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 이야기 -
오빠와 헤어지고 다시 언니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오빠가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냥 네가 좋아 질것 같애..』
- 사실일까...나에게 호감이 있어 보이긴 하던데..-
그리고 조금 전 오빠와 같이 대화하며 오빠가 행동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지만, 다시 내 상황을 생각해 보니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정말.. 내가 그런 일을 했던 여자인 거도 알면서도 정말 진심으로 내가 좋다는 말일까..?-
-아님.. 정말 날 쉽게 보고 한번 던져 본 말인데 나만 이렇게 설레는 걸까?-
여러 고민에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니 집 부근에 도착할 때쯤에는 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진짜 딱 삼겹살만 먹고 헤어진 게 아쉽고 약간은 오빠가 야속했다.
- 식당과 바로 두 블록 위에 영화관이 있었는데 영화 보자는 말도 안하고..-
- 아까.. 내가 그렇게 영화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택시 안에서 창문에 입김을 불어 하얗게 만들고는『미워!』라고 적었다.
운전하는 기사분이 백미러로 힐끔 보더니 『저 여자 뭐하는 거지?』라는 표정을 지어
창피해서 바로 손바닥으로 창문의 입김 글씨를 지웠다.
택시에서 내려 언니 집에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혹시 오빠일까 싶어서 급하게 받았더니 엄마였다.
"어~ 엄마.."
"은주야~~ 너 언제 오는데?"
"아..내일 아침에 갈까 싶어"
"이제 오면 아예 오는 거지??"
"응.."
엄마에게 내일 간다고 말하고 나니 아까 봤던 승훈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내가 대구 가도 오빠를 볼 수 있으련가..?-
승훈이 오빠가 여기 지방에 정착을 한 건지 아니면 직장 때문에 잠시만 여기에 있는 건지 몰랐다.
- 아까 물어 볼 걸...-
미처 묻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엄마랑 통화를 끝냈다.
집에 조용히 들어와 둘러보니 언니는 없었다.
내일 대구로 가지만 웬만한 거는 다 버리고 갈 것이기에 짐은 몇 개가 없었다.
짐을 정리하면서도 조금 전에 만난 그 오빠가 계속 떠올랐다.
-집에 잘 들어갔냐는 전화도 없네..-
-내가 먼저 오빠에게 문자라도 해볼까..?-
그래도 여자인 내가 먼저 연락하는 건 자존심상 허락 치 않아 계속 속만 태우고 있었다.
-이 오빠 진짜 순진한 건지 선수인지 연락 한 통 없네..-
집에 도착해서 옷을 벗어 투정 부리 듯 땅바닥에 던지면서 투덜거렸다.
샤워를 하고 텔레비전을 틀어 드라마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남자 배우의 목소리가 꼭 그 오빠의 목소리 같고,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웃는 모습이
꼭 오빠가 날 보며 웃는 미소 같았다.
나도 몰래 오빠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혼자 깜짝 놀랐다.
-악~! 내가 점점 미쳐 가나봐..-
-진짜.. 내가 진짜 그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졌나..?-
오늘 고기도 배불리 먹고 설렘에 긴장까지 해서 그런지 텔레비전 보던 중에 살짝 잠이 들었다.
얕은 잠결에 내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벨소리에 순식간에 눈이 떠져 전화를 받았는데 오빠였다.
"여보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큰소리로 전화를 받고 나서 생각했다.
- 아~ 몇 번 벨소리가 울렸을 때 받을 걸~-
지금 내가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니 나 스스로가 어색해 웃음이 나왔다.
"은주야~"
만나서 얼굴을 보며 목소리 듣는 것도 좋았지만, 전화 통화만으로
자상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굉장히 듣기 좋았다.
오빠의 목소리를 들이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고, 최대한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오빠~"
"잘 들어갔어??"
"당연하지~ 걱정 됐으면 빨리 좀 전화를 해주지~"
내가 귀엽게 낸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오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웃음을 멈춘 오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 전화 기다린 거야?"
오빠의 말에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웃으며 말을 돌려 말했다.
"뭐야~ 갑자기~ 능글맞게 말해~"
그러고는 한참 뜸을 들이던 오빠가 어렵게 말을 꺼내듯이 말했다.
"은주야~"
"왜? 오빠?"
-나에게 궁금한 것이 있나??-
오빠가 뭐라고 말 할지 자세히 들으려 조용히 있었다.
