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일기

행동반경1m 작성일 10.04.10 21: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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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아흔셋, 세상 떠날날이 머지 않았지… "

 

 



올해 아흔셋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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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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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 등성이로 너머 가는



햇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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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바다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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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데…,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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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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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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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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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 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


 
오만원은‘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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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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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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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닙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인 것입니다.

 

 


 

 

 

 

 

늙음은 죄가 아니지만 죄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요...

 

 

노인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잘 대하는 사람은 어딜 가서든 인간관계 잘 맺는것 같아요 

 

 

암튼 노인공경! 노인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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