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친구
ㅡ 낯선 어떤이에게
처음으로 친근함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나와 닮은
아주 사소한 공통점을 알게됐을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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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흑마의 생석은 접속종료후 약 15분 이후면 사라진다.
2. 저 사제는 어제 저녁 이후 지금 처음 접속이다.
결론 : 당연히 생석은 사라지고 없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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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벤을 정리하다 생석이 사라진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팔아버렸다고 믿는 사제를보며
난 잠시(그야말로 아주 잠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음.... 저기요"
"....눼. ㅠ_ㅠ"
"그거 접속 종료하면 원래 사라지는데요 -_-"
"네??"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다 한 30초간 아무 말도 없었다.
대장간 NPC의 쨍쨍거리는 망치질 소리만 들릴뿐 지나가는 저랩 한명 없다.
음.... 침묵이 길군.
뭔가 말을 하긴 해야하는데;;
"저기요.."
"저기요.."
우리둘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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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민망. -_-
쫌만 말 안하고 더 버텨볼껄.
"ㅎㅎ"
나는 참지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모니터 앞에 나 역시 웃고 있었다.
생석이 사라진걸 걱정하는 모습.. 얼마나 순수하고 귀여운가. ㅎ
"왜 웃어효... 난 은빛님이 주신 사탕을 나도모르게 팔아버린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ㅠㅠ"
....이봐요. 당신이 내 입장 되봐봐. 안웃게 생겼나 ;ㅂ;
"그거요... 제가 또 만들어 드리면 되죠. 자 봐봐요."
나는 P버튼을 눌러서 최하급 생명석 창조스킬을 눌렀다.
특유의 모션과 함께 생석을 만드는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있는 사제에게
거래창을 열어 생석을 하나 건넸다.
"와... 진짜 또 있네요"
"아끼지 말고 먹어요. 내가 쓰면 바로바로 만들어 줄테니까 ㅎ"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랩이 33쯤이었을까.
아라시 고원에서 공주연퀘를 할때 '미즈라엘의결정'을 모으는 퀘스트가 있었다.
지도 맨 서북쪽끝의 동굴에서 마른수염코볼트를 잡아서 결정 12개를 모으는 거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참 힘들었다.
몹의 랩이 나랑 비슷해서 1:1로 붙다가 애드가 되면
순식간에 3:1정도가 되고 얼마안되서 눕기 일쑤였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옆엔 호드 마을이 같이 있었다. -_-
몹을 잡기만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언데드 도적.
순식간에 내 모니터를 회색으로 물들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해골랩들에게
내 불쌍한 캐릭터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시체를 찾으러 뛰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퀘만 포기하면 간단한 일이었을텐데
너무 많이 죽어서 더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때에도
나는 오로지 퀘를 미뤄두고 다른지역 퀘를 하다가 틈만나면 다시오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퀘템도 무지하게 안나왔다.
50대 후반랩때 여명에서 설인을 잡아서 얻는 퀘템....(뭐였는지 기억안난다;;)
그거보다 더 안나왔던것 같다. -_-
한 일주일을 그 퀘스트만 했던 것 같다.
4개만 퀘템을 더 모으면 완료를 할 수 있던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호드에게 (그날은 주수리였다-_-)
난 또 유령이 되어서 부유해야만 했다.
주술사의 토템이 어찌나 무섭던지
(그시절 나는 주술사가 토템을 뽑아서 던지는 걸로 생각하기도 했다. -_-)
내가 마법을 시전하기만 하면 뭔가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시전도 취소되있고
어느새 누워있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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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진짜 힘들어서 못하겠다....ㅠㅠ"
최대한 몸이 안보이게 바위뒤에서 부활하여
숨어서 피와 엠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을무렵
저 앞에서 두눈에 불을 켜고 무시무시한 황소가 대따시만한 도끼를 들고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걸렸구나.ㅠㅠ'
자리에서 일어나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하얀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서 그 황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엇?"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가는 은색 빛깔의 마법
잠시 움찔움찔하던 그 검은 황소괴물은 (호드분들 죄송합니다.ㅠㅠ)
하얀호랑이의 공격에 어쩔 줄 모르더니
잠시후 바닥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큰귀를 흔들흔들하며 어느샌가 나타난 나이트 엘프사냥꾼과
작은 노움법사...
아.. 이들이 나를 지켜준 것이구나.
"흑........... 정말 감사해요 ㅠㅠ"
뒷골목 깡패들에게 3:1로 마구 두들겨맞고 있을때
경찰아저씨가 나타나서 그 깡패들을 다 쫓아내준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길가다가 100골을 주웠어도 그때처럼 기쁘진 않았을 것이다.
"저 호드시키, 꼭 퀘스트하는 저랩들만 건드리네. -_-"
"진짜. 개념을 오그리마에 두고왔나봐."
"..........."
오그리마가 뭘까. -_-
어쨋든 그 둘은 위험하다며
나에게 퀘스트 결정을 모을때까지 호위를 서주겠다고 했다.
"아... 정말 감사드려요."
순식간에 퀘스트는 완료가 됐고 재차 고맙다고 말하는 나에게 법사는 이야기를 했다.
"님, 물빵필요하세요?"
"....네?"
어느샌가 거래창이 뜨고 그곳엔 '창조된음료'와 '빵'이 거래창 가득 있었다.
맙소사... 이 많은걸 내가 받아도 될까.
"받으세요. ^^"
"아... 이 많은 걸....ㅠㅠ"
"괜찮아요. 필요하시면 더 드릴께요"
"헉.... 아네요. 충분해요."
이거면 저 일주일은 먹고도 남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흑. 진짜 친절하시군요. ㅜㅜ
그 두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퀘를 완료하러 임시주둔지 방향으로 뛰어오면서
나는 몇번이고 인벤을 열어서 물빵을 확인하곤 했다.
어찌나 기뻤던지....
다른 퀘스트를 하면서도 나는 몇개안남은 메론쥬스을 먼저 먹으며
물하고 빵을 아껴두고 보기만해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아껴두리라.
최소한 일주일은 두고두고 먹으리라.
그리고.......
다음날 내가 접속했을때 사라져버린 물빵의 빈자리를 보며
너무나도 놀라서 한동안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망연자실 하여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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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님!!"
나는 힘있게 사제의 이름을 불렀다.
"네."
"우리 퀘스트 하러가요. 제가 오늘 진짜 확실하게 도와드릴께요."
"와.... 정말요?"
"네. 오늘은 랩 두자리 찍게 해드릴께요. ㅎㅎ"
잠시동안의 상념을 뒤로하고
한동안 잊고있었던 나의 저랩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준 그 사제에게
어느덧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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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주 오래전..
아라시고원에서 저를 도와주셨던 "00큐피트"님과
이름은 잘 기억안나지만 물빵을 건네주셨던 작은 노움법사님....
이자리를 빌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물빵은 단 한개도 못먹었지만. ㅠㅠ
p.s언젠가 포럼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안구에 습기 차도록 계속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