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우 돋는 은행강도 사건

브리진 작성일 11.02.15 20: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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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28일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시에 있는 한 은행에 40대 남자가 짤막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이마 위의 머리가 빠져 없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이 남자는 창구로 다가가서 직원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행 금고를 열 수 있는 직원을 불러 신속히 이 가방에 25만 달러를 채우시오. 허용된 시간은 단 15분이오."

은행 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무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쪽지를 내밀며 창구 직원에게 한 행동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 남자의 목 밑 옷 속에는 무언가 두툼한 것이 달려 있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나타난 것은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였다. 그는 이것이 폭탄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은 지금 당장은 금고를 열 수 없다고 말하고, 수납대에 있던 현금을 모아 남자가 갖고 있던 가방에 8,702달러를 채워 돌려주었다. 남자는 가방을 받아들고, 창구 앞에 있던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은행을 나갔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지오 메트로 자동차에 올라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는 그다지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그가 은행을 떠난 지 20여 분 가량 지나서였다. 도주하는 차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의아스럽게도 그는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이리떼처럼 몰려든 경찰은 그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길에 주저앉혔다. 즉시 연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목에 달린 폭탄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게 진짜 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고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당시 46세로 '마마 미아 피자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브라이언 웰스였다. 그는 같은 가게에서 30년 가까이 배달원으로 근무해 온 성실한 종업원이었다. 과거 10년 동안 그가 업무 시간을 어긴 일은 단 한 번인데,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였다. 

웰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은행 강도가 아니라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설명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을 받고 피자 배달을 갔다가 흑인 세 명에게 인질이 되었다는 것, 그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자신의 목에 폭탄을 부착했다는 것, 그 상태로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돈을 가져오고 지시에 따르면 폭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지시를 어길 경우 언제든지 목 밑의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 "이건 진짜에요! 곧 터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경찰은 웰스를 길 위에 앉혀둔 채, 폭발물 처리반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911로 '폭탄으로 무장한 은행 강도'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자신들은 거리를 둔 경찰차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웰스는 "사장님에게 연락했나요?" 하고 소리쳐 묻기도 했다. 근무 이탈을 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25분이 지나갔다. 주저앉아 있던 웰스의 목 밑에 달린 금속 상자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웰스는 무의식적으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폭탄은 그의 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진짜였던 것이다. 

 


동영상 (Warning: Graphic
폭발 장면이 생략된 다른 각도의 동영상

 

 



웰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하기 3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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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웰스의 차를 수색하여 증거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할 때 짚고 있었던 지팡이가 나왔다. 이 지팡이는 정밀하게 개조된 샷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차 안에서 발견된 범행 지시서였다. 손으로 공들여 쓴 이 지시서는 폭탄에 묶인 웰스가 스스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쏘우>의 게임 지시문 같은 이 지시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 XXXX 거리에 있는 OOO 은행으로 갈 것. 은행 안내원이나 창구 직원에게 요구 조건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넬 것. 경보를 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지시된 장소로 서둘러 와서 다음 지시서를 찾을 것. 각각의 장소에는 다음 장소를 알려 주는 지시서가 있으므로 이를 찾아야 함.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열쇠 몇 개와 자물쇠 번호를 하나씩 구하게 되며, 이것들이 모두 있어야 목에 달린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음. 당신은 단순히 인질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중에 처벌을 받지 않을 것임.

가장 중요한 사항: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전화하지 말 것. 당신의 회사, 경찰,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알리면 바로 죽게 됨. 우리가 경찰차나 경찰 헬리콥터를 목격하게 되면 당신을 죽일 것임.

당신의 목에 채워진 강력한 폭탄은 오로지 우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를 때에만 제거될 수 있음. 스스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지시를 따르기 위해 허용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임. 꾸물거리지 말 것. 폭탄은 55분 뒤에 폭발함. 은행에서 20분 이상 지체하지 말 것. 다음 지시 장소로 오는 데 25분 걸릴 것임. 따라서 여유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없음. 이 시간은 다음 지시서를 찾는 데 써야 함. 첫 번째 열쇠를 찾으면 폭발 시간이 연장될 것임. 우리의 지시 사항을 잘 따른다면 열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며, 돈이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된 뒤 마지막 열쇠와 자물쇠 번호를 받을 수 있음. ... (하략)






지팡이 샷건에 대한 지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갖고 조용히 은행 안으로 들어갈 것. ... 협조하지 않거나 은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것. 무기 사용 설명서는 방아쇠 근처에 달려 있음."

