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흥행메이커 밥 샙이 K-1으로 복귀한다. 무대는 역시나 다이너마이트. 하지만 이번에 밥 샙은 K-1 파이터가 아니라 만화 주인공(?)과 승부를 벌여야 한다.
K-1을 주최하는 FEG는 지난 22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2월 31일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릴 예정인 '다이너마이트 용기의 힘 2008'에서 밥 샙이 만화주인공인 킨니쿠만타로(근육맨)와 드림룰로 격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밥 샙은 지난 2006년 네덜란드 대회서 어네스트 호스트와의 대결 직전에 계약문제를 이유로 돌연 출전을 취소하면서 K-1측의 분노를 산 바 있다. 이 문제로 밥 샙과 K-1은 법적 소송까지 진행하는 등 한 동안 격투계를 뜨겁게 달궜다.
우여곡절 끝에 K-1 측과 화해를 했지만 밥 샙은 작년 복귀한 대회에서마저 피터 아츠에게 어이없이 패하는 등 건성으로 경기에 임해 다니가와 대표를 한숨짓게 만들었다. 흥행을 위주로 하는 대회이니만큼 K-1 측은 작년 다이너마이트 무대서 밥 샙을 개그맨 출신 바비 오로건과 대결시켰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야수'를 부르지 않았다 .
하지만 역시 흥행을 위주로 하는 다이너마이트인만큼 K-1 측도 연말이 다가오자 밥 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아무래도 조금씩 떨어져만 가는 격투기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밥 샙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문제다. 아무리 밥 샙이 파이터에서 흥행 이벤터로 전락했더라도 상대 선정이 격투팬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한 무명의 레슬러에게 일본 만화 주인공인 킨니쿠만타로의 가면을 씌워 '야수와 만화 주인공의 승부'라고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다.
킨니쿠만타로의 정체도 K-1측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야말로 생년월일, 이름, 나이 등 모든 신상 명세가 불명이며 공개된 것은 킨니쿠만타로가 대학 시절 전일본학생선수권 4연패를 합쳐 총 7연패를 달성한 아마추어 엘리트 레슬러라는 사실 뿐이다.
킨니쿠만타로의 대회 출전 과정도 만화(?)스럽다. 이번 매치업으로 격투 프로듀서로 데뷔한 인기가수 DJ 오즈마(본명 오즈마노 스미타다)는 "시마다 다카시(만화 원작자) 선생에게 초인을 한명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지면에서 현실로 나온 킨니쿠만타로가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 특유의 프로레슬링적 전개를 아무리 흥행이 중요시되는 연말 이벤트라고는 해도 K-1 측이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잡지사 편집장 출신인 다니가와 대표는 K-1을 프로듀싱한 이후 초창기 이시이 대표의 색깔과는 다른 흥행성 위주의 매치업을 수도 없이 실현시켰다.
하지만 이번 매치업은 K-1 팬들에게는 다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개그맨 출신 파이터까지는 이해하더라도 만화 주인공을 현실화시켜 K-1 링에 올린다는 사실은 가라데를 근간으로 하는 K-1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K-1 측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드 붕괴 이후 떨어져만 가는 격투스포츠의 인기를 되살려야 하는 판국에 K-1의 세대교체는 지지부진하고, 드림까지 흡수하며 종합격투기 지원까지 나섰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으니 답답한 심정도 컸을 것이다.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 있지만 밥 샙과 킨니쿠만타로의 매치 이유에 대해서만은 K-1 측도 속내를 드러냈다. 바로 시청률이다. 연말 부동의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NHK의 '홍백가합전'(일종의 가요 청백전)을 이겨보겠다는 심산이다.
웬만한 이색 이벤트가 허용되는 다이너마이트라고는 해도 K-1측의 이번 매치업이 어떤 평가를 받을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