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 너무 철없던 시절의 나 ... 일찍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파 시작한 산업체 ... 좁아터진 12평에서 5식구 ... 술좋아 하고 노가다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 하루 하루를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초조해 하는 어머니 ... 정말 숨통이 막혀 왔다 ... 그래서 시작한 17의 사회생활 ,,,
그때부터 나의 인생은 어긋났나 보다 거기서 알게된 3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 3년을 함께했다... 철없던 시절의 생활이라 뭐가 뭔지도 모르게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또 한번의 나의 인생의 기로 ,,, 매달리던 그사람을 뿌리치고 난 집으로 돌아 왔지만 역시 집은 나를 반기지 않고 눈치만 봐야 햇다 ... 집으로 오니 초등 중등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둘 연락이 와서 일자리를 알아보던중 알게된 친구랑 나는 술집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다른일을 찾아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 공장일하며 번 100만원도 안되는돈이 하염없이 작게만 느껴졌고 옷도 살수있고 ... 화장품도 맘껏 살수있고... 나는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러던중 알게된 나의 병 혈소판감소자반증 .... 백혈구와 적혈구 중앙에 있는 노란띠 .. 혈소판 그것이 수치가 작아서 나의 혈관 곳곳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멍들고 피가났다
스테로이로 치료를 해보았지만 6개월 넘도록 호전이 없자 비장절제수술을 권유 받아 수술후 나의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 오는데 6개월이 지났다 그 6개월 동안 난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20키로가 넘게 쪘다 ... 그리고 1년동안 일을 하지 않아 쌓인 나의 빚도 천만원이 넘어갔다... 200남아있던 나의 빚이 ....
수술비는 친오빠한테 벌렸지만 차마 술집에있으면서 생긴 빚이란걸 말하지 못한나는 죽을만큼 살을 뺐다 ... 그리고 죽을만큼 일을해 다 갚았다 ....
하지만 다 갚고 나서도 나는 그 세계에서 나오지 못했다 ... 그때가 20대 후반 ..... 나도 어쩔수 없는 쓰레기 였나 보다 ...
그세계의 눈먼돈을 따라 난 어둠속에서 버둥거리며 그렇게 산 나는 그야 말로 쓰레기 ....
그렇다할 돈도 모으지도 못하고 그렇다할 인생도 살지 못한채 살던 그즈음
난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 누가 들으면 니가 그렇지 니 인생이 그렇지 손가락질 받을 그런만남이었다 손님과 아가씨로의 만남 ...
다들 그랬다 니가 좋아서가 아니라 니 몸만 본거라고 ... 그러다가 단물 빨리면 나 같은건 버려진다고 ...
하지만 난 첫눈에 반한다는 말?? 술집일을 하면 난 단 한번도 손님을 손님 이상 으로 이하로도 생각 하지 않았던 나 .. 그저 돈으로만 봐왔던 나인데
지금 신랑한테는 헤어나지 못할정도로 빠져있었다 ... 내가 좋아 만나자 하고 내가 좋아 같이 살자 했다 ....
그렇게 시작된 동거 ,,, 그로부터 얼마후 신랑은 일을 그만두길 원했다 ... 나도 떳떳해 지고픈 마음에 그만두고 시작한 다른일자리 ,,, 우리둘은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어느누구에게도 우리의 만남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채 ...
그러다 알게된 나의
임신 사실을 신랑은 너무나도 좋아했다 ... 우리둘다 가진거 없지만 인연이었던 걸까 ...
첫 공주를 낳을때쯤 우린 부모님께 알리고 혼인신고를 했다 ... 우리집에서도 니 인생 니가 살아라 ... 그리곤 찢어지게 가난한지라 10원짜리 하나 못받고 ... 우리신랑도 일찍이 어머님이 돌아 가셔서 형편이 그리 녹녹치 않아 우리는 100% 우리 힘으로 딸아이와 우리 부부 세사람이 곰팡이 핀 월세방부터 시작했다
정말 우리 신랑 악착같이 일을했다 .... 오토바이를 타고 뿌연 매연 연기를 마시며 배달일을 하며 저녁엔 들어와서 공주 재우고 우리둘이 소주 한병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딸아이 재롱에 읏었다...
하지만 여느 부부할것 없이 우리도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 거의 대부분이 돈이었다 경조사가 있는 날이면 더 많이 싸웠다 ... 지금도 항상 고맙게 생각 하는게 ...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나의 과거를 들추지 않는 신랑 ... 항상 화가 나도 욕이나 손을 올리지 않는 신랑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하게 생각 한다 ...
그렇게 여느 부부사는것 처럼 우리는 살고 있고 ... 여느부부처럼 싸운다 .... 그리고 또 찾아온 둘째 ... 아직도 나는 웨딩드래스를 입지 못했다 ... 그거에 항상 신랑은 미안해 하지만 10원한푼 없이 시작한 우리는 비록 대출은 있지만 남들 보기 번듯한 가게를 하게되었다 ...
지금도 나는 둘째를 업고 일을 한다 나도 이사람을 만나 알게된게 나에게도 이렇게 강한 모성애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 그다지 아이를 이뻐하지 않던 나인데 내 아이를 임신하고 내아이를 낳고 내아이를 키우니 내입에 들어 가는것 보다 내 아이 입에 들어 가는게 더 행복 하고 내옷한번 안 사입어서 10년이 넘는 옷을 입고 화장품 한번 제대로 사본적 없지만 내 아이 장난감 사고 내아이 옷사는게 나의 행복이 될줄 몰랐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육아와 살림 가게일까지 저녁 11시가 되어 지친몸을 뉘어도 이런게 행복이구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의 30대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의 과거를 들추지 않고 두아이라면 껌뻑 죽는 좀 멋대가리 없는 신랑과 이제는 쪼잘 쪼잘 말도 잘하는 큰딸과 아직은 내가 하루종일 업고 재워야 하는 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