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인생을 종료합니까?
→네
아니오
지금 인생을 종료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수십 년
인생을 종료하는 동안,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힘껏 살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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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나와 쌍둥이 여동생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암에 걸려,
우리들 남매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들 남매가 초등학생이 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동생과 함께 집에서 놀던 중, 옆 집에 불이 났다.
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집에도 옮겨 붙었다. 어머니는 일로 집을 비우신 상태였다.
여동생의 손을 잡고 방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방문 손잡이가 화재의 열기로 녹아버려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손에 화상을 입었다) 방은 2층이었고, 어린 아이들이었던 우리는 창문으로 탈출할 수도 없었다.
난 누군가 도우러 올 때까지, 열로부터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이불로 여동생을 감싸고 필사적으로 껴안았다.
그러나 이제 나도 여동생도 서서히 한계가 머지 않았다··라고 생각한 그 때. 누군가 내 몸을 감쌌다.
우리들은 무사히 살아났지만, 어떤 경위로 집에서 탈출했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은 훌쩍훌쩍 우는 얼굴의 어머니, 그리고 화재 속에서「그 손, 아프지·· 훌륭하구나.
남자의 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있는거야」라는 말과 함께 쭉 누군가가 꼭 껴안고 있어 준 것,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인상이 반 삭발에 조금 쳐진 눈, 그리고 왼쪽 눈 아래 작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라는 것 뿐.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 큰 우리들에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생전에 남기신 편지를 보여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무렵, 그리고 아버지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편지였다.
그 안에는 가족 사진이 몇 장 들어있었다.
흔히 있는 전개지만, 사진 속의 웃는 아버지는 반 삭발에 조금 쳐진 눈, 그리고 왼쪽 눈 아래 작은 상처가 있는 분이었다.
배움이 얕으셨던 탓인지 맞춤법도 엉망진창이었던 그 편지는 읽기조차 힘들었지만 편지 맨 마지막의 문장만큼은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남자의 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나는 가족을 지킨다」
나에게 아버지는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위대하고도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내와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를 이 손으로 지켜 나갈 것이다, 아버지를 본받아.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오니즈카의 아버지가 바로 위 글의 아버지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오니즈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지만. 나는 그 캐릭터가 가진 사소한 것도 가지지를 못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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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과거에 도박으로 70만엔의 빚을 진 적이 있었다.
빚을 갚느라 봉급은 거덜이 나고, 결국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 파산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었기에 6살부터의 소꿉친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니가 그렇게까지 바보같은 놈인 줄은 미쳐 몰랐구나」라면서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거절당할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쇼크였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난 후, 친구는 양손에 아주 큰 슈퍼의 비닐 봉투를 들고 집에 왔다.
쌀, 야채, 냉동식품, 레토르트 식품, 과자 등 대량의 식료품이 들어있었다.
「돈을 빌려주면 또 도박에 써버릴 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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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입사 4년 차이던 내 첫 결혼기념일 날.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아차하면 전 직원이 회사에서 다음 날까지 야근을 하게 될 판이었다.
"결혼기념일이니 좀 보내주세요" 하는 소리는 감히 꺼낼 수 조차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5시쯤 되었을까, T과장이 나를 불러내 봉투를 건내주며,「이것 좀 K물산에 보내」라는 것이었다.
K물산은 좀 거리가 있는 거래처라서, 지금부터 차로 달려도 8시까지 댈 수 있을지조차 애매했다.
「대신에 그거 보내고나면 집에 돌아가도 좋아」
라고는 했지만 바로 집에 간다고 해봤자 K물산에 그걸 보내고 나면
아무리 빨리 돌아가도 11시가 넘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길이 막히는 것을 감안하면 더 늦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불평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알았습니다」라고 말하고 봉투를 받았다.
내용을 한번 훑어보려고 하자 그것조차도「내용은 차 안에서 보면 되잖아! 빨리 가기나 해!」라는 무정한 T과장.
