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회사 다닐 수 있습니까?

면죄자 작성일 10.10.06 1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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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라면 이런 회사에 다니겠는가?

 

회사 사장 자리가 1층 현관 앞에 있어서 회사를 드나드려면 꼭 사장 앞을 지나가야 한다.
외부와 전화나 팩스로 연락하는 것은 해외 업무를 빼곤 모두 금지.
전화는 반드시 공용전화를 써야 하는데, 바로 사장 앞에 놔둔다.
 
직원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해도 너무하다. 독재자도 이런 독재자 사장이 없다.
그런데, 입장을 한번 바꿔보자. 당신이 이런 회사 사장이라면?
사장 역시 죽을 맛일 지도 모른다. 모든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장이 감시하는 동시에, 사장의 모든 것도 직원들에게 감시당하는 셈이다. 하루 종일 자기 일과를 열정적으로 해낼 자신이 없다면 도저히 못할, 진짜 독종만 할 수있는 `사장질'이다.
 
참고로 그 사장,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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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좀 성질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제 그렇다. 만나본 사람들은 성격 안좋다고 입을 모은다.

이 양반,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고 일본 사람이다. 만나본 한국 사람들은 늘 예의 바른데 목숨 거는 일본 사람이 이렇게 제멋대로이고 불손할리 없다며 틀림없이 한국계인데 출신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이런 사장, 이런 회사인데도 젊은 지원자들이 찾아온다. 이 회사는 바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사무소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스타 건축가 밑에서 건축을 배워보겠다는 젊은 건축도들은 이 무지막지한 회사에 입사한다.
안도 다다오 자신도 자신의 이런 스타일을 잘 알기에 아무나 뽑지 않는다. 버텨낼 사람만 뽑는다. 자기 회사에서 운영하는 서머스쿨이란 건축 교육 프로그램에 먼저 참여한 다음, 이 회사 분위기를 파악한 뒤 그래도 다니겠다는 사람만 뽑는다.
 
안도 다다오처럼 독특한 건축가도 없다. 대학도 가지 않고 권투 선수를 하다가 건축가가 되기 위해 홀홀단신 유럽을 돌며 유명 건축물들을 답사한 인물. 우리나라 못잖게 인맥 지연 학연으로 모든 게 이뤄지는 일본에서, 그것도 가장 연줄이 설계를 따내는데 많이 작용하는 건축에서 오로지 자기 능력과 근성 하나로 성공한 인물. 고졸인데도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 교수가 된 인물. 그가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안도 다다오다.
 
성격은 안좋은데 성과는 무지 좋았다. 그의 주요 작품들을 보면,
 
독일에 지은 미술관으로 이런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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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국에 지은 이런 미술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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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것으로는 이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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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저수조 아래로 건물이 있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물 중간에 놨다. 선적이고 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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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나쁘고 직원들을 쪼아대지만 분명 사람 사로잡는 아이디어의 달인이다.
뭔가 확실하고 강렬한 어떤 모뉴먼트같은 건축물을 고려할 때 안도는 그를 찾아오게 작품으로 보여줘왔다.

하지만 안도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이것. 교회 십자가를 빛으로 표현해 대단한 히트를 친 교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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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만 봐도 이 사람 건축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물하고 콘크리트를 무지 좋아한다는 거. 콘크리트도 미장하는 법 없이 그냥 노출시키는 맨살콘크리트(노출콘크리트)를 좋아한다.
안도는 노출콘크리트에 일본 미감을 더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노출콘크리트 건물들은 말은 안해도 실은 안도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돈이 드는 속성상 건축은 기존 지명도가 있는 건축가들이 훨씬 유리한 분야다. 이 분야에서, 날고 기는 건축가들이 수두룩한 일본에서 학벌이 좋기는커녕 아예 없고, 도쿄 출신도 아닌 오사카 출신인 안도가 살아남는 법은 결국 건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아이디어와 미학만으로 승부했다. 살아남는 방법은 늑대처럼 거칠었지만, 작품을 만드는 일은 여우처럼 명민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정말 아주아주 작은 집이었다. 초짜 건축가에게 큰 빌딩을 맡길리는 없는 법. 오사카 스미요시란 동네에 낡은 일본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길 안, 오래된 목조주택 사이에 낀 집이었다. 집 폭은 겨우 3.6미터. 이 작은 집 하나로 안도는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도대체 어떻게 지었길래?
 
