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다부동이 보였다.
민가라고 해봐야 30호 남짓 될까 말까한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마을 입구를 향해 내가 탄 지프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차가 조그만 길로 난 다부동 입구에 들어설 때였다.
핑 ~ 하면서 날카로운 금속이 스쳐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 으윽 ......"
운전병이 갑자기 오른팔로 자신의 왼쪽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차가 급히 멈췄다.
운전병은 핸들을 잡은 채로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낌새가 이상했다.
" 무슨 일인가 ? "
내가 운전병을 봤을 때 그의 왼쪽 어깨는 이미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 사단장님, 아........맞았나봅니다......"
지프 근처에 포탄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강한 포탄 파편이 왼쪽 어깨를 날카롭게 찢어냈던 것이다.
피가 심하게 흘러나왔다.
저 멀리 다부동 촌락의 끝은 산자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쨋든 차를 더 이상 몰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운전을 하지 못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운전병에게
" 빨리 위생병에게 가라 " 모 말한 뒤 급히 뛰었다.
다부동 입구에서 산자락까지 꽤 멀어 보였다.
나는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닿는 느낌이었다.
최대한 속도를 내서 뛰고 더 뛰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을 더 몰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곳이었다.
일단 나는 멈췄다.
" 정말 이렇게 무너지는 것일까 ........"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그 생각에 계속 매달렸다.....
가쁜 숨이 가라앉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산 위를 쳐다봤다.
아군이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힘껏 산을 달려 올라갔다.
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중턱에나 이르렀을까.
후퇴하는 선두와 마주쳤다.
1 대대장 김재명 소령이 눈에 띄었다.
" 김 소령, 이리 와라. 모두 이곳에 먼저 앉아라 ! "
" 너무 굶고 지쳤습니다. 물도 없어서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
" 알았다. 먼저 모두 여기 앉아라. "
부대 선두가 먼저 자리에 앉자 쫒겨 내려오던 후속 부대원들도 한곳에 다 모였다.
500~600명쯤 됐다. 일단 저 뒤의 사람까지 모두 앉게 했다.
처절하게 버티다 내려온 부대원들의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꺼냈다.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나는 옆구리에서 내 권총을 빼 들었다.
나는 적들이 넘어오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앉아 있는 대열 한 가운데를 가르면서 뛰어나갔다.
내가 대열의 맨 앞에 섰다.
그리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뒤에서 함성이 일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기억이 없다.
그저 힘찬 부대원들의 외침이 내 뒤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기억 뿐이다.
계속 그 산길을 뛰어올랐다.
숨이 다시 찼다.
300미터쯤 올랐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확 잡았다.
억센 손길이었다.
또 누군가 내 허리를 잡았다.
역시 힘센 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달려 나갈 수가 없었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 사단장님, 이제 그만 나오세요.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
내 부하들이 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들은 포탄이 넘나드는 그곳을 향해 쏜살같이 앞으로 나갔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