나 역시도 짜증이 폭발했기에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목소리로「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과 내의 다른 직원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탄 후 봉투를 열자 서류가 아니라 한 장의 종이조각이.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세요」
라고 쓰여져 있었다.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그 다음 해, T과장은 친가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 퇴사했다.
송별회 자리에서 그 날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를 하자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시치미를 뚝 떼기까지. T과장님, 지금쯤 건강히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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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알바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밤 8시쯤이 되면 언제나 우리 가게에 들러, 메뉴 중에 제일 싼 소고기 덮밥만 주문하는 손님이 있었다.
구멍투성이 장갑과 지저분한 작업복을 보며 힘든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았다.
그래서 소고기 덮밥을 급히 만들어서 주면 허겁지겁 드시고는, 호쾌하게 잘 먹었다면서 400엔의 그 요금을 척 건내주고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왠지 그 분께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평소처럼 소고기 덮밥 보통을 주문하신 손님께 소고기 덮밥 곱배기 수준으로 푸짐하게 드렸다.
그러자 역시 그 손님은 평소처럼 게걸스럽게 드시고는 500엔(소고기 덮밥 곱배기 가격)을 주고 가셨다.
나름대로 좋은 뜻에서 그리한 건데, 뭔가 괜한 일을 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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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한밤 중에 술에 잔뜩 취한 누나가 나를 억지로 깨웠다.
자다가 대뜸 일어난 나는 멍한 얼굴로 침대에서 간신히 상체만 일으켰고,
누나는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여자를 단 한번도 사귀어 본 적 없는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불가의 영역.
5분 정도 실컷 운 다음 누나는 간신히 얼굴을 들고는
「기억해 둬. 이게 남자 가슴의 유일한 용도야」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뭔가 소중한 것을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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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다! 싶은 때가 올 때까지 잠시 숙이고 있을 줄 아는 것이 "자신"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자랑을 떠들어대는 것이 "과신"
이유 없게 바보 취급 당했을 때 반항하는 것이 "당연한 프라이드"
바보 취급 당했을 때 바보같이 대응하는 것이 "과도한 프라이드"
칭찬을 받았을 때 물러날 줄 아는 것이 "겸손"
자기자신부터 스스로를 바보취급 하는 것이 "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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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맞벌이 부부. 귀가 시간은 거의 같아서 식사는 함께 만들고 있다.
하지만 뒷정리는 항상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데, 나는 아내와의 가위바위보에서 100%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아내는 매번 주먹·가위·보의 순서로만 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나 이겨 버리면 내가 그녀의 패턴을 파악했다는 사실이 발각되기 때문에,
이따금 일부러 져 준다. 특히 아내가 이겼을 때 기뻐하는 모습은 꼭 어린애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일요일 날 모처럼 오랫만의 데이트를 나갔는데, 길거리에서 가위바위보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거기에 참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이 어이, 그만둬. 너는 항상 뻔한 패턴으로 가위바위보를 하잖아. 근데 무슨 대회야?」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아내는 무려 결승까지 올라갔다! 첫판에서는 갑자기 가위부터 내고, 2회전, 3회전 모두 랜덤하게 내고 있었다.
결국 아쉽게도 결승에서는 져 버렸지만, 준우승 상품과 참가상을 받았다.
「너 설거지 가위바위보에서는 항상 그렇게 약한데 오늘은 대단하네?」
라고 내가 말하자,
「그거, 오빠는 회사 일 때문에 지쳐 있을게 뻔한데,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야지」
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즉, 일부러 뻔한 패턴으로 가위바위보를 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난 아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내의 배려에 순간 감동이 찌릿하게 왔을 무렵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다음 주부터는 진짜로 가위바위보 할테니까, 각오해!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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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아이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간신히 주말이 되어서야 나은 아이에게, 남편은 그 기념선물이라면서 장난감을 사왔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에게 건내주기 전 남편은 아이에게 물었다.