지시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쏘우>의 지시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에게 각 단계별로 시간 제한을 두고 'mission'을 수행하게 한 것이나, "It is your choice to live or bring death" 같은 문구가 있다거나 하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이 첫 번째 지시서의 맨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ACT NOW, THINK LATER OR YOU WILL DIE!" 무엇보다, 웰스의 목에 부착된 폭탄이 존 크레이머가 희생자들에게 덧씌운 기기묘묘한 장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쏘우> 1편은 2004년에 개봉되었으므로 2003년에 벌어진 이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다.)

(복원한 폭탄)

경찰 조사 결과 이 폭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수갑과 같은 형태로 채워지는 강철 고리로 목에 걸리도록 되어 있고, 그 아래 금속 상자에 6인치짜리 파이프 폭탄 두 개를 삽입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두 개의 작은 주방용 아날로그 시계와 한 개의 디지털 시계로 이루어진 시한 장치가 복잡한 잠금 장치와 함께 장착되어 있었다. 

전기선도 얽혀 있었는데, 이 전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해체하는 사람을 혼동시키기 위해 부착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공작 기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공들여 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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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단서를 찾기 위해, 웰스에게 내려진 지시 사항대로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시서는 은행에서 돈을 확보한 뒤 차를 타고 인근의 맥도널드 식당으로 오도록 하고 있었다. 식당 입간판 밑 화단의 굵직한 돌 하나에 다음 지시서가 테이프로 붙어 있고, 이 지시서는 다음 장소를 다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의 나무 밑 상자에서 찾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웰스가 경찰의 제지를 받은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이 상자를 찾는 도중이었다. 

사건 직후 경찰은 근처에서 문제의 상자를 발견했으며, 그 안의 지시에 따라 다시 2마일 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다음 지시서가 들어 있어야 할 병을 찾았다. 병은 발견되었지만,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이 '목숨을 건 보물찾기'는 범인들이 웰스를 지켜보며 단계별로 그에 한 발씩 앞서 예정된 장소로 가서 지시서와 열쇠들을 숨겨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웰스가 죽고 경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안 범인들이 지시서를 계속 묻어 둘 이유는 없었다. 다시 말해 웰스가 죽은 현장 부근에서 범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보물찾기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웰스가 일하던 피자집을 조사했다. 그 결과 특이한 사실이 두 가지 밝혀졌다. 첫째, 사건 당시 웰스가 입고 있던 옷은 그가 피자 배달을 나갈 때 입은 옷이 아니었다. 웰스는 사망 당시 위에 티셔츠 두 개를 입고 있었다. 속의 티셔츠는 그의 것이었지만, 그 위에 낯선 티셔츠를 하나 더 입고 있었던 것이다. 웰스의 친지들은 모두 이 티셔츠가 웰스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범인들이 웰스에게 폭탄을 부착할 때 입힌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의문의 티셔츠는 '게스(GUESS)' 로고가 크게 새겨진 것이었다. 마치 'Guess who we are!" 하고 도발적으로 소리치는 듯한 모양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사실은 그가 피자 배달을 하러 나간 마지막 주문자의 주소였다. 소시지와 페페로니 피자 두 개를 주문한 주문서에 기록된 주소를 따라가 보니, 나타난 것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라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 등성이의 텔레비전 방송 중계탑이었다. 비포장 도로로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범인들이 피자를 주문하면서 주소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중계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웰스가 신고 있던 신발의 족적과 그의 차 타이어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과는 별도로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조용한 도시 이리 시의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피자 배달을 나갔다가 괴한들에게 위협을 받고 폭탄(collar bomb)을 목에 차게 된다. 시한 장치가 된 이 폭탄은 웰스가 괴한들의 지시를 정확히 따라 은행 강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제거할 수 있다. 웰스는 은행 강도를 수행한 뒤 단계별로 제공된 지시서에 따라 열쇠를 찾는 도중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 폭발물 처리반이 오는 도중 웰스의 목에 달린 폭탄이 폭발하였으며, 웰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흥미로운 사항들이 밝혀졌으나,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웰스의 사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폭발물 처리반)