"그러면 대구가면..대구가면.."
오빠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응..대구 가면 뭐? 오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리면서 오빠가 말했다
"대구 가면 대구에서...일하..는 거야?"
이 말을 듣고 손가락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떨어트린 휴대폰처럼 내 눈에서도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려 했다.
-내가 이 오빠에게 이정도로 밖에 생각 안 되는 여자였구나..-
눈물을 삼키며 오빠가 너무 야속하고 가.슴이 아파서 울부짖듯 말했다.
"그래!! 나 대구 가서 일 할 거야!! 그래서 뭐 나 싫다고?? 안 볼 거라고!??"
나의 화난 목소리에 오빠는 당황을 했는지 휴대폰 너머에서 더듬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어...그...게....아니고...."
눈물이 흐르니 주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나 피곤해서 자야겠어...전화 끊자.."
그리고 오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정말 크게 울었다.
2년 전 처음으로 여기 올 때처럼 그렇게 펑펑 울었다.
- 남자 이야기 -
볼수록 귀여운 그녀랑 영화를 정말 보고 싶었다.
고기를 먹을 때 은근 슬쩍 영화 이야기 하는 것도 같았는데 시간도 너무 늦었고
내일 그녀가 대구 간다기에 짐도 챙겨야 할 것 같은 눈치가 보여서 영화 보러 가자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으면 보러 갔으려나..?-
-또 자기 같은 여자는 밤늦게 돌아 다녀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슬퍼했을 건 아닐까..?-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그녀를 처음 볼 때 같이 있던 동생 창식이었다.
"형~ 황금 같은 토요일 날 뭐해요~"
"뭐하긴 밥 먹고 술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지~"
"벌써 술 드셨구나! 한잔 하자고 전화 했는데~ 한잔 하러 나올래요?"
"아니...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집에 가서 쉴래.."
"뭐가 그리 복잡해요~ 여자 문자예요~?"
창식이의 말에 깜짝 놀라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오늘 데이트 했는데"
"복잡한 거면 돈 문제 여자 문제 밖에 더 있어요? 키키키"
창식이의 웃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또 그렇게 웃네. 그렇게 웃지 마. 안 어울려~ "
창식이는 내 말을 듣고 다시 말을 돌리려 말했다.
"누구랑 데이트 했는데요?"
"너 아는 사람이야~"
창식이는 이제 알겠다는 투로 말했다.
"아~!! 혹시 대구에서 지수가 올라온 거예요?"
내가 여기 포항으로 온 이유는 대구에 알고 지내는 여자 때문이었다.
예전 군대 가기 전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사귀던
여자의 여동생이 지수였고 나를 무척 따랐었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랑 헤어지고 나서 난 군대를 갔고,
군대 있는 동안 기다려 준 여자가 또 지수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여자는 시집을 갔고, 그렇게 방황을 하면서 잠시나마 지수를 만났는데
너무 성격이 맞지 않았고, 시집 간 그녀랑 한 번씩 부딪기는 것도 껄끄러워 지수랑 헤어지고
도망치 듯 포항으로 온 거였다.
그러나 지수는 내가 여기 포항에 있는 동안에도 한 번씩 우리 집으로 찾아와 우리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고 자주 집으로 안부 전화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지수라고 묻는 창식이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솔직히 말했다.
"아니 지수가 아니고.. 너와 같이 갔었던..그 집 기억나?"
창식이가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면서 갑자기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말했다.
"형!...설마?"
"응?? 뭐??"
"그 창녀랑 만난 거예요?"
창식이의 창녀란 말이 굉장히 듣기가 거북했다.
"응 그냥 간단하게 만나서 한 잔 했어.."
"그런 년들은 남자에게 들러붙어서 돈 같은 거 뜯으려고 접근 하는 거예요~!!"
"그런 여자가 아닌 거 같은데.."
창식이가 나를 다그치듯 말했다.
"형~!! 잔 말 말고 만나지마요!!"
"안 그래도 그 여자애 내일 대구에 간다더라.."
창식이는 잠시 생각 하더니 다시 나에게 말했다.
"대구로 팔려 가는가 보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여기저기 가불금 때문에 팔려 간다라고 하더라구요.."
창식이의 팔려간다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은주지만 가.슴이 덜컹 거리며 쓰라렸다.
"그런 거..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런 거 아니면 멀쩡한 여기 두고 왜 대구로 가겠어요??"
