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억도 싫다…고흐 그림 한국에 남기고 싶다”
"3000억원도 싫다. 진정 한국에 남기고 싶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실재와 소재가 유일한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흐의 템페라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인' 서병수(59)씨가
"너무나 안타깝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요즘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당세에는 불운했으나 후세에 각광받는, 불운했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세상을 마감하기 한 달 전
그린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본지 7월 11일치 1·2면 참조) 세계 미술계를 진동시켰던
그를 생각하면 뜻밖이다.
더구나 세계적 언론 및 포털 사이트에 의해 진품이 확실시되며 물경 3000억원까지 가치가 뜀으로써
(본지 9월 15일치 27면 참조) 모두를 놀라게하며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그였지 않은가.
그런 그가 "인생의 기로에 선 듯하다"며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도대체 왜?
■이일대로(以逸待勞)에 담긴 숨은 뜻은…
그는 "돈보다는 한국인의 긍지가 우선"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세계 최고가를 제시하며 구입 의사를 밝혀 온 세계 유수 미술 소장가들의 구애에도 아직까지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이 문화 후진국이라는 굴레를 벗고 아울러 한국인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그림의 거처를 정하겠다"는
뜻을 누차 밝혔다.
오로지 한국에 남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한국 정부 기관 또는 한국 기업·한국인은 말이 없다.
고흐 서거 120여년이 흐르도록 실재가 밝혀지지 않았던 고흐의 템페라 진품을 그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3개월이 다 되도록 말이다.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구입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 가격에 지레 기죽고 주저앉은 것인지….
반면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안달이 났다.
짝사랑과 다름없는 러브콜을 연방 보내고 있다. "계약금 100억원을 줄 테니 우선 협상권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곳도 나왔다.
그가 현재 이방인들에게 취하고 있는 전략은 이일대로(以逸待勞·손자병법 승전계 제4계: 쉬다가 피로에 지친 적과 싸운다)이다.
외국의 끈질긴 구애의 손길에 어느 정도 마음을 열긴 했으나 일정 선 이상은 허락지 않아 상대들을 애끓게 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 편안히 앉아 상대의 제안을 저울질하며 가치를 올린다고 할 수 있다.
이 전략의 밑바닥에는 보다 고도의 책략이 담겨 있다. 무엇일까?
■유방백세(流芳百世)할 수 있다면…
그는 여론의 방향도 읽었다.
본지에 소장 사실과 진품 확인 및 추정가 등이 잇달아 보도된 뒤 많은 누리꾼들이 댓글을 통해
"한국에 남겨야 한다. 국가에서 구입, 보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기념관을 세워 전시하면 세계적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다"라며 구체적 의견을 제시한 누리꾼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열어 가는 나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조국, 한국땅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가고 싶다"고 한다.
엄청난 돈에 현혹돼 그림을 외국에 넘겼을 때 그 생각하기도 힘든 천문학적 가격의 중압감에 짓눌려 어쩌면
황금기가 될지 모를 후반부 인생을 헛되이 보낼 수도 있다는 염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남길 수만 있다면 가격을 따지고 싶지 않다"라고 한다.
뒤늦게 귀중한 작품임을 인지하고 보관에 힘쓴 지난 4년 동안의 자신의 노고를 씻어 내고 진품 인정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을 보상할 수 있는 가격이면 만족하겠다고 한다.
이 경우 네 자릿수 억대에서 세 자릿수 억대로 가격이 내려올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장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관 등 힘든 문제가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언제까지나 우리나라 쪽 반응을 기다리기는 어렵다.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고흐학회(6~9일) 이전에 한국에 남길지 여부를 결론 짓고 싶다"라고 말했다.
고흐학회에는 그의 소장품이 주제로 상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