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화도 드라마도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연애스토리가 어느정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러이러한 식으로 행동을 하면
극적인 드라마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것도 예상을 한다.
어느날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 내용을 보자하니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한 여자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는데
이 여자를 늘 등뒤에서 지켜보던 다정한 오빠가
이를 묵묵하게 다 들어주는 아름다운 내용이었다.
그 대사 내용을 대충 재연해보자면 이러하였다.
여자 : 흑흑... 오빠, 나 지금 내 애인이랑 싸우고 왔어..
남자 : 이런.. 우리 여린 채린이한테 그 남자가 못되게 굴었나보구나?
여자 : 나 이제 어쩌면 좋아? 난 이제 내 마음을 둘데가 없어;
남자 : 채린아, 너무 힘들면 잠시 이 오빠의 어깨에 기대도 좋아..
여자 : 응...
(살며시 머리를 남자 어깨에 기대는 여배우..)
여자 : 오빠..
남자 : 응?
여자 : 난 오빠 어깨가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지 몰랐네..
남자 : 힘들때마다 이 어깨에 기대도 좋아. 난 너의 수호천사같은 존재니까^^
여자 : 오빠.... 나 그냥 남자친구 버리고 오빠랑 사귈까?
남자 : 농담도 할줄 아는거보니 너 이제 마음 고민이 다 풀린거 같구나^^
여자 : ...(쳇.. 농담 아닌데.. 내맘도 모르는 오빠같으니..)
캬!
정말 멋진 장면 아닌가?
굳이 비슷한 장면을 가진 드라마를 뽑자면
환상의 커플에서 나오는 박한별과 오지호의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늘 뒤에서 묵묵하게 그녀를 지켜주는 한 남자와
그러한 남자를 위와 같은 계기를 통해 마음에 두어버리게된 여자..
우습지만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기게 되었다.
5년 정도를 친하게 지내온 잘 아는 여자 동생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이 여자애한테서 전화가 온것이다.
천상 : 여보세요? 수아니?
수아 : 응.. 오빠.. 지금 뭐해?
천상 : 나 그냥 레포트 쓰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수아 : 지금 나와줄 수 있어?
천상 : 무슨일인데 그래? 너 목소리가 많이 안좋아 보이네
수아 : 그냥.. 흑흑.. 좀 나와주면 안돼?
천상 : 뭐야, 너 지금 우는거야?
수아 : 아무튼.. 여기 우리 늘 자주오던 술집에서 기다릴께..
천상 : 어 그래..
평소 잘 웃고 다니던 애가
갑자기 울음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자
난 혹시라도 수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단숨에 약속 장소로 달려나갔다.
약속 장소에 다다르니 아니나 다를까
수아가 얼굴이 마스카라로 범벅이 될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천상 : 야임마, 너 지금 여기서 혼자 뭐하는거야?
수아 : 오빠 왔구나.. 나 너무 힘들어서 술좀 마셨어..
천상 : 무슨 일인데?
수아 : 나.... 흑흑..
천상 : 뭔데 그래? 뭔지 알아야 내가 해결을 해주든지 하지.
수아 : 나... 남자친구랑 싸웠어..
...............
천상 : 샹년아 난 싸울 여자친구도 없거든?
수아 : -_-
물론 저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천상 : 그래도 애인없는 나보다는 싸울 애인이라도 있는 니가 낫잖니..
수아 : 그 남자가 나한테 화낸거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야!!
천상 : 사람 감정이 어떻게 한결같을 수 있겠어. 니가 이해해줘.
수아 : 와.. 오빠도 같은 남자라고 지금 그사람 편들어주는거야?
천상 : 아니아니.. 일단 진정좀하게 술부터 좀 마실까?
수아는 지금 상당히 감정이 조절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술이라도 한잔씩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누그려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난 그때 잠시 잊었던것 같다.
수아 이년은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_-
그리고 술만 마시면 애미애비도 못알아볼 정도로 취한다는 사실을...
아니나 다를까 술을 마신지 한시간 정도 지나자
수아가 나를 점점 오빠가 아닌
한마리의 개미핥기를 다루듯 취급하기 시작했다.
수아 : 저기 오빠... 할말이 있는데...(수줍..)
천상 : 응?
수아 : 야이 개새퀴야... 넌 내 고민들어주러왔냐 술쳐먹으러왔냐..
천상 : 고민들어주러 왔지-_-
수아 : 근데 왜자꾸 아까부터 술만 쳐먹고 있어.. 이런 쉬벨놈이..
천상 : 그야 술좀 먹으면서 진정좀 하려고..
수아 : *..
천상 : -_-
평소에 그토록 여성스럽던 수아가
술을 몇잔 들이키더니
천하에 둘도 없는 미친년이 되어버렸다.
-_-
천상 : 자, 그럼 이제 술은 그만마시고 슬슬 고민 얘기나 계속 해볼까?
수아 : 꺼져..
천상 : 응?
수아 : 꺼지라고.. 미췬.. 톰슨가젤같이 생긴 새끼가..
천상 : 야.. 너 내가 톰슨가젤 닮았다는말 제일 싫어하는거 알잖아..
수아 : 아무튼 저리 비키라고!!
천상 : 아니 뭐 이런 *같은 년이.. 너 오빠한테 척추뼈 좀 꺾여볼래?
라고 말했다면
난 천하에 둘도 없는 속좁은 개새끼가 됐겠지-_-
하지만 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위에서 나온 드라마처럼
묵묵히 뒤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아름다운 오빠이고 싶었다.
천상 : 수아야!! 정신 똑바로 차려!!
수아 : 응? 아.. 그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천상 : 그래.. 릴렉스하자..
수아 : 근데 오빠가 여긴 왠일이야? 아깐 나보고 나같은거 필요없다더니?
천상 : 엥?
수아는 술이 너무 취해서 아무래도
나를 방금전에 싸우고 왔던 남자친구로 오인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래, 기왕 고민 들어주기로 한거
내가 남자친구인척 한번 해주자.
남자친구인척 연기하면서 수아와 화해를 하자.
천상 : 수아야, 오빠가 아깐 미안했어^^ 내가 너 사랑하는거 알잖아.
수아 : 그래두 아까 나한테 대한건 너무 심했다구..
천상 : 하핫.. 미안해.. 그니까 우리 이제 화해하자 응?
수아 : 몰라!!! 오빠 미워!!
이때 갑자기 수아가 오른쪽 팔을
있는 힘껏 휘두르면서 풀 스윙으로
내 왼쪽 싸대기를 후려갈겨 버렸다.
짝!!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아름답게 터져버리는 나의 피!!!
-_-
아.. 진짜..
오빠노릇하기 존나 힘드네..
오빠고 뭐고 저년을 그냥 확 조져버려?
-_-
천상 : 수아야!! 너 너무 많이 취했다. 오늘은 일단 집으로 들어가.
수아 : ...........
천상 :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니까?
수아 : ...........
이년..
아주 고단수다.
내 귀쌰대기를 날리고 바로 잠들어 버리다니-_-
다음날 수아로부터 문자가 한통 날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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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어젠고민들어
줘서고마웠어기억
은잘안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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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잘들어갔다
니다행이다어제너
많이취해서걱정많
이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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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고마워^^ㅎㅎ
앞으로도계속나힘
들때마다이렇게내
고민들어줄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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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까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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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자분들.
현실은 드라마와 많이 다릅니다.
세상이 늘 그렇게 아름답운 방향으로만 흘러가는건 아니더라구요..
친한 여동생의 고민들어줄땐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들어주도록 합시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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