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중신들이 저녁때면 퇴궐해서
박정승댁 사랑방에 모여 고담준론 (高談峻論),
정사 (政事)를 논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그들도 화제(話題)가 바닥나면
근엄하던 품위와 체면따위는
전당포에 잡혀두고,
자연스럽게 잼나는 와이당으로
"허허허 껄껄껄"거리기 일쑤였다.
점잖으신 대감들의 고담준론속엔
간혹 <요분질.용두질. 뼉> 같은
야한 단어도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하기사 대감들도 거시기 달린 남자인데
그런 말 한다고 사헌부(司憲府)에
붙잡혀 갈 일도 아니고...
때때로 사랑방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이집 안주인 정경부인마님이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지만 이련 말을
몰라서야 대감댁 안주인으로써
체면이 서겠느냐고 생각한 정경부인 마님이
어느날 밤 이불속에서 남편 박정승에게 물었다.
"여보 대감! 제가 사랑방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요분질 용두질 뼉에대한 말 뜻을 물었다.
당황한 박정승,이실직고 할수는
없는 노릇,임시방편으로 둘러댄다는 말이,
"요분질은 바느질. 용두질은
담배피우는 것이요.
그리고 뼉은
겸상을(두사람이 함께 먹는 밥상)뜻하는 것이요"
정경부인은 이 말들은 상류사회에서 쓰는
고상한 용어라고 생각하고 잘 외어두었다.
무남독녀 외동딸 시집 보낸지 두달 째 되던
어느날
새 사위가 혼자서 처가에 문안인사차 왔다.
대감은 아직 퇴궐전이라
집에는 장모(정경부인)혼자 있었다.
새 사위를 맞이한 장모는 넘넘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몰라였다.
새 사위를 안방에 앉혀놓고 첫 인사로 하는 말이
"내가 여식을 잘 가르쳐 보내지도 못했는데,
요분질은 제대로 하는가?"
글구,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들고와 내밀면서
"심심할텐데 용두질이나 치게"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어리둥절한 새사위 앞에
밥상을 차려 들고 들어 온 장모 왈,
"처남이리도 있었으면 뼉이라도 할텐데
처남도 없으니 뼉도 못해 죄송하네"
드디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솓구친 새 사위
벌떡 일어서며
"이런 불쌍놈의 집구석이 다 있나?"
하고 문을 박치고 나가 버렸다.
영문도 모르는 장모,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때 마침 대감이 퇴궐해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박대감,
선걸음에 돌아가는 새사위를 뒤 쫓아가
붙들어 세워놓고
"여차저차 해서 저차여차 했노라"고
이실직고를 하자
새 사위도 잠지 달린놈이라 껄껄 웃어 넘기고
오해가 풀렸다는 옛 이바구 한 토막.
믿거나 말거나다.