「이건 제일 고생한 사람에게 주는 포상이야. 제일 고생한건 누구지?」
아이가「나! 나!」라고 대답하자, 남편은「제일 고생한건 너를 간호한 엄마야.
헤헤, 그러니까 이건 엄마한테 주자」라며 농담조로 말했다.
결국, 장난감을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이에게「정말로 이 장난감을 받고 싶으면,
엄마한테 고마워요 하고 말해」라고 남편은 말했고, 아이는「엄마, 고마워요」라고 대답하고는
장난감을 선물로 받아 아주 기뻐했다.
아이도 기뻐했지만, 나도 지난 일주일간의 고생이 보답받아서 아주 기뻤다.
나라면 장난감까지는 사줄지 몰라도 그렇게 부모님의 소중함에 대한 교육까지 시키는 데에까지 신경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런 예의범절 교육을 하는 남편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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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다.
그 때문인지, 난 사춘기 때 꽤 반항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엄하셔서
내가 교복 스커트 길이를 짧게 줄이면 나를 심하게 때린다던지,
머리카락을 살짝 갈색으로 물들이면 머리에 먹물을 끼얹는다는지 하는 그런 분이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엄한 것도, 피가 이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엔 대화도 없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 때 운동을 하고 있던 난, 대회의 연습 때문에 매일 귀가가 늦어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역에서 집까지의 길을 약 15분 정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쫒아온다! 방향도 똑같다!
하지만 어두워서 얼굴은 안보였다. 일부러 밝은 쪽으로 걸어가면 그 사람은 숨고…. 다음날도 그랬다. 그 다음날도….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그걸 말하자 범인은 아버지였다.
매일 귀가가 늦은 나를 걱정해서, 회사에서 잔업도 빠져가며 역에서 집까지 매일 1시간 걸쳐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절대 그 일을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 같다.
새침떼기 아버지에게 반했다.
덧붙여서 아버지에게 그 일을 말하자, 아버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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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과 100만엔,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을 고르겠어?
24
어떻게 생각해도 사람의 생명 쪽이 소중하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구···.
25
무슨 입에 발린 말을 하는거지? 솔직히 100만엔이 더 탐나지 않나?
26
> 25
니 목숨과 100만엔 중에서, 난 니 목숨이 그래도 더 귀하다고 말하고 있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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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가지 않을래?」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다.
당시는 대학 졸업반으로, 취업 때문에 엄청 바쁘던 때였다.
「바빠서 안 돼」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좀처럼 단념하지 않았다.
「어떻게 좀 안 돼?」
「지금은 중요한 시기라구. 취직자리를 구해야할 시기라니까.」
「그래···」
어머니는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왜 갑자기 오키나와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 후에 어머니가 죽었다. 암이었다.
의사에게서는 여생 반년이라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의사나 친척에게는 아들이 지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억척스럽게 나를 대학까지 보내주신 어머니.
오키나와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은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만 살아 온 어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다.
숙모로부터 어머니가 병원에서 끝까지 가지고 있던 초등학생 무렵의 내 그림 일기를 건네받았다.
파라락 넘기다보니 사진이 사이에 끼어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그림 일기에는
「오늘은 오키나와에 놀러 왔습니다. 바다가 예쁘고 구름이 예쁩니다. 너무 즐겁습니다.
너무 심하게 놀아서인지 여관에 돌아가고 나서 전신이 열이 나고 지독하게 아팠습니다」
···리는 내용이 써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크면 돈을 벌어 부모님을 오키나와에 데려가 준다.", 라는 말을 내가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 호언장담 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쭉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페이지 사이에 끼어있는 사진에는, 나를 중심으로 어머니 아버지가 뒤에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단란한 우리 세 가족이 모래 사장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찍혀있었다.
난 어머니가 전화를 해 왔을 때, 어째서 어머니의 유일한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었던 것일까.
