 과연 죽음을 유발하는가? 더위를 무지하게 타서 잘 때마다 선풍기를 3단으로 틀어놓고 자는 난 왜 아직까지 안 죽었을까? 선풍기를 언제나 얼굴로 향하게 해놓는데다, 창문 여는 걸 잊어버리는 경우도 꽤 있는데 말이다. 의문을 증폭시키는 것은 선풍기로 말미암은 죽음이 우리나라에서만 보도되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공기에 산소가 더 부족하지 않고, 국산 선풍기가 유난히 더 빨리 도는 게 아니라면 한번쯤 이에 의심을 품을 만도 한데, 의사들마저 선풍기 탓에 숨졌다는 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희한하기 그지없다. 해마다 숨진 사람이 십여 명에 이른다는 중요한 질병을 왜 연구조차 한 사람이 없을까? 밀폐된 방에 쥐와 선풍기를 놓고 과연 죽는지 알아보는 건 그리 어??게 아닐 텐데 말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실제로 죽은 사람들은 뭐냐?” 그게 바로 ‘고정관념의 확대 재생산’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믿고자 하는 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콜레라가 유행한다면,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 설사를 하는 사람까지도 콜레라로 오진되기가 쉽다는 얘기다. 선풍기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선풍기가 머리맡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우리나라처럼 선풍기가 죽음을 유발한다고 믿는 나라에서는 다른 원인을 찾기보다 선풍기에 원인을 돌리기 마련이라는 거다.
사실 자다가 숨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심장마비나 뇌혈관 질환으로 숨질 수도 있다. 약물 중독이나 기타 감염으로 숨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조용히 자살을 택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선풍기 때문에 죽었다’고 쉽게 단정짓는 대신 사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들 중 상당수에서 다른 사인을 찾지 않았을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숨질 수가 있다’는 경고문을 박은 선풍기 회사를 본 적이 없고, 실제로 그 때문에 돈을 배상한 선풍기 회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전회사들은 물론이고 피해 당사자조차 선풍기로 말미암은 죽음을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 같다. ‘선풍기-죽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 언론들도 선풍기 죽음 사례를 별 생각 없이 보도함으로써 대중들의 잘못된 믿음을 증폭시키는 행위를 그만둬야지 않을까? 의사들 역시 선풍기 죽음을 정당화하는 대신 그게 진짜인지 밝혀줄 필요가 있다. 말 꺼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니, 내가 먼저 실험 대상이 되리라. 오늘 밤, 난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잘 거다. 내가 다음에 칼럼을 쓸 수 있다면 ‘선풍기-죽음’은 미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