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의경 이야기- SY-44 최루탄발사기 불발사건.

미연시다운족 작성일 07.01.31 0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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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좀 오래된것.. 즉 96년때 있으셨던분 경험담..

때는 바야흐로 1996년 3월.

요즘은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학원가 시위가 드물고 노조나 농민들이 주축이된 시위가 주류를 이루지만, 불과 10년 전만해도 시위진압 시즌은 언제나 대학가의 개강과 맞물려 시작이 되었다. 겨울군번으로 입영을 했던 우리 기수는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는 방패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새벽에는 제설작업 낮에는 쌓인 눈과 너무 추운 날씨로 인해서 연경장에 나가서 진압훈련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서울로 배치가 되었고, 기동단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봉술과 방패술을 속성으로 연마해서 관악방순대에 배정되었다.

그때가 2월초
그리고 일주일차로 계속 신병들이 들어오고
대학생들의 겨울 휴강기간 동안에 들어오는 신병들은 악마같이 갈구는 고참들의 등쌀속에서
진압복을 입고 벗고, 방독면을 쓰고 전력질주로 구보하는 기본 훈련을 충실히 익혀야 했다.

한달간의 훈련은 주간에는 한겨울에도 단내나는 방독면 구보와 방패술로 맞추는 검열대형 훈련으로 야간에는 방범순찰로 잠이 모자라는 고된 일과를 보내고 있었고, 그 훈련의 성과는 서울대학교의 개강시즌에 맞춰서 나타나게 될 것이었기에 전역을 1달 남겨둔 고참들과 자대배치 받은지 6개월만에 견장을 단 고참들은 열심히 신병들을 갈궈댔다.

드디어 3월! 서울대학교 개강날이 다가왔다.

어김없이 상황대기가 떨어지고 아직도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진압복을 껴입고 출동을 준비했다.
무전에서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벌이고 있는 집회에 관한 보고가 쉴새없이 오고가고 있었지만 학생들이 아직 교문 밖으로 나올 기미는 없었다.

결국 해는 지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아직 쌀쌀한 겨울 바람이 솜과 대나무로 엮여 있는 진압복의 틈새로 파고 드는데 시위현장이 "한판 붙기" 위해서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시간은 지루하고 또 춥기만 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대학교를 끼고 있는 경찰서에 배속된 방순대는 자서 관할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무조건 1선을 서야했고 그 방순대에 주변 경찰서에서 나온 방순대 1개 중대, 그리고 지역별로 자리를 잡고 있는 기동대 3개 중대가 배정되어 4개 중대에서 5개 중대로 작전을 했는데...

당시 우리 중대는 서울대 고개길의 최정상에서 서울대 방향 내리막에 방배방순대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신림 9동 방향에서는 3기동대 31.32. 34 중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생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방순대2개 중대를 향해서 오르막을 올라올리는 없었고, 당연히 상황은 아래쪽 신림 9동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과 3기동대의 한판 대결로 벌어질 것은 뻔했지만...

신병중대 (-앞에서 언급했다. 자대배치 6개월만에 견장단 고참들!!) 를 데리고 첫 작전에 나간 중대장님은 시위대가 보이지도 않는 서울대 고개에서 대원들에게 미리 방독면을 씌워놓은 상태였고, 나는 자대배치 1달 밖에 안되었지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방패를 들고 뒤에는 자대배치 1주일된 후임을 달고 있는 상태였다. (둘다 첫 상황이었다!!)

옆에 있는 방순대에서는 같이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만 두시간 가까이 아무런 상황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대기만 하고 있자 방독면을 벗고 담배를 피우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방독면을 두시간째 쓰고 있으려니 뒷머리가 저?윤?시작했다. 방석모를 벗고 싶었지만 서슬퍼런 고참들이 노려보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가 간지러워요." 라는 이유로 혼자서 방석모를 벗었다가는 "졸라빠진 물넷"으로 낙인찍혀 앞으로 군생활이 꼬이느니 참고 말지라는 끈기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다 갑자기 옆 중대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원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뭐야? 기습인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방패와 방석모가 도로에 나뒹굴고 대원들이 떼굴떼굴 구르는 와중에 함께 구르고 있는 스쿠터 한대!