더이상 보은할 수가 없다···눈물이 주르르 흘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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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 동료에게 10만엔을 빌려주었다.
이미 빌려 줄 때부터 그 돈은 잊기로 했었지만 2년이 훌쩍 지난 어느날 밤,
그는 내 아파트에 전액을 봉투에 넣어 가져왔다.
「늦어서 미안해, 이자를 붙여서 갚고 싶었지만 우선은···」이라고 하길래,
농담으로 「그럼 10만엔이니까 500엔 이자를 줘!」라고 대답했다.
그는 지갑으로부터 500엔짜리 동전을 꺼내주곤
「고마워, 정말 덕분에 살았어···」라면서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방에 돌아와서 정말로 후회했다.
그의 지갑 안에 지폐가 한 장도 없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과 아이 둘을 거느린 대식구라서 형편이 어려웠다.
내가 후회한 것은, 그 500엔이라는 돈을 마치 별 의미 없다는 듯이 그에게 이야기해 버린 점이다.
점심 식사를 자주 굶던 그. 역까지 몇 킬로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도 종종 발견하곤 했다.
약국에서 딱 한 끼분의 감기약을 사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그 농담조로 말한 500엔만 아니었다면 그는 뭐라도 일단 먹을 수 있었을테고,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생일에 과자라도 사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전직했고, 결국 사과라고나 할까, 실수에 대한 내 마음의 보상이랄까,
뭐 그런 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식 불통이 되었다. 그 날 밤 이후, 난 남의 앞에서 돈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자부심 강한 그의 인생에, 앞으로는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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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시라 2:50(江頭 2:50:에가시라 2시 50분)'이라는 독특한 예명을 가진 한 일본 개그맨의 명언입니다.
꽤 오버/저질개그(?) 스타일이라 그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편입니다만 개그에 대한 사명의식이랄까
하는 점은 꽤 멋집니다. (요새는 TV에 거의 나오지 않는 편...)
「태어났을 때부터 눈이 안보이는 사람에게, 하늘의 푸름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지?
이런 간단한 것마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는 개그맨 실격이야」- 에가시라2:50
「눈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떻게든지 웃기고 싶다. 그 때문에 경찰에 잡혀가도 좋다.
수명이 줄어들어도 괜찮다」 - 에가시라2:50
「기분 나쁘다는 말을 듣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따금 죽어버려!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이런 인생,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 에가시라2:50
「1분기 동안의 고정출연보다, 1회출연일지라도 '전설'이 되고 싶다」- 에가시라2:50
* '수명이 줄어들어도 괜찮다'는 뻔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종종 위험한 개그를 하기도 합니다.
소금을 덩어리채로 엄청난 양을 한번에 먹는다거나, 와인 한 병을 원샷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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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옆 자리의 여자애가 오줌을 쌌다.
평소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아마도 차마 수업 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참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려버린 것이겠지.
짝이었던 나는 누구보다 빨리 그것을 깨달았고 곧장 아무 말도 없이 복도로 뛰어나가 물통에 물을 가득 받았다.
물론 교사는 나를 뒤쫓아 왔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물통을 들고 교실에 돌아가 그 여자아이에게 끼얹어버렸다.
당연히 교실은 난리가 났다. 반 친구들은 나를 향해 엄청난 폭언을 해왔고,
나는 선생님에게 얻어맞으면서까지 왜 그런 짓을 했냐고 힐문당했지만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결국 여자아이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갔다.
여자애의 부모는 맹공격을 퍼부었고 우리 부모님은 단지 굽실굽실 사죄만 할 뿐.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정말 멋있는 녀석. 존경하고 싶어질 정도.
때론 이론보단 행동이 먼저 등장할 때 더 멋진 효과를 발하는 것 같군..
최소한 글쓴이는 자신의 입장보다는 짝을 더 배려해준게 아니겠는가. 그 방법이 어떻다 하더라도...
그리고 짝을 위해서 자신이 한 일의 댓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저 과감함과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