안도가 설계한 이 스미요시 주택은 길가에서 입구를 보면 창문도 없다. 입구만 달랑 뚫린 시멘트 상자였다.
집 안은 더욱 가관이었다. 벽은 물론 천장까지 모두 시멘트 그대로 마감했다.
그리고 내부 공간은 세토막을 내 가운데를 지붕 없는 중정(집안 정원)으로 꾸몄다. 그래서 집 안에서 돌아다니려면 이 작은 집에서 이 중정 때문에 돌아서 가야 했다.
안도 스스로 “작은 집을 턱없이 진지하게 짓고 있는 흥미로운 젊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듯 이 건물에 대한 찬사가 나왔다. 좁은 도시 공간 안에서 코딱지만한 집으로 새로운 건축 철학을 추구한 점 때문이었다. 물론 이게 도대체 뭐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세칸짜리 집인데 화장실 갈 때 우산을 쓰고가는 집, 칭찬하는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는 왜 이렇게 이상한 집을 시도했을까.
그는 좁은 일본 땅에서 미국의 산물인 근사한 모던 리빙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땅 면적에 맞게 좁은 대로 나름의 삶을 담아내는 집을 추구한 것이다.
안도는 이 초미니 주택 프로젝트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좁은 면적과 저비용 탓에 1밀리미터의 낭비도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집에서 세월을 보낼 사람의 정신력, 체력,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그 한계치까지 파고들어서 사고해낼 수 있었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가장 놀라운건, 이 작은 집을 지은 건축주 노부부는 30년 넘게 이 집에서 산다는 점이다. 건축가도 독종인데, 건축주 역시 독종 아니면 달관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결론은 이 집을 시작으로 안도는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가 됐고, 점점 더 큰 건물을 짓게 되면서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모셔가는 스타가 됐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폼 나는데 이만한 건축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작품이 제법 있다. 최근 것으로는 제주도의 `지니어스 로사이'가 있고, 한화그룹 연수원도 있다. 모던하고, 그러면서도 동양적-일본적-이고,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한 추상적 아름다움이 있다. 서양 건축가들에겐 없는 감성으로 안도는 건축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 그래도 안도는 내 취향은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 특별한 건축가가 싫었다. 그의 작품이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에서 였다. 디자인도 멋있고, 인간도 대단하고, 분명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지만 너무 예술을 위한 건축, 기능보다 자기 철학을 앞세우는 듯해서였다.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봐도 ‘뭐, 분명 특별하긴 하군’ 정도의 감흥 뿐이었다. 취향의 탓이니 말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에게 대단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작품을 접했다. 그가 지은 크고 폼나는 대형 건축물이 아니라 어찌보면 작은 집이었다.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있는 한 공장의 컨퍼런스 파빌리온, 그러니까 회의장 건물이었다.
 
1993년 안도는 새로운 제안을 받는다. 세계적 디자인 가구 업체 ‘비트라’에서 회의장 건물을 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비트라는 공장 건물들을 모두 세계 최정상급 건축가들에게 부탁해 작품 건물로 공장 단지를 만들어 유명해진 회사다. 그것도 그 건축가들이 완전히 뜨기 전에 과감히 맡긴 안목으로 더욱 유명하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설계한 건물이 비트라의 디자인 박물관이었고, 여성 건축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하 하디드(우리나라 동대문 디자인파크도 이 양반이 설계했다)가 처음으로 설계를 맡은 건물도 비트라의 소방서였다. 일본에선 유명했지만 세계 무대에선 아직 슈퍼스타가 되기 전인 안도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처음 짓게 된 건물도 바로 이 비트라의 회의장이었다.
 
안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다른 스타 건축가들의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개성적인 건물을 선보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란 소재로, 일본 특유의 미감을 드러내는 그의 디자인, 그리고 땅 속으로 건물을 묻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안도 스타일을 모두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 회의장은 이제 현대건축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오랫동안 말로만 들었던 이 건물을 올 초,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프랭크 게리의 유기체적인 디자인이 도드라지는 디자인 박물관 옆, 키작은 풀들이 덮고 있는 넓은 대지 한켠에 이 건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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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희한한 건물이 프랭크 게리의 디자인뮤지엄이다. 안도의 파빌리온은 이 바로 뒤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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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면 그냥 지평선에 맞춰 벽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저 건물이 회의장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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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건. 교도소 담장도 아니고. 어떻게 생긴 집인지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다.

 


다른 각도에서 봐도 감이 잘 안오는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벽만 보인다. 가늘고 긴 벽이 가장 자리를 두르고 있어 전체 모습은 절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본 사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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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구조를 알 수 없다. 완전히 위에서 보면 이렇게 생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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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풀밭 왼쪽에 있는 건물이 바로 콘퍼런스 파빌리온이다. 오른쪽이 게리의 디자인뮤지엄.
단층으로 하고 사방 창문도 없는 콘크리트 벽만 보이니 교도소처럼 보일 법도 하다.
위에서 보니 줄맞춰 심은 저 나무들은 체리나무.
 
이 건물을 비롯해 워낙 유명한 건물들이 모여 있다보니 이 비트라 공장에는 전 세계에서 건축전공자는 물론 관광객들이 줄지어 온다. 비트라에선 이런 방문객들을 위해 따로 건물 투어를 안내하는 가이드를 따로 두고 있었다. 주름살 숫자만큼 자주 웃는 유쾌한 할머니 가이드를 따라 이 건물 구경에 나섰다.
 
