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에서 노이엔빗터란 분이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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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과 대단히 닮은 문화와 생활 양식을 보여줍니다만.
막상 살아보면, 너무나 다른 국민성에 놀라버립니다.
제 경우 일본어가 능통해서, 일본으로 파견받은 케이스이고...
일본 문화, 역사에 대한 지식도 꽤 많은 편입니다.
일본 가기 전에, 한국에서 일본 게임의 번역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보수 받고 말이지요. 스텝롤에 제 이름 단독 번역으로 올라갔으니..
보수야 얼마 안되지만, 어릴 적 꿈은 하나 이룬걸까요. 콘솔 게임에
스페셜 땡쓰로라도 이름을 올려보고 싶었으니..)
그런데, 결국 일본에 와서 생활을 해보니...
컬쳐 쇼크가 이만저만한게 아니었습니다.(데칼챠~!)
미묘한 부분부터 꽤 굵직한 부분까지 많은 차이가 납니다.
우선, 인간과 접하는 방식이 아주 다릅니다.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요.
플스(주1)를 좋아한다고 모두 사이좋을 수는 없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서양 게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일본 게임 좋아합니다.
JRPG 좋아한다고 해도 테일스(주2) 씨리즈 좋아하는 사람 있고, 파판(주3) 좋아하는 사람 있지요.
파판 좋아한다고 해도, 13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6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7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사 6 좋아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장면, 캐릭, 이유 등은 제각각입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찰이 생깁니다.
추위 속의 고슴도치가 갖는 딜레마지요.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선 다가가야 하는데,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가 찌릅니다.
인간과 인간이 거리가 좁혀진다는 것은...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동시에 적을 만들 수 있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여기서 게임 좋아하는 인간들끼리 피튀기게 싸우는 것도 그때문이지요.
서로 어떤 문제에 대해 마음이 맞다가도, 어떤 문제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립니다.
동감하는게 있어도 상대가 마음에 안든다고, 무시하거나 반박하기도 하고...
더 꼴보기 싫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손을 잡기도 합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극단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시마곤조, 섬근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일본은 섬이라,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전국시대 이전에는 지역별로 서로 나뉘어
싸우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렇지요.
게다가 재해가 수시로 밀어 닥칩니다. 태풍, 지진 등...
적을 만들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둡니다.
AT-필드(주4)지요. 이들의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하심 됩니다.
이들은 결코 쉽게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대신에 적을 만들지도 않지요.
서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안하고...
애매하게 말하는 것을 즐깁니다. 아니, 애매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국. 이들은 평온하고 조용한 평화를 손에 넣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적은 없지만, 친구도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존댓말을 씁니다.
모두가 미소를 짓지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미숙'합니다.
실전 경험이 없고, 밀고 당기고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오죽하면, 여자가 고백하기 위해서 발렌타인 데이를 만들고...
여자가 고백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일본 만화를 보면, 여주인공의 절반은 소꼽친구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사촌동생, 친동생, 학교 친구 순일까요...--;
어린 시절의 인연에 집착하는 경향도 무시무시한데...
AT-필드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린 시절이 아니고선...
인간과 제대로 된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치명적인 사회 환경이 낳은 결과입니다.
인간 경험이 미숙하니, 인간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가 리드해주는 인간 관계를 선호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애들은 막되먹은 여왕님 같은 여자 캐릭터가 인기가 있지요.
아니면, 리드할때 부담 없는 관계, 상대가 백치거나 메이드이거나...
일본 여성들이 한류 드라마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남자가 강인하게 리드해 나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자건 여자건...--;)
일본이 나쁘고, 한국이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친구가 쉽게 만들어지지만, 그 친구가 쫌 지나면 적이 되기도 하고..
어차피 적들이 없지는 않지요.
노골적으로 인사해도 외면하거나, 대놓고 욕하거나 노려보는 그런 적이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스트레스 받지요.
일본애들 왜이러나 싶으면서도, 가끔 한국 사람 만날때, 걸끄러운 사람이 보이면..
'역시 적이 없는게 좋지 않나? 적어도 앞에선 가식적이라도 웃어줬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어쩔 수 없습니다.
'나카마' 동료라는 말의 무게는 그래서 특별합니다.
일본인들은 외롭습니다.
한국인들은 소꼽친구 별로 안챙깁니다. 왜? 어차피 취향이 같아야
같이 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본인들은 소꼽친구를 잃어버리면, 진짜 마음 둘 데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눈앞의 친구만 챙기지만, 일본 사람들은 연말 연시에...
연하장을 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일년에 두번 엽서를 보내는 것으로...
어떻게든 끈을 이어가는 겁니다.
동료와의 여행, 친구도 적도 생기는 그런 RPG에 일본인들이 매료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거야말로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거든요.
이성적인 판단, 현실적인 판단? 그런건 일상생활에서 질리도록 겪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떠나서 울고 웃는 '나카마'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합니다.
미숙한 인간관계, 그리고 동료에 대한 동경...
갈라파고스 일본의 현실 중 하나지요.
파판 13의 스노우라는 캐릭터, 욕 많이 먹더군요.
무책임하다고 말이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비교하면 한국 사람은 무책임합니다. 적당적당이 특기지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집니다.
멋지지요? 절대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절대 책임질 소리 안합니다.
무조건 애매하게 말하고,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무조건 뒤로 빠집니다.
용기? 적극성? 책임감?
일본인들에게 참으로 찾아보기 힘든 덕목들입니다.
무책임에게 내뱉은 말, 어떻게 수습하려고 애써보다가 내빼는게 한국인이라면..
이들은 책임 질 소리를 아예 내뱉지 않다보니, 수습하려는 노력조차 안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 손으로 어찌해 볼 도리도 없는데...
무책임한 호언 장담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바보' 캐릭터...
그게 일본인들에겐 매력적인 캐릭터인 겁니다.
제가 파판 13을 열심히 욕하긴 합니다만, 스토리 후반부의 문제일 뿐..
캐릭터 설정 만큼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한 인간관계, 동료에 대한 집착, 자취를 찾기 힘든 용기.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유는 있는 겁니다.
외롭고 힘든데, 현실을 타파하기 힘들다보니, 그런 것을 게임 속에서 바라는 것이지요.
서양 게이머들이나 한국 게이머들이 다른 세계로의 외유를 바란다면...
그들은 동료들과 희노애락을 나누는 그런 경험을 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용자를 갈망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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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플스-일본 히트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준말
2.테일즈시리즈-일본 유명 RPG게임시리즈
3.파판-파이널판타지,일본유명 게임시리즈
4.AT필드-제페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에바가 쓰는 기술. 일종의 '방어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