(웰스에게 부착되어 있던 실제 목 폭탄 장치의 일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왼쪽)의 은행 강도 및 폭발 사망 사건은 조용한 이 도시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에, 그리고 그 다음 날의 조간 신문에 크게 보도되며 지역 사회를 흔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지역 신문의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 한 팀이 문제의 피자 배달지인 야산 텔레비전 중계탑 현장을 취재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중계탑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노란 색 줄이 둘러쳐 있었다. 증거 유지를 위해 경찰이 봉쇄를 해 둔 것이었다. 낙심하여 주변을 둘러보던 두 사람의 눈에 인근에 있는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중계탑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 집 뒤꼍을 통해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중계탑 주변을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외딴 집 마당에서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멜빵 청바지를 입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두 기자가 인사를 하자 남자는 자신을 빌 로드스타인이라고 소개했다. 로드스타인은 바로 전날 자기 집 뒷산을 경찰이 수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중계탑 현장을 확인하는 데 안달이 났던 취재진은 현장으로 가기 위해 로드스타인의 집 뒤꼍을 이용해도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앞서서 길을 인도했다. 

세 사람은 빽빽히 자란 풀숲을 헤치고 중계탑 방향으로 15분 가량 나아갔으나, 현장을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데 실패했다. 두 기자는 취재를 포기하고 로드스타인의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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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9세였던 빌 로드스타인(왼쪽)은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아 온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마치 영문학과 교수처럼 아주 유식한 단어를 써서 우아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말(영어)뿐 아니라 불어와 헤브루어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로드스타인이 아주 잠깐이나마 언론과 조우하게 된 것은 우연히도 자기 집 뒷산의 중계탑이 웰스 사건과 관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연한 사실을 빼면, 그는 들판의 외딴 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조용한 삶을 사는 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 사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과는 관련 없는 자기 나름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비밀은 웰스 사건이 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그가 911로 긴급 전화를 하면서 양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OOOO 거리 XXX 번지의 집 차고에 냉동된 시체가 있소! 냉동고 안에 시체가 있단 말입니다!" 

로드스타인은 911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신고를 했다. 그가 말한 주소는 다름 아닌 자기 집 주소였다. 경찰이 달려가서 확인해 보니 꽁꽁 언 한 남자의 시체가 로드스타인의 차고 안 냉동고에 들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다. 

경찰에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그동안 이 시체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아 왔으며,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서까지 써 두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의 집 책상 서랍에서 그가 썼다는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서 그는 이 얼어붙은 시체가 제임스 로든이며, 자신이 로든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그의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웰스 사건과 관련이 없다."

로드스타인이 제임스 로든을 죽이지 않았다면, 로든의 시체는 어떻게 해서 로드스타인의 집 냉동고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인 8월 중순, 로드스타인은 과거에 여자친구로 사귀었던 매조리 암스트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암스트롱은 당시 함께 살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과 돈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레밍턴 엽총으로 로든을 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체를 숨겨 둘 장소가 필요하다며 로드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로드스타인은 과거의 애인을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10마일 정도 떨어진 암스트롱의 집에 가서 로든의 시체와 살해에 사용된 총을 가져 왔다. 시체는 냉동고에 넣었으며, 엽총은 그 뒤 며칠에 걸쳐 모두 녹여서 작은 금속 조각들로 만든 뒤, 인근 마을 이곳 저곳에 뿌려 흔적을 없앴다. 시체 역시 잘게 갈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로든의 시체는 그냥 그렇게 로드스타인의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다섯 주 동안이나 그의 차고에 들어 있는 시체가 무섭기도 했으며, 자신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암스트롱이 어떤 해꼬지를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가 911로 자진해서 신고를 한 것은 그런 정신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이 신고를 한 바로 다음 날 매조리 암스트롱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제임스 로든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사건은 깨끗하게 끝난 듯 보였다. 로든 살해 사건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잡혔으니까. 동거남을 살해한 암스트롱은 재판 끝에, 1년 4개월 뒤인 2005년 1월에 선고 판결을 받았다. 암스트롱측은 살해를 시인했으나,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걸고 넘어지려 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년형을 선고했다. 암스트롱은 주립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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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은 사건 당시 남은 여러 가지 물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 즈음 웰스 사건은 미제 사건인데다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FBI가 담당하고 있었다. 

