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세고
새벽에 도서관을 간다.
건널목 넘어
가로등과 쓰레기통 사이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한 여자가 힐끔 쳐다 보고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이겠거니
신호가 바꿔 길을 건너자
경찰차와 경찰관
신문배달원의 오토바이가 있다.
변사체
최초 발견자의 진술을 듣는 경찰관
가로등과 쓰레기통의
사이는 좁다
그 안에
20대로 보이는 젊은이의 몸이 있다.
오른발의 신발은 벗겨져 있고
힘없는 헝겊인형처럼 구부러진체 누워 있다.
신문배달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경찰관에게 진술을 하고
경찰관은 수첩에
열심히 적고 있다.
취중에 실신을 하고
토사물로 기도폐색 질식사 된 것일까?
과도한 음주에
과도한 움직임은 저혈당을 초래한다.
게다가 무더운 기온에
지치고 지쳤을 것이다.
마른 몸
체력이 강해 보이지 않았다.
변사체의 특성상
사법검시에 들어갈 것이다.
Y자로 가슴과 배가 절개되고
내장이 끄집어 내질 것이다.
그리고 내장의 무게를 달고
간을 썰어 조직검사를 할 것이다.
글라인더로 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꺼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오장육부를
대충 몸안에 집어 넣고
굵은 실로 봉합후
조끼같이 큰 거즈로 봉합부를 가릴 것이다.
과거 헌병대 시절
통합병원 부검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화장될 가망성이 높다.
변사체는 주로 화장을 지향한다.
하지만 덤덤한 기분은 뭘까?
익명성의 무감정은 플라스틱 냄새가 난다.
처음으로 사체를 본 것은
유치원 시절이다.
어느 집 담벼락에
군용 모포를 덮은체 얼어 죽은 노인의 모습이다.
편안히 눈을 감은 얼굴과 온몸에
하얀 서리가 가득 내려 앉은 모습이다.
아주머니들이 에워싸
사체를 구경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두번째 모습은
시골 강가에 빠져 죽은
젊은이의
강직된 시체이다.
그 충격에
잠시 밤이 무서웠다.
그리고
헌병대 복무시절에 이어
응급실에 일하게 되면서
많은 변사체를 보게 되었다.
추락사한 사체
알콜중독으로 간성혼수로 사망한 사체들
심지어는
트랙터에 산체로 딸려 들어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의 사체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팔의 근육이 완전히 튀어 나온체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모습...
몇분 전만해도
코에 호스를 꽃은체 농담하던 노인은
의식을 잃고
CT촬영중 누운체로 분수같은 피를 토하고
발작을 일으켜
수많은 링거줄이 뽑히며 흐르는 피들...
나는 옆에서
인공호흡기를 손으로 짜고 있었다.
가운에 산탄처럼 튀기던
피들을 기억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벽 도서관을 가는 길목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말았다.
다시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진 않았다.
당시에는 덤덤해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일 수록
결국
우울함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병동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한 젊은 여성은
피묻은 환자복을 입은체
응급실 처치실로 실려 온다.
선임간호사는
내게 피를 딲으라고 지시한다.
생리식염수를 거즈에 묻혀
피를 딲는다.
생리식염수는 아까우니
수돗물로 딲으라 한다.
왼손 요골동맥을
칼로 그었지만
요골 사이의
동맥을 끊을 위력은 없었다.
자신의 피에
실신한 것
피가 딲여지자
응급실 과장이
덤덤히 상처를
봉합하고
함께 온 병동 간호사는
불안감에 서있다.
어느 조직폭력배 일원이
자신의 요골동맥을 끊고
동료와 함께 응급실에 왔다.
그는 확실히 동맥을 끊었다.
덕분에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가 봉합을 해야 한다.
수술실에 갈때나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덜 깨어난 상태에도
변함없는 건달끼
가득한 웃음...
토요일 저녁이면
응급실에 들어 닥치는
자살미수의
여성들
막상 자살에 실패하면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자해가 아니라고 우긴다.
의료보험은 일반접수 보다 저렴하다.
음독 자살로 실려온
아가씨는 처치실 침대에 묶여 있다.
청바지를 입은체
소변을 보고
수많은 간호사들은
그녀의 설압자로 그녀의 입을 벌려려 노력한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성스러운 외가리 토트가 앙카 십자가로 입을 벌린다.
심장무게 재기 의식과 흡사한 광경이다.
토트와 저울을 감시하는 아누비스가 없을 뿐이다.
토트는 이집트 의학의 신이다.
아누비스는 사자를 보호하는 수호신
이미 산자를 위한 의식이 아닌 것
응급실의 의식은 적어도 산자를 위한 그것이다.
도서관 내내
간밤에 피곤이 몰아쳐
잠들고 다시 깨어나
책을 보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한다.
불편한 잠자리에도
어김 없이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점심에
덜익은 국수와 속을 끍는 김밥
풀과 종이 타는 냄새 가득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산자만 껌을 씹는다.
산자만의 세면을 한다.
도서관 창문 넘어
폭우가 쏟아 진다.
나무들은 비를 맞고
소스라치게 흔들린다.
산 전체가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