시위가 벌어지면 교통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차량을 우회시킨다. 그날도 두개 중대가 서울대 고개길 양차선 전부를 일렬로 차단하고 있었고, 교통에서는 봉천 사거리에서 올라오는 차량들은 쑥고개로 우회를 시키고 있었는데 차량 소통이 전무하고 두시간 가까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찰나.

스쿠터 한대가 교통 경찰의 제지를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서울대 고개길을 질주해 버렸던 것이었다.
가로등도 모조리 꺼지고 어두컴컴한 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스쿠터는 고개길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방배경찰서 대원들의 대열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정거를 하였지만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충돌을 하였던 것이었다.

다행히 진압복을 입고 있어서 별다른 경상자 없이 상황은 종료되고 다시 운전자는 교통경찰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추운 날씨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또 다시 대기가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몇분이던가.

아래쪽 서울대 입구쪽에서 불꽃이 등장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3기동대 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으로 불꽃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았다.

"이야. 첫 시위인데 화염병이 등장하네."
"화염병이 등장했단다 모두들 조심하고 개인 소화기 잘 챙겨라!"

중대 무전이 신병중대에게 단단히 교양을 시키고
"우리도 저기에 내려갈지 모르니까. 잘 봐라."
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무전에 관악서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299! 진격 앞으로"

우리 중대는 횡대 대형으로 천천히 서울대 고개길을 내?윤?시작했다.
서울대 입구에서는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쇠파이프 튀기는 소리가 들?都?

'아.. 저기로 가는건가?' 속으론 정말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우리 중대가 내려가는 도로 왼편의 숲 속에서 갑자기 불꽃 몇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대학생들이 우리가 내??것을 알고 화염병을 들고 숲속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 불꽃이 보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화염병이 날아왔지만 우리 중대 대열의 5미터 정도 앞에서 터졌고 화염병을 던진 학생들은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m-9방독면에는 안경을 부착할 수가 없었다. 86년도에 생산된 방독면의 렌즈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흠집이 가뜩이나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는 야간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시위대가 있는 위치는 화염병의 불꽃을 보고 대략 파악을 하면서 열심히 서울대 정문을 향해서 횡대대형을 유지하면서 내려갔는데...

갑자기 "밀어! 밀어!"
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내??우리 중대가 교문을 벗어나서 열심히 3기동대 대원들과 싸우고 있던 학생들의 배후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학생들은 부리나케 뛰어 교문안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정작 중요한 사건은 그 뒤에 발생했다.

우리 중대 무전... 전역을 두달 정도 남겨놓은 왕고였는데... 그 고참이 최고참이었다.
매점에서 빵팔다가 중대 무전을 잡았던 왕고... (고참들은 그렇게 말했다.)

무전잡고 첫 상황에서 별다른 부상없이 상황이 종료될 것 같았나보다.

나름대로 열성을 가지고 중대장님께 말했다.
"중대장님 우리 애들 첫 상황이고 한데 sy-44 한번 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좋아 한번 쏴보자구."
"넵 알겠습니다. 사수 sy발사 준비!"

사수들 "sy발사준비"
하면서 중대에 배치되어 있던 sy6정이 일렬로 도열했다.

주변에 있던 기자들 모여들어서 플래시를 펑펑 터뜨리고

무전의 우렁찬 고함소리!
"sy발사!"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펑!"

당시 나는 sy 사수들 바로 뒤에 있어서 그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

여섯정의 sy가 순차사격을 했으나 다섯정이 불발이 나고 마지막 한정만 발사된 것이었다.

이유는...

최루탄을 발사하는데 사용하는 장약을 비가 오는데 그냥 밖에 내놓고 있었으니 장약이 젖어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좀 머리가 비상했던 우리소대사수 고참은 장약을 잘 보관하고 있었던터라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건너편에서는 기동대들이 보고 있지, 뒤에서는 다른 방순대가 보고 있지 서장님 나와 계시지,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당시 중대장님.. 키가 작고 온화하신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욕을 욕을 하시는 걸 처음봤다.

중대장님이 깨스를 뿌리자
상황 끝나고 가장 듣기 싫었던 그 말이 중대 무전 입에서 나왔다.

"니들 들어가서 보자."

부대 복귀한 이후에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결국 복귀이후 한따까리?
-유용원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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