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을 아십니까?

겨울찬가 작성일 07.06.26 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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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을 봤습니다.

예능프로그램의 막장......

그 말을 듣자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얼마전 읽었던 글이.....

 

탄광촌에서 나고, 탄광촌에서 컸다.

도계의 검은 석탄은, 나의 삶을 끌고 갈 힘을 태워내는 연료였다.

항상 그것에 감사하면서도, 그러나 나는 정작 그 원동력이 창출되는

가장 깊은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왔다.

 

막장에 가다


병장 3개월에 나간 9박 10일의 상병 휴가.

무언가 보람있고 의미있는 일을 찾고 싶어 할 때, 아버지께서 제의하셨다.

아버지 : 너, 입항 한번 해보지 않을래?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탄광촌에 살면서, 너무도 광부의 노고와 애환을 알지 못했기에

그 곳에 직접 들어가 보고, 만지고, 냄새맡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다.

대체 30년의 세월동안 아버지께서는 어떤 곳에서 나를 키워내셨나.

그 기대감으로 나는 주제넘게도 설레임 같은 것 까지 가졌나보다.


아버지의 사무실에 가본 적도 처음이었다.

그 곳에서 '각서' 라는 것을 썼다.

갱 안에 들어가서 여하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일체의 금전적 피해를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였다.

쉽게 말해서 다치더라도 책임 안지겠다는 말.

붉은 지장을 찍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좀 오싹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작업복을 받아들고, 갈아입었다.

하얀색 팬티와 런닝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쥐색의 상의, 하의,

허리띠, 안전 헬멧, 방진 마스크, 목장갑, 그리고 군인에게 익숙한

요대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길쭉한 검정색 고무 장화를 신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어린 초보 광부 티가 팍팍 났다.

하지만, 역시 나는 탄광촌이 고향인 사람이어서일까.

내 생각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동덕갱은 사정이 생겨서 입항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갑자가 중앙갱으로 목적지가 바뀌었다.

아버지의 설명으로는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이 동덕갱이고,

중앙갱은 그나마 작업하는 여건이 좋은 곳인데,

좀더 고생시켜야 했는데 아쉽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 때의 내 마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쉽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 아마도 갱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나름대로 긴장해 있었던 모양이다.


도계광업소 중앙갱 앞에서, 마지막으로 안전등을 지급받았다.

네모난 배터리 부분을 허리 뒤쪽에 걸어놓고, 길게 끈으로 연결되어

등 부분을 헬멧 앞부분에 꽂았다.

이 등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그때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등 바로 뒤에 붙어서 졸졸 따라가며

드디어 갱 안으로 들어섰다.

어린 시절, 그 컴컴한 굴 앞에서 몇번 왔다갔다 한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그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처음 들어간 갱은 정말 어두웠다.

게다가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철제 선로들과 침목들,

그 외에 발에 걸려 넘어질 만한 것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이리저리 그것들을 피해 가보려고 하다가,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그저 아버지의 발걸음을 똑같이 밟으며 따라갔다.

그러면 가장 안전하게 따라가는 것이니까.

이 안에서만큼은 30년 세월, 최고의 전문가이시니 아버지.

그 때만큼, 아버지의 등의 믿음직스럽고 든든하게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물, 빛, 그리고 공기.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갔을까, 이제 궤도열차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사람이 타는 인차를 타고, 지하 1300미터까지 내려갔다.

나는 그 정도 생각밖에 할수 없었을까. 군대까지 거의 끝마친다는

녀석이 그것을 타면서 처음 생각한 것은 유치하게도 놀이기구였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사람의 힘으로 파들어간 그 갱의

거대한 깊이와 아득함에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인차는 끝도 없이 내려만 갔고,

나지막한 동굴 높이에 머리를 부딪힐 수 있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것에서 내리고 나서도, 수평으로 수 km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아버지와 함께 걸어 들어가면서, 처음 느낀것은 정말 적막하다는 것이다.

갱 안이 무척 시끄럽고, 부산하고, 소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갱에는 여러 갈래의 작업장으로 나뉘어지고,

그 각각의 막장에는 단지 몇 명의 광부만이 할당되어서

자신의 맡은 구역에서 채굴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착암기로 굴을 뚫고, 폭약으로 발파 작업을 하며

콘베이어 벨트를 돌린다면야 그 소음과 먼지는 어마어마하지만

그 이외의 작업이 진행될 때, 갱 안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갱을 가스 안전 점검을 위해서

월요일 새벽에 홀로 돌아다니신다.

...그때 느껴질 외로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도 방진 마스크를 쓴 얼굴에는 땀에 젖어 미끌거렸다.

처음 갱 안에 들어섰을 때에는 아주 서늘했는데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뜨거운 지열이 훅훅거리면서 다가와

마치 여름철 차 안에서 히터를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갱 안에서는 땀을 엄청나게 흘리게 된다.

속옷은 말할 것도 없고, 겉옷까지 모두 젖어 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커다란 물통에

얼음을 얼려서 한 통씩 꼭 가지고 다니신다.

