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는 아니지만

시바겟관리자 작성일 10.09.05 20: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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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0일 인천공항. “미안하다. 형아.” 김우홍(15)은 슬며시 고개를 숙인 채 형의 발치만 바라봤다. "됐다 안카나. 내 몫까지 열심히 뛰아라." 형 정호(17)는 마주선 동생 손을 꽉 잡았다.

김우홍은 '꿈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 선수다. 콧대높은 레알 마드리드의 문턱을 넘은 첫번째 아시아계 선수이기도 하다. 2009~2010시즌 까다떼 b(스페인 유소년 리그 명칭) 30경기 중 27경기 출장(부상으로 3회 결장)했다.

그는 힘겨운 일이 생각 날 때마다 자신을 위해 축구를 포기한 형을 생각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에 뽑히겠다는 것은 자신과 형을 위한 꿈이다.

▲동생을 위해 형의 꿈을 접다

형은 가장 친한 벗이자, 보호자였다. 일터에 나간 부모님의 빈자리에는 늘 형이 있었다. "우홍이가 두살일 때 야식사업을 했어요. 밤에는 애들을 방에 넣고 문을 잠갔어요. 정호가 우홍이를 보살폈어요." 어머니는 김수미(42)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수 억원의 빚을 짊어진 부모는 늘 고단했다.

해가 뜨면 형제는 경북 영주 풍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놀았다. 동무들이 가는 학원은 가 본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축구부였다. 빠르고 투지가 강한 김우홍은 늘 주전을 도맡았다. 승승장구했던 동생과 달리 형은 벤치 신세였다.

우홍이 더 큰 꿈을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결심할 무렵, 형은 꿈을 접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집에서 축구 선수 두 명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경기 뛸 때 형이 저를 바라보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스페인에서 뛸 때 항상 형을 생각해요. 형 몫까지 꼭 잘해야 한다고.” 아직 사춘기지만 김우홍은 또래보다 어른스럽다.

▲선진 축구의 꿈을 꾸다

풍기초 축구부 김종환(43)감독은 김우홍을 두고 "어려서부터 근성과 기술이 남달랐다"고 추억했다. 김 감독은 김우홍이 5학년 때 나갔던 7대7 전국시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홍이를 두고 칭찬이 자자했어요. 도움왕 상도 받았어요." 김우홍은 풍기초등학교 개교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선사했다.

김우홍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아버지 김선길(44)씨였다. 아버지는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축구공을 쥐어줬다. "우홍이가 자기보다 두 배나 큰 형들과 경기를 하다 선제골을 내줬어요. 엉엉 울면서 이를 악물고 뛰더라고요. 결국엔 이겼어요."

그날 아버지는 아들을 축구 선수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2008년에는 스페인 유학을 보냈다. 한 달에 300만원이라는 비용이 문제였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닭을 팔고 있었다. 삶의 터전과 맞바꾼 3000만원을 아들의 축구 인생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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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나 합격했어

그는 스페인 사설 구단인 인테르나시오나 델라 아미스타드에서 1년간 뛰면서 팔렌시아시와 가스띠야 이 레온주 대표로도 뽑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알 마드리드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측에서 테스트를 보러 오지 않겠느냐며 먼저 연락이 왔어요.” 수 백 만원의 학비가 필요한 사설구단과 달리 레알 마드리드는 숙식은 물론 학비와 용돈까지 제공한다. 가정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우홍은 반드시 기회를 잡아야 했다.

“합격 통보를 받고 제일 먼저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어요. 저도 어머니도 말없이 엉엉 울기만했죠.” 스페인 축구 클럽에서 뛰고 있는 17세 선수는 대략 6만~8만 명.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은 그들이 꿈꾸는 별중의 별이다.

▲레알에서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에요

김우홍의 별명은 탱크다. 레알 마드피드 유소년팀 감독과 동료들이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돌진하는 김우홍을 보며 붙여줬다. “다른 스페인 선수들과 달리 저는 몸싸움을 강하게 해요. 모두들 그 모습을 보고 '땅끄'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일까. 김우홍은 부상이 잦다.

"네덜란드의 아르연 로번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왼발키커에 부상을 자주 당하는 것 까지 비슷해요" 올해 4월 우홍은 부상으로 3경기에 결장했다. 의사는 만성적인 왼쪽 발목 피로 골절이라고 진단했다. 좀 살살 뛸 수는 없을까. 김우홍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라도 열심히 뛰지 않으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요. 그래서 남들보다 몸싸움을 더 거칠게 해요. 그곳은 매일 매일이 전쟁이에요." 우홍은 2009-2010시즌 까다떼 b (레알 마드리드 15세 팀)에서 전 경기 주전으로 출전했다.

▲2014월드컵, 그리고 가족

"축구선수로 성공해서 가족들과 모여살래요." 우홍은 친한 친구인 엔쏘 지단을 이야기 했다. 엔쏘의 아버지는 프랑스 축구 전설 지네딘 지단이다. "엔쏘는 아빠를 똑 닮았어요. 흐느적 흐느적 경기장을 누비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어요. 실력도 좋고요." 하지만 김우홍이 엔쏘에게 부러웠던건 유명인 아버지도 뛰어난 축구 실력도 아니었다. 지단은 훈련이 끝날 무렵 훈련장을 찾아 아들과 함께 귀가할 뿐 아니라 경기가 있는 날에는 빠지지 않고 축구장을 찾는다.

"엔쏘가 가족이 함께 사는게 정말 부러워요. 레알에서 열심히 운동해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싶어요. 그러면 부모님과 형이랑 사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요." 가족을 떠올려서일까. 검게 탄 우홍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tip=유소년 팀 출신 스타선수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구티 에르난데스(34)·라울 곤살레스(33)·이케르 카시야스(29)는 레알 유소년팀 출신으로 프로구단에 입단한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다.

구티는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해 15년간 오직 마드리드만을 위해 뛰었다. 최근 터키의 명문 클럽 베식타슈로 옮기며 기자회견을 연 구티는 “내게 레알 마드리드는 매우 영광스러운 무대였다”라며 울먹일 정도로 완벽한 '레알 맨'이었다.

얼마 전 분데스리가 샬케 04로 이적한 라울도 축구인생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에서 시작했다. 레알의 새 주장 카시야스도 마찬가지. 만 11세였던 1990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에 입단해 1999년에 1군 선수로 데뷔한 이후 12년째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 입단은 하늘의 별 따기다. 2박 3일간 테스트 후 연령별로 24명의 정예만 선발한다. 입단이 확정되면 성인 프로 선수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김우홍은 “스페인 축구 교육은 체력을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선수 개인의 자율성· 창조성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서지영 인턴기자 [saltdoll@joongang.co.kr ]

 

 

 

레알 멋지다 진심 부럽고 와 소름돋는다 진짜 멋진놈임 국대에서 뛰는 모습 하루빨리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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