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최초로 만든건 1903년 라이트형제다
많이들 이렇게 알고있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300년이나 먼저 만들었어요
뜻은 날비(飛) 수레거(車) 나는수레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발명:1903년도
정평구의 비차 발명:1592년
약 300년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비거 [飛車]
임진왜란 때 전북 김제(金堤)의 정평구(鄭平九)가 만든 비행기와 같이 나는 기계.
=비차[飛車]
(출처:네이버 사전)
비거 사진,그림
밑에 리얼스토리묘 사진은
고원태씨가 20년에 걸쳐 복원한 비거
국립과천과확관에 있는 복원한 비거의 사진
(출처:리얼스토리 묘)
이것도 복원한 비거를 타고 나는 모습
에전 사진이 아니고 연구원에서 복원한거라고 함
꽤 높이 날죠?
이건 비거복원도
진주박물관에 있대요
현재 우리나라엔 비거에 관한 기록은 있지만 설계도,그림등은 모두 없음
비거의 쓰임,기록,설
1.임진왜란
(출처:리얼스토리 묘)
영남의 진주성(晉州城)이 왜군에 포위되었을 때 성주와 평소부터 친하던 정평구가 이를 만들어 타고
성으로 들어가 성주를 태우고 약 10m 높이로 날아가 30리 밖에 이르러 내렸다는 설도 있고,
포위된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것을 타고 가서 구원병을 요청했다는 설도 있다.
(출처:네이버 사전)
2.연락망
3.오주연문장전산고 의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나온기록
비거를 제작해 성중으로 날아 들어가 그의 벗을 태워 날아 30리를 난 뒤 지상에 착률해 왜적의 칼날을 피할수있었다
4.여암유고,여암전서 의 기록
신경준 의 여암유고,여암전서 에 나온기록
어떤사람이 성의 우두머리에게 비거의 법을 가르쳐 이것으로 30리 밖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5.박상하作 진주성 전쟁기 中
그때묵득 촉석루 하늘을 날아가는 비거(飛車)가 사람들의 눈길을 온통 사로잡았다.
비거는 공중을 유영하여 하늘을 날아가는 수레로 진주성의 사람들은 흔히 '날틀' 이라고 일컬었다.
"아! 날틀이다...!"
비거를 만든 인물
정평구 [鄭平九, 1552~1593]
국적:한국
활동분야:과학
출생지:전북 김제
주요업적:비거 발명
(출처:네이버 사전)
인물화등 얼굴이 있는 것이 없음
원래직업
(출처:리얼스토리 묘)
기록에 따르면 정평구라는 인물은
축지법,변신에 뛰어났다고 나와있음
화포,화약제포를 하기도 했다고함
재주가 뛰어났음
비거에 대한 설명
1.비거의 모양
연모양,잠자리모양,따오기모양 등으로 만들어졌다는 설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나와있는 비거에 관한기록
고니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기록
가장정확한건 새의 날개를 닮았다고 함
오주연문장전산고 의 기록
잠수부가 수영하듯 굼벵이가 몸을 굽혔다 폈다하는 듯이 움직여 풍기를 발생하게한다면
양날개로 스스로 훨훨 날아올라 깜짝할 사이에 천리를 날수있으리니
2.기타
2인승으로 탑승석은 작고 한쪽날개만 30제곱미터
2-1비거는 어떻게 날수있었나?
1:가죽 주머니를 두드려 바람을 일으켜 날았다
2:화약추진제를 동력으로 사용했다
2-2 비거는 동력 비행기
풀무라는 그당시의 엔진을 사용했다
화약추진제를 단 동력비행기였다
비거는 분명 전투에 사용된 무기 였기때문에
화약을 장착해 그것으로 왜군을 물리쳤다
(출처:리얼스토리 묘,네이버 지식,기타사이트)
당시 정평구와 비거의 쓰임에 대한기록
왜군 3만명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유능한 김시민장군은 수십차례 적군의 공격에서 진주성을 지켜낸다.
그러다가 김시민 장군이 싸우다가 전사하자 일단 왜군은 물러났으나 2개월 후에 다시금 진주성을 대대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진주성을 포위한 왜군은 하도 피난민들이 많은 진주라 피난민이 조선군을 도와 쉽게 함략할수가 없자
안에있는 식량이 떨어지도록 아예 꽁꽁 몇십겹으로 성을 포위해 버린다.