# 어, 이 양반 생각보다 재미있네. 구라도 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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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들어가는 길은 바로 벌판을 가로지르지 않고 일부러 저 옆에 직각으로 세운 맨살 콘크리트 벽에 바짝 달라붙어 걷도록 했다. 뻔하고 간단해도 나름 뭔가 있어보이는 동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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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따라 가는 도중, 갑자기 가이드가 멈춰섰다. 그리고 벽 한 부분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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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맥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나뭇잎 자국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일부러 포인트를 준 것처럼 보이는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작은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안도는 이것도 재미있다며 그대로 그 무늬를 살려놓았다고 한다. 넓은 개간지에 조용히 들어선 건물에 어울리는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벽을 따라 졸졸 걸어가면 드디어 정문이다. 아주 작다. 문 안을 들여다봐도 어떤 건물인지 가늠할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숨기고 궁금하게 만드는 건축적 수법은 늘 반복되지만 또한 늘 재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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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도 바로 내부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좁은 콘크리트 복도를 조금 더 따라들어가며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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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바깥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원한 공간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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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온통 직선으로만 꾸민 것과 달리 안에선 거대한 곡선을 보여준다. 땅 아래로 파고들어가 밑으로 시원하게 뚫린 공간이 펼쳐진다. 폼내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안도의 수법답다.
 
이 회의장 안에는 여러개의 회의실, 그리고 저런 로비가 있다. 일단 맨 위층인 1층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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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넓은 회의실. 시원하게 풀밭이 펼쳐지는 점이 매력적이지만 내부 디자인은 그리 두드러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숨어 있는 장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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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왼쪽 바깥으로 보이는 시멘트 옹벽이 정확하게 수평선과 일치한다. 차들이 다니는 길과 저 시멘트벽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같은 높이로 그대로 이어져 보이게 맞춘 것이다.
이 건물 1층 모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 보이도록했다.
그래서 시멘트 벽 위로 차들이 달리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게 한다. 작은 다과실에서 본 찻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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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이었지만 이런 시각적 재미를 안도는 숨겨놓았다.
넓은 대지에 맞게 건물을 위로 우뚝 솟게 짓지 않고 수평 단층 구도로 만든 다음 오히려 아래로 파고들어가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안도가 자주 쓰는 방식이다. 도쿄 미드타운의 디자인뮤지엄도 꼭 이랬다. 그런 구조, 저렇게 풍경가지고 만드는 재미, 무릎을 치며 안도에 대해 조금씩 호의적으로 생각이 바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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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큰 회의실 내부. 시멘트 고정 시킬 때 생기는 구멍들이 한 판마다 6개씩이다. 가이드 할머니가 열심히 설명을 시작한다.
"원래 이 시멘트 구멍은 4개로 해도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일본에선 4자가 불길하다잖아요? 그래서 안도는 일부러 6개로 했대요. 그런 뜻이 들어있어요."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저 구멍은 거의 대부분 6개다. 일본에서 들어온 공법이라 6개로 된 것이고, 먼저 시작한 일본에서 4자가 불길해 6개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설명 하나에 서양 사람들은 꺼뻑 죽는다. 안도는 이런 구라의 대가다.
 
나무판을 댄 다른쪽 벽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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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할머니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 나무판들은 모두 일본 다다미 한 조의 사이즈래요. 안도는 이런 일본적인 규격을 여기서도 적용했다고 해요. 앞서 본 구멍 6개짜리 콘크리트 판 사이즈도 똑같아요. 나름 심오하죠?"
어찌보면 별 대단치도 않은 뒷이야기다. 일본에선 대부분 이 사이즈로 하는 것을 안도가 마치 자기가 철학적으로 결정한 디자인이라고 의미부여를 팍팍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이 어떤지는 몰라도 이 서양 할머니가 너무나 근사한 이야기라고 침튀기며 이야기할 정도로 이 정도 사소한 의미도 서양인들에겐 심오한 동양의 문화 코드처럼 비친다.
중요한 것은 안도라는 건축가 한 명 덕분에 이곳을 찾는 모든 방문객들은 일본적 정서와 철학을 서양에는 없는 심오하고 독특한 문화로 소개받게 되는 점이다. 뛰어난 문화적 스타 하나가 얼마나 자기 나라의 문화를 대외적으로 그럴듯하게 고양시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을 듣는 이들은 모두 일본과 일본 건축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안도 한 명이 유명한 대중스타들은 해내지 못하는 일본 고급 문화의 전도사가 되는 거다. 건축가가 문화적 스타가 되는 시대, 일본은 더욱 문화적인 나라란 이미지를 안도를 통해 얻고 있었다.
 
안도의 비트라 회의장은 작지만 개성적이고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앞서 다른 건물에서 안도의 이름값이 너무 신화화된 것 아니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 건물은 확실히 안도가 유명할만 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 영악하고 포악한 건축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비트라라는 건축계 최고 이슈가 되는 공간에 보란 듯이 아이디어로 자기 존재를 확인시키는 그 집념, 그러면서도 재미를 알맞게 양념처럼 뿌리는 테크닉. 그는 분명 이 시대의 스타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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