창식이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창식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까보다 더 머리가 복잡해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창식이에게 전화가 오기 전에는 집으로 가면서 은주에게 전화해서
잘 들어갔는지 자기 전에 문자를 하라던 지 이런 말들을 하려고 했는데,
동생과 통화 후에는 가.슴이 아파서 안부전화 이런 거는 할 생각도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 씻지도 않고 오늘 만난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순진한 그 모습이 자꾸 눈앞에 자꾸 밟혀 계속 가.슴만 아파왔다.
그러던 중에 일단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아 전화기를 들었다가 망설이며
놨다가 다시 들었다가 반복을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일단 대구에 왜 가는지 알아 봐야겠네..-
-만약 팔려 가는 거면..내가 그녀에게 돈을 좀 빌려주면 괜찮으려나..?-
-얼마 정도가 그녀에게 필요하지..전화상으로 물으면 오해는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결론을 내었다.
-그래.. 내일 간만에 대구 집에 가자..그녀랑 같이 대구 가는 길에 조심스레 물어보자..-
혼자만의 계획을 세우고 나서 바로 은주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아주 밝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파왔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파오는 걸까..-
최대한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은주야~"
그녀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오빠~"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아서 일단 말을 돌렸다.
"잘 들어갔어~?"
"당연하지~ 걱정 됐으면 빨리 좀 전화 해주지~"
귀여운 그녀의 목소리에 약간 기분이 좋아져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내 전화 기다린 거야?"
"뭐야~! 갑자기 능글맞게 말해~"
그리고 심호흡 한 번하고 말 하려는데 심장이 자꾸 두근두근 거렸고,
심장이 두근거리니 말을 하려 해도 자꾸 입에서 웅얼거렸다.
"그러면 대구가면..대구가면.."
그녀가 무슨 말인가 싶어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응..대구 가면 뭐? 오빠?"
가만히 있는 그녀에게 긴장을 하며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말했다.
"대구가면 대구에서...일하..는 거야?"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실수를 했던 것 같아 계속 은주를 불렀다.
"은주야..은주야~!! 은주야!!은주야!!"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내며 울부짖듯 말했다.
"그래!! 나 대구 가서 일 할 거야!! 그래서 뭐 나 싫다고?? 안 볼 거라고!??"
-아..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이 맞구나...-
난 그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 싶었다.
수습하려고 내뱉은 말도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어...그...게....아니고..."
그녀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가 울고 있었다.
지금 은주가 나 때문에 울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가 울면서 내게 말했다.
"오빠..나 피곤해서 자야겠어...전화 끊자.."
그리고 그녀와의 통화가 끝났다.
불편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했지만 신호는 계속 가기만 할 뿐, 그녀는 전화를 받질 않았다.
그녀가 지금 어디 있는 줄만 알면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해주고 싶은데
그녀의 집조차 어디인 줄 몰랐다.
통화가 끝난 후부터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멍하니 한 곳을 주시하며 앉아 있으니 처음 봤을 때 은주의 모습도 기억이 났고,
부끄럽게 내밀던 도시락과 그녀의 빨갛게 변해버린 얼굴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조금 전 팔짱을 끼며 나를 잡아끌던 은주의 모습은 더욱 생생히 기억이 났다.
이런 기억들 때문에 가.슴이 아파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여전히 전화를 안 받겠지...-
그러던 중에 예상과 달리 휴대폰을 받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은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급하게 은주를 불렀다.
"은주야~!"
"....."
"은주..야..미안해.."
"....."
"은주야 정말 미안해..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나보다.."
울음 섞은 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리 미안해 오빠? 나 같은 년은 원래 여기에도 있다가 저기에도 가고 그러는 거야!! 알겠어!!"
"오빠가 무조건 미안하고.."
".........."
"내일 같이 대구에 가자..."
".........."
여전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말만 듣고 있는 듯 했고,
그녀를 달래기 위해 조용히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다급하게 말이 나왔다.
"대구 가면서 내가 다 설명할게.."
"그래 나 같은 년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간다는 거야!!?"
여전히 은주는 울분을 나에게 토해냈고,
그녀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나 역시 어느 순간 목이 멘 채 말했다.
"아니..진짜 진짜 나..너 좋아하는 거 같아..지금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픈 걸 보면.."
"............"
아무 말 없던 그녀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조용히 말했다.
"그래 오빠...내일 같이 대구 가자.."
내일 아침에 오늘 만난 장소에서 그녀와 9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