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 | 김현회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에게 한국 축구의 미래와 다가올 2010 남아공월드컵에 대해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귀하신 몸’ 박지성은 북한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끝나자마자 기자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아쉬운 대로 박지성을 닮아 행복하다는 일반인이라도 만나보자. 박준영(25세)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반갑다. 나 좀 웃어도 되나. 진짜 닮았다.
나도 반갑다. 이제 날 보고 웃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마음껏 웃어라.
언제부터 박지성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박지성이 처음 팬들에게 알려진 2000년부터 내 별명은 박지성이였다. 아마 박지성이 시드니올림픽 대표에 선발될 때로 기억한다.
당신도 축구를 잘 하나.
내가 축구를 잘했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지 여기 강남구 조기 축구회에 있겠나. 물론 보는 건 좋아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무슨 일을 하나.
강남의 한 바에서 일하고 있다. 입구에서 ‘강남의 박지성’을 찾으면 내가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다. 기분 좋으면 골 세레머니도 보여준다.
손님 관리를 해야 하는 바에서 당신의 외모는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그렇다. 사업을 하는 한 손님은 중요한 계약 때마다 나를 동원한다. 외국 바이어들도 박지성은 알아보는 것 같더라. 벌써 중요한 계약을 세 건이나 성사해 줬다. 식당에 가면 반찬도 더 주는 건 이제 예삿일이다.
박지성을 닮아 좋은 점이 더 있다면.
광고를 두 편이나 찍었고 얼마 전에는 특집 드라마 촬영도 했다. 광고를 찍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진짜 박지성이 온 줄 알고 촬영장에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실물이 더 낫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단순히 박지성을 닮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라 기분 좋다. 또 한 번은 닮은꼴 스타를 찾는 '진실게임' 프로의 pd가 바에 놀러 왔다가 “너를 꼭 캐스팅해야겠다”며 뜨거운 공세를 펼쳤던 적도 있었다. 닮아서 생긴 이런 에피소드는 많다.
더 말해 달라.
박지성이 잠깐 귀국했을 때였다. 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처음에는 서너 명의 학생들이 나를 따라오더라. 자주 겪는 일이어서 ‘그러려니’하면서 걷고 있는데 그 학생들이 이 사실을 전교생에게 알렸다. 순식간에 ‘박지성이 학교 앞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뒤를 돌아보니 수백 명의 남학생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이대고 막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데 그때는 정말 아찔했다. 얼마 전에는 택시 기사 아저씨도 낚았다.
어떻게 낚았나.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한참 있다가 한 마디 하시더라. “난 또 누군가 했네요.” 그래서 그냥 “아, 예”했다. “박지성 선수 맞죠?”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언제 귀국하셨어요?” 하길래 “어제 했어요”라고 답했다. 그 택시 기사 분의 꿈과 희망을 짓밟을 수 없었다. “리그 중에 왜 들어오셨느냐”고 물어 “가끔 쉬러 들어와요”라고 답해줬다. 난 이러면 택시 요금이라도 조금 깎아주겠거니 했지만 요금은 다 받더라.
지금도 그 택시 기사는 박지성을 모셨다는 생각에 흐뭇해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된다.
반대로 박지성을 닮아 좋지 않은 일도 있었을 텐데.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친구들과 신천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호객 행위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대놓고 삿대질을 하면서 “야, 쟤 박지성이다”라며 깔깔 대고 웃더라. 순간 기분이 너무 나빠 싸우고 말았다. 가끔씩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내 기분이 좋지 않은 순간에도 단순히 유명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불편을 겪는 적이 있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박지성을 닮았다는 점은 기분 좋지만 사람들에게 ‘박준영’이 아니라 ‘가짜 박지성’으로 평가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지금은 바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 대학로와 홍대 등지의 연극 무대에 섰었다. 얼마 전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연기력은 당장 데뷔해도 손색 없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박지성을 닮아 주목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네가 연기로 이름을 알리는 데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더라. 연극 무대에 서면서는 연기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박지성을 닮았다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