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쓰는 노인(펌)

이것은마치 작성일 09.03.08 03: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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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오 년 전이다.
내가 출판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電車)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쪽 길 가에 앉아서 판타지를 써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판타지를 한 권 계약해서 가려고 써서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인세를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판타지 한권 가지고 인세를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 가 계약하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써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쓰는 것 같더니, 몇일이 지나도록 이리 써 보고 저리 써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 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퇴고를 하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마감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인쇄 날짜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쓰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계약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쓴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인쇄할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다른 데 가 계약하우. 난 안 하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계약을 파기 할 수도 없고 인쇄 날짜는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써 보 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작품이란 제대로 써어야지, 쓰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몇일 후에는 쓰던 것을 숫제 구석에다 박아 놓고 태연스럽게 다음 작품 구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몇일 후에, 노인은 또 쓰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원고지는 마지막장까지 다 써서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몇일 후에 원고지를 들고 이리저리 읽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예전부터 다 되어 있던 작품이다.

인쇄 날짜를 놓치고 다른 날짜를 잡아서 인쇄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계약을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독자 본위(本位)가 아니고 작자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원고지를 내놨더니, 편집장은 재밌게 쓰였다고 야단이다. 요새 들어오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편집장의 설명을 들어 보면, 주인공이 너무 강하면 출판할 때 개념있는 독자한테 잘 까이고, 같은 내용이라도 엉성해 보이고, 주인공이 너무 약하면 중고딩층이 꼬이지 않고 평판 날려먹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개념작은, 재미가 없어지면 전권을 사고 1권부터 정독하면 재미가 붙어서 좀처럼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양산형 판타지는, 개념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온라인에 판타지를 쓸 때, 질 좋은 작가가 열심히 자료조사후 스스로의 필력을 잔뜩 올린 뒤에 비로소 글을 올린다. 이것을 "연재 한다."고 한다.



무협(武峽)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김용(金龍)작품을 사면 보통의 것은 얼마, 그보다 인기가 좋은 것은 얼마의 값으로 구별했고, 진품 양장본은 3배 이상 비쌌다. 진품 양장본이란, 계약을 김용쪽과 직접 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진품 계약을 했는지 해적판 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김용과 정식 계약을 할 리도 없고, 또 말만 믿고 3배나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문학은 문학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작품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문학(文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 판타지도 그런 심정에서 썻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인세를 받아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개념있는 판타지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上京)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추녀 아래로 일그러진 공간이 닫히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공간으로 다른 차원으로 갔구나. 열심히 판타지를 쓰면서 유연히 추녀 아래의 공간을 기다리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양산형 판타지를 읽고 있었다. 전에 드래곤 라자를 밤새도록 읽던 생각이 났다. 개념작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정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런 작품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사오 년 전, 판타지 쓰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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