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다이나믹 코리아!’
민주주의란 깃발을 올리고 선거도 몇 번 치렀으니 선거의 룰이나 원칙을 다 알 것 같은데…, 매번 늘 새로운 경우의 수가 등장한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사람들이 그러길 바라는 듯한 태도이다. 이제야 이회창 씨가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자 일각에서는 그가 이제야 정치 감각을 익혔다는 촌평을 내놓았다. 지난 대선 때 그가 지금과 같은 역량을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과감하게 피력한다. 정치 감각이란 말에 난 그저 웃음이 나오던데…. 원칙과 룰을 무시하고 나오면 정치 감각이 탁월해지는 걸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뻔한 대선정국이 되려니 하고 방관을 하다가 엉뚱한 복병 한 사람의 등장으로 대선의 관전 포인트가 확 달라졌다. 이거야 말로 제갈 양이 하늘의 별자리 보고 天運을 읽어내야 할 형국이다. 언론에서는 나라의 앞날을 두고 나름대로 수읽기를 내놓으니 그 모양새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당연히 부동의 지지율 1위였던 이명박 씨가 다음 대통령일 게 뻔하다며 시시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다가 터진 일이라 더욱 더 혼전 양상이다.
남의 나라의 일도 아니고 내가 사는 땅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눈과 귀가 절로 쏠린다. 어떻게 지지율 50%가 넘어서 독주를 이어가던 후보가 복병 한 사람의 등장으로 지지율이 10% 넘게 떨어질 수가 있는가, 이건 변수가 아니라 자칫하면 상황의 뒤집을 지렛대가 되는 건 아닌지…. 이 대선의 끝이 궁금하기만 하다. 이래서 대한민국은 ‘다이나믹 코리아’란, 캐치프레이즈가 잘 어울린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의 연속이니, 이 얼마나 재밌는가 말이다.
말리지 마라! 원도 없고, 한도 없게!
한편, 이회창 씨의 대선 출마 선언을 두고서 언론을 비롯한 많은 식자층들이 그를 맹공격을 해댔다. 어쩜 그리도 약속이나 한 듯한 목소리를 내는지. 그들이 하는 소리라는 게 법과 원칙을 중시하던 대쪽 이회창 씨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이회창 씨가 경쟁 룰도 모르고 원칙도 개무시했다는 것이다. 선거 막판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것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노탐이요, 노욕이라고 하며 쿠데타라고까지 비난을 해댔다. 이쯤 되니 이회창 씨도 여기에 대해 ‘인격살인’이란 말로 고립무원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읍소했다.
하지만 룰을 어기든, 원칙을 무시하든 그러면 좀 어떤가? 우리가 뭐 한두 번 당한 일도 아닌데….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옆에서 말린다고 물러서면 나중에 화병이 생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원도 없고, 한도 없는 법(그런데 한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더 난리더구먼.).
내가 보기엔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대선을 나오겠다는 이회창 씨나, 그런 그를 두고 룰과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며 비난하는 측이나 양쪽 다 피가 뜨겁고 순진하기 마찬가지던데….
언젠가 부자들만 만나서 그들의 부를 더 큰 부로 만들어준다는 컨설팅 회사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내게 미국 부자들의 이야길 해 주었는데, 흥미롭게 들었던 대목이 있었다. 미국 부자들이 대통령 만들기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 지금의 미국 대통령 부시를 백악관으로 보낸 사람은 미국의 부자들이었다고 한다. 현 부시 정권을 ‘주식회사 미국(Cooperate America)’에 비유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정치권까지 좌지우지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돈의 아름다움과 힘을 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극소수의 부자들이란 이야기.
미국의 소수 부자들은 기업 경영에도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삼성의 이건희 같은 오너경영? 뭐 이런 것도 우리나라처럼 순수 열정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경영자이지, 미국과 같은 나라의 부자들은 경영에서 손을 떼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건희 씨 참 대단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경제에 큰 일익을 담당하고…. -_-;;
정치는 왜 하고, 경영은 왜 하나?
미국의 부자라면 세계의 부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돈의 본능도 안다고 한다. 그들은 돈이 일정 수준의 부를 형성하면 증식력을 가진 ‘괴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괴물은 힘이 무지 세기 때문에 특별한 조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연히 돈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돈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 즉 돈에 관한 전문가들이 이 부자들의 부의 증대를 위해 엄청 노력을 하기 위해 동원이 된다고 한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가 보다. 그게 돈의 본능일까? 돈이 괴물이 되어 버리면 미국의 부자들은 돈을 직접 만지지 않는다고 한다. 뭐랄까, 돈을 뜨겁게 사랑하지만 차갑게 다룰 줄 안다고나 할까. 그들은 돈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자기 돈을 남에게 맡긴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한다.
“기업 경영?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왜 하냐? 내 돈을 가지고 더 큰 돈을 벌어다 줄 머리 좋고 성실한 놈한테 돈 좀 쥐어주고 시키면 되는 일을.”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정치는 왜 하냐? 권력을 조정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권력이란 게 말야, 행사하는 것보다 조정하는 데에 매력이 있는 거여. 나서기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는 놈한테 정치 자금을 대주고 앞에 내세우면 되는 일을.”
참 놀랍지 않은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존경심이 싹 사라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정치는 낭만과 열정과 순수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선주자들도 인간미가 넘치고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며 우국충정까지 있으니 이거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그들이 펼치는 인간드라마가 매일매일 대한민국에 생중계되니 이 얼마나 재미있느냐 말이다.
이 반쪽짜리 나라의 대통령 한 번 해서 피폐해진 한국경제를 일으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해보겠다는 사람이 있고,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면서 자기가 아니면 정권교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대선에 나섰다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이다. 참 좋은 후보자들을 두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후보자들이 참 순진한 분들이시다. 인간미가 넘치고 에너지가 왕성한 분들이시다. 그게 다 권력욕이건, 노욕이건 간에 참으로 열정적인 분들이지 않은가?
정치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한테 맡겨야
아직 우리 한반도 정치권이 아직은 자본의 힘에 물들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몇 년 후에는 우리나라도 자본이 권력까지 접수하겠지만 말이다. 정치에 자본이 개입되면 메이저 게임이 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 어느 날, 한반도에도 자본이 조정하는 권력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선주자들이 다음에 보여줄 어떤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해도 그건 정치 쇼의 한 가지일 것이다. 이회창 씨가 도중에 살신성인을 하는 맘으로 대선에서 물러선다고 한들, 또 다른 후보가 별별 쇼를 다하고 난리 블루스를 춘다고 한들 그건 다 순수와 열정이 내뿜는 인간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더불어 한국 정치는 2007년 현재 낭만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부모 심리나,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청와대에 그대를 보내겠다는 지지 세력이나 다 리얼 코리아의 현주소다. 우리가 뭐 이런 광경을 한두 번 보았는가. 이제 척 하면 다 아는 스토리이지 않은가. 왜 구태정치니, 환멸을 느끼고 염증이 난다고들 하는가? 이렇게 다이나믹한 코리아를 두고서!
뜨거운 관심으로 지켜보고, 냉철한 이성으로 찍자!
이번 2007 대선은 아직 미국과 같은 자본이 정치를 접수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올 연말에 아마추어 게임을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세련되지 못해서 유치하긴 하지만 순수와 열정의 축제 한마당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이 대선 릴레이를 뜨거운 관심으로 지켜보다가 선거 당일에 냉철한 이성으로 한 표를 행사하자. 이런 정치대선도 훗날 생각하면 그리운 그 시절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