하도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물의 필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갱에는 광부들이 잠시 쉬거나 점심식사 등을 할 수 있게

나무 탁자 같은 것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안에서 일하시는 광부분들의 가방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께서 그 가방 하나를 여시고, 큰 물통을 하나 꺼내시더니

물 한 모금 마셔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안에서 일하시는 분께 생명수와 같은 그 물을

나는 선뜻 마실 수가 없었다.


마침내 막장에 도착했다.

끝이 막혀 있는 굴. 끝없이 파고 들어가야만 하는 굴.

그래서 그 곳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그 곳에서는 몇 분이 한참 작업을 진행하고 계셨다.

그런데 무언가 안전조치를 충분히 해놓지 않았는지,

아버지께서 그 분들에게 안전하게 해 놓고 작업할 것을 지시하셨다.

한 분도 빠짐 없이 얼굴은 탄가루와 땀으로 새카맣게 변해 있었고,

그 분들이 직접 나르고 옮겨야 한다는 나무들과 철제 구조물들은

단지 손을 대본것만으로도 그 중량감이 어마어마했다.

아치형 철재 구조물 하나의 무게가 70kg 이라는데,

그것을 어깨에 얹고 열차가 지나다닐수 없는 긴 갱도를 걸어 들어와

조금 파들어 가고 굴을 만들고, 조금 파들어가고 굴을 만들고.

그런 식으로 지금의 이 거대한 갱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막연함과 거대함에 질려버릴 정도였다


갱도 안에는 갱도를 따라 참 여러가지 선과 관이 따라간다.

그 중에서 가장 지름이 큰 고무로 된 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바깥에서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송풍관이다.

막장 안에서 신선한 공기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워낙 밀폐되어 있고, 지열이 심하기 때문에

바깥에서 맑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땅 위에서는 아무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쉬고 싶을 때는

잠시 하던 일을 놓고 그 자리에서라도 쉬면 되지만,

이 갱 안에서는 한참 작업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는

그 자욱한 탄가루와 열기 속에서 아무 데도 피할 곳이 없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일을 한다손 치더라도

햇빛 받고 공기 마시면서 일하는 곳은

이 막장에 비한다면 불평할 계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군대의 작업이 힘들다 불평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중, 아버지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갱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헬멧의 안전등이 꺼지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시험삼아 헬멧의 안전등을 꺼 보았다.

아버지의 안전등도 꺼지자, 세상은 암흑 천지로 변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실오라기 같은 빛도 없는 곳이니까.

만약에 그렇게 안전등이 꺼지면, 벽을 잡고 더듬으면서 기어나오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누군가가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바로 그런 곳이 탄광이었다.
 
사랑. 헌신. 그리고 인생.


사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막장 안에서 이런 저런 일을 시키실 줄 알았는데,

그저 이 막장, 저 막장을 둘러보게끔만 하셨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정말 힘들었다.

13시간 반의 50km 유격 행군도 거뜬히 한 나였지만

가파르고 좁은 그 갱도 안을 마치 탐험하듯 다니는 것은 고역이었다.

정신없이 걸어다니다가 낮은 천장에 헬멧을 부딪히는 것도 수차례.

그러나, 대체 이러한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묵묵히 십수년의 세월을 견뎌 오는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그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있다.

헌신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진짜 사랑은 이런 것이라 역설한다.

삶이란 무엇무엇이라고 수도 없이 나름대로 정의하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것 모두 다른 이에게 보이려고 하는 시끄러운 소리일 뿐.

이 곳에서 일하는 막장 속의 광부들은, 그들의 땀과 눈물로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한다.

 

 

 

 

폐가 탄가루에 굳고 뼈가 상해도

그들의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는 도계의 광부들.

나 또한 그렇게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고, 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다.

 

 

 

 

자기 자신이 잘 먹고, 잘 입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라면

도저히 한 달도 하지 못할 일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고, 사랑하고 있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기에

묵묵히 이들은 그 긴 세월을 버티어 냈고

매일같이 그들의 발걸음을 막장으로 향해 딛는다.

 

 

 

 

점심밥.


그렇게 마침내 바깥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 초록빛 나뭇잎, 밝은 태양빛. 모든 것이 감사했다


단지 몇 시간의

그것도 '관광' 수준에 불과한 막장 체험을 해본 나도

그렇게 바깥이라는 세상이 귀중하게 느껴졌는데.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광부가 느끼는 그 공기는 얼마나 감사하게 달콤할까.


막장에서 나와

아버지와 함께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점심을 집에 와서 드신다.

그 날도 아버지와 함께 돌아오자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점심밥을 마련해두고 계셨고

나는 맛있게 그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점심을 잡수시러 오시는 것이었구나.

어린 시절, 나는 매일 점심밥으로 인해

그 시간에 집으로 오시는 아버지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삶이 아버지에게 지워져 있었을까.

아버지께서는 어떤 삶을 견디어 내고, 참아 내면서 웃는 얼굴로 집에 오셔서 점심을 잡수시는 것이었던가


그 날 점심은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막장' 이라는 말이 떠돈다.

'인생막장', '막장으로 간다' 등등, 개념 없고 그저 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비웃을 때

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동질감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 것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막장에서

누군가는 숭고한 사랑과 헌신을 말없이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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