2005년 4월 어느 날, 웰스 사건을 담당한 FBI 수사관에게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 속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독립된 살인 사건으로 처리되었던 암스트롱의 제임스 로든 살해 사건이, 사실은 웰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알려졌을까.

얼마 전에 주 경찰관은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를 찾아가 암스트롱을 참고인으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시체 처리를 도와주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로드스타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유서에 쓴 내용은 모두 자신과 치밀하게 논의한 끝에 작성한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연락을 받은 FBI 수사관들은 즉시 주립 교도소로 달려가 암스트롱을 면담했다. 암스트롱은 사실을 털어 놓는 대가로 조건을 달았다. 그녀가 수감되어 있는 주립 교도소로부터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리 시에 가까운 작은 교도소로 옮겨 준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주립 교도소 중 일부는 중범죄자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이른바 maximum security 수감 시설이다. 이에 비해 소규모 지역 교도소는 훨씬 통제가 덜하므로 지내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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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왼쪽)은 무서운 여자였다.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에,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당시 남자친구에게 총을 여섯 발이나 쏘아 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며, 어쨌든 배심원이 이를 인정함에 따라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번에는 암스트롱의 남편이 병원에 실려 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뇌출혈로 자연사한 것으로 소견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특별한 부검 조사 없이 자연사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암스트롱의 고등학교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는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 박사로 평판이 자자했으며, 특히 문학, 역사, 법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편집증과 자기애도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의 집을 수색하던 경찰이 온 집안에 널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려 180kg의 버터와 320kg의 치즈가 썩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20년 전의 남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될 때, 심리학자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7번이나 밝혔다. 법원에 의해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암스트롱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목 폭탄 사건에 관련되었다면 그런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되었다. 스스로 똑똑한 데 자부심이 있고 자기과시적이며 정서가 불안한 그녀가 그런 엄청나고도 자랑스러운 비밀을 오래 간직할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웰스 사건과 관련한 FBI와의 면담에서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그녀가 목 폭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 모의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방용 시계들은 자기가 주었다는 것, 그리고 웰스가 은행 강도를 벌일 때 자신이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담하고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은행 강도 계획은 대체 누구에 의해 계획되었단 말인가. 암스트롱은 텔레비전 중계탑 부근에 사는 로드스타인이 바로 그 주모자라고 지목했다. 모든 일은 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냉동 시체를 신고한 것도 웰스 사건을 서둘러 덮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암스트롱의 진술에서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질이 되어 목에 폭탄을 차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은행 강도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불쌍한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사실 인질이 아니라 범행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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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미궁에 빠졌던 웰스 사건의 미스터리는 암스트롱의 돌연한 자백으로 인해 일순간에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빌 로드스타인을 불러다가 자백만 받으면 모든 일이 종결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이미 10개월 전, 그러니까 웰스 사건이 발생한 2003년 8월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에 림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목 폭탄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것도 완전 범죄라면 완전 범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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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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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말,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피자 배달원 웰스(사망), 중계탑 옆집 로드스타인(사망), 무서운 여자 암스트롱, 그녀의 동거남인 냉동 시체 제임스 로든(사망, 실제 가담 여부는 불명확)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이 사건 모의에 가담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비전 수리공이었다가 마약 판매상으로 변신한 케네스 반스(왼쪽)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였다.) 그는 암스트롱의 또다른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남자 관계도 상당히 복잡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반스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사람은 그의 처남이었다. 반스는 암스트롱이 자백한 사건 진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웰스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반스를 데려다 놓고, 웰스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면 형기가 대폭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하여 압박했다. 반스는 형기 연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데 동의했다.

