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68명중 68등이었다.

킥오프넘 작성일 10.11.17 0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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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68명중 68등이었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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