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레코드'로 기네스에도 올랐던 희대의 사건

아카시아풀잎 작성일 09.07.26 08: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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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일어난 사건인데 단 8시간만에 92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희대의 사건!!

 

58명사망, 35명 중상!!

 

이 정도면 이 기록 깰 사건 더 이상 없네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대량참사사건 ◁
禹範坤 Woo Bum-Kon

 

 

1982년, 전두환씨가 대통령, 노태우씨가 내무부장관으로 있을 때이다.
경찰관이 개인적인 화풀이로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수류탄을 탈취, 관내 지역 주민 57명(남자 21, 여자 36)을 살해하고 35명에게 총상을 입힌
"건국 이래 최대의 총기 참사"가 경남 의령에서 발생했다.
                                      

우범곤 순경(禹範坤1955년 11월 5일생, 당시 27세)은 당시 서울과 청와대에서도 근무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경찰이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좌천되는 모양새로 한지로 발령받아
내려갔다. 경남 의령으로 내려간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근무태도에도
문제가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이 날의 사건은 너무나도 하잘것없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사건 당일 오후 우범곤 순경은 방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방안을 날아다니던 파리 한 마리가 우 순경의 가슴에
내려 앉았다.그러자 동거녀 전말순(당시 25세)이 파리를 잡는다며 우 순경의 가슴을 찰싹 때렸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화근이었다. 우범곤 순경은 전말순과 2개월째 동거를 해 오던 중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결혼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열등감을 가져오던
차였다.
이 날 전말순의 행위가 자신을 무시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오해한 그는 술을 마시며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하였다.이 사소한 말다툼이 급기야 인근 5개 마을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은 광란
의 대참사로 변질 발전되었던 것이다. 집을 나간 우범곤 순경은, 1982년 4월 26일 저녁 7시 반
경,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무기고에서 카빈총 두 자루와 실탄 180발을, 또 부근 예비군 무기고
에서 수류탄 7발을 각각 탈취하였다. 무기를 손에 넣은 그는 지서 앞 시장에서 수류탄 1발을 던졌
다. 그리고, 궁류면 토곡리 시장통과 궁류우체국 및 인근 4개 마을의 민가로 뛰어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과 우체국 교환수, 집배원 등을 살해하였다. 밖으로 나온 우범곤 순경은 수류탄 폭음
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달려나온 주민들을 향해 다시 카빈총을 난사하였다.
그 자리에서 34명이나 되는 주민이 숨을 거두었다. 그 뒤 그는 마을 뒷산으로 달아났다가 저녁
9시 30분 경 그가 살던 압곡리 마을에 나타났다.
우범곤 순경은 이 마을의 전용출씨(당시 56세) 집에 들이닥쳤다.
전용출 씨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옆방에는 우범곤의 동거녀인 전말순 씨와 그녀의 어머니
최분이씨 등 마을주민 5명이 놀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이 때 우범곤 순경은 입에
담배를 물고 양손에 각각 카빈총을 1정씩 든 채 안쪽을 향하여「여기 전양 있나?」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방 안에 있던 전말순의 어머니 최분이 씨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우범곤 순경은「다 죽여 버린다」며 카빈총을 그대로 난사, 현장에서 4명이 즉사하고
전말순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인기척 소리가 그치자 우범곤 순경은 뒤이어 마당에 안전핀을
뺀수류탄 1발을 던져 놓고는 인근 평촌리 마을로 달려갔다 자정 무렵 이 마을 서진규씨는 이웃
초상집에 문상 갔다가 오는 길에 우 순경과 마주쳤다. 우범곤 순경의 범행을 전혀 모르고 있던
서진규씨는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그를 보고「밤중에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간첩이 나타나 비상이 걸려 나왔다. 밖에 박 순경이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 때
함께 있던 주민 박종덕 씨(당시 45세, 피살)가「수고 많다. 술상을 가져 오겠다」며 술상을 차렸
다.
우범곤 순경은「쥐꼬리만한 봉급에 총각 신세라 순사짓 못해 먹겠다」며 신세 타령을 하였다.
마침 옆에 있던 한명규씨(당시 53세, 피살)가, 「실탄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비상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우범곤 순경은 곧바로 한명규씨와 박종덕씨에게 총을 난사했다. 우범곤 순경은 다시
이웃 평촌리로 건너가 서인수씨의 집에 뛰어들었다. 서인수씨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마을을 탈출한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군부대가 사살 명령을 내리고 우 순경이 뛰어든 집을 포위해
들어가자 잠시 대치하고 있던 우 순경은 서인수씨와 그의 부인과 아들에게 총을 쏘고 27일 새벽
5시 30분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총 58명(우순경포함)의 사망자와 35명의 중경상자가 나왔다.
사건 후 정부합동조사반은,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도 늦고 출동도 늦은데다 진압마저 미온적이어서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며 의령경찰서장 최재윤 경정을 구속하는 한편, 관계자 수 명을 직위해제시켰다.
아울러 당시 치안총수였던 서정화 내무장관이 인책 사임하였다. 국회 내무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문제가 아니라, 보고 체계와 무기 관리 등 당국의 치안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며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밑간데없이 무너졌다. 정부는 희생자 가족에게 $27,000의
피해보상을 했다고 해외 뉴스는 보도하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단 8시간만에 최다 인명을 희생시킨 사건은 '월드 레코드'로 기네스에도 올랐을 정도로 참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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