반스의 진술은 암스트롱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반스는 사건의 모든 계획이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이 범행을 계획하고 주변의 남자들을 총동원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암스트롱은 자기 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탓에, 집이고 뭐고 다 날리고 자기에게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일을 막는 방법은 유산을 바로 상속받는 길밖에 없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가 빨리 죽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마약상인 반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은행 강도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반스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수사관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황과 잘 맞았다. 웰스 사건은 2년 반 만에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해인 2006년 2월, FBI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그녀의 변호사를 접견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므로 그녀를 웰스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하겠다고 통지했다. 암스트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으나, 특이하게도 수사에 협조하는 데에 동의했다. 현장 검증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리 시 여러 곳에서 벌어진 현장 검증에서 암스트롱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이 있던 곳과 사건 관련 장소들을 정확히 지목했다. 범행 장소를 차량으로 이동하던 도중, 암스트롱은 형을 경감해 주겠다는 증서를 써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도 그녀를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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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 사건이 벌어진 지 4년 만인 2007년 7월, 연방 검찰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지부의 검사는 마침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암스트롱과 반스가 사건 관련자로 처벌되리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모자로 확인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로드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 배달원 웰스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4년 동안 수천 회의 면담과 조사를 통해, 그 동안 불쌍한 희생자로 알려진 웰스가 범행 모의의 초기부터 가담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웰스는 은행 강도 계획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인질 역할을 하기로 하는 데 스스로 동의했다고 한다. 범행 지시서를 들고 보물찾기 흉내를 내다가 돈을 다른 공범에게 전해주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보물찾기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장치였다. 범행이 끝난 뒤 웰스는 인질로 간주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었다. 

그러나 웰스는 범행 계획이 진행되면서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으며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고 한다. 그가 손을 떼고 싶어 한 결정적인 계기는 목 폭탄이었다. 맨 처음 웰스가 인질 역할에 동의한 것은 목 폭탄을 가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이 폭탄은 진짜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보였던 보물찾기는 실제로 웰스의 목숨이 걸린 죽음의 레이스로 변질되었다. 웰스는 이러한 계획 변경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자기 목에 진짜 폭탄을 달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은행 강도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의 기자회견장에는 웰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검찰이 발표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고함을 치며 항의했다. 웰스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발표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 발표에는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여럿 있었다. 웰스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목숨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 당일 태연히 범행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주모자로 지목된 암스트롱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그녀가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범행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추가 사항을 발표할 때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추가 발표에서, 웰스의 보물찾기가 모조리 가짜였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폭탄을 제거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어떤 열쇠나 번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폭탄은 일단 장치된 이상 무조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웰스는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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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마약상 반스는 웰스 사건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범행 공모와 불법 무기 혐의로 기소되어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발표에서 남았던 의문점은 함께 진행되던 암스트롱의 재판 과정에서 깨끗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밀고 당기는 씨름 끝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재판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암(腺癌) 진단이 나왔다. 법원은 그녀가 정확한 의학적 진단을 받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작년인 2010년 8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스트롱의 병세에 대한 의사의 최종 진단이 법원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3~7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검찰은 재판을 서둘렀으며, 2010년 10월에 재판이 속개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암스트롱을 기소하는 검찰의 최대이자 유일한 증인은 공모자인 마약상 반스였다. 반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반스는, 은행 강도 계획의 총지휘자가 암스트롱이며, 그녀가 로드스타인과 웰스를 끌어들여 계획에 참여시켰다고 증언했다. 

로드스타인과 반스는 암스트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전 애인과 오랜 친구). 피자 배달원 웰스는? 그는 반스의 친구였다. 웰스는 사건 당시 한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반스로부터 마약을 사서 매춘부에게 주면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웰스는 반스에게 마약 대금 빚을 지고 있었다. 그도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웰스는 폭탄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범행 모의에 참가했다. 그가 폭탄이 진짜임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당일 피자 배달을 핑계로 하여 중계탑에 나가 다른 공범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공범들과 싸우며 달아나려 했으나, 누군가가 총을 겨누어 그를 제지하고 결국 목에 폭탄을 채워 버렸다. 

