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성기의 소유자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

나도_알아 작성일 07.06.30 14: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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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grigory yefimovich rasputin)


자료1.

 

본명은 grigory yefimovich novykh.
1872(?) 러시아 시베리아 튜멘 근처 포크로프스코예~1916. 12. 30(구력 12. 17)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 태생의 농부, 신비주의자.


혈우병(血友病)을 앓고 있던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병세를 호전시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궁정에서 총애를 받으며 세력을 휘둘렀다.

농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는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글을 몰랐으며 방탕한 생활로 인해 러시아 말로 '방탕한 사람'이란 뜻의 라스푸틴이란 성(姓)을 가지게 되었다.
18세 때에 개종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침내는 베르호투레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 그곳에서 흘리스트(고행자) 종파를 알게 되었다. 그는 흘리스트 신앙을 왜곡해 인간은 '신성한 냉정함'을 느낄 때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이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랫동안의 방탕 뒤에 느끼는 성적 소진(性的消盡)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수도사가 되지 않고 포크로프스코예로 돌아왔으며, 19세 때 프로스코비아 표도로브나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그를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그는 집을 떠나 그리스의 아토스 산, 예루살렘 등지를 떠돌며 농민들의 헌금으로 생활했고, 환자를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으로 영적 지도자(starets)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떠돌다가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고(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의 장학관인 테오판과 사라토프 주교 헤르모겐의 영접을 받았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정 사교계에는 신비주의와 비술(秘術)이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눈이 빛나고 비범한 치료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이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한 방랑자는 사교계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1905년 황실에 소개되었으며, 1908년 황태자의 출혈소동이 또 한차례 벌어지고 있을 때 황궁으로 불려갔다. 그는 소년의 아픔을 달래는 데 성공했는데 최면술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황궁을 떠나면서 황제와 황후에게 그 소년과 왕조의 운명은 자신과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로부터 10여 년에 걸쳐 황제의 집안과 국정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가족들 앞에서는 계속 겸손하고 신성한 농부의 모습을 보였으나 궁정 밖에서는 다시 예전의 방탕한 행각에 탐닉했다. 그는 자신과 육체적으로 접촉하면 정화(淨化)와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교하며 정부(情婦)들을 얻었고 또 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의 행실에 관한 얘기가 니콜라이의 귀에 들어갔을 때, 황제는 그가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난한 사람들을 러시아의 오지(奧地)로 좌천시키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1911년에 이르자 라스푸틴의 추잡한 행실은 모두에게 알려졌다. 총리 p.a. 스톨리핀은 황제에게 그의 비행(非行)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다. 결국 황제는 그를 추방했으나, 알렉산드라는 몇 달도 안되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아내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도,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던 황제는 앞으로 라스푸틴을 비난하는 말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라스푸틴의 권력은 1915년 이후 절정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중 니콜라이 2세가 직접 군대 지휘를 맡아(1915. 9) 전방 부대로 떠나며 황후에게 러시아의 내정을 맡기자 라스푸틴은 그녀의 개인 고문역을 맡았다. 그는 교회 성직자 임명부터 각료 선출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력을 행사했으며(그는 종종 무능한 기회주의자들을 뽑았음), 때로는 군사문제에도 개입해 국가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어떤 특정 정치집단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전제정치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맞섰다.

그를 죽임으로써 러시아의 재난을 막아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마침내 1916년 펠릭스 유수포프 공(황제의 조카사위), 블라디미르 미트로파노비치 푸리슈케비치(두마 의원),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황제의 사촌)을 포함한 극보수파 무리가 그를 제거하고 추문에 싸인 군주제를 구하기 위해 암살을 모의했다.
12월 29~30일(구력 12. 16~17) 밤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의 집으로 초대되어 독약이 든 포도주와 차, 케이크를 먹었다. 그가 죽지 않고 멀쩡하자 놀란 유수포프는 총을 쏘았다. 라스푸틴은 쓰러졌다가 일어나 앞마당으로 도망쳤고 이번에는 푸리슈케비치가 다시 그를 쏘았다. 이렇게 해서도 죽지 않자 그들은 라스푸틴을 묶어 네바 강의 얼음 구멍에다 처넣었고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살인사건은 전제정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알렉산드라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지만 몇 주일 뒤 제국의 모든 체제는 혁명에 휩쓸려 쓰러졌다.

