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6.25 동란 61주년이네요..

쪼지사랑해 작성일 11.06.25 04: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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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6.25 사진을 다시 올리며  

(펌) http://kr.blog.yahoo.com/acftacft/3318?kbsp=625%BB%E7%C1%F8&kbsref=etc&mp=&mpc=4

 

625 한국전쟁,  60년 전의 우리나라에 있었던 비극.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과연 625 노래를 아는 사람이 얼만 될까?
1945년 독립과 함께 찾아온 국토의 분단이 아직도 우리는 국방비문제부터, 미군의 주둔, 전작권, 햇볓 정책, 탈북자 등의 끊임 없는 북한과의 논쟁속에 살아가고있다.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이 남한에 존재하면서, 정치도 경제도 많은 혼란속에 국론을 분열시키고있다.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있는 셈이다.
세계최초의 UN군 파병 사례... 21개국이 지원하면서 이디오피아 등의 저 머나먼 아프리카 작은 나라에서 부터 영국, 미국 등의 서방 주도국가 들이 참전하였다.
3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우리는 남은 것이 없다할 만큼 많은 것을 태워버렸다. 수십만명의 민간인과, 군인들이 사망하였고, 그 사망는 무장공비 침투나, 천안함과 더불어 계속되고있다. 
제발 이 전쟁은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공했느니, 지금의 작전계획이 북침 계획이니 하는 터무니 없이, 아는 지식도 없이, 증거도 없이 떠들어 대는 말로 죽어간 희생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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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하면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진. 북한의 M-26탱크가 잠시 멈추어있고, 피난을 하는 건지 음식을 구하러 가는 건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누나와 업힌 남동생. 1951년 6월 9일 찍힌 사진이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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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10일. 미군병사가 뒤로 손이 묶인체 사살된 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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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가 1950년 9월 26일로 나온걸로 보아 아마 인천 부근인듯 하다. 미해병의 탱크가 포로를 잡고있는 육군을 지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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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젊은 사람들은 모두 징집되었다. 사진은 신병 훈련소로 향하는 기차에 칸막이도 없이 노출된 채 앉아있는 징집병들. 195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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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초기 철수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의료수송헬기가 부상자를 후방으로 이송하고있다. 헬기 착륙지점에 부상자를 옮길 들 것을 준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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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공격을 받은 후 북한의 탱크 운전병이 부서진 탱크와 함께 죽어있다. 무서울것 없이 진격하던 소련의 탱크도 강력한 한국의 낙동간 전선 반격에 차츰 파괴되어갔다. 사진이 찍힌 날자는 1950년 8월 13일이며 장소는 안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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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8월 16일 북한이 낙동강 전선의 총 공격을 계획하고잇다는 정보를 입수한후 B-29 98대가 북한이 집결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역에 총 850톤의 재래식 폭탄을 집중 투하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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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의 AD-3 급강하 폭격기가 2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고있다. 사진의 장소는 신의주에서 북한과 만주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이며 왼쪽이 북한 지역이다. 폭격은 북한쪽의 철교부분을 폭파시키고있다. 사진의 왼쪽에 달 분화구 같은 많은 폭파구가 보인다. 그 동안 많은 폭격이있었음이 확연하다. 1950년 11월의 사진이다. 이러한 공중 공격작전이 중국을 자극하게되고 중공군의 개입빌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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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7월 12일 남쪽으로 후퇴를 계속하면서 임시로 설정된 미군의 작전 지휘소. 이를 볏단으로 위장하고 경계를 서고있는 미군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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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설명서에서 장소는 아곡(Agok)이라고 하나, 아마 잘못된 표기가 아닌가 한다. 1950년 8월 사진으로 한창 후퇴를 거듭하던 시기인듯하다. 마을이 불타고있는것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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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반격이 진행되는 기간인 9월, 미군이 낙동강 후방지역을 공격하여 두명의 북한군 포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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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육군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그동안 1급 비밀로 분류되었던 사진이다. 이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1950년 7월 전선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이 대전지역에서 3일동안 약 1,800 여명의 정치범들을 즉결심판 처형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처형이유는 공산주의 동조자와 북한군이 남한 피난민 깊숙히 위장하고 들어온 간첩의 혐의를 받고있었다. 이들중에는 일부 생존하여 지금도 무고한 민간인들도 있었다고 주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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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4척의 상륙함이 전투 물자를 하역하고있다. 1950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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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알려진 한국전쟁 지휘관 맥아더 장군. 9월 15일인데도 두꺼운 가죽 자켓을 입고있다니... 역시 장군은 폼생 폼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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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월 30일 대전 시가지. 의외로 길이 반듯반듯하다. 저 폐허가 불과 60년전인데,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상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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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수색 작업중 북한군 포로. 1950년 11월 16일. 북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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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지역에서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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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복작전중인 국군과 미군. 한 민간인이 이 땅굴속에 북한군이 숨어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슈류탄을 투척하고있다. 또 다른 군인은 북한군이 튀어 나올것에 대비하여 기관총을 준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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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전쟁이다. 약 400여구의 시체가 대전 교도소에서 발견되었다.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교도소에 수감했던 국군포로, 민간등을 모두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덤을 직접 팠다. 왼쪽의 사람은 종군 기자다. 교도소 뜰에 옥수수가 높다랗게 자란 것이 가을을 알려주나 보다. 