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함께 7년을

뜨거운방구 작성일 10.04.05 23: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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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타인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관계여도,
당사자에게는 더 없이 애틋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 있지요.

하지만, 간혹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상대방과 타인들을 괴롭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아가 극단적으로 보편적 감성에 반하는 케이스들을 보노라면,
이런 행동까지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소 역겹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래 소개할 칼 본 코셀 박사의 '사랑'이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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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본 코셀(1877~1952)


1930년대 초, 독일 이민자인 칼 본 코셀(carl von cosel 혹은 carl tanzler)은 미 플로리다
남부 키웨스트의 해군 병원에서 방사선 기술자 겸 세균연구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코셀은 어느 날 결핵으로 병원을 찾은 22세의 아름다운 여성 엘레나 오요스
(elena hoyos)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는 결핵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고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사망하던 때였습니다.

쿠바계로 검은 흑발을 늘어뜨린 젊은 엘레나에게 50대의 코셀은 첫눈에 반했습니다.
코셀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오던 아름다운
여성의 환영이 있었는데 엘레나와 꼭 닮았다고 하는군요.

코셀은 엘레나를 치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병원에 온 지 석달 만에 결국 그녀는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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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오요스 생전의 모습. 당시 그 지역에서 손꼽히는 미녀였다고 한다.

코셀은 엘레나의 유족에게 허락을 구해 그녀의 데스마스크(죽은 직후 망인의 얼굴을
직접 본떠서 만든 안면상)를 만들었고,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돌로 만든 마우솔레움(mausoleum, 영묘)에 그녀를 안치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이 돌무덤을 찾아와 엘레나의 관 옆을 지키다 돌아가는 코셀을 주변
사람들은 눈물겨운 순애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계획이 있었지요.

엘레나가 사망한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코셀은 그녀의 시신을 빼돌려
마차에 싣고 외딴 집으로 향합니다. 이후 그의 증언에 따르면 엘레나의
유령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꺼내달라고 부탁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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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엘레나 오요스

집으로 '신부'를 데려온 코셀은 엘레나의 시신을 단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 했더라도 2년이 지난 상황이었으니, 엘레나의 시신은 상당부분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지요.

코셀은 시신의 뼈를 피아노줄로 고정하고 부패한 피부를 제거한 다음 실크와 왁스 등으로
만든 가짜 피부를 붙였습니다. 인형에 쓰는 유리알 눈을 끼워 넣고, 화장을 시키고,
머리에는 엘레나의 가족에게서 얻은 그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씌웠지요.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뿌리고 방취제를 온 집 안에 채웠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프랑켄슈타인' 부인에게 웨딩 드레스를 입혀 코셀은 자신의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이 '유령 신부'와 무려 7년여간 '결혼 생활'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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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셀이 엘레나의 시신으로 만든 '시체 인형'

당연히 코셀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 이를 전해 들은 엘레나의 언니가 코셀의 집으로 찾아오고 동생의
시신이 괴상한 형상의 왁스 인형으로 둔갑한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경찰이 들이닥쳤고, 코셀의 '프랑켄슈타인'은 실제 시체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받았습니다. 부검 결과, 뼈와 부패한 조직 등이 발견되었고 코셀은 구금되었지요.
정신분석의들에게 감정을 받게 했는데, 놀랍게도 코셀은 '정상'으로 판정받았습니다.

엘레나의 유가족은 분노했으나, 시신 도난 및 도굴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시기였기에
코셀은 풀려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7년이나 버틴 보람이 있었던 게지요.

현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우나, 경찰 당국은 엘레나의 시신을 묘지로 돌려보내기 전,
대중에게 이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 구경거리로 제공한
것이지요. 지역 주민 6,000여명이 코셀의 '프랑켄슈타인'을 구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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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의 시신은 다시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이번에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무덤의
위치를 모르게 조치했습니다. 코셀이 다시 시신에 접근할 위험을 우려한 것이지요.

코셀은 이후 키웨스트를 떠나 파스코 카운티(pasco county)에서 혼자 여생을 보냈습니다.
1952년 그가 사망했을 때, 옆에는 사람 크기의 인형이 있었고, 인형의 얼굴에는 엘레나의
데스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는군요.

그리고 30년이 지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당시 엘레나의 시신을 살폈던 부검의들의
사진을 통해 인형의 * 부위에 종이 튜브가 장치되어 있었으며, 코셀이 시간(屍姦)을
저질러왔다는 증거로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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