반스가 이런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석에 있던 암스트롱은 몇 번이나 "거짓말 마라!" 하고 소리쳤다. 재판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피고 암스트롱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이틀 동안 5시간 30분에 걸친 발언을 하면서 검찰을 비웃고 조롱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장광설이 튀어나왔으며, 울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판사는 50회 이상 그녀의 발언을 제지해야 했다.

암스트롱의 주장은 자신이 주모자가 아닌 단순 협조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계속 된 그녀의 긴 발언 동안 피자 배달원 웰스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웰스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어요. 사건 당일 주변에 있었지만 누가 강도를 벌이는지는 몰랐어요. 나는 그 이름을 그가 죽던 날 뉴스에서 처음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11명과 남성 5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11시간의 장고 끝에, 은행 무장 강도, 범죄 공모, 범죄에 폭발 장치의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영화 같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몇 년 동안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암스트롱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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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끝났다. 수사도 끝났고 재판도 형량이 확정된 최종 선고만 남겨 놓고 있으므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FBI의 범죄 수사 요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뒤 대학에서 범죄학을 가르치는 짐 피셔가 그다. 그는 피자 배달원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목 밑의 폭탄이 터져 길 위에서 죽었다는 엽기적인 소식을 들은 이래,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보도된 모든 기사를 분석하고 FBI가 발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왔다. 그 결과 피셔는,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매조리 암스트롱이 이 범죄의 총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셔가 주목한 것은 사건 직후 FBI의 행동분석팀에서 목 폭탄 계획을 설계한 범인에 대해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은행 강도 사건과 전혀 다르며, 여러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범인은 여럿의 범행 동기를 가졌음에 틀림없고, 그 중에서 돈은 주요 동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은행 강도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은 웰스가 실제로 돈을 가지고 나오는지,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은행 강도짓은 그저 경찰이 웰스가 소지한 지시서에 제시된 대로 허겁지겁 장소를 옮겨 가며 '보물찾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역할만을 했으리라고 분석됐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아버지를 죽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으로 단정한 검찰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FBI의 분석 보고서는 범인이 기계를 다루는 데 능하고 과학 지식이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검소한 성향의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셔가 보기에 중계탑 옆에 살던 빌 로드스타인은 이런 묘사에 정확히 맞았다. 그는 폭탄을 만들 만큼의 지식이 있었으며 (검찰도 폭탄의 실제 제조자는 로드스타인이라고 인정한다), 범행 지시서에 묘사된 것과 같은 번듯한 고급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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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교수에 따르면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경찰을 가지고 놀았다. 웰스에게 넘겨 준 범행 지시서를 통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추적한 끝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냉동된 시체를 신고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자기과시형 떠벌이 공범자 암스트롱을 교도소에 처넣음으로써 웰스 사건이 쉽게 누설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암스트롱 재판의 최후 신문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공들여 수행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실패하고 만 범죄극"이라고 규정했다. 만일 이 범죄의 동기가 돈을 강탈해 내는 것이었다면 검찰의 규정이 맞다. 그러나 다른 동기가 있다면?

피셔 교수는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명민함을 과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으나 인생에서 실패하고 은둔하여 사는 사람으로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드라마가 방송의 톱 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꿈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 공범을 구성했으며, 그들에게도 범죄의 일부 측면만을 알려주어 전체 구도를 모르도록 했다.

피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으로 수사도 받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완벽하게 경찰과 세상을 속인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작자입니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범죄 전문가 피셔 교수의 추정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암스트롱의 주장도 피셔의 추론에 가깝지만, 적어도 검찰과 배심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실패한 천재 로드스타인이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을까.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암스트롱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일까. 로드스타인이 죽어 버렸으므로 사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한 암스트롱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은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인 2011년 2월28일에 이리 시 지역 법원에서 열리게 된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한편 범행의 공모자이면서, 한편 피해자다. 사건 직후, 웰스의 건너집에 사는 니버 벨은 그가 은행 강도를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이웃이 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그는 천성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물질적인 데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이것은 그가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나온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며 이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 왔다. 그가 목에 폭탄을 매단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는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문 하나를 여전히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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