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아흔셋, 세상 떠날날이 머지 않았지… "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한다
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 등성이로 너머 가는
햇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인생은 바다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아직 어두운데…,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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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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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 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메룻찌’로, 고등어는‘고동아’로
오만원은‘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홍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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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다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닙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인 것입니다.
늙음은 죄가 아니지만 죄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요...
노인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잘 대하는 사람은 어딜 가서든 인간관계 잘 맺는것 같아요
암튼 노인공경! 노인공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