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사생활 조작글입니다.

김군5 작성일 09.11.18 15: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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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양력 4월 1일]<경술>



맑다.

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 백야도)의 감독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 권준(權俊)이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와서 종일 같이 놀았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병자>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 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 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임자>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밤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을사>



바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 (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정미>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무신>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 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기유>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 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임신>



맑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 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 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 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해․면․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한대 (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명과 잤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中 발췌입니다.

충무공께서는 밤일 외에도 난중일기에 120회 가량 음주기록을 적어놓으셨는데,

이 기록으로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은 술이 굉장히 강했을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칠천량에서 원균이 대패했을때는 거의 두달간 술을 내리 마시셨다고 합니다.

또 본문에 나오듯이 강진현감에게 술을 먹여 뻗게 한 적도 있지요.


악의적으로 조작되고 왜곡된 글입니다.. 1592년은 임진년 93년 계사년 94년은 갑오년 95년 을미년 96년 *년 97년 정유년 98년 무술년입니다. 정유년에 명량대첩, 무술년에 노량대첩에서 돌아가셨구요,..
교묘하게 글자 바꿔서 조작한 글입니다. 난중일기 조금만 아셨다면 왜곡인거 아십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파 울었다. 4명과 잤다. 이게 야설이지 600년전에 쓴 일기라 보십니까? 이런 글을 사실이라 믿어선 안됩니다. 삭제 부탁드립니다. 이순신도 첩이 있었고 기생과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런 악의적 왜곡은 안됩니다. 조금만 검색해보시면 다 아실수 있습니다. 삭제 부탁드립니다

그럴듯하게 실제 난중일기를 가져다 썼지만, 악의적으로 내용을 왜곡하고 덧칠한 거짓글입니다.
날짜 선후도 제멋대로이고, 글을 제대로 읽어본다면 술이 쎄다는 표현도 쓸 수는 없겠지요.
글을 만든 사람은 도저히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퍼나르는 분들도 좋게는 안보이는군요.

정확한 사실을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이런 치졸한 장난의 대상으로 삼을만큼 그리 간단한 조상님이 아니십니다.
괜히 성웅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지요.

[1592년(임진년) 2월 19일]
十九日庚戌。晴。發廵到白也串監牧官處。則昇平府伯率其弟來待。妓生亦來。雨後山花爛開。景物之勝。難可形言。暮到梨木龜尾。乘船到呂島。則瀛洲倅與呂島權管出迎。防備點閱。興陽以其明日行祭先行。
맑다. 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의 감목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권준)가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왔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저물어서야 이목구미(여천군 화양면 이목리)에 이르러 배를 타고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 이르니, 영주(고흥)현감(배흥립)과 여도권관(황옥천)이 마중했다. 방비를 검열하는데 흥양현감은 내일 제사가 있다고 먼저 갔다.

[1596년(병년) 3월 9일] 개와 같이 잤다? ^^ 기록 없음.
初九日丙子。朝晴暮雨。右虞候及康津告歸。饋酒泥醉。虞候則醉倒不歸。○夕。左水使來。別盃而送。則醉倒。宿于大廳。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오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바로 취해 쓰러져 대청에서 잤다.

[1596년(년) 9월 19일] 崔貴之 또는 貴之에 대한 기록은 난중일기에 보이지 않음.
十九日壬子。風雨大作。從事官簡及尹侃,荄問簡亦到。○是朝。光牧來。同朝飯。○午。綾城入來。封庫光牧。體相罷黜云。
바람불고 비가 많이 오다.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 조카 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날 아침 광주목사가 와서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오후에 능성현령이 들어와서, "곳간을 봉하고 광주목사를 제찰사가 파면시켰다"고 한다.

[1596년(병년) 9월 12일] 女眞? ^^
十二日乙巳。風雨大作。晩出登途。十里許川邊。李光輔與韓汝璟佩酒來待。故下馬同話。安世熙亦到。暮到茂長。
바람불고 비가 많이 오다. 저녁 나절에 길을 떠나 십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와 한여경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같이 이야기했다. 안세희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에 이르렀다.

[1596년(병년) 9월 14일]
十四日丁未。晴。又留。
맑다. 하루 더 묵었다.

[1596년(병년) 9월 15일]
十五日戊申。晴。體相到縣。入拜議策。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 하므로 들어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1596년(병년) 2월 12일]
十二日己酉。晴。箭竹五十。送于慶尙水使處。晩。水使到來同話。夕。射帿。長興,興陽亦同。
맑다.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았다.

[1596년(병년) 3월 5일]
初五日壬申。晴。五更初。發船。平明到見乃梁右水使伏兵處。適朝時。故食後相見。仍入李廷忠花下。從容論話。雨勢大作。先下船則薈,荄,葂與蔚及壽元。幷到。乘雨還陣寨中。則金洋亦到。與之話。三更宿。
맑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수사가 복병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그대로 이정충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회·해·면·울 및 수원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안으로 돌아오니 김양(金洋)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잤다.

1592년 임진년
1593년 계사년
1594년 갑오년
1595년 을미년
1596년 병년
1597년 정유년
1598년 무술년

여진이 아파 울었다. 4명과 잤다. 이게 야설이지 600년전의 일기라 생각하십니까.. 이런 글을 믿으셔선 안됩니다.. 속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순신도 인간이었고 양반이었습니다.
첩이 있었고, 기생과 있었던적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악의적인 조작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글이 너무많이 퍼져있습니다. 지금의 반박글 좀 많이 퍼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한국인을 모욕하는 글에 분노가 먼저입니다... 드라마 대사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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