 


자료2.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의 외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무렵 한 사내가 기적처럼 나타나서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켜 건강을 되찾게 만들어준다.
왕실의 주치의 조차 포기했던 황태자의 병을 고쳐준 사람의 이름은 라스푸틴.

황제 부부는 곧바로 라스푸틴에게 감사를 표하며 단숨에 그의 열광적인 숭배자가 되어버린다.
라스푸틴은 황제 부처의 총애에 힘입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반감도 커지기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라스푸틴은 자신의 최후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이라도 하듯

 

-이제 곧 내가 죽게 되고, 그 후 더 깊은 뿌리가 잘려나가게 된다
-이제 나는 곧 죽을 것이다

 

하고 때때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라스푸틴이 권력을 남용하여 귀부인들을 농락하고 인사권까지 좌지우지 하며 무엇보다도 황제 부처가 라스푸틴의 말이라면 독이라도 먹을 듯이 그를 감싸고 돌자 러시아의 젊은 귀족들은 비밀리에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암살되던 날 아침, 그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고 한다.

 

- 저는 정월 안에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나를 죽인 자가 나와 같은 농부라면 황제는 제위에 그대로 머물 것이요 그 자손들이 대대로 제위에 앉아
  러시아를 다스릴 것이나 나를 죽인 자가 만일 귀족이라면 그들의 손은 영영 피로 물들 것이고 그들은 조국을
  버릴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귀족은 사라지게 됩니다.
  제 죽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태자까지 모두 살해당할
  것입니다. 러시아 백성이 당신을 죽일 것이요.

 

그리고 1년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1916년 러시아의 젊은 귀족들은 라스푸틴을 만찬회에 불러 청산가리가 든 과자를 먹인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태연히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와인까지 마시면서 기분좋게 노래까지 청하는 것이었다.
유스포프 백작이 참다못해 그의 심장에 권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다른 귀족이 또 한발을 쏘아 맞혔다.
잠깐 쓰러졌던 라스푸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공포에 질린 귀족들은 은촛대를 내리쳐 그의 두개골을 난타했다.
간신히 죽은 라스푸틴의 시체를 꽁꽁 언 강의 얼음을 깨고 던져넣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발견된 라스푸틴의 시체는 놀랍게도 한쪽 손이 구부러져 가슴 께에 십자가를 그리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물속에서 의식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해 십자가를 그렸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그의 폐속에 물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이것은 물속에서 호흡을 했다는 증거이므로..)
익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료3.

 

1. 러시아를 몰락시킨 라스푸틴
 왕조가 망할 때에는 여러 가지 조짐이 나타난다. 1차 대전에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허약하기 짝이 없던 로마노프 왕조를 붕괴일로로 몰고 가는 요인들이 착실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황실을 지배한 사람은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아니었다. 무능하고 심약해던 차르뒤에는 드세고 편협한 황후 알렉산드라가 있었다. 그리고 황후뒤에는 그녀가 신처럼 떠받드는 요승 라스푸틴(rasputin, grigorii efimovich, 1872?~1916)이 있었다.

