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녀석들의 산만함이 점점 심해지자 윤리 선생이 잠시 한숨을 쉬더니 분필을 내려놓았다.
윤리 선생: 이 녀석들이...도대체 뭐가 궁금한게야???
조군: 선생님..왜 결혼하셨어요??
윤리 선생: 왜 결혼하긴...결혼할 사람을 만났으니 하지..
조군: 그 남자 돈 많아요??
윤리 선생: 이 녀석들이...그래...이 얘기도 윤리일지 모르니깐 오늘은 내 남편 자랑으로 수업을 대신하자....
순간 산만했던 녀석들의 분위기가 고요해지고 윤리 선생에게 집중됐다.
윤리 선생:
내가 내 남편은 대학에서 만났지 모범생도 아니었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좋아하고, 돈도 없고 뭐 그런 사람이었다.. 당시 난 학교 앞에서 친구와 자취를 했는데 친구 녀석이 사귀는 남자는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연수원에 다니던 사람이었지... 난 친구가 너무 부러웠어...똑똑하고 집안 빵빵하고... 미래의 판검사..매너도 좋고 어느 상황이든 유식하게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모습들... 여자들이 참 바라는 그런 결혼 상대였으니 말이다.. 우리 넷이서 술자리도 몇 번 했는데 그때마다 지금 내 남편이 참 초라해보였다...헤어질 생각도 여러 번 했지.. 신체 건강하고 활달한 것 빼고는 가진 게 참 없어 보였거든.. 근데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뀐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늦은 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가 어둑한 골목길에서 치한들을 만난거야. 우린 윗도리가 다 찢기고 참 무서운 상황이었지.. 마침 순찰을 돌던 경찰들 때문에 무사했지만 그땐 정말 온 몸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어... 그렇게 경찰서에 가서 상황 진술을 하고 있을 때 내 남편하고 친구의 남자친구가 경찰서에 도착했어... 둘 다 집이 멀어 집에는 연락을 못하고 우선 남자친구를 부른거야. 친구의 남자친구.. 사법 연수원 다니던 그 남자가 먼저 도착을 했는데 우릴 보자마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바로 형사에게 다가가서 “상황 좀 말씀해 주시죠..이 여자 당한겁니까?? 안 당한겁니까??” 라고 말하는 거야.. 형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자 그 남자가 아주 차분히 그리고 냉철하게 여지껏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 유식한 표정으로 다시 묻더라고... “이 여자 *당했습니까?? 아님 미수입니까??” 그때 지금 내 남편이 도착했어... 남편은 그 남자와 아주 상반되게 들어오자마자 한마디 말없이 자기 윗도리를 벗어서 날 덮어주고.. 치한을 취조하는 형사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더군.. “형사님 나 지금 이 oo 몇 대 때려야겠는데 체포할려면 체포하시죠” 그러면서 그 치한들에게 주먹을 날렸어.. 순간 경찰서가 살벌해졌지...그리고 형사에게 가서.. “오늘은 제 여자친구가 너무 많이 놀랬으니 이만 데려가 쉬어야 겠습니다” 그 말만 던지고 내 손목을 잡고 경찰서를 나왔어... 그게 내가 남편하고 결혼한 이유다.. 내가 만약 내 친구와 같은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사람간의 관계..특히 사랑하는 사람간의 관계까지 그 유식한 논리로 재단하려 들겠지... 이 후 내 친구는 경찰서에서 그렇게 논리적으로 묻는 남자에게 막 소리지르며 “그래 나 당했다..어쩔건데..” 라고 말했고.. 그 남자는 잠시 움찔하더니 그 길로 경찰서를 나가 다신 연락이 없었단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느낌의 차이겠지.. 그 차이에서 어느 것이 더 와닿는지는 직접 판단하도록..오늘 수업 끝...
졸업할 때쯤 우연히 윤리 선생의 그 비논리적이고 무식하고 아주 멋있는 남편을 우연히 보았다...
윤리선생과 팔짱을 끼고 시장 아줌마한테 100원만 더 깎아 달라고 둘이서 애교를 피는 모습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