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잉어문신
물고기는 하인 고용인 부하를 나타내기 때문에 잉어가 다수 헤엄치고 있으면 많은 부하가 생긴다고 하는 의미가 되고 많은 협력자나 고용인이 생기게 된다.
물고기들이 크고 생기가 생기가 넘치는 그림일수록 좋다고 한다
(야쿠자들이 큰 잉어문신을 많이 하는 이유..)
우리 전통의 회화인 민화에서 잉어그림은 단지 물고기만이 아닌, 입신양명과 자손번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큰 물고기와 잉어를 잡는 문신은 재물이 늘어나고 권력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잉어는 재주있고 처세를 잘하는 사람, 재물, 명예, 인기 직업, 출세, 승급을 상징한다 효의상징으로 설화에는 잉어가 신적인 존재로 잉어가 사람으로 화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5월 5일, 축제 때에는 남자아이의 장래에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코이노보리(鯉のぼり:잉어달기)를 한다. 아이가 어떠한 환경과 어려움도 견디고 이겨내기를 바라며,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식해 두는 것이다.
잉어의 수명은 150년 200년을 산 잉어가 있다고 하니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잉어 문신을 하면
자손이 없는 사람은 자손이 번창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일어나고
그외 부와 명예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어
문신으로는 최고 인기있는 그림이다
2. 용문신
용의 의미는 출세.부귀.영화로움.만사형통등을 상징, 용은 신성한 동물로 권력과 제왕을 상징하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꿈을 최고의 꿈이라고 할만큼 용은 행운의 상징이다 그중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가장 좋게 풀이하고, 용을 때려 죽였다면어떤 벅찬 일거리를 통쾌하게 성취함을 암시하는 길조입니다.
고서에 등장하는 용과 호랑이 그림은. 호랑이는 귀신을 쫓고 용은 복을 끌어 들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용 그림은 용호도(龍虎圖)라 해서 동쪽에는 용을, 서쪽에는 호랑이, 이것를 좌청룡 우백호하 한다.
용의 종류 또한 다양하여 늙은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고 믿은 사람들은 잉어 같은 용을 만들어 어룡(魚龍)이라 불렀다. 바로 이 어룡이 사찰에 매달린 목어라는 악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왕자(王者)나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된다. 천자(天子)에 대해서는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의복을 용포(龍袍)라 하고, 천자의 위광(威光)을 빌어 자기 몸을 도사리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곤룡(袞龍)의 소매에 숨는다”라고 말한다. 황허강[黃河]이 산시성[山西省]에서 3단계의 높은 폭포를 이루는 곳을 용문(龍門)이라 하는데, 이 곳에 잉어가 올라가면 용이 된다고 하며 인간이 입신출세하는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백룡과 황룡은 임금, 황제를 상징하고 청룡은 사악한 귀신을 내쫓는 벽사를 뜻하며 흑룡, 여룡은 가뭄이들 때 기우제를 올려 비를 구하는 대상이었다.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되어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왕이 앉는 걸상을 용상(龍床), 왕의 의복을 용포(龍袍)라고 했는데 왕을 용으로 비유하게 된 사연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용을 그리는 방법에도 격식이 있어서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 그림은 발톱이 다 섯개인 오조룡(五爪龍)을 그리고 민가에서는 사조룡(四爪龍)이나 삼조룡(三爪龍)을 그렸다.
3. 호랑이 문신
호랑이는 동물과 천하를 호령하는 영물로 권위, 명예 등을 상징하며 호랑이는 진보, 독립, 모험, 투쟁 등의 속성을 갖습니다.
호랑이의 문신이나 호랑이 가죽이나 털로 된 물건 호피등 문장을 몸에 지니게 되면 재물과 권력등을 얻게되며 위대하거나 용맹스러운 일,권세를 잡는 일이 생기며 잡귀를 쫒아낸다. 특히 소망하는 사업이 잘 추진되어 재물과 명예나 권력을 얻어 대성하게 된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갖는 현실적 동물이며. 용맹과 투쟁의상징으로 일본의 호랑이는 날세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두드러져 마치 악마의 화신 같은 인상을 받으며 중국 호랑이는 털과 체구가 두드러져 험악한 인상을 받아 우람한 대륙적 기품을 풍깁니다
우리 민족의 호랑이는 민족 특유의 강인함이 나타나고 끈질김과 용맹함이 나타나는 것은 특징입니다.
호랑이는 단군 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 할만큼 옛 생활미술에 많이 등장하며 심지어 호랑이 신체의 일부인 가죽, 발톱, 이빨, 뼈등을 장신구나 장식물로 쓴 예가 적지 않은데 이것은 호랑이가 영험스런 짐승으로서 호축삼재(虎逐三災)라하여 세가지 재앙 곧 수재(水災), 풍재(風災), 화재(火災)나 지병, 기근, 병란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영웅(山中英雄)을 뜻하며 사신도(四神圖) 중에 백호(白虎)는 서방을 수호하는 상징 신수(神獸)를 뜻하며 특히 서낭당에서 백호(白虎)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使者)로 숭배되며 호랑이는 길흉화복 관장에 대한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부적과 같은 상징물로 나타납니다.
