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여행가방서 발견…60대 남성 자수 “광고통해 성매매…톱으로 머리 잘라”
언론들 “보도 가치 없다” 외면…“미인이었다면 달라졌을 것” 황당 발언도
<한겨레>가 일본에 대한 뉴스전문 포털사이트 <제이피뉴스>(JPnews.kr)와 제휴해 일본 소식을 전달합니다. 전여옥 의원
과 ‘일본은 없다’ 재판을 벌여 지난 1월13일 2심에서 승소한 재일 언론인 유재순씨가 <제이피뉴스>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첫
소식으로 지난 3월29일 일본에서 발생한 한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한 <제이피뉴스> 기사를 정리해 전해드립니다. 원문을 보시
고자 하시는 분은 기사 아랫부분에 있는 바로가기를 누르시면 <제이피뉴스>의 해당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성매매 여성’의 죽음은 다른 이들의 죽음보다 가치 없는 것일까. 지난 3월29일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성매매 여성이 목이 잘
린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일본 어느 쪽 언론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
부에서는 이 사건이 ‘성매매 여성과 인권’이라는 해묵은 주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29일 가나자와시 니보초 도로변에 방치돼 있던 여행가방 안에서 목이 잘린 30대 여성이 발견됐다. 머리가 없는 시신
은 적어도 몇주일 동안 가방 속에 담긴 채 버려져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4월1일 이누마 세이치라는 60살의 남성이 경
찰에 자수했고, 피해 여성이 “광고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인 성매매 여성”이라고 밝혔다. 이누마는 “금전적인 문제로 여성과 다
툰 뒤 살해하고 톱으로 머리를 잘랐다고 자백했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본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다. 지난 2007년 3월 지바현 이치가와시에서 살
해당한 채 발견된 영국인 영어교사 린제이 앤호커 사건이나, 2009년 10월에 발생한 시네마현 여대생 절단사건, 올해 3월달 후
쿠오카에서 발생한 허리절단 여사원 시체가 발견됐을 때, 일본 언론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일본 언론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언론도 이 사건에 대해 거의 보도를 하
지 않고 있다. 그 배경과 관련해 피해자가 ‘성매매 여성’이라는 점에서 오는 편견이 크게 작용하고 않았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
는 것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이 사건을 다루지 않는 이유를 “그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 <제이피뉴스>와 통화한 일
본 거대 민방 와이드 쇼의 데스크 E 씨는 이번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은 이유에 대해 △ 피해자가 한국인(외국인)인 점 △ 유
족들의 항의가 없었던 점 △ 용의자가 사건보도 직후 즉시 자수한 점 등을 꼽았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의 얼굴 사진이 입수
되지 않은 점”을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은 또다른 이유로 꼽음으로써, 사건을 다루는 데 상업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음을 내
비쳤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얼굴사진이 없으면 장기간 끌고가기가 힘들다”며 “얼굴사진이 공개되고 또 피해자가 미인이라
면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들은 왜 자국민이 일본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제이피뉴스>는 피살자가 출
장형 성매매 업종, 이른바 ‘데리 헤루’에서 일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이피뉴스>는 그 근거로
한국 인터넷에 피살된 여성을 비난하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일본에까지 몸 팔러 간 ×들, 죽어도 싸
다”라는 유의 댓글이 대표적이다.
데리 헤루는 ‘딜리버리 헬스(delivery health)‘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헬스‘는 성 서비스, 성 매매를 의미하는 업계 은어로,
데리 헤루는 직역하면 ’출장 성매매‘가 된다. 특히 이 업종은 외부에서 성 매수자와 단둘이 만나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
서 사건 발생 위험성이 매우 높은 업종이다. 2007년 김윤석 주연의 영화 <추격자>에서 성 매수자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결
국 살해당한 미진과 같은 업종에서 일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 여성들을 유혹하는 상업적 구조를 방치한 채 그 업종에 종사한 여성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
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8년 전 일본에 와 여러 유흥업소를 거친 뒤 현재 도쿄 가부키초 인근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미정(42, 가명)씨
는 <제이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애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데리 헤루는 손님하고 일대 일로 만나야 하니까 완전
무방비”라며 “재수 없으면 이번처럼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2006년 14년간의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돌아왔으나, 3년 만에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기술도 없는 3
8살 미혼 여자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숨진 30대 한국 여성을 비롯해 일본에서 성매매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
에 놓여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일상은 일본 체류 자격 문제에 약물복용, 그리고 야쿠자까지 결부돼 매우 복잡
한 모습을 띤다. 무슨 일이 생겨도 경찰에 함부로 신고조차 못한다. 신고했다간 바로 강제출국 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씨와 같이 ‘데리 헤루’에 종사하는 여성은 인권의 사각지대보다 더 심한 ‘무방비상태’에 빠질 우려가 크다. <제이피뉴
스>에 칼럼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시부이 데쓰야는 “가부키초만 하더라도 데리 헤루 자체는 줄었지만 한국여성 전문 데리
헤루는 늘어났다”며 “싸고 서비스도 좋고, 또 외국여자라는 것도 있으니까 늘어나는 건데, 문제는 이 모든 행위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이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이유로 일본에 갔든 숨진 30대 한국인 여성의 일본 생활은 이런 인권의 ‘무방비상태’에서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
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불안 속에서 일본 생활을 지속해오다 끝내는 처참하게 최후를 마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피해여성
이 ‘데리 헤루’에서 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의 죽음을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를 두 번 죽이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정리=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