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전사자 보상위로비 5천원?

프론티어z 작성일 11.10.16 20: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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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원에 맞바꾼 목숨들

군인 14만 900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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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침한 인민군 주력부대는 개성, 문산, 의정부, 서울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공격해 왔다. 북한 수상 겸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인 김일성(당시 38세)은 이 의정부 방면에 4만 병력과 50대의 탱크를 투입했다. 십만 명의 침략군 중 나머지 절반은 옹진반도, 춘천, 강릉 방향 등 다른 3개 방면으로 분산 투입되었다. 침략군은 38선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옛 도시 개성을 쉽게 점령하고 문산으로 향했다.

   당시 한국군은 삼분의 일 이사의 병력이 농번기 휴가 중이었으며, 소련제 T-34형 탱크를 막을 장비가 없었다. 전날 육본에서 파티가 있었기에 심지어 지휘관이 부재 중인 부대들도 있었으며, 취침 중에 공격을 당한 부대의 병력들은 혼비 백산 후퇴하였다. 그러나 그 중에도 용맹한 부대가 있었다. 1978년에 XXX 장군이 사단장이었던 1사단은 구보 훈련 때 사단장이 맨앞에서 뛰는 부대였는데 바로 이 부대가 6.25 때 용맹을 떨쳤던 부대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제1사단 사단장은 백XX 대령이었으며, 이 부대의 장병들이 문산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지난해 두 여중생 과실 사고가 난 지역에서 왜 미군들은 남들이 다 보는 한일월드컵 구경은 커녕 하루 다섯 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며 그 더운 여름에 강훈련을 받았던가? 바로 그 도로가 6.25때 인민군 탱크들이 노도처럼 밀고 들어왔던 도로요, 문산 방어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미 2사단이 문산 방면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유사시 인계선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미국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켜주겠다는 의지의 강력한 표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전 초기에는 우리 국군이 문산을 방어하여야 했다. 그리고 문산이 뚫린다는 것은 서울 침공로가 적에게 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문산 방어 전투는 중요하였다. 이 전투에서 백선엽 대령의 국군 제1사단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그들의 소구경 바주카포는 소련제 T-34형 탱크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소총 외에 유일한 중무장은 바주카였으나 바주카 포탄은 명중해도 거대한 탱크에서 탁구공처럼 튕겨나갔다. 비록 이런 열세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전투에서 무명의 용사들의 장렬한 전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신속하게 “자살특공대”에 자원하는 용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수류탄을 들고 적의 탱크에 육탄 돌격했다. 어떤 용사는 탱크 밑으로 몸을 던지는가 하면 또 어떤 용사는 탱크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수류탄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탱크 몇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으나 인민군은 서울 북방 35킬로 지점인 의정부를 향해 전진을 계속했다. 비록 적의 남침을 완전히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였을지라도 이 무명의 영웅들이 자기 몸을 던져 적의 탱크 몇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적의 공격을 단 몇시간, 아니 몇분이라도 저지시킨 것은 생명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일이었다.

위에 자살특공대하신분은 오천원에 목숨받치신셈 

이에 반해서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73379
정부의 일본 지진 피해 지원규모가 해외 지원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아이티 지원규모(1250만 달러)를 웃돌 것

일본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인력과 물자가 부족하여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많은 인력과 물량을 지원했다. 지진 당일인 3월 11일 120명 규모의 긴급구조대를 즉시 비상 대기시켰고, 지진 발생 다음날인 12일에는 구조견 2마리와 구조대 5명, 14일에는 구조대 102명을 피해지역인 센다이에 급파했다.[48] 물자지원도 전폭적이었다. 담요 6000장·생수 100여t, 비상식량·라면·과자류·음료·고무장갑·고무장화 등 70여t, 즉석밥 10만개·김 4만5000봉, 방독면 2만개·비누 2만개·장갑 3500착·약식 2800개 등을 지원했다.[48] 민간단체들도 모금을 통해 일본을 지원했다. KBS도 방송을 통해 대대적인 모금에 나서 3월 말까지 누적 모금액이 300억을 넘어섰고[49] 4월 18일까지 총 560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는 아이티 지진때보다 2.6배 많은 것이다.


오천원이면 요즘 점심밥값도 겨우 될까말까하는 돈 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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