사진은 1950년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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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복후 폐허속의 생존자와 죽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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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10월 북한 지역을 회복하기 위한 미군의 C-119를 이용한 공수작전. 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미군들은 무슨 목적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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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숙천과 선천 지역이라고 표기하고있다. 대규모 공수작전이 펼쳐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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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역 변두리에서 미군이 탱크를 앞세워 북한의 파르티잔들을 소탕하고있다. 195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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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는 불명확하나 많은 격전이있었던 931미터 고지. 항공촬영을 통해 북한이 파놓은 정교한 참호를 볼수있다. 그리고 많은 포화와 항공폭격으로 나무는 거의 다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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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10월 금봉산의 공산에서 발견된 60여구의 민간인 시체.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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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평양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황주에 진입한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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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원산만으로 진입하는 미군. 1950년 10월, 약 5만명의 미군들이 이곳에 상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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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12월 4일. 그 추운겨울 중공군의 전쟁 개입소식과 함께 자유를 찾아 파괴된 대동강 철교를 타고 목숨걸고 남하하는 북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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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9일. 미군에 포로가 된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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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6일. F4U-5 Corsairs 공군 공격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공군과 대치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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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과 영국, 그리고 우리 국군들의 시신. 합동 매장을 위해 시체를 모아두었다. 장소는 북한 지역 고토리.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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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6 Sabre 제트 전투기가 눈으로 덮힌 적 밀집 지역 공격에 나섰다. 1951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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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속에 손만 보이는 한국군인의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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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카나다 군인들이 배달된 신문을 통해 자기나라 소식을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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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지역의 적 주요 보급지역을 B-26 Invader로 폭격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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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근방에서 화염방사기로 적의 은둔지를 불사르고있다. 195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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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도움을 받아 영국 특공대들이 북한지역 깊숙하게 침투하여 철도 폭파를 위한 폭약을 설치하고있다. 이 작전으로 약 30미터의 중요 철도가 파괴되어 중국에서 북한으로 수송하는 군수물자가 장기간 제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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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많이 밀집한 지역에 B-26이 네이팜 탄을 투하하고있다. 위치은 북한 지역으로 '한촌'이라 표기되어있다. 1951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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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터키 군인이 적으로부터 빼앗은 당나귀를 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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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명의 북한군이 어선을 타고있다가 발각되어 투항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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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역 1951년 5월. 중공군의 시체들. 아직도 머리에서 연기가 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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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 공격중, 북한의 대공라이트가 대공사격을 위해 불을 비추고있다. 이런 불빛을 보고 미공군은 적을 공격하고, 공격후 연기를 보고 다음의 공격군이 다시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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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4월 적의 박격포 공격에 참호속에서 몸을 피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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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된 북한의 대포와 박격포 포탄들. 이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다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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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판문점이된 중립지역에서 정전협정이 서명되고있다. 정전이란 진자도 이긴자도 없이 전쟁을 잠시 쉬는 상태. 다시말해 언제든지 다시 붙자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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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명의 미해병이 휴전소식을 듣고 기뻐하고있다. 이제야 전쟁이 끝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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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에서 경계근무중인 해병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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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중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천안함 희생자 가족의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비친다. 묘비에 하나의 이름만 남겨졌지만, 누구에게도 읽혀지지 않을 이름이지만, 전쟁중 그들은 생명체였고, 가족이있었고, 또 목숨과 정신은 얼마나 죽음의 공포속에서 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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