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돋는 모차르트 이야기

쿠리메롱 작성일 11.03.21 23:29:59
댓글 0조회 3,346추천 1
이번엔 내가 모차르트의 재밌는 얘기들을 해주겠네.


모차르트는 술과 당구 등 잡기와 음주가무를 좋아했었는데, 특히 곡을 만들 땐 이런걸 제목으로도 만들었네.


"내가 이번에 새로운 곡을 작곡했는데, 한번 들어볼래?"
"오, 그래? 네가 작곡했다면 틀림없이 히트 칠 거야. 제목이 뭐야?"
"응, <내 똥꼬를 핥아라(lick out my asshole))야. 내가 작사 작곡 다 했지."


믿어지진 않지만 이 곡은 모차르트가 26세 때 작곡한 곡일세.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냥 좀 어지간히 똥을 좋아하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모차르트는 병적으로 집착했지.


현존하는 모차르트의 편지 371통을 분석해보면


무려 39통이나 되는 편지가 똥과 방귀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하네.


'오! 너의 똥을 보고 싶어. 너의 똥이 빠져나오기 전에
들리는 야릇한 소리가 내 귓가를 울리는구나.'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이런 기행을 분석한 결과 그를 분변음욕증
(이성의 분뇨에 심취하여 배설물을 보거사 냄새를 맡거나 배설 행위를 보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


환자로 진단했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변태 행위가 26세 때 멈췄다는 것이지.


왜냐? 결혼을 한 것일세.


그러나 이쯤에서 멈추면 모차르트가 아니지. 결혼과 동시에 '똥' '방귀'라는 단어가 들어간 편지는


쓰지 않았으나 대신 더욱 외설적이고 변태적인 편지를 썼네. 말년의 모차르트는 빚에 쪼들려 죽어가고있었지.


아내 콘스탄체는 모차르트를 빈민 묘지에 묻고, 상속을 포기하기까지 하네.


살아생전에도 '히트곡 제조기'였던 모차르트. 대체 왜 그렇게 가난뱅이가 되었던 것일까?


전*의 그는 귀족 자제들의 피아노 개인 교습, 연주회, 작곡료 등으로 연간 1억 3천만원을 버는


억대 연봉자였네. 그런데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았으니... 날마다 파티를 여는 것은 물론이고,


소질도 없으면서 내기 당구에 빠져 순식간에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지.


그쯤 되면 손가락이라도 잘라야 할 법한데 연주를 해야 하니 그것도 불가능했네...


그렇게 모차르트는 가난과 함께 죽었지만, 19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만 200년이 되는 해에


1991년은 '볼프캉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해라고 할 만큼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지.


우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이건 식품이건 이미 그의 이름이 상표로 등장했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념품도 완전히 모차르트 일색인 것은 물론, 그의 이름은 각종 관광 상품의


대명사로 속속 개발되었지. 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 시는 공항 이름을 '모차르트'라고 바꾸었음은


물론, 그 당시 최대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의 수입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지. 게다가, 모차르트


이름을 건 치즈만 해도 1년 매상이 무려 420억원 일세....


여하튼, 긴 내 글을 읽어주어서 욕봤네. 

----------------------------------------------------------------------------------------------------
퍼온거예요 
말투가 마음에 안들었더라도 이해바랄께요 ㅎㅎ
쿠리메롱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