라스푸틴은 충실하기 그지없던 여신도인 황후를 등에 없고 전권을 휘두리기 시작했다. 차르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황후를 시켜 차르에게 편지 한 장만 띄우면 그만이었다.
 라스푸틴은 본래 시베리아의 농민 출신으로 말을 훔치다가 마을에서 쫓겨난 후 수도원을 전전하는 '돌중'이 되었다. 그의 종파는 최면술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신흥종교였다. 그는 1904년 페테르부르크로와 점잔빼는 귀부인들 사이에서 많은 신도를 얻었고 마침내 황후 알렉사드라까지도 사로잡았다. 당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사이에는 뒤늦게 얻은 알렉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쪽에서 독일 왕가의 피를 물려받은 이 황태자는 많은 유럽 왕실을 괴롭히던 혈우병에 걸려있었다. 당대 유명한 의사들도 혈우병에는 속수무책이었으나 라스푸틴은 최면술을 걸어 알렉세이의 병을 '치유'했다. 그의 처방이 어떻게 먹혀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라스푸틴은 이 일로 황후에게 살아있는 성자가 됐다. 황후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라스푸틴은 막강한 권력을 얻었다.
라스푸틴은 궁정에서는 매우 정중하게 행동하고 농민의 꾸밈없는 소박함을 보였주었으나, 밖에만 나오면 '개'가 되었다. 그는 어리숙한 귀부인들에게 육체의 속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하며 숱한 여성들을 농락했다. 수상 스톨리핀은 라스푸틴을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려 했으나, 황후에게 밀려 실패하고 얼마 안 있어 암살당했다.
 라스푸틴은 꿈에 계시를 받았다며 황후를 통해 1차세계 전선에 있는 차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황후는 차르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성자의 조원을 전했다.
수도의 거리에 황후와 라스푸틴의 관계를 조롱하는 벽보가 나붙었고 둘이 동침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일반대중은 물론, 귀족들 사이에서도 비난 여론이 들끊었다. 1916년 가을, 위기가 깊어지면서 대중들의 시위가 날로 격해지고 병사들의 동요도 뚜렷해졌다. 자본가들은 황제를 퇴위시키고 니콜라이 대공을 옹립하려는 움직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기를 느낀 황실 측근들은 라스푸틴을 죽여 황실을 구하고자 했다.

 

2. 라스푸틴의 죽음
 암살 주모자는 황제의 조카인 이리나 공주의 남편은 유스포프 공과 '검은 100인조'의 창설자 푸리슈케비치였다. 그들은 평소 라스푸틴이 아리따운 이리나 공주에게 혹심을 품고 있었던 것을 이용하여 그를 암살하기로 했다.

1916년 12월 29일 그들은 공주를 딴곳으로 빼돌리고 공주의 초대장으로 라스푸틴을 유스포프의 저택으로 불러냈다. 유스포프는 라스푸틴에게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와 독이 든 포도주를 계속 권했다. 독이 퍼진 라스푸틴은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유스포?“?계속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겁에 질린 암살자'는 기타를 치고 이미 죽어야 할 '시체'는 술마시며 노래부르는 거이한 광경이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견디다 못해 유스포프는 마침내 권총을 꺼내 라스푸틴을 쏘았다. 쓰려졌던 '시체'가 갑자기 벌떡일어나 우스포프의 어깨를 움켜잡았따. 라스푸틴은 다시 살아나 두 손과 두 발로 엉금엉금 기면서 공포에 질려 계단 위로 도망치는 유스포프 공작을 쫓았다. 라스푸틴은 푸리슈케비치가 쏜 총탄 두 발을 더 맞고 나서야 다시 쓰러졌다. 사람들은 밧줄로 시체의 양손을 묶어, 얼음을 깨고 강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라스푸틴은 숨을 쉬고 있었다고 한다. 이틀 후 건져진 그의 시체는 손에 묶은 밧줄은 풀려 있었고 오른 손이 가슴에 놓인 채 손가락 3개는 축복의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의 사인은 독이 중독된 것도 총에 맞아 죽은 것도 아닌 익사였다.
 그를 죽인 유스포프 공작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눈은 무슨 인광처럼 내 앞에서 반짝였다. 그의 두 눈에서는 두 개의 광선이 흘러나와 합쳐지면서 뜨거운 원형이 되었다.."


 

3. 죽음을 미리 예견한 라스푸틴

 라스푸틴은 차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예언한 바 있다.
 "나는 내년 1월 1일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귀족들에게 살해된다면, 그들의 손은 나의 피로 젖을 것이며 25년동안 그 피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나의 죽음을 가져온 자가 폐하와 친척 관계인 사람이라면, 폐하의 자녀와 친척 어느 누구도 2년 후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를 죽인 유스포프나 그 일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귀족들, 심부름꾼들은 모조리 말로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모두 반동적 인물로 분류돼서 죽거나 유배돼 병으로 죽든지, 또는 살해를 당하게 된다.

 

4. 엄청난 성기의 소유자
 그의 성기의 길이가 무려 28cm가 넘었다고 한다. 라스푸틴이 죽기 직전에 황후의 시녀이자 라스푸틴을 모시던 시녀가 몰래 그의 성기를 잘라서 방부제를 넣고 보관했다고 한다. 라스푸틴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그를 신봉했던 것이다.

지금은 러시아 세인트 페테르부스크 '에로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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