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착하게 살기 싫어지는 경험...

kyblue 작성일 08.02.14 16: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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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 귀가중이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그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는편이 더 빨라서 전 평소대로 가던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다 보니 거기 있던 화단에 웬 손가방이 하나 올려져 있더라고요.

 

제가 왜 그랬는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될것을 그걸 들고 가방을 열어보았습니다. 가방 안에는 통장, 지갑, 핸드폰, 화장품 등등..이 들어있었는데 통장에 만원짜리 50장이, 지갑 안에는 6만8천원(다 세어 봤습니다-_-;)이 들어있더라구요. 그리고 핸드폰은 꺼져 있었는데 켜 보니 밧데리가 다 되서 다시 꺼지더라구요.

 

전 집으로 가면서 갈등했습니다. 56만8천원... 큰 돈은 아니지만 저는 저번달에 전역을 해서 논다고 돈을 많이 써서 이정도 돈이면 옷도 사고 용돈으로 쓰고... 할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냥 쌩까고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저희집 가는길에 파출소가 없었다면 말이죠...거기다 아직 전역한지 1달도 안되서 군인정신 같은게 좁쌀만큼이나마 남아있어서, '쩝, 그래 그냥 경찰서에 갖다주자 잃어버린사람은 얼마나 걱정하겠냐...' 어울리지 않게 그런생각을 하고 파출소에 갖다 줬습니다.

 

그런데 거기 경찰이 제 신상을 묻더라구요. 전 이런 일로 경찰서 가보기는 첨이라 분실물 가져다준 사람이 신상명세를 말해줘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전 경찰이 시키는대로 제 이름이랑 저희 집 주소랑 전화번호랑 다 가르쳐 주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간 아깝긴 했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뿌듯했습니다. '아..나 군대 갔다오니까 착해진거 같아... 돈 다시 찾은 사람은 기분 좋겠지..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생각할거야..'라고 말이죠..

 

그리고 바로 어제.. 부모님은 다 출근하시고 전 집에 있었습니다. 전역한 후 복학준비로 인터넷으로 알아볼게 많아서요.

 

그러다가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웬 처음보는 아줌마가 있더라고요.

 

전 처음에 '또 무슨 신문권유 같은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대뜸 이렇게 묻더라구요.

 

"학생이 000(제 이름)이야?"

 

"예.. 그런데요?"

 

"학생이 내 가방 경찰서에 가져다 줬어?"

 

"예.."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가방주인이 고마워서 인사하러 온거구나.. 그럴 필요 없는데..' 전 순진하게도, 아주 순.진.하.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생, 내 가방 어디서 찾았어?"

 

이렇게 묻더라고요. 그제야 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줌마 표정도 좀 굳어져 있고 질문도 뭔 심문하듯이 툭툭 던지는게...

 

"00아파트 단지에서 주웠는데요?"

 

"정말 거기서 주운거 맞아? 확실해?"

 

"예."

 

"정말 확실해? 난 분명이 00식당에서 잃어버렸는데?"

 

"전 00아파트 단지에서 주웠다니까요?"

 

"그럴리가 없어. 난 00식당에서 잃어버렸는데 그게 발이 달렸어? 거기까지 가는게 말이 돼? 그리고 학생 집은 여긴데 00아파트 단지에는 왜 간거야? 그리고 내 핸드폰에 몇번이나 전화했는데 왜 꺼놨어?"

 

아... 눈치가 느린 전 그제서야 상황을 알수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니 내놓으라는게 이런 경우구나.. 하고요..

 

"00에서 저희 집으로 오려면 거기를 가로지르는 편이 빨라서 지나가게 됬고요. 핸드폰은 제가 주웠을때 밧데리가 다 닳았었어요."

 

"그래도 말이 안돼. 난 00아파트 단지에는 간 적이 없단 말이야. 학생, 뭔가 이상하니까 나랑 잠시 경찰서에 가보자고."

 

"경찰서??!! 이 아줌마가 진짜?!!!"

 

그 순간 계속 억누르던 짜증이 폭발했습니다. 자연히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거칠어 졌습니다.

 

"내가 경찰서에 왜 가요?!! 아줌마가 어디서 잃어버렸든 그건 모르겠고 전 00아파트 단지에서 주웠다고요!!!"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뭐가 이상하니까 경찰서에 가자는 거지!! 학생이 내 입장이 돼 봐!! 난 거기 간적이 없는데 학생이 거기서 주웠다니 의심스러운게 당연하잖아?!!!"

 

그 아줌마도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아줌마와 저의 말싸움은 저희 아파트 통로 내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 아줌마는 나보고 경찰서에 가자고 보채고, 난 못간다로 버티고.. 결국 아파트 이웃사람들이 나와서 싸움을 말려줬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경찰서에 안가고 집으로 들어갔고 그 아줌마는 이웃들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데(보나마나 내 욕) 나중에는 그냥 갔다고 하더라구요.

 

하루가 지났지만 진짜 너무 억울하고 열받아서 어젯밤에는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이웃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전역해서 착한일 한번 해보자고 한 짓인데(물론 처음에는 욕심이 생겼지만...) 이렇게 덤터기를 쓰다니.. 제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봅니다...-_-

 

이번일로 얻은 교훈..

 

첫째, 떨어진 물건은 그냥 쌩까자..

 

둘째, 주웠을 경우 그냥 챙기자.

 

셋째, 경찰서에 갖다 주더라도 절대 자기 신상명세는 밝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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