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배트맨 복장을 하고 배트맨 심볼을 단 람보르기니를 몰고 질주하던 40대 중년 남성이 경찰에 단속됐다는 소식에 폭소를 떠뜨리던 미국인들이 숙연해졌다. 가슴을 저리게 하는 뒷이야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의 29번 도로. 쏜살처럼 달리던 검은색 람보르기니 차량이 경찰 단속에 걸렸다. 운전자는 사업가 레니 로빈슨(48).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배트맨 복장을 하고 있었다. 차에는 온통 배트맨 심볼이 붙어 있었다.
로빈슨은 기이한 복장으로 지금까지 이상한 취미를 가진 중년 남성쯤으로 알려져 왔다. 인터넷, 페이스북에서 그는 화제 인물이었다. CNN과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도 그의 장난기를 소개했다.
그가 이날 경찰에 단속된 이유는 차량번호판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붙인 배트맨 심볼 때문이었다. 그는 "번호판이 차 안에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벌금통지서를 발부하진 않았지만 '29번 도로 배트맨' 이야기는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그는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를 알고 있던 워싱턴포스트의 마이클 로젠월드 기자가 "진짜 모습을 소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평소 알려지기를 원치 않던 그가 조건을 달아 허락했다. 워싱턴 북동쪽에 있는 국립아동의료센터에 함께 가는 조건이었다.
이들은 지난 26일 배트맨 책과 배트맨 심볼, 배트맨 팔보호대, 장난감이 가득 담긴 가방 2개를 들고 병원을 찾았다. '배트맨'은 아동 병실을 찾아다니며 아이들마다 선물을 나눠주며 사진을 함께 찍고, 상태가 어떤지를 물었다. 배트맨 마스크 뒤 그의 얼굴은 이내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이런 일을 한번 하고 나면 그는 몸무게가 2㎏ 이상 빠진다고 한다.
로빈슨(48)이 배트맨 복장으로 아이를 만나고 있다.
그는 암병동에서 만난 아이에게 팔보호대를 건네며 말했다. "행운을 가져다 줄거야." 아이 아빠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운이에요"라고 간절히 말했다.
그는 소아암환자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하기 위해 검은 배트맨으로 분장한 천사였다.
로빈슨은 2001년부터 한달에 수차례씩 어린이 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방문한다. 어릴 때 배트맨에 매료된 아들과 놀아주다가 배트맨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배트맨 복장을 하면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 책임감이 그를 아이들에게로 이끌었고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힘이 됐다. 그는 선물비로만 1년에 2만5000달러(약 2800만원)를 쓴다. 책이나 모자, 티셔츠, 가방 등 모든 선물에 배트맨 사인을 한다.
그가 병원을 떠날 즈음 암투병 중인 어린 여자아이와 4살짜리 남동생이 엄마 손을 잡고 주차장까지 따라왔다. 배트맨차를 구경하겠다고. 이를 보고 로빈슨은 영화 배트맨에 나온 것과 같은 진짜 배트맨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