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후쿠시마 상황 [혐오주의]

차가운 작성일 11.08.05 00: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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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으로 몸을 감싼다. 6월 20일 이른 아침, 나는 다카무라 츠토무 민주당 의원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20킬로미터 내의 경계 지역으로 향했다. 다카무라 의원과는 유골 수집 활동 때의 인연으로 알고 지냈고, 에베레스트에서 귀국 후 재회했을 때 "노구치 씨, 제한구역 20킬로미터 내에 남아 있는 가축이 정부 정책에 의해 도살되고 있어요. 저는 계속해 현장에 다니고 있습니다만,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돕고 싶어요. 죽이지 않고 살려 나갈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호소했다. 

지진이 있었던 후 여러 번 피해지역에 진입했지만 내가 방문한 것은 산리쿠 지역이었고, 후쿠시마는 아니었다. 동일한 재해 지역임에도 산리쿠 지역은 후쿠시마와는 피해의 내용이 크게 다르다. 지진 후 (4월 10일부터),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잠시 일본을 떠났지만, 에베레스트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일본에 있었다. 내가 방문한 피해 지역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그리고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는? 에베레스트 등반 중에 만난 서양 등산인도 "켄, 후쿠시마는 어떻게 된 거야?"라고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일본에서 떨어져 있기에 모르는 것이 많았다. 물어도 대답할 수 없었고, 생각하여 "일본은 괜찮아."라며 대답을 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일본에서 "붕괴했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에베레스트에 전해져 왔다. 고교 시절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설마 자신의 나라에서. '도대체, 후쿠시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에베레스트 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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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다카무라 츠토무 의원, 사쿠라이 카츠노부 미나미 소마 시장

귀국 후 다시 만난 다카무라 씨에게 20킬로미터 내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다카무라 씨는 원전 사고 후부터 오늘까지 거의 매주 후쿠시마현의 재해 지역에 계속해 다니고 있다. 다카무라 씨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 마을에 당시 건설이 예정되어 있던 가미노세키 원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던 것.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카무라 씨가 후쿠시마에 계속해 다닌 지 벌써 48일 후가 되었다. 다카무라 씨는 "노구치 씨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20km의 거리에서 본다는 것, 그 단어 자체를 짊어지고 여행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계속 현장에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그 순간 나는 "다카무라 씨, 저도 데려 가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20킬로미터라는 것은 경계 구역으로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미나미 소마시의 허가를 받아 6월 20일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방호복을 입고, 경찰의 검문을 은 후에야 20킬로미터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향한 곳은 돼지우리. 사육장 입구에 차를 세워서 하차하는 순간 밀려오는 냄새. 돼지우리에서 수십 미터 떨어져 있음에도 냄새가 진동했다. 돼지우리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간 아무도 열지 않았는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끼긱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강렬한 썩은 냄새에 당분간 눈을 뜰 수 없었다. 발을 디디자 픽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발밑을 보니 바닥은 구더기로 가득했다. 그런 구더기들을 밟아 뭉개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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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시체로 가득한 돼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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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로 뒤덥힌 돼지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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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살아있는 돼지를 보고 놀랐다

