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영화보기

아미로로 작성일 07.08.24 01: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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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혼자서 영화보기-_-













우리나라만 그런건지

전세계적으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영화 감상'하면 일단

데이트코스의 일부분으로

가장 먼저 인식이 되며

왠지 영화관에 혼자가서는 안될것같은

무언의 문화적 약속같은 것이 있다

-_-;









얼마전,

친구들은 죄다 군대에 가고

그렇다고 내 옆에

여자 친구들이 있는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혼자서 쓸쓸히

똥구멍이나 긁다가

냄새 맡고 기절하며

신세한탄을 하던 시절.






우연히 인터넷을 통하여

'미녀는 괴로워'라는

김아중씨 주연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난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영화포스터에 김아중씨 사진을 보자마자







천상 : 오오 김아중!! 하악하악;; 벌써부터 흥분이..












이런 오덕후 똘추같은 새끼-_-

김아중씨 죄송합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던 여배우였고,

평소에 관심이 매우 많아던

'다이어트'라는 주제에 관한 영화였기에

이 영화를 꼭 극장에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속 단단한 결심이 생겼다.










천상 : 아.. 그나저나 누구랑 보지?






역시 머리속에 판박혀있는

'영화는 누군가와 같이 봐야된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나 역시

아주 무의식적으로

나와 같이 영화를 봐줄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하나하나씩 클릭해가면서

역시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엄마, 아버지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_-;





할수 없이 난 옆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천상 : 엄마, 우리 영화나 볼까?

엄마 : 어이구 씨부럴 오늘따라 왜이렇게 김치맛이 후져!!

천상 : 저기... 엄마.. 내 얘기 듣고 있어?

엄마 : 옘병.. 내가 미각을 잃었나.. 무슨 대장금도 아니고 껄껄..

천상 : ........




엄마는 왠지 그날따라 김치가

생각보다 잘 안만들어지는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셨다.





저런게 바로

창작의 고통이란 것일까 -_-





아무래도

지금 엄마의 기분 상태로는

같이 영화보자고 했다간

엄마가 김치를 담그는게 아니라

날 담궈버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너무나도 무서워져

일단 자리를 회피했다.







천상 : 아.. 그럼 남은 사람은 아빠밖에 없는데..






핸드폰을 열고

조심스럽게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 왜!

천상 : 네 아버지, 몸은 평안하신지요?

아버지 : 나 바뻐. 할말이 뭐여 씨부럴놈아.

천상 : -_-;;

아버지 : 예~ 손님 갑니다!! (툭..)

천상 : 저기 아버지!! 아버지!!! 유어 마이 파더!!!!

아버지 : .........






아버지는 많이 바쁘신 모양.

하긴 한달에

두번째주 일요일 딱 하루만 쉬시는분인데

나와 같이 영화보러갈 시간이 있을 턱이

없는 분이셨다.

-_-







늘 가정을 위해 한몸바쳐

열심히 뛰시는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 주제가 잠깐 다른데로 흘러버렸는데

아무튼-_-

나에겐 더이상 영화한편 같이 봐줄

벗이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는

김아중씨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제발 영화관으로 와달라고

날 쳐다보고 있었고,

흥분이 극에 달한 나는







"에이 더러운세상!!

그냥 혼자라도 보자!!"





한마디 절규를 하며

그냥 무작정 집 근처에 있는

강변 cgv로 달려나갔다.






비록 혼자 가는 영화관이긴 하지만

아마, 평일이고 시간도 한참 일할시간들이니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















영화관에 입장하자마자

남녀노소 할 것없이

서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다양한 커플들이 떼를지어

붐을 이루고 있었다.

-_-







일단 영화 자리수를 보니

아직 표는 많이 남아있는 듯.



아니 근데

왜이렇게 커플들이 많은거야?



영화를 보러왔으면

그냥 조용히 영화만 보고 가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왜 영화관 안에서

지들끼리 손을 만지고 볼을 부비고

키스를 하고,

가슴과 사타구니를 어루만지고..

속옷 속에 손을 넣고...




음.. 이건 아닌가..

-_-




아무튼

왜 저렇게 스킨쉽들을 하고 있는지

...







나도 하고싶어서 눈물이 났다..

-_-






일단, 표를.. 좀 끊어볼까..

자, 일단 이게 제일 어려운 난코스가 될듯 싶었다.




난 마음을 굳게 먹고,

'난 사람이 아니라 표 끊는 기계이다. 기계이다 난.'

라고 스스로 되뇌이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매표소 앞으로 갔다.





여직원 : 네, 손님 어떤 걸로 드릴까요?

천상 : 미녀는 괴로워로 주세요^^;

여직원 : 몇장 드릴까요?

천상 : 하..하하...^^.. 한장..

여직원 : 네? 손님 잘 안들립니다.

천상 : 하..한장..이요..

여직원 : 네? 좀 크게 말씀해주세요!!