100리 밖 함천에 명군이 주둔은 목숨이 아까워 도워주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에 정승 이익원이 진주성에 통보하기를
당장이라도 왜군이 쳐들어오면 함락당할 가능성이 훨씬 우세한데 15일을 버티라니..
무모한 요구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평구는 그때부터 음식에 손도대지않고 아프다는 핑꼐로 집에 문을 걸어잠그고 혼자 생각에 골돌하였다.
밖에 무슨일이 있어도 나와보지않고 방에만 있었다.
이렇게 3일이 지났을까,
3일동안 방안에 혼자 감금하여 생각에만 열중하던 그는 3일 후에야 밖으로 뛰쳐나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그걸 백성들은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는 그런데에 신경쓰지 않았고 막바로 진주성 감영으로 뛰어가
진주성 방위대장에게 자신이 방에서 정성들여 쓴 설계도를 내보인다.
완성된 모습은 지금은 존재하지않으나 아무튼 그때 완성된것이 바로 비차였다.
비차의 모습을 적기를
아무튼 9일동안 만든 비차.이 비차는 정평구가 홀로 시험한 결과 하늘을 나는데에 성공하여
높이높이 날아 백성들이 그를 볼수없을정도로 날았다가 번개가치자 빠른속도로 복문에 착률하였으나
어느 한군데 다친곳이 없었다.
그 공중전에 정평구는 비차를 타고 아래의 왜군들에게 화살을 쏘고 돌을던졌으며,
당시 전쟁 상황 날짜별로 기록
그가 출전한 첫날
왜군들은 비차의 공습에 무려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쳤다고 한다.
두번째 출전에도 왜군은 이번에는 하늘로 총을 쏘고 방패로 막고 시도도 해 보았지만 별수없이 이번에는 화약을
불에 붙여 왜군의 진지로 던져 왜군의 막사들이 거의 불타서 첫날보다 더 많은수의 왜군이 죽고 다쳐 왜장들까지
겁을 먹어 땅굴을 파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가 다시 비차를 타자 왜군들은 지레겁을 먹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이번에 정평구는 싸우려고 나온것이 아니라 합천으로 비차를 타고 날아가 명군에게서 진주민들이 하루동안 먹고
살 만한 양식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이미 비행기 편대가 그때만들어 졌다고 할수도 있다.
정평구가 자신의 운세를 점을 치다가 불길함을 느껴 아프다는 핑계로 공습하지않았다.
그리고 왜군이 동문쪽으로 쳐들어 왔으나 패했다.
다섯째날,
정평구는 자신의 흉이 다한줄알고 밖으로 나오다가 깃대가 부러져 그의 발앞에 떨어졌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불길하다고 수근댔으나 그는 무시하고 비차를 타고 공습에 나섰다.
그거
이어졌다.
엄청난 속력과 함께 진주성 안으로 떨어졌다
그곳에는 정평구가 거의 죽은채로 신음하고 있었는데 의원이 달려와 맥을 짚으니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때 정평구를 묻을 묘지가 없어 화장시켰는데
이후 진주성의 장수가 선조에게 비차를 만들자고 권했고 설계도를 찾았으나 설계도를 찾을수없어 만들지 못하였다.
불타게 된다.
여기까지 비거에 대한설명
그런데 사람들은 비거에 대해 생소해하고 비거에 대한 기록이 교과서에 실리지않는경우가 많아요
임진왜란하면 거북선,이순신 장군 에 대한 설명과 기록 가르침은 많지만 비거에 대한건 아무것도 없는경우가
많음
그이유는
비거가 임진왜란에 큰공을 세웠지만 양반중심의 사회였기때문에
기술자에 대한 무시,천대가 빈번했고 당시 하위관직이었던 정평구라는 인물이 만든 비거의 공을 묵살함
그공을 세우지않고 묵살했기때문
리얼스토리 묘 165화중
[임진왜란때에 바다에는 거북선이 있었고 하늘에는 비거가 있었다]
비거가 아직 우리나라에 보존되어있다는 설도 있음
계롱산에 있는 비밀단체종교에 정도령이 내려올때 비거를 타고 내려온다는 설
좀 말이 안되서 안쓸려다 추가함 별로 믿을껀 안되요
만약 조선시대에 비거에 대해 잘 보존하고 알리려 했고 공을 세웠다면
많은사람들이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건 우리나라라는걸 알릴수 있었을텐데
좀안타깝네요 ..
모든출처:집에 있는책,네이버 사전,지식인,리얼스토리 묘(165화),기타 역사사이트
출처 :▶[쭉빵카페]A[얼짱비리증거 - 성층권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