아직 사육장 속에 살아있는 돼지를 보고 놀랐다. 우리 안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돼지의 시체 더미. 얼굴에는 구더기로 가득하며 늑골이 드러난 돼지의 시체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돼지는 굶어 죽었지만, 아직 살아남아 있는 돼지들도 있었다. 3개월 동안 물과 음식을 공급받지 못한 돼지들이 살아남은 것은, 돼지가 돼지의 시체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똥과 오줌으로 썩어 질퍽질퍽하게 된 구더기투성이의 시체를 먹고 있는 돼지의 모습에 토할 것 같아, 돼지우리에서 뛰쳐나와 위액을 쏟아 냈다. 썩은 냄새가 몸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곳은 전쟁터 같다. 살아남아 있는 돼지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쓸쓸한 눈빛이 "도와달라"라고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 같았다. 사육장의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살 처분하는 것도 아니다.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살아서 지옥에 존재한다.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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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돌려 향한 것은 외양간. 마치 학살 현장 같았다. 소들은 아사했다. 돼지우리와 마찬가지로 소들은 굶어 죽었고 머리는 묶여 있었다. 젖소에게 먹이를 줄 때 목을 고정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며 그대로 죽어간 소들의 모습. 죽어 있는 소들의 비참한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전해져 왔다. 그 상황에서 사람이 긴급히 피난해야 했기에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 소들을 자식처럼 키워왔을 목장 주인의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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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고정된 채 굶어 죽은 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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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한 마리의 소, 아무도 없는 외양간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외양간을 뒤로하고 차로 돌아가는 중에 돼지우리와 외양간에서 가축들이 도망쳤다. 소와 돼지를 발견한다. 차에서 내리면 돼지와 암소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인간에게 사육되어 온 동물이다. 혹시 인간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먹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돼지들은 꼬리를 부르르 흔들며 따라왔고 다른 가축들은 우리 일행을 둘러싸고는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치 학살 현장에서 해방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살아 있는 모습에 "살아 있었구나! 잘 살아 있었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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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에 둘러싸여

그러나 정부는 5월 12일 살처분 정책을 결정. 농림 수산부에 따르면 "원전의 영향으로 출하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 이유.


그것이 눈앞에서 현실로 벌어졌다. 다시 다음 현장으로 차를 타고 여러 목장을 시찰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들과 만났던 광장 옆을 차로 이동하는데 방호복에 몸을 감싼 수십 명의 사람이 돼지를 포위하고서는 준비해온 울타리 속에 넣고 있었다. 명령에 따라 즉각적으로 도살을 시작한 것. 방금 그들과 만나 살아 있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었으나, 곧이어 도살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를 둘러싸는 것을 도와주면서도, 속으로는 "도망쳐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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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우리에서 도망 살아남아 있던 돼지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최근에는 이 "도살"이라는 표현을 "안락사"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표현을 바꿔봐야 내용은 같다. 도살 처분되는 돼지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자기 멋대로인 생물이라는 생각에 정말 미안한 마음이 차올라 가슴이 부서질 것 같았다.


지진이 나기 전 이 경계 지역에는 소는 약 3,500마리, 돼지는 약 3만마리 있었지만, 5월 조사에서는 소가 약 1,300마리, 돼지가 약 200마리로 아사에 의해 그 숫자가 줄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동물들 역시 이제는 도살 처분한다.


사실 대부분 가축은 따지고 보면 먹히기 위해 죽어가는 운명이다.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 도살 처분의 죽음과는 의미가 다르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빼앗긴다. 그것이 먹는다는 행위이다. 하지만, 너무 안이한 도살 처분은 생명을 생명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축의 생명을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생각은 결국 같은 동물인 인간을 향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그런 생각에 잠기며 현장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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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 있던 동물들에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라고 생각하며 다양한 현장에 다녔지만, 이때만큼은 더욱 괴로웠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봐야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한탄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이 좋다

다카무라 씨는 20킬로미터 내의 세계를 가장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자 국회의원들은 주말이 되면 선거를 위해 현지에 방문한다. 그런 가운데, 타카무라 씨는 다른 지역에는 가지도 않고 ‘20킬로미터’의 거리로 향한다. 이러한 정치가가 있는 것을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바로 어제, 다카무라 츠토무 씨와 "팜 생츄어리 ~ 희망의 목장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계 지역 내에서 살아남은 가축들을 어떻게 사육해야 하는가? 이미 학자와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피폭한 가축의 성장 과정 등을 조사하고 싶다."라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도 정부는 도살 정책을 바꾸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민간인들은 어디까지 힘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다카무라 씨나 지역 낙농가 여러분, 그리고 학자, 연구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일을 계속해 가고 싶습니다.


2011년 7월 29일 켄 노구치


글: 켄 노구치 / 한글로 정리: 정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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