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이 '오빠'이던 시절, 나도 열심히 종이학을 접었었다. 단발머리 계집애들에게 시집이나 소설책 한 권 선물할 때는 반짝종이로 종이학 한 마리 정도는 접어서 끼워야 '마음이 전달'되는 듯 싶었다. 전영록도 떠나고 한 5년쯤 흘렀을까...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접기를 하게 되었는데, 글쎄 닭대가리가 되었는지,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 종이학 접는 프로세스가 엉켜서 버그 상태의 신호음만 때리는 게 아닌가.
"자식, 머리 나쁘구만~"
"그게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가치라도 있는 거냐? 난 돈 안 되는 건 기억 안 한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머리에 들어온 것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리란 기억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잊어버리라고 있는 것이다." 기억할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잊어버릴 것은 깔끔하게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종이학 접기 정도의 간단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고대문명에 관한 집착이 유별난 그레이험 핸콕은 <창세의 수호신>이나 <신의 지문> 등의 책에서 피라미드에 관한 재미 있는 사실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왜 기자지역의 대피라미드 이후의 피라미드들은 전해지지 않는가? 사실 전해지지 않는게 아니라 전해지고 있는 것들이 전대의 피라미드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거의 대부분은 저절로 허물어지거나 심하게 훼손된 상태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피라미드를 만드는 기술이 후대에서 오히려 퇴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이학 접기도 아니고,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기술이 오히려 잊혀져 퇴보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더 재미 있는 사실이 있다.
1만 2천여 년 전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즈메이니아 섬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쪽에서 분리되었다. 당시 이 섬에는 5천 명 정도의 수렵 채집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세기 초에 유럽인들이 태즈메이니아에 처음 상륙했을 때, 불을 피울 줄 모르는 한 원주민 집단을 발견했다. 그 원주민들은 대륙 본토의 사람들처럼 부메랑이나 정교한 석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태즈메이니아 사람들은 사람이 물고기를 낚고 그것을 먹는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들 역시 보통사람들과 같은 크기의 倖?가지고 있었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대기 두 개를 비벼서 불을 지필 줄을 몰랐다 이쯤 되면 피라미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다시피 불은 문명을 일으킨 '발화물질'이다. 심지어 불을 만들 줄 몰랐던 부족이라 해도 불을 지킬 줄은 알았다. 그래서 불이 절대 꺼지지 않도록 신성시했는데 만약 불이 꺼지면 어딘가로부터 불을 얻을 때까지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고 추위를 견뎌야 했다. 이웃부족끼리 평화롭게 불을 나누기도 했지만 불을 가지기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은 아예 불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불을 가진 문명인과 불 지피는 법을 잊어버린 원주민의 교류는 처음부터 처참한 결론을 에고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1802년부터 태즈메이니아에 죄수들을 데?윤?시작했는데 이들은 거의 무방비상태인 원주민 여자들을 마음대로 강간해서 살해했고, 총독은 이를 방치했다. 원주민의 귀를 잘라서 먹는 게 유행이 될 정도였다. 1830년에는 원주민의 수가 반 이상으로 줄었지만 보총독이던 조지 아서 경은 1천 정의 장총과 3만 발의 탄약으로 무장한 2천2백 명의 군인들을 동원해 원주민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원주민들에 대한 신의 은총은 1835년에야 간신히 이루어지는데 성공회 선교사인 조지 오거스터스 로빈슨이 마지막 남은 150명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을 다른 작은 섬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1855년에는 3명의 남성과 2명의 소년, 그리고 11명의 원주민이 겨우 생존했을 뿐이다.
적들을 즉각적이고 대량으로 죽이는 손쉬운 방법을 이용하는 데 도달한 것은 인간이 유일한다. 이런 대량 학살의 방법을 아는 종족들일수록 '무엇이든 까먹지' 않는다. 이집트는 그 누구보다 찬란한 황금의 문명을 건설했지만 그걸 까먹기 시작하면서 자기나라 문화재 하나 지키지 못하는 '바보'들로 전락했다. 조상들이 가르켜준 불 만드는 법을 까먹은 태즈메이니아의 원주민들은 종족보존도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무엇이 걱정이냐고? 왜 걱정이 아닌가. 우리가 까먹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열심히 미국을 배우고, 서구를 배우느라 '한국'을 통째로 까먹고 있는게 보이지 않는가? 18세기의 멍청한 실학자들 이래로 우리는 우리 것을 하루 빨리 까먹어야 '문명국'이 될 수 있다는 이상한 질병에 걸려 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종이학 접기에는 비상한 재주를 발휘한다.
까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종이 접기가 아니다. 정말 까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 우리 문화가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게 우리를 지키는 수호의 불이다. 우리는 지금 그걸 까먹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