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등병’은 요사이 관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잇따른 병영 사고 탓에 ‘소위가 몰래 이등병으로 잠입해보자’는 실험에서, ‘이등병이 병장 앞에서 눕도록 놔둬 보자’는 시도까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이등병의 두 얼굴’은, 모두가 ‘군인 가족’일 수밖에 대한민국에게 시리게 다가온다.
#1 6월말 경기도 양평군 20사단에 배치돼 교육을 받고 있던 이재형(24) 소위 등 신임 장교 6명은 교육이 끝나갈 때쯤 사단본부로 불려갔다. 사단장 나상웅 소장은 이들에게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대 진단’을 하라고 지시했다. 장교 교육만 받았던 이 소위는 갑자기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전투모를 쓴 자신을 보자 낯설었다. 하지만 ‘이참에 병영 문화를 직접 느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매주 금요일 20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신병이 배출되는 것에 맞춰, 지난 15일 이들 6명도 다른 이등병과 똑같이 물품을 지급받고 사단 내 여러 부대로 배치됐다. 작전은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이들 6명은 다른 사단 신병 교육대 출신으로 위장됐고, 이 사실은 사단장, 사단 인사참모, 그리고 이들 6명의 소위만 알고 있었다. 일선 부대 지휘관들도 이 사실을 몰랐다.
#2 강한석 육군 9715부대장(육사 34기·소장)은 군내에서 '병영 문화 개선 전도사'로 불린다. 일과 후에도 긴장의 연속인 병영에 출·퇴근 개념을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병영 생활 개선책을 실행에 옮겨 부대 내 사건·사고를 크게 줄이고 강한 부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해병대 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잇단 사건·사고로 군내 구타·가혹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그의 '병영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소장은 20일 본지(本紙)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훈련이 강해서 힘든 군대가 아니라 (내무) 생활이 힘든 군대라는 점과 악습(惡習)을 군기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의 병영 출·퇴근제 도입 실험은 2007~2009년 백두산부대장(사단장) 시절과 1년 전 9715부대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출·퇴근제는 훈련 등 하루 일과가 끝난 뒤 내무반(생활관)에 돌아오는 것을 직장 퇴근과 같은 개념을 적용,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작업이나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병장이 이등병에게 PX에서 음식물을 사오라고 시키거나 이등병이 집에 전화하러 갈 때 선임병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도입 후 이등병도 병장 앞에서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게 됐다"며 "이 제도를 도입한 뒤 1년 만에 9715부대는 전에 비해 폭행·폭언 등 각종 사고가 4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부대 사정상 일과 후에 부득이 작업을 시켜야 할 경우 '마일리지제'를 적용, 작업을 한 만큼 외출·외박 등으로 보상했다.
병장 등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에 진통도 컸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후임들에게 폭언·구타 등을 한 선임병 등 병사 280여명을 징계했다. 새 제도 도입에 대해 "군대 망친다"고 반발하며 부하들을 강압적으로 대한 부사관 20명을 징계했고, 이 중 문제가 심각했던 5명은 전역까지 시켰다. 강 소장은 "과거엔 단순 징계로 넘어갔던 것도 강하게 조치했다"며 "이제는 정착 단계에 들어가 징계보다 상을 많이 준다"고 말했다.
병장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당근'도 제시됐다. 새 제도에 잘 따르는 모범 병장은 주말에 부대 밖에 있는 PC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외출·외박을 내보내 스트레스를 풀도록 한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등이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약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선 "백두산부대장 시절 새 제도를 도입한 뒤 이등병 62명이 천리 행군에 자원해 완주(完走)하는 등 장병들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며 "병영 내 악습은 일제시대의 잔재인데 일본 군대에서는 없어지고 우리에게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세대 장병은 간섭을 싫어하는데 군의 잘못된 서열 문화는 모두 간섭하는 것이고 신세대 장병은 여기에 적응을 못 한다"며 "우리는 훈련장에서 군기를 찾아야 하는데 내무생활에서 군기 찾는 게 문제다. 생활에선 에티켓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