호랑이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의 대문이나 집안곳곳에 호랑이 그림을 붙였던 것이다. 호랑이와 관련된 그림으로는 까치 호랑이 그림, 군호도(群虎圖), 호렵도(虎獵圖), 그리고 백호도(白虎圖)와 만호도(萬虎圖)등을 들수 있다.
백수의 왕을 상징하여 옛날 무관의 흉배에 수놓았으며 까치나 산신도 다른 소재와 함께 많이 사용하였다. 잡귀를 막아 준다는 뜻에서 민화나 모든 공예품에 호랑이 문양을 많이 썼으며 색지 공예에도 연, 부채, 상자 등 여러 작품들에 즐겨 썼습니다.
4.한야 문신
한야 (세존(世尊)보다 한 단계 위인 지고신(至高神))
한냐[般若, はんにゃ]
한냐는 본래 아름다운 여인으로 승려와 사랑에 빠졌으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때문에
남자에게 원한을 품고 죽어서 원령으로 변했다.
때문에 한냐는 남자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며 남자나 아기를 잡아 먹는다.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 에 등장하는 한냐의 가면은 귀밑으로 찢어진 입으로 살기등등한 미소를 머금고 처량한 눈길을 보내는 여귀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원래 반야(般若)란 불교에서는 세존(世尊)보다 한 단계 위인 지고신(至高神)으로 숭앙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5. 악마 해골 문신
일본문신의 경우 도깨비가 많이 등장하는 반면에 유럽풍의 문신은 악마와 해골 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죽음과 가까워졌을 때, 부활과 영생을 믿는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었다.
해골 그림 속에는 언제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여운이 남아있다. 메멘토 모리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뜻을 지닌 용어이다. 이것이 바로 바니타스의 종교적 요소이다. 죽음이 동전의 뒷면처럼 삶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모습으로 해골들은 '죽음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이렇게 항상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신이 악마와 악귀들을 표현한 것이다. 해골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일부로서 생각하는 것처럼 해골을 장식으로 혹은 보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도깨비 '오니'는 뿔이 있고 포악하다고 전한다. 어쩌면 우리 조상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일본의 칼을 좋아하는 무사 정신이 도깨비에도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6. 도깨비 문신
악귀를 쫓고 나쁜 귀신을 몰아내 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도깨비무늬 기와, 즉 귀면와(鬼面瓦)에서 생각되는 것은 도깨비 기원이 악귀를 쫓는 ‘벽사의례(壁邪儀禮)’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와에 도깨비무늬를 그려놓고 나쁜 귀신을 몰아내 주길 기대한 것이다. 절 문짝에 그려 넣은 도깨비들도 역시 벽사를 상징한다..
우리나라 도깨비에는 뿔이 없다. 도깨비는 초인적인 괴력(怪力)을 지니고 있으므로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속에 넣으며 큰 산을 움직이고, 큰 바위를 굴리며 많은 물을 단숨에 마신다.
제주도에는 집안을 지켜주거나 물고기를 몰아다준다고 믿고있다
도깨비이야기에서는 현실
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욕망을 대리만족 하도록 도와준다
7. 봉황 문신
봉황 (鳳凰) 은 새 중에서 가장 길고 아름답기 때문에 새 중의 왕으로서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로부터 유래된 서조(瑞鳥)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전한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암수를 같이 불러 봉황이라 한다.
봉황의 생김새는 앞 모습이 기러기(군신의 의), 뒷모습을 기린(어진성군), 부리는 닭(밝음을 가져옴), 턱은 제비(천심전달), 등은 거북(재앙을 막고 앞날 예견)을 닮았다고 한다.
용과 봉황은 군왕이 갖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하여 군왕을 상징해왔는데 두 상징에 서열을 매길 때는 용을 상위에 두어 천자 곧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고 봉황을 황후의 상징이나 천자에게 사대하는 제후나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래서 천자를 섬기던 조선시대 왕궁의 정전 천장에 용을 그리지 못하고 봉황을 그렸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고종께서 청나라 사대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왕에서 황제로 승격되면서 경복궁 근정전의 천장과 임금이 앉는 용상의 뒤에 봉황 그림이 황제의 상징인 용 그림으로 바뀌었다. 이는 창덕궁 인정전에 남아있는 봉황 그림과는 대조적인 좋은 예가 된다.
봉황그림은 오동나무와 대나무등과 함께 그려 지는데 그것은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에만 깃들고 삼천년만에 한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 전하기 때문이다.
수컷인 봉과 암컷인 황을 함께 이르는 말.
