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그릴스(bear grylls·37)는 모험가이자 작가, 또 미국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스커버리채널 ‘인간 대 자연 (man vs wild)’의 겁 없는 주인공이다. 세계 오지를 누비며 징그러운 벌레와 이름도 모르는 짐승의 생고기를 식량 삼고, 뱀을 장난감 삼으며 문명사회를 떠나 야생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시즌 6까지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같은 제목으로 비디오 게임, 그의 야생 생존법을 배울 수 있는 스마트폰 앱까지 등장했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을 때도 그의 야성에는 거침이 없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핼리팩스에서 스코틀랜드 존 오그로츠까지 오픈 보트를 타고 북대서양을 횡단하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베네수엘라 앤젤 폭포에서 동력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엉뚱하기도 하다. 직접 만든 욕조 보트를 타고 *으로 영국 템스강을 22마일이나 노를 저어 건넜다.
그의 성장 배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나 이튼스쿨을 나오고, 런던대를 졸업했다. 반듯한 외모에 귀여운 아이들과 아름다운 아내까지, 보통사람 기 죽이기 충분한 남자다. 샌님 같아야 할 사람이 젖은 숲을 누비는 ‘곰’의 근성을 가졌다. 20대에 영국 특수부대에 자원한 것도 그 ‘곰’ 때문이었다.
조진화 객원기자
● 좋은 대학 잘 나와서 왜 특수부대에 자원했는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코만도(군 특수부대) 대원이셨는데, 자라면서 항상 아버지보다 더 나은 코만도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하. 부모님도 내 결정에 흔쾌히 동의하시고 지지해주셨다.”
● 이튼스쿨 등에서 받은 고급 교육이 극한상황에서 도움이 됐나.
“기숙학교였던 이튼스쿨은 최고의 생존 훈련장이었다. 내 자서전 『진흙, 땀 그리고 눈물(mud & sweat, tears)』에서도 썼지만 (친구들이나 학교 생활이) 힘들 때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 그곳에서 배웠다.”
특수부대 훈련 중에는 고공 낙하는 기본이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고공 낙하 훈련을 받던 중 그는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땅에 그대로 떨어졌고,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했다.
● 다시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참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다.”
그가 되찾은 자신감은 보통 이상이었다. 부상을 당한 지 2년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그때 나이가 23세.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최연소 영국인 기록을 세웠다. 쉽지만은 않았다. 최초 시도 때 크레바스에 빠져 의식을 잃었지만, 몇 주 뒤 루트를 바꿔 다시 도전했다.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이 젊은 곰의 포효를 들었다.
● 왜 에베레스트였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에베레스트 사진을 보면서 항상 그 산을 정복하는 것이 꿈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공유했던 꿈이기도 하다.”
이 도전이 그를 디스커버리채널 프로그램인 ‘인간 대 자연’으로 이끌었다. 그의 소식을 접한 디스커버리채널이 먼저 접근했다. “우리가 당신을 극한상황에 떨궈놓고 어떻게 생존하는지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데 관심 있나요?”
지금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극한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을 보여줬다. 영화배우 제이크 질렌할, 윌 페럴이 그의 도전에 동참했다. 이름 모를 벌레를 후루룩 물 마시듯 마시고, 물컹물컹 씹어 먹는 것은 기본이었다. 사자가 먹다 남긴 얼룩말 살을 그대로 뜯어 먹고, 사슴의 똥을 먹으며, 방울뱀 가죽에 보관했던 자신의 오줌까지 마셨다.
맛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떤 것이 좀 먹기 편한가. 얼룩말 살? 야크의 피? 벌레?
“야크의 피가 그래도 제일 나았던 것 같다. 영하의 날씨였던 시베리아에서 마셨는데, 마신 뒤 그나마 몸이 좀 따뜻해졌다.”
● 멕시코 편을 보니 벌집을 쑤시다가 쏘여 온 얼굴이 퉁퉁 부은 적도 있던데 그때 무슨 생각을 했나.
“’악어나 뱀에게 물린 게 아니라 벌에게 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 ‘극한상황을 위해 훈련했다’고 자주 말한다. 보통 사람도 훈련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나.
“물론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렇게 배우고 훈련하는 시간이 다 즐거운 것 아니겠나.”
● 한번쯤은 ‘아, 그냥 포기해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한데.
“사막과 정글에서 지내면서 정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이 고통과 추운 날씨, 불편함 또한 다 지나간다는 주문을 나 자신에게 건다. 그렇게 견뎌낸 뒤에 오는 뿌듯함이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 극한상황에서 본능이나 직관이 얼마나 좌우하나.
“수년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고, 본능을 항상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두려움과 본능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건 하지 말라’ 하고 말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제대로 구별해 내는 것이다.”
● 결국 이성과 본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건데.
“내 생각에는 본능 쪽으로 좀 치우쳐 사는 것이 더 건강한 삶인 것 같다. 극한상황까지 가서 이성 속에 갇힐 이유는 없지 않나?”
● 자연의 어머니가 특히나 심술을 부릴 때가 있는데.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도 남극에서 어깨가 부러졌을 때다. 너무 고통스럽고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아스피린만 먹으면서 4일 동안 텐트 속에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던 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 그런 경험을 하고서도 계속 자연에 덤비다니. 대체 자만한 건가, 어리석은 건가.
“자연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겸손함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교훈이다. 물론 인류는 항상 ‘더 크고, 더 강하게’를 지향해 왔지만, 조금만 ‘똑똑’해지면 그런 자만심을 이겨낼 수 있다.”
● 다음 도전은 뭔가. 본인의 도전정신을 모두 포기하는 것?
“와우. 그건 정말 힘든 도전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도전은 아닌 것 같다. 그러기엔 모험을 너무 사랑한다.”
●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바닥이 날 때 쓰는 자신만의 동기부여 방법은.
“단순한 것들만 생각한다. 내 꿈, 목표,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계획과 훈련.”
그의 본명은 다분히 부잣집 도련님 이름 같은 에드워드 마이클 그릴스다. 성인이 된 후 누나가 애칭으로 부르던 이름인 ‘곰’(베어)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그의 야성성을 인정하는 성인식이었다고나 할까.
● 이름은 왜 바꿨나.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이 나를 곰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정말 혐오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한 이름으로도 불렸을 것 같아 그나마 곰이라 불렸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극한상황으로 떠날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 걱정이 클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미리 말하지 않고,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어디 다녀왔는지 말해준다. 그게 비법이다! 하지만 가족은 내가 내리는 결정을 믿어준다.”
그릴스는 “아내가 나와 결혼한 뒤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알려 하지 않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고 농을 하지만, 상당히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로 알려져 있다.
● 막내아들을 의사 도움 없이 가족이 사는 보트에서 낳았다던데.
“아내 사라가 워낙 집을 좋아하고 병원을 싫어한다. 막내아들이 태어날 때 난 옆에 든든한 연장통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하하.”
세 아들을 위해서는 모험 소설 ‘미션 서바이벌’ 시리즈도 썼다. 『희망을 잃지 말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을 돌보는 미지의 힘』 세 권인데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 아이들을 위해 모험소설도 썼다.
“이 소설들은 모험과 우정이 가득한 스토리들로 동시에 생존법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알고 자라면 좋을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 사는 것(living)과 살아남는 것(surviving),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살기 위해 자신의 생을 최대한 늘리는 작업이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섯 가지 f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family), 친구(friends), 믿음(faith), 즐거움(fun), 자신의 꿈을 좇는 것(follow your dream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