천상 : 아 한장 달라고!!!

여직원 : 네!! 영화 티켓 한장 드리겠습니다!!

천상 : -_-;; 십라..

여직원 : 자리는 어디로 드릴까요?

천상 : 잘보이는데로 아무대나 주십쇼..






참고로

강변 cgv영화관 1층에 매표소에선

직원이 마이크를 대고 손님과 매표작업을 하는데

마이크 덕분에 직원 목소리가

어찌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지



'네!! 영화 티켓 한장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여직원의 면상에

니킥을 한대

후려갈길 뻔했다.

-_-




아마 저 여자도

내가 작게 얘기하니까 짜증나서

은근히 사람 약올리려고 일부러 저렇게

크게 얘기한게 아닌가 싶다.





갑자기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한순간 주위가 고요해지면서

주위에 서식하고 있던 커플들이

날 향해 시선을 내리 꽂았다.






천상 : ^^;

커플들 : -_-?

천상 : ^^;;;;

커플들 : -_-...

천상 : 그.. 그만좀 야려.. 개 똥구녕 같은 새끼들아..








나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내 손에 소중히 쥐어진

미녀는 괴로워 영화표 '한장'을 들고

룰루랄라 웃으며

상영관이 있는 10층까지 올라갔다.





영화가 시작하기전까지는

아직 30분정도가 더 남은 상황.




같이 얼굴 맞대고 얘기할 상대도 없고

전화할 상대도 없었던 나는

한 커플 옆자리로 다가가

그중 여자되시는 분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혼자 그분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했다.

-_-;




여자 : 호호.. 그러니까 오빠, 걔가 뜯어고친데가 한둘이 아니라니까?

천상 : (하하..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 근데 우리 쟈기는 어디 고친데 없지?)

여자 : 아니, 근데 알고보니까 걔 말고도 고친애가 또 있더라고..

천상 : (어머어머, 그게 누군데 그래?)

여자 : 흐흐.. 맞어 걔야 걔.. 오빠 어쩜 그렇게 딱딱 잘 맞춰? ㅎㅎ

천상 : (아니.. 그게 누구나고..)

여자 : 우리 영화 끝나고 팥빙수나 먹으러 갈까?

천상 : (오케이!! 나 팥빙수 되게 좋아하거든^^)

여자 : 왜 싫어 팥빙수가!! 쳇!!

천상 : (아니 난 좋다니까 이년아-_-)




나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었던 여성분과

그녀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떠버렸다.








완전 동문서답..



역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여자와

마음속으로 대화하기란

상당히 어려움이 있어보였다.





후우.........


내 인생 존내 *해보이는구나..




나이 24에 저러고 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긴 하다.

-_-








이렇게 할일없이 시간을 주욱 때우고 있다보니

어느새 상영관에 입장할 타이밍이 되었다.



그제서야 또 내 심장은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게이트를 지날때

표를 한장만 건내줘야 한다는게

내심 쪽팔렸기 때문.

-_-





난 할 수없이 심호흡을 크게하고

게이트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천상 : 야, 임마!! 철호야!! 같이 들어가야지!! 먼저 들어가면 어떡해!! 헉헉..

-_-





난 보이지 않는 친구.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친구

철호를 원망하는 눈빛을 감칠나게 연기하며

게이트 담당 여직원에게 표를 건냈다.





직원 : 재밌는 영화관람 되세요

천상 : 아놔.. 이놈 짜증나게 먼저들어가네.. 나 절대 혼자 온거 아닌데 오해받겠다 ㅋㅋ

직원 : ㅋㅋㅋ

천상 : -_-;;








순간적으로

초면의 여직원이

나를향해

'에라이 못난놈...'

이라는 눈빛을 날린 것을 보였는데

내 환영이었을까?









영화관에 들어갔더니

매표소직원 말대로

아주 좋은 자리가 배정되어있었다.





바로 딱 가운데 자리.




앞, 뒤, 양옆.



좋은 자리라서 그런지

유난히 내 자리 주위로

커플들이 수두룩하게 앉아있었다.

-_-







천상 : 헤헤.. 쟈기야 우리도 영화 재밌게 볼까..?










결국 난

보이지 않는 친구 철호를 집에 보내고

대신 보이지 않는 애인 태희와

그렇게 사이좋게 영화를 보았다.






천상 : ㅋㅋㅋㅋ 저거봐 저거.. 쟈기야.. 이범수 머리에서 피나와 ㅋㅋㅋ

태희 : ㅎㅎㅎㅎㅎㅎㅎ....

천상 : 후우.... 나이 24에 이러고 있다.. -_-







참고로 난 정신분열자가 아니다.




그냥 좀 *할 뿐.

-_-








혼자서 저렇게 이야기하고있는 내 모습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 눈물이 흘렀다..















결론 : 돈이 좀 아깝더라도 그냥 표를 두장사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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