용과 학이 연애하여 낳았다는 상상의 새로서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있다.
붉은색은 봉, 자주색은 악작, 푸른색은 난, 노란색은 원추, 흰색은 홍곡.
8. 나비 문신
여름 또는 부부의 금슬이 좋음을 상징하여 이불깃이나 가구 장식 문양, 보자기, 혼례 의상이나 대례복의 문양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나비 자체의 화려한 형태로 인해서도 여성용품이나 고비 등에 많이 선호되었다.
나비는 변신의 상징으로 새로운 삶을 상징하며 다남, 다산의 의미와 부분화합, 또한 날개의 형태가 (윗날개 아랫날개) 여든여덟의 형태를 닮아서 장수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호랑나비는 우리나라에서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침에 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고, 이른봄에 호랑나비를 보면 신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그 밖에 나비가 불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패한다고 하며, 나비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이 먼다는 금기도 있다.
나비 문양은 행복은 추함과 고통, 부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노랑나비의 날갯짓은 쉬지 않고 장난치는 어린아이를,
호랑나비의 느린 듯하면서 우아한 동작은 장년의 이미지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9. 매 문신
매는 날카로운 생김새와 먹이를 낚아채는 습성으로 인해 매 그림이 사악한 잡귀를 내쫓는 벽사의 의미가 있고 삼재(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주는 부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매 그림이 부적으로 쓰이게 된 우화를 소개하면, 옛날 중국 무창 장씨집 며느리가 휘종황제 친필의 매 그림을 보고 마당에 나동그라지면서 여우의 본색으로 돌아갔다’ 는 이야기가 청나라 실학자 왕사정의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실려 있는데 이 우화로 인해 매 그림이 방패막이로 쓰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매는 천상의 동물입니다
모든일이 하늘을날으는 매나 독수리처럼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거북문신
신구라 불리는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사령수(四?獸)의 하나로 3천년을 산다고 전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다.
등껍질은 하늘의 지붕을 나타내고 그 표면에는 별자리가 나타나 있으며 배의 껍질을 땅을 나타낸다고 한다. 곧 상하의 껍질은 천지 음양의 힘을 나타내 수명과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민화에 보이는 거북은 예언과 수리의 기본이 되는 <하도낙서(河圖洛書)>를 등에 지고 나오기도 하고 복점을 치는 내용의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 하나라 우임금이 낙수에서 홍수를 다스릴 때 등에 아홉 개의 점이 찍혀 있는 거북이 나타났고 이 점은 나중에 주역의 중심 사상인 팔괘가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민화에서 거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반 거북과는 달리 매우 기괴하게 상상적으로 그려지며 대개가 두 마리를 함께 그리고 있는데 우리 선조들은 거북을 장수의 상징으로서 귀엽고 친근한 동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충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던 동물.
수명이 길어 영년불사의 상징으로 인식, 예사람들은 거북의 등이 융기한 것은 하늘의 법을 아래가 평평하고 네모난 것은 땅 의 법칙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11. 해태 문신
해태는 소의 머리와 말의 얼굴에 외뿔이 하나 있는 상상의 동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줄 알며 불을 막아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 세워진 해태상은 국사를 논할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의롭게 일하라는 의미라 하겠다. 또한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불이 자주 일어나자 당대 유명한 석공 이세욱을 시켜 돌로 해태상을 만들어 세우고 불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해태그림은 불을 막기 위하여 정초에 세화로 그려 부엌문에 붙였던 그림이다.
요순시대에 태어났다는 상상의 동물. 해치,신양, 식죄, 해태, 등으로 불러집" 죄가 의심스러울 때 이 동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들이받게 하였다.
죄가 있는 사람이면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이면 받지 않았다."
12. 물고기 어해도 문신
어해도는 고기「어(魚)」자에 게「해(蟹)」자에서 온 이름으로 물고기, 게, 새우, 조개등 어류의 그림을 말한다.
그림이 갖는 의미는,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하여 다산, 곧 자손의 번창을, 게는 옆 걸음 친다하여 양보를 의미한다. 그리고 등이 굽은 새우는 바다의 노인 곧 해로(海老)와 독음이 같은 해로(偕老)의 의미로서 부부가 평생 함께하며 같이 늙어 간다는 뜻이며 새우 ‘하(鰕)’와 조개 ‘합(蛤)’은 독음이 비슷한 화합(和合)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해도가 갖는 전체적인 의미는,「부부가 만나 양보하고 화합해서 많은 자손을 낳고 백년해로 하라」는 바램을 담은 그림이라 하겠다.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상징성 가운데 벽사의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고기가 낮이건 밤이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삿된 것 을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 낱장 그림을 귀중한 것들이 많이 간직되어 있는 다락의 문에 붙여 놓기도 하고 또 물고 기형의 자물쇠를 쌀 뒤주에 달거나